A Fortune-telling Princess RAW novel - Chapter (48)
루브의 얼굴이 평소와 달리 싸늘해졌다. 하지만 곧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입가에 다시 미소를 머금는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
“루브가 거기 수장인 거 알아.”
블랙 쉐도우. 소르펠 가문이 생겨날 때부터 함께한 조직.
말 그대로 어둠 속에서 온갖 일을 다 하는 이들이 모인 조직이라 할 수 있었다.
주 업무는 정보를 모으는 것.
대륙 곳곳에 퍼져 온갖 정보를 다 이곳으로 보내오고 있었고 소르펠 가주의 명에 따라 은밀한 일들을 행하기도 했다.
은밀한 일이 대체 뭔지 무척 궁금했지만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아가씨.”
루브의 표정이 아주 복잡미묘해졌다. 뭔가 할 말이 많은데 당장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이다.
“나중에 나 좀 봐.”
그 말을 끝으로 카밀라는 지친 몸을 힘겹게 움직여 방으로 향했다. 뒤에서 집사 루브의 끈질긴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냥 무시했다.
‘피곤하다, 피곤해.’
* * *
“왜 불렀어?”
“같이 차나 한잔하자고.”
“뭐?”
“차 한잔하자고 불렀다고.”
“점심으로 뭐 먹었냐?”
분명 저 인간, 뭘 잘못 먹은 거다.
제이빌런 공작은 연신 혀를 찼다.
“그 나이에 벌써 노망이라도 든 거야?”
급히 연락이 와서 보자기에 뭔가 중요하게 의논할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서둘러 달려왔다. 그런데 뭐?
“차?”
고작 차나 마시자고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한 거야?
“오늘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
“학교?”
제이빌런 공작은 바로 혀를 찼다. 요즘 좀 얌전히 지내는 것 같더니. 카밀라, 그 아이가 또 무슨 사고라도 친 게 분명하다.
“이번에는 또 뭐야?”
“뭐가?”
“또 영애들 머리라도 잡아챈 거야?”
“우리 딸이 뭐 매번 사고만 치는 줄 아나!”
“그럼?”
버럭 하던 소르펠 공작은 표정을 다시 가다듬었다.
“글쎄, 우리 딸이 말이야.”
“뭐.”
“우리 딸이 1등을 했다는군.”
“뭐?”
“중간고사에서 1등을 했다고.”
“…….”
제이빌런 공작은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1등?”
“그래, 1등!”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말이야.”
저놈이 진짜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일이 없겠지만…….
“설마 그거 자랑하려고 나 부른 건 아니지?”
“1등이라니까.”
“그래서?”
“1등이라고.”
…미친 거 맞네.
제이빌런 공작은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지금 고작 저딴 거 자랑하려고 자신을 그리 급하게 부른 거란 말인가? 진짜로?
당장 달려오라고 난리, 난리, 생난리를 다 피우더니! 뭐가 어쩌고 어째?
“야,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미쳐.”
“진짜 마지막으로 묻겠는데, 정말 날 부른 이유가 고작 그거 자랑하기 위해서였냐?”
“1등이라니까.”
“내 아들은 매번 1등이다! 그딴 걸로 사람 오라 가라 하지 마! 자식이 좋은 성적 받은 게 뭔 큰일이라고!”
제이빌런 공작은 자리에서까지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기가 막히다 못해 뒷골이 확 당겼다.
“자랑하면 안 되는 건가.”
그 순간 들려오는 나직한 음성에 제이빌런 공작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담았다.
아까부터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차만 마시고 있던 세프라 공작이 잔뜩 가라앉은 분위기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5등이면 상위권인데…….”
“뭐?”
뭐라는 거야, 저 자식은?
그에게서 바로 신경을 끊은 제이빌런 공작은 삿대질까지 하며 소르펠 공작을 향해 다시 고래고래 소리쳤다.
“유치하게 그런 걸로 기뻐하지 마! 우리 나이가 몇인데!”
이런 한심한 족속을 봤나. 루드빌이 소드마스터가 됐을 때도 덤덤했던 녀석이!
‘정말 노망이라도 든 건가?’
제이빌런 공작은 연신 혀를 찼다.
“기뻐하면 안 되는 건가.”
그때 또다시 옆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보다 더욱 분위기가 다운된 세프라 공작이 여전히 혼잣말을 내뱉고 있었다.
“5등인데… 5등이면 잘한 건데…….”
오늘 다들 왜 이러냐? 5등은 또 뭔데!
제이빌런 공작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꾹꾹 손으로 눌러댔다. 주변에 있는 친구 녀석들이 왜 다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 * *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이의 등장에 카밀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집사… 아니, 블랙 쉐도우의 수장인 루브였다.
그 역시 이 자리에 집사로 온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평소 같은 정중한 인사 따윈 없었다.
블랙 쉐도우가 따르는 이는 오직 한 사람, 소르펠 가문의 가주뿐. 다른 이에게까지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절 찾으신 이유가 뭡니까?”
그는 바로 용건을 꺼내 들었다. 카밀라 역시 얘기를 길게 할 생각이 없었기에 미리 준비해 둔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
“이들 좀 조사해 줘.”
카밀라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 든 루브는 빠르게 안의 내용을 훑었다.
“이들이 누굽니까?”
“죽은 자들.”
“예?”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이 죽은 후 주변 상황은 어땠는지 자세히 알아봐 줘.”
카밀라가 건넨 건 제이비 교수의 손에 죽은 여자들의 신상 명세서다.
여학생 귀신 에이미와 나눈 대화를 떠올린 카밀라의 입에서 연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빠라고?’
[응.]‘네 오빠가 저 여자들 다 죽인 거 맞아?’
[…맞아.]이어진 에이미의 말은 더욱 기가 막혔다. 제이비 교수의 살인 동기가 너무도 어이가 없었거든.
[우리 둘 다 보육원에서 지냈어. 그러다 오빠보다 내가 먼저 입양이 됐고.]입양된 곳은 결코 좋은 곳이 아니었다. 늘 배가 고팠고 늘 일을 해야만 했다. 가족이 아니라 일꾼으로 그 집에 들어간 것이다.
[나름 자리를 잡은 오빠가 8년 뒤에 날 찾아왔지만…….]에이미의 양부모가 그녀를 내주지 않았다. 데려가고 싶으면 그동안 동생을 키워준 값을 내놓으라면서 말이다.
제이비 교수는 어떻게든 에이미를 데려가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죽어 버렸어.]에이미의 양부모는 불행한 사고였다고 주장했지만 절대 아니었다. 그들이 바로 에이미를 죽음으로 내몬 당사자였으니까.
[오빠의 범행은 그때부터 시작됐어.]제이비 교수는 마치 스위치가 눌리기라도 한 양 거침없이 행동했다. 거의 폭주나 다름없었다.
‘미친놈.’
에이미를 죽인 이들에게 복수한 것이었다면, 응원은 아니어도 마음속으로 박수는 보내 주었을 것이다. 근데 아니잖아.
‘그 대상이 왜 애꿎은 여자들이냐고!’
에이미는 뭔가 더 알고 있는 듯했지만 죽은 여자들의 신상 명세 외에는 더 말해 주지 않았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카밀라의 귀로 루브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루브는 카밀라의 눈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조금의 거짓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무척 날카로운 눈빛이다.
“제가 블랙 쉐도우의 수장이라는 걸… 아니, 저희 조직에 대한 걸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블랙 쉐도우는 말 그대로 세상의 그림자에 숨어 있는 자들이다. 남들이 쉽게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소르펠 가문 내에서도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아는 이는 단 한 명, 소르펠 공작뿐이다. 다음 대 가주직에 오를 루드빌조차 아직 블랙 쉐도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카밀라가, 다른 이도 아닌 그녀가 조직의 이름을 정확히 입에 담았다. 게다가 자신이 수장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
‘대체 어떻게?’
이 방에 들어서기 전까지 있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지만, 그 답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루브.”
“네.”
카밀라는 일단 목소리를 착 깔았다.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다. 대답도 준비해 두고 있었기에 바로 입을 열었다.
“그냥 보였어.”
“보여요?”
“응, 루브를 보고 있으니까 자꾸 뭐가 보이더라고.”
“…….”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루브를 수장으로 부르더란 말이지. 아버지 역시 자네를 아주 귀하게 여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그녀는 언제나처럼 같은 핑계를 댔다. 내가 봤다는데 뭘 어쩔 거야?
“그게 답니까?”
“응.”
“블랙 쉐도우라는 이름도 그렇게 알게 되신 거라고요?”
“맞아.”
“아가씨, 그걸 지금 저보고 믿…….”
“루브, 잊었어?”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는 그를 향해 카밀라는 쐐기를 박았다. 표정은 더욱 뻔뻔하게, 도도하게!
“나 신수의 알까지 찾아온 여자야.”
“…그렇죠.”
그 말을 듣고서야 루브는 어느 정도 납득했다. 그동안 그녀가 보인 능력은 확실히 신기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신수의 알을 찾아온 건 그녀가 가진 능력이 아니고서야 따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루브의 모습에 카밀라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쾌재를 불렀다.
‘물론 다 거짓말이지.’
아무리 이 세계를 수십 번 겪었다지만 카밀라가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루브의 정체와 블랙 쉐도우에 대한 정보를 준 건 바로 집사 유령 데린이었다.
‘좀 이상하긴 했어.’
저번 정령의 호수에서 쥬이드 놈과 싸울 때 그에 대한 정보를 줄줄 읊어대던 데린이다.
그놈이 그동안 다른 영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주 상세하게 자신에게 알려 주지 않았던가.
‘그때 쥬이드, 그놈도 놀랐겠지만 나도 놀랐거든.’
어떻게 그런 정보를 데린이 자세히 알고 있는 건지 무척 신기해했었다.
그런데…….
‘데린이 바로 전대 수장이었다니.’
루브 이전의 블랙 쉐도우 수장이 바로 데린이었다.
알고 보니 소르펠 가문의 집사로 있는 이들이 가진 또 하나의 정체가 바로 그거였다. 데린이 수장으로 있을 때 다음 대 후임으로 키운 이가 바로 루브였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데린을 처음 보았을 때 평범한 노인치곤 체형이 너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다. 아주 날렵하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루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곳 집사들은 다 그런가 보다 했지.’
신체 조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