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ortune-telling Princess RAW novel - Chapter (53)
여학생 귀신 에이미는 빈터의 옆에 서 있는 유령. 자신과 똑같이 생긴 유령을 보며 연신 감탄했다.
“당연하지. 실제로 저들이 죽인 이들의 환상을 불러낸 거니까.”
카밀라는 간단히 대답을 내뱉으며 다시 한번 검은 늑대 루나─세프라 가문의 신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에 기분이 좋은 듯 검은 늑대의 입에서 갸릉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빈터 부부가 겪은 일은 바로 이 신수의 능력이었다.
어둠을 다스린다고 하더니, 죽은 자의 모습을 똑같이 구현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살아 있는 자의 모습은 구현하지 못한다는 거다. 오로지 죽은 자,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의 모습만 불러낼 수 있었다.
‘어둠의 신수답네.’
이번 일에 아주 딱인 능력이었다.
“정말 잘했어, 루나.”
검은 늑대, 루나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마구 흔들며 카밀라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한 일주일이면 되려나?’
카밀라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빈터를 보며 피식 웃었다. 오늘 반응을 보니 일주일도 필요 없을 듯했다.
‘조만간 알아서 자수하러 갈 것 같은데?’
바지까지 젖어 있는 빈터를 보며 카밀라는 쯧 혀를 찼다. 그의 손에 죽은 아이는 에이미만이 아니었다.
‘그런 주제에 또 입양을 하다니.’
아이들이 소모품도 아니고 말이야.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카밀라는 다락방에 갇혀 있던 아이를 이미 구출해 낸 뒤였다.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피골이 상접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자신에게 경계심도 없었다. 이곳에서 나가게 해 주겠다는 말에 두말없이 자신의 손을 잡아 왔다.
“썩을 놈들.”
쓰러져 있는 빈터 부부를 발로 잘근잘근 밟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앞으로 며칠만 더 수고해 줘.”
카밀라의 말에 신수 루나가 알겠다는 듯 다시 한번 그녀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그 모습을 보며 카밀라 역시 다시 루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 *
탁.
“무슨 생각이야?”
타악.
“뭐가?”
아르시안의 물음에 세프라 공작은 언제나처럼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되물었다. 지금 그의 눈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체스판에 고정되어 있었다.
타악!
“그놈을 그리 함부로 빌려줘도 돼?”
아르시안 역시 체스판의 말을 하나 옮기며 말을 이었다.
“뭘 믿고 막 빌려줘?”
“너 믿고.”
“뭐?”
“체크 메이트.”
“이런, 씨!”
“또 졌구나.”
아르시안은 투덜거리며 의자에 몸을 푹 파묻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체스를 두는 건 카밀라와의 약속 때문이다.
시에르의 영혼이 웃으며 떠날 수 있게 해 준 그녀에게 보답으로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카밀라가 잠시 고민하다 요구한 것이 바로 하루에 한 시간씩 둘이서 꼭 체스를 둬달라는 거였다.
왜 하필 체스냐는 말에.
‘그러면 그냥 둘이서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마주 앉아 있을래요? 뭐, 그 어색함도 괜찮을 것 같네. 설마 어색하다고 죽기야 하겠어?’
‘…….’
‘…….’
그 말에 두 사람은 더 이상 토 달지 않고 체스로 합의를 봤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성실히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시에르가 그런 두 사람을 보면 아주 좋아할 거야.’
체스판에 다시 말들을 정렬하는 세프라 공작을 아르시안은 지그시 바라봤다.
얼마 전 세프라 공작은 가문의 신수인 검은 늑대를 카밀라에게 빌려줬다.
평소 가주 외에 다른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녀석인데, 카밀라는 예외였다. 오히려 카밀라를 따라가라고 했더니 좋다고 먼저 문을 나섰다.
“맞은 뼈가 아파서.”
“뭐라는 거야?”
뼈?
“무슨 뼈?”
뒤늦은 세프라 공작의 대답에 아르시안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신수를 왜 빌려줬냐고 했더니 갑자기 뭔 뼈 타령인지 모르겠다.
세프라 공작은 며칠 전에 자신을 찾아온 카밀라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신수 좀 빌려주세요.’
‘그게 막 빌려줄 수 있는 거였나?’
‘학대로 유지해 온 신수, 학대받는 아이들을 위해 좀 쓰시죠.’
‘아픈 말을 참 아무렇지 않게도 하는군.’
‘원래 진실이 아주 아프게 뼈를 때리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빌려줬다. 맞은 뼈가 아파서.
“아직 한 시간 되려면 멀었나?”
“십 분 정도.”
“한 판은 더 할 수 있겠구나.”
세프라 공작의 말에 이번에는 꼭 이기겠다는 듯 체스판에 말을 올리는 아르시안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 * *
“역시 일주일을 못 가네.”
4일째 되던 날, 빈터 부부는 정신이 반쯤 나간 모습으로 경비대를 찾아갔다.
이미 죽은 이들이 귀신의 모습을 한 채로 돌아가면서 나타나 죗값을 치르라고 고함을 질러대니 결국 두 손을 든 것이다.
경비대를 찾은 그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저지른 일들을 실토하며 용서를 빌었다.
‘이미 죽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면 뭐 해?’
늦어도 너무 늦은 행동이었다. 현재 감옥에 갇힌 그들은 곧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십중팔구 사형에 처해질 게 분명했다.
‘이 세계 법! 아주 마음에 들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살인에는 사형!
죽임을 당한 자가 범죄자이거나 복수의 대상일 땐 재판 결과에 아주 큰 영향을 주지만, 그게 아닌 이상은 고의로 살인을 저지른 자는 100% 사형이었다.
‘그래서 카밀라도 그리 매번 죽었지.’
살인 미수도 살인으로 치부하는 곳이다. 그러니 루드빌을 죽이려 한 혐의로 붙잡힌 카밀라의 삶이 매번 그렇게 목이 댕강 잘리며 끝난 게 아니겠는가.
“테리라고 했었나?”
빈터 부부에게 마지막으로 입양되어 갇혀 있었던 아이. 그 아이의 거처도 나름 잘 해결이 됐다.
샤일런 백작 부부. 오랜 시간 소식이 없다가 얼마 전에야 귀한 아이를 잉태한 그 부부가 테리의 후원자가 되어 주기로 한 것이다.
‘입양은 아니고.’
그건 테리도 원하지 않았다. 빈터 부부의 일로 한번 끔찍한 아픔을 겪은 아이는 입양이라는 것 자체에 아주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그에 샤일런 백작 부부는 자신들이 후원하는 보육원에 아이를 맡겼고, 테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모든 후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라면 언제든 돕겠습니다.’
가짜 예지 능력으로 아이가 있을 것을 예견한 뒤로 카밀라의 신봉자가 되어 버린 샤일런 백작은 그렇게 흔쾌히 카밀라의 부탁을 들어줬다.
“이제 남은 건…….”
카밀라는 자신의 주변을 여전히 서성이고 있는 여학생 귀신 에이미를 바라봤다.
“넌 안 가니?”
[어딜?]카밀라는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만 세상에 미련 접고 떠나라고 말이다.
살인자였던 오빠도 죽었고 그녀를 죽인 빈터 부부까지 곧 죗값을 치를 예정이다. 더 이상 이곳에 그녀가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만 올라가지?”
헤르셀도 그랬고 시에르도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보고 난 후 다들 미련 없이 떠났다. 그런데 저 귀신은 왜 아직도 남아 있냐고.
[아직 할 게 남았어.]“또 뭐?”
[내 꿈.]“꿈?”
카밀라의 물음에 에이미가 환하게 웃는다.
[내 꿈은 언젠가 대륙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거였거든.]“여행?”
[응! 특히 유적지!]에이미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육원에 있을 때도 그랬고 빈터 부부 집에서 구박받을 때도 늘 꿈을 꿨다. 세상을 맘껏 돌아보고 싶다고.
[오빠가 굳이 역사학을 선택해서 교수가 된 것도 이런 내 꿈 때문이었어.]언젠가 세상을 함께 둘러볼 때 곳곳에 숨겨진 역사적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거든.
[결국 정말 꿈으로 남아버렸지만 말이야.]잠시 씁쓸한 미소를 그린 에이미는 이내 방긋 웃으며 제 포부를 밝혔다.
[그래도 이제 맘껏 돌아보려고.]“잘 생각했네.”
귀신이 여행 경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꿈을 이루기에는 딱이다.
[고마웠어.]“알아.”
대수롭지 않게 감사 인사를 받는 카밀라를 보며 에이미는 크게 웃었다.
[그럼 나 간다.]“응. 다시 보지 말자.”
[너무하네.]입은 투덜거리면서도 에이미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마지막으로 카밀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 그녀는 빠르게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제발 다시 돌아오지 마.”
카밀라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