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ortune-telling Princess RAW novel - Chapter (78)
“그런데 갑자기 왜 마음을 바꾸신 거예요?”
“뭐, 그냥. 딱히 마음에 드는 수업도 없고.”
다른 클럽도 대충 살펴봤는데 끌리는 게 없었다. 귀족들이 많은 곳답게 다들 고급스러운 주제로 클럽을 만들어 놔서 선뜻 문을 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왕 뭔가를 해야 한다면 그래도 아는 이가 있고 저리 간절히 들어오기를 바라는 이가 있는 곳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부탁도 받았고.”
“부탁이요?”
“…그런 게 있어.”
젠장… 정말, 진짜로! 먼지 한 톨만큼의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원장 할머니의 부탁을 완전히 무시하기가 영 께름칙했다.
신으로까지 추대받은 이와 척을 지어 좋을 게 없으니까. 그리고 뭐, 꼬맹이들과 한 번씩 놀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리오라 했나?’
자신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달려오던 네 살 꼬맹이가 아주 살짝 눈에 밟혔다.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알려야겠어요.”
“알려? 누구한테?”
“저희 클럽분들에게요.”
“아.”
“다른 클럽보다 유독 인원수가 적어서 다들 고민이 많거든요.”
그렇겠지.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봉사 같은 데 관심을 가지겠는가.
‘이러다 들어가자마자 폐쇄되는 거 아냐?’
인기가 없는 클럽은 당연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일정 인원수가 되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 운영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에서 지원금을 딱 끊어 버리니까.
“그리고 저희 클럽에 들어올 예정인 분에게도 알려야죠.”
“예정?”
“네!”
“그런 사람이 있어?”
카밀라의 물음에 라일라의 미소가 짙어졌다.
“있어요!”
아주 확실하게 들어올 이가.
* * *
“…무슨 클럽?”
“봉사 클럽이요.”
“거기에 카밀라가 들어갔다고?”
“네!”
아르시안은 연신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자신을 홀로 찾아온 라일라를 그대로 무시하고 지나치려는데 그녀가 뜻밖의 말을 전해 온 것이다.
검술 수업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된 카밀라가 다른 전공 수업 대신 클럽에 가입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봉사 클럽이라니.
‘전혀 안 어울려.’
어디 아픈가? 저번에 쓰러졌을 때 머리라도 다친 걸까? 그게 아니고서야 말이 되지 않았다.
전에 자신이 전해 준 은행 전표를 들고 괴상한 웃음을 터트리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그녀가 자기 돈까지 쓰며 봉사활동을 다닌다고?
“의외로 저희 클럽이 인기가 많아요.”
“그런 클럽이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
“어머, 정말요?”
라일라는 태연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 페트로 님도 저희 클럽에 들어오셨는데요.”
“…누구?”
“페트로 님이요.”
라일라가 유독 페트로의 이름을 또박또박 외쳤다.
“저번에 보육원 갈 때도 카밀라 님과 페트로 님이 함께해 주셨어요.”
“둘이 같이 갔다고?”
“네! 아주 즐거워하셨죠.”
“…….”
“두 분이 같이 사탕도 나눠 주고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 주면서…….”
“…있어?”
“네?”
“거기 클럽, 아직 자리 있냐고.”
라일라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물론이죠!”
추가 회원 한 명이 확보되는 순간이었다.
* * *
“흐음, 생각보다 깨끗하네요.”
[창고라고 함부로 버려둘 수는 없으니까요.]카밀라가 창고를 찾은 이유는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카밀라가 어릴 때 쓰던 물건부터 루드빌과 라비가 쓰던 물건까지. 그것들을 정리해 보육원에 가져다줄 계획이다.
비록 쓰던 물건들이지만 하나같이 새것처럼 깨끗했고 무엇보다 최고급 제품들이었기에 그냥 창고에 묵혀 두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돈은 쓰라고 있는 게 아니라 아끼라고 있는 거지.’
이시아로 살 때도 그랬지만 쓸데없는 곳에 돈 쓰는 건 딱 질색이다. 저번에 보육원을 찾아가며 쓴 돈이 대체 얼마였더라? 더 이상은 사절이었다.
루드빌과 라비에게도 사정을 얘기하니 바로 허락해 줬다. 두 사람 다 과거의 물건에 딱히 정을 붙여 두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보육원?’
‘어.’
‘네가?’
‘어!’
‘…가서 뭐 하는데?’
‘애들이랑 놀아.’
‘…….’
‘그 눈빛은 뭔데?’
‘보육원 아이들은 뭔 죄인가 싶어서.’
라비가 기이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봤지만 언제나처럼 깔끔하게 무시해 줬다.
[다른 이들을 시키시지요.]창고 정리에 따라온 집사 유령 데린이 의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혼자 정리하기 힘드실 겁니다.]이런 거야 시녀나 시종을 시키면 간단히 끝날 일인데, 굳이 혼자 정리하겠다고 창고에 들어온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좀 보고 싶어서요.”
[무엇을요?]“내가 쓰던 물건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모르는, 카밀라의 과거에 쓰던 물건들이.
수도 없이 많이 카밀라의 삶을 지켜봤지만, 그녀의 어릴 적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공작가에 들어오기 전에 무지 가난했다는 것. 어머니가 그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
자신이 알고 있는 건 고작 그 정도였다. 이리저리 다른 이들이 하는 얘기를 들은 게 다였다.
‘혹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게 나올지도 모르니까.’
일기장 같은 거?
갑자기 이런 마음을 먹은 건 어제 라비와 나눈 대화 때문이다.
‘옛날 물건을 정리하겠다고?’
‘응.’
‘창고 뒤지면 그것도 나오겠네.’
‘그거? 뭐?’
‘네가 어릴 때 좋아했던 인형 말이야.’
‘…인형?’
‘뭐야? 기억 안 나? 몇 년을 옆에 끼고 다녔는데. 어머니가 처음으로 사 준 거라고 너 엄청 좋아했잖아.’
‘…….’
‘허, 진짜 기억 안 나나 보네. 사자 인형 몰라? 버리라고 했는데 끝내 안 버리고 상자에 보관한다고 했으면서.’
‘…그랬나?’
그렇지 않아도 가끔 불안할 때가 있었다. 혹여 아주 오래전의 일, 아주 어릴 때 일에 대해 묻는 이가 있을까 봐.
자신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물론 어릴 때 일이니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고.
하지만 라비의 대화를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과거와 관련된 뭔가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이다.
[이쪽에 있는 게 아가씨께서 쓰셨던 물건들입니다.]창고 한쪽에 나무 상자 몇 개가 쌓여 있었다.
달칵.
제일 위에 있는 상자를 내려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수많은 물건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옷도 있었고 인형들도 넘쳐났다.
‘저거구나.’
라비가 말한 사자 인형도 보였다. 다른 거에 비해 유독 싸구려 티가 팍팍 나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사자 인형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새것처럼 너무도 깨끗했다.
“10년이나 지난 물건들인데…….”
깨끗해도 너무 깨끗한 거 아닌가? 조금은 오래된 느낌이 날 줄 알았는데 먼지 한 톨 묻어 있지 않았다.
[보존 마법이 걸린 상자들입니다.]“보존 마법이요?”
[마탑에 직접 제작 주문 넣어 만든 상자이지요.]“헐.”
공작가는 역시 공작가라는 건가? 창고에 이렇게 잡동사니처럼 처박혀 있는 상자마저 마법 물품이라니.
[이것들 다 기증하시게요?]“네.”
카밀라는 상자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하며 쓸 만한 물건들을 챙겼다. 일반 아이들이 입기에는 너무 화려한 옷은 제외했다.
‘역시 일기장 같은 건 없네.’
카밀라가 어릴 때 썼던 물건들을 전부 확인했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일기장은 고사하고 작은 메모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네.”
한쪽에 수북이 쌓인 물건들, 아이들에게 가져다줄 물건들을 보니 나름 뿌듯했다.
“오라버니들 건요?”
[저쪽입니다.]데린의 안내를 받아 간 곳에도 여러 상자가 쌓여 있었다.
카밀라는 이번에도 가장 가까이 있는 상자부터 열었다. 역시나 딱 봐도 고급스러운 물건들이 상자에 가득 담겨 있었다.
자신의 물건을 정리했던 것과 같이 너무 화려하거나 부담스러운 물건들은 한쪽으로 치우고 당장 쓸 수 있는 것들만 추려냈다.
“어?”
그러다 카밀라의 시선을 잡아끄는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영상 구슬이네.”
[그건…….]“네?”
[…아닙니다.]“……?”
루드빌의 상자를 정리하다 나온 물건이다. 상자 귀퉁이에 고이 놓여 있는 영상 구슬을 카밀라는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이런 게 왜 여기 있지?”
보통 영상 구슬은 보관하는 장소가 따로 있었다. 주기적으로 마력을 충전시키며 관리가 필요한 마법 물품이기에 이렇게 창고에 처박아 두는 경우는 드물었다.
“역시 충전이 안 되어 있네요.”
[그러게요. 다시 그냥 상자에 넣어 둬야겠습니다.]궁금한데.
대체 무슨 영상이 들어 있기에 이런 창고에다 둔 것일까?
[규우!]“…어?”
[규규!]창고에 들어설 때부터 자신의 옷 주머니에 쏙 들어가 있던 킹이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곤 폴짝 아래로 뛰어내린다.
[규!]“달라고?”
자신의 손에 들린 영상 구슬을 향해 얼굴을 쭉쭉 들이밀며 앞발을 휘젓는 킹의 모습에 카밀라는 고개를 갸웃하다 녀석의 앞에 구슬을 내려놓았다.
우우웅.
순간 킹에게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녀석의 털 색깔처럼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더니 순식간에 영상 구슬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킹이 힘없이 철퍼덕 바닥에 쓰러졌다.
“킹!”
깜짝 놀란 카밀라는 바로 킹을 다시 안아 들었다.
[규우…….]“설마 마력 충전한 거야?”
방금까지 아무런 반응도 없던 영상 구슬에서 아주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신수가 마력도 충전하는군요. 처음 알았습니다.]“저도요.”
달랑 영상 구슬 하나 충전하고 뻗어 버린 킹이지만 카밀라는 그런 녀석이 기특해 연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한번 볼까요?”
…봐도 되겠지?
자신의 것도 아닌데 함부로 봐도 될까 잠시 고민했지만 버리다시피 이런 곳에 처박아 둔 물건이지 않은가. 좀 본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을 듯했다.
─ 루드빌! 이쪽이야, 이쪽!
─ 세상에! 봤어요? 우리 루드빌이 걸었어요!
─ 루드빌, 다시 엄마에게 와 보렴.
─ 아니지, 이번에는 아빠에게 와 봐.
“아…….”
다정한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곳에서 아주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저분이…….”
카밀라는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