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ortune-telling Princess RAW novel - Chapter (82)
루드빌이 다섯 살이 막 되었을 때, 너무도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절 찾지 마세요. 미안해요.
그 짧은 쪽지를 남긴 채 그녀가 사라져 버린 거다.
소르펠 공작은 루드빌을 바라봤다. 여전히 무심한 시선을 자신에게 보내고 있는 아들을 보며 그는 다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맸지.”
하지만 그녀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던 이처럼 정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결국 그녀가 죽었다고 공표했다. 공작 부인이 집을 나가 버렸다는 사실을 그대로 알릴 수 없었으니까.
그건 루드빌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식까지 버리고 떠난 공작 부인이라니. 그런 꼬리표를 아들인 루드빌에게 달게 할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은밀히 그녀의 행적을 쫓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우연히 만나게 된 카밀라의 어머니와 재혼을 했다. 그에 안나,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웠다.
“그런데…….”
갑자기 딸이라니.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이를 꼽자면 바로 소르펠 공작이었다.
라니아, 그녀가 정말 자신의 딸이라면? 안나, 그녀가 아이를 가진 채 자신에게서 떠났다는 말이지 않은가!
‘말도 안 돼!’
소르펠 공작은 그녀가 떠났을 때도 느끼지 않았던 분노를 느꼈다.
뭔가 사정이 있겠거니 하면 그동안 참았지만 더 이상 그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단 라니아와 대화를 해 보셔야겠네요.”
“…그래야겠지.”
무겁게 한숨을 토해 내는 소르펠 공작을 잠시 바라보던 카밀라는 루드빌에게 시선을 줬다.
소르펠 공작 못지않게 충격이 큰 이가 바로 그일 테니까. 평생 어머니가 죽은 줄 알고 산 그이지 않은가.
“…….”
그런데 루드빌은 여전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버지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그는 그저 다시 찻잔을 들어 후루룩 차를 마실 뿐이었다.
그러다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
잠시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그가 뭔가 생각인 난 듯 갑자기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뭔가를 꺼내 자신에게 내밀었다.
목걸이였다. 특별히 주문한 것인지 자신의 머리색과 똑같은 보석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카밀라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지금 이 상황에서 태연하게 선물과 축하 인사라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분인지…….’
카밀라는 절로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참으며 어색한 미소를 연신 흘렸다.
* * *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라니아의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2년 전에 심하게 열병을 앓다 돌아가셨단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제게 아버지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으세요.”
그러다 얼마 전에 어머니가 남겨 놓은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단다. 소르펠 공작에게 남긴 편지였다.
“여기요.”
라니아가 건네는 편지를 받아 든 소르펠 공작의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미안해요.
편지의 첫마디는 사과였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며, 혹여 아이가 홀로 찾아온다면 자신이 잘못된 것일 테니 잘 부탁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분명 그녀의 필체였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 특유의 유려한 필체를 자신이 어찌 못 알아보겠는가.
“처음에는 저도 믿지 못했어요. 제게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어릴 때 돌아가셨다고만 생각했거든요.”
“…그 팔찌도 그녀가 준 거냐.”
소르펠 공작의 시선이 라니아가 차고 있는 팔찌로 향했다. 오래전에 자신이 안나에게 선물해 준 팔찌가 맞았다.
「나의 아내에게」
라니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살펴본 팔찌 안쪽에 자신이 직접 새겨 놓은 문구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네, 아버지.”
“아직은 그리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죄, 죄송해요.”
눈물이 글썽 맺히는 라니아를 보며 소르펠 공작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그녀가 결국 죽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거기다 그녀가 떠날 당시 자신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더더욱 믿기질 않았다. 그녀가 제시한 증거들은 분명 라니아가 자신의 딸임을 말해 주고 있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루브.”
“네, 공작님.”
그렇다고 바로 내칠 수도 없는 일.
이 아이의 존재를 이미 파티장에 모여 있던 수많은 사람이 보았고 조용히 알아보고 해결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 아이에게 방을 내주게.”
“알겠습니다.”
결국 그녀를 받아들이는 허락이 떨어졌다.
“아버… 공작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곳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라니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네는 라니아를 바라보는 소르펠 공작의 입에선 다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카밀라…….”
다음 날, 당연하다시피 파티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소문이 쫙 퍼졌다.
“괜찮아요?”
예상은 했지만, 아카데미에 들어선 순간부터 아주 뜨거운 시선이 끊이지 않고 날아들었다.
“뭐가?”
“그게 어제…….”
“어제 뭐?”
“아, 아니에요.”
라일라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건지 잘 안다.
오늘 저 물음만 수도 없이 들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 주는 이도 있었지만 비꼬듯이 말을 건네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작님의 친딸이 나타났다면서요?’
‘어떡해!’
‘그러게요. 카밀라 영애, 불쌍해서…….’
‘설마 바로 쫓겨나시는 건 아니죠? 제가 너무 걱정돼서…….’
‘혹 갈 곳이 없으면 저한테 연락해주세요. 그래도 아는 사이에 제가 모른 척할 수는 없죠.’
소르펠 공작의 친딸이 나타났으니, 다들 가짜 영애인 자신의 입지가 가문에서 아주 우습게 되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게.’
참 곤란한 상황인데 말이지.
책상에 턱을 괸 카밀라는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이상해.’
다른 이들의 걱정과 달리 그녀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아무 느낌이 없었다.
라니아, 그녀가 소르펠 공작의 딸일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아니, 거의 확실한 지금 다른 이들의 걱정과 달리 카밀라의 마음은 덤덤했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을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게 그렇게 큰일인가?’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자신이 덤덤한지. 잘못하다간 진짜 공작 영애에게 모든 걸 뺏기고 집에서 쫓겨날 판인데 말이지.
‘뺏긴다?’
뺏겨? 카밀라는 그 단어가 묘하게 거슬렸다.
“그분은 계속 공작가에 계시는 건가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카밀라의 귀로 라일라의 목소리가 다시 파고들었다.
“아마도?”
“그렇군요…….”
라일라의 표정이 더욱 시무룩해졌다. 그러다 카밀라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애써 밝게 웃는다.
“카밀라, 이럴 땐 달콤한 게 최고예요!”
나 진짜 아무렇지 않은데. 평소보다 더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디저트들을 보며 카밀라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헤헤.”
그제야 라일라의 표정도 조금 더 밝아졌다.
“내일은 더 맛있는 거 만들어 올게요!”
파이팅이 넘치는 라일라의 음성을 들으며 카밀라는 제법 큰 산딸기 파이 하나를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네.’
오늘 아버지 간식은 파이로 할까?
페롤에게 맛있는 파이 레시피가 있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다.
* * *
“하하.”
“정말요?”
“세상에…….”
“큭!”
주방 입구로 들어서던 카밀라는 멈칫했다.
“…….”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통을 치거나 정신없이 지시를 내리는 소리 대신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신기한 건 그 웃음소리에 주방장 젤라드의 목소리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다. 주방에선 잡담 금지, 웃음 금지를 외치던 그가 말이다.
“정말로 냄비가 펑 터졌다니까요.”
“하하.”
주방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는 바로 라니아였다. 그녀의 말에 다들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어? 카밀라!”
자신을 제일 먼저 발견한 라니아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여기서 뭐 해?”
“이분들과 대화 중이었어요! 제가 예전에 식당에서 일했던 적이 있거든요.”
“식당?”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제가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저, 설거지 엄청 잘해요. 매일매일 설거지만 했거든요.”
공작가의 피를 이은 이가 식당에서 잡다한 일을 했다는 말에 주방 사람들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일었다.
“카밀라.”
잠시 후 라니아는 조심스럽게 카밀라를 불렀다.
“저… 얘기 들었어요.”
“얘기?”
“카밀라가 매일 밤 아버지께 간식을 만들어 가져다드린다면서요?”
“그런데?”
“그거 오늘은 제가 하면 안 될까요?”
그녀는 습관처럼 두 손을 꼭 모은 채 간절한 눈빛으로 카밀라를 바라봤다.
“제가 만든 음식을 꼭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요.”
그녀의 목소리가 빠르게 잠겨 든다.
“카밀라는 친부모님이 안 계셔서 잘 모르겠지만…….”
친부모?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정말 그렇더라고요. 뭐라도 손수 해 드리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고…….”
…저기, 지금 나만 저 말들이 거슬리나?
카밀라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주방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다들 라니아를 안쓰러워했다.
“좋을 대로 해.”
“정말요?”
라니아의 얼굴에 금세 웃음꽃이 폈다. 손뼉까지 치며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을 다들 흐뭇하게 바라봤다.
“젤라드.”
“네, 아가씨.”
“아버지가 뭘 좋아하시는지 라니아에게 알려 줘.”
“예?”
“싫어하는 걸 올리면 안 되잖아. 그래도 친딸이 아버지께 처음 올리는 음식인데.”
“아, 네. 알겠습니다.”
주방장 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