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101)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101)
“이연재.”
“응.”
“……도대체 난 왜 부른 거야?”
그걸 몰라서 묻냐.
나는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거칠게 닦으며 노비혁을 쳐다봤다.
“왜 부르긴, 헉, 왜 불러. 도와 달라고 불렀지.”
“그니까 뭘 도와 달라는 건데. 벌써 춤 다 숙지했잖아. 아니, 그리고 너 왜… 잘 춰? 너무한 거 아니야? 아무리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노비혁은 한껏 열 받은 표정으로 씩씩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반복 재생되는 음악을 끄고 물병을 들었다.
격한 동작에 숨이 찼다.
‘나 광고 촬영 때문에 춤추게 됐는데 도와줄 수 있어?’
―뭐…? 누가 춤을 춘다고?
전화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막 연습이 끝났다는 녀석을 데리고 왔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차에 탄 녀석은 상황을 이해하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엔 차 시트를 마구 내려치며 웃더니 막판에는 눈물까지 질질 흘렸다.
상대하기가 싫어서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연습실에 도착해 내가 자세를 잡자마자 또 웃기 시작하길래 결국 등을 세게 내려쳤다.
맞으면서도 실실 웃던 녀석은 내가 춤을 추기 시작하자 서서히 표정을 굳혔다.
쪽팔린 것도 꾹 참고 기껏 보여 줬더니 돌아온 게 저런 반응이라니.
“보면서 부족하게 느껴진 거 없었어?”
“혹시… 지금 돌려서 자랑하는 건가? 칭찬 듣고 싶어서 이 야밤에 날 끌고 온 거야?”
“진지하게 묻는 거야, 비혁아.”
삐죽 나온 입으로 투덜거리던 녀석은 내가 재차 묻자 멈칫했다.
한참 골똘히 생각하더니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겠는데… 반년 동안 연습한 나보다 네가 더 잘 추는 것 같아서 솔직히 현타 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표정 말이야, 표정.”
“표정? 아…, 하긴 얼굴이 좀 굳어 있긴 했다.”
도저히 김호윤이 춤을 추는 설정으로는 몰입이 안 돼서 그냥 연기하지 않고 췄다.
기획안에 적혀 있는 건 ‘청춘을 제대로 즐기는 청소년’이었다.
누가 봐도 그게 나는 아니었고.
처음에는 김호윤이 신날 때 짓는 표정을 지으려고 했는데, 연습할수록 동작이랑 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애초에 춤추는 사람을 연기해야겠다고.
“어… 그럼 날 연기하겠다고?”
“응.”
어벙한 얼굴로 묻는 녀석을 보며 땀을 닦았다.
안무 유출에 관해서도 미리 허락은 받아 놨다.
광고 촬영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일주일.
‘안녕, 나의 썸머’ 촬영이 10일 뒤니, 일주일 정도는 광고에만 신경 쓸 수 있었다.
‘이제 그 신만 찍으면 이 드라마 촬영도 끝이네.’
하루하루가 정말 빨랐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다가, 노비혁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나 신경 쓰지 말고 평소 하던 것처럼 똑같이 연습해. 꼭 이 곡으로 안 해도 돼. 그냥 네가 춤출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려는 거니까.”
“아하. 내가 춤출 때 짓는 표정을 따라 하려는 거야?”
그렇게 단순한 개념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설명해 봤자 말만 길어질 것 같아 대충 끄덕였다.
노비혁은 영상을 서너 번 반복해서 보더니 천천히 한 동작씩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보는 게 어색하지도 않은지 녀석은 금방 집중했다.
‘현타가 오긴 무슨….’
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노비혁은 춤을 잘 췄다.
길쭉길쭉한 팔다리가 시원하게 허공을 가를 때마다 절도 있게 박자가 쪼개졌다.
운동화 광고인 만큼 발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안무가 많았는데, 몇 번 따라 하더니 금세 익숙하게 스텝을 밟았다.
“이거, 허억, 안무가 누구야? 되게 잘 짰다.”
“아직은 거기까진 못 말해 줘.”
“그런데 나, 헉, 안무 숙지하느라 표정, 신경 못 썼는데.”
인상을 찡그리는 녀석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물병을 건넸다.
잔뜩 집중한 눈만 봐도 도움이 됐으니까.
내가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집중하는 것과 다른 눈이었다.
잘 만들어진 춤을 추는 게 즐거워 죽겠다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눈.
그 뒤로 5일 동안 노비혁과 함께 연습했다.
안무를 완벽하게 숙지한 녀석이 짓는 표정은 매번 달랐다.
무대 위에 선 아이돌처럼 한껏 끼를 부리기도 했고, 불량 청소년처럼 눈가를 잔뜩 찌푸리며 몸을 더 격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내가 뚫어지게 보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게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후…, 이제 더 지을 표정도 없다. 더 못 하겠어.”
“응. 이제 충분해. 진짜 고마워.”
“도움은 됐어?”
“엄청.”
처음 춤출 때는 숨이 엄청 가빴는데, 이제는 몇 번을 연속으로 춰도 호흡이 살짝 빨라지는 것에 그쳤다.
노비혁이 왜 볼 때마다 살이 빠지는 건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땀에 잔뜩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는 녀석을 보며 물었다.
“너 내일 시간 돼?”
“내일? 왜? 내일이 광고 찍는 날 아니야?”
“응. 괜찮으면 같이 가자.”
멈칫, 티셔츠를 펄럭이며 땀을 말리던 노비혁이 그대로 굳었다.
도와준 대가로 돈을 줄 수도 없으니 뭘 해 줘야 하나 나름대로 고민하다 꺼낸 말이었다.
데뷔 전에 촬영 현장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닐 테니까.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녀석은 한참을 머뭇거린 후 고개를 저었다.
“됐어. 괜찮아.”
“왜? 다른 거 해야 해?”
“너 일하러 가는 거잖아. 내가 놀러 갈 자리는 아닌 것 같아. 방해될 수도 있고.”
이렇게 심각한 목소리는 처음 들어 보네.
“그럼 방해 안 하면 되잖아.”
“…….”
“걱정하는 거면 안 해도 돼. 이미 얘기는 다 해 놨어. 내 페이스메이커(*달리기 경주나 경기에서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 데리고 간다고.”
“뭐?”
어이없다는 목소리와 함께 바른 눈썹이 훅 올라갔다.
녀석은 기가 차다는 듯 웃더니, 잠시 후 알겠다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말은 다 했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연습에만 써야 했다.
땀을 닦은 후 곧바로 음악을 재생시켰다.
서서히 박자를 타고 올라가는 드럼 소리가 익숙하다 못해 지겨웠다.
* * *
“연재, 안녕? 그동안 연습 잘했어?”
“안녕하세요, 선생님.”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안무가와 마주쳤다.
“음? 옆에 익숙한 얼굴인데… 왜 익숙하지?”
“제 친구예요. WB 엔터 연습생이기도 하고요.”
“비혁이라고 합니다! 저번에 로비 앞에서 잠깐 인사드렸는데, 너무 잠깐이라 기억 못 하실 거예요.”
“아, 비혁이… 연재가 말한 친구가 우리 연습생이었구나?”
안무가를 보자마자 노비혁이 숨을 들이마시길래 왜 저러나 했는데, 알고 보니 둘 다 같은 엔터 소속이었다.
노비혁이 평소보다 한 톤 높인 목소리로 밝게 웃었다.
“이번 안무 짜신 게 세이디 선생님이셨어요? 어쩐지~ 진짜 기가 막히더라고요!”
“어머…, 하하! 이 말투 들으니까 기억나네! 요놈 자식. 내 안무가 그렇게 기가 막혔어?”
분위기는 금방 화기애애해졌다.
‘데리고 온 보람이 있네.’
저 녀석을 데리고 오기 위해 ‘내용 유출 시 피해 보상에 대한 각서’까지 썼었다.
안무가와 친분을 맺기 위해 고도로 집중한 녀석을 기다려 주고 있는데, 저번 미팅 때 봤던 최 팀장이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배우님.”
“안녕하세요. 오늘 최 팀장님도 오시는지 몰랐네요.”
“원래 촬영장에 직접 오지는 않는데요. 이번 광고는 저희 회사 내부적으로도 워낙 기대작이라, 하하. 연습 많이 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보답으로 궁금하신 거 있으면 언제든지 바로 연락하셔도 된다는 말이 장난처럼 넘어왔다.
업무적인 선과 친근한 선을 왔다 갔다 하는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안 그래도 궁금한 게 있긴 했다.
“제가 한번 연기하면 조금 깊게 몰입하는 편인데, 조금 이따 춤출 때도 연기할 생각이거든요.”
“아. 네네.”
“그래서 중간에 여러 번 끊는 것보다 원 테이크(*촬영을 할 때 한 번의 컷으로 끊지 않고 촬영하는 일)로 가면 수월할 것 같은데, 혹시 감독님한테 말씀드리면 무례일까요?”
“걱정 마세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워낙 베테랑이셔서 잘 맞춰 주실 거예요. 배우님이 광고 촬영 처음이라는 것도 미리 말해 놓은 상태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사람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게 습관인가 보네.
그래도 조율해 준다니 다행이었다.
감독과 스태프들에게도 깍듯이 인사한 후 대기실로 마련된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왔다.
“와…, 촬영 현장이 원래 이렇게 복잡해? 사람 너무 많은데.”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노비혁을 보며 웃었다.
“너 데뷔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할 텐데, 벌써 그러면 어떡해.”
이렇게 말은 하긴 하는데 사실 나도 긴장됐다.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화랑 드라마를 찍는 것과는 현장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업계 사람인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편한 옷을 입은 스태프들보다 더 많았다.
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출 생각을 하니 입이 바싹 말랐다.
“배우님. 물 좀 드릴까요?”
“아, 네. 감사해요.”
안진배 매니저가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시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의상 팀과 메이크업 팀, 헤어 팀 스태프들이었다.
이번 광고로 처음 선보일 운동화 색상은 총 4종이었는데, 운동화를 갈아 신을 때마다 옷부터 머리까지 전부 바꿀 예정이었다.
즉, 농땡이 피울 시간이 없었다는 말이다.
서둘러 의상을 갈아입고 촬영에 대한 설명을 듣느라 한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덕분에 긴장은 풀렸다.
“오늘 촬영 잘 부탁해요. 날이 많이 더워서 중간에 쉬는 시간 최대한 많이 가질 거예요. 그래도 혹시 힘들면 바로 말해요. 무리하다 쓰러지면 더 골치 아파요. 알았죠?”
“네. 감사합니다.”
카메라 감독은 거칠거칠한 턱수염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내가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최대한 나긋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먼저 전체적인 카메라 무빙을 잡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춤을 춰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노래 재생하겠습니다!”
뜨거운 햇빛 밑, 텅 빈 공터에 나 홀로 섰다.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은 카메라 뒤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고, 나는 최대한 그들을 무시하며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동선 체크가 목적이라 따로 연기하진 않았다.
모든 동작이 끝난 후 멈춰 서자, 카메라 감독이 곧장 다가왔다.
“일단 방금 움직인 동선대로 원 테이크 먼저 찍을게요. 그런데 워낙 컨셉이 역동적이라서 편집으로도 한계가 있어요. 부분 부분 끊어서 재촬영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거 양해 좀 해 줘요.”
“네. 괜찮습니다.”
“그럼 촬영 시작할게요.”
감독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나도 자세를 잡았다.
‘이제 노비혁으로 춤을 추면 돼.’
해야 할 건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에 임하는 마음이 달라질 뿐.
평소처럼 눈을 감고 노비혁에 대해 떠올리려다가,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걸 깨닫고 시선을 돌렸다.
안진배 매니저 옆에 얌전히 날 바라보고 있는 두 눈을 바라봤다.
난 저 눈이 반짝 빛나는 순간을 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럴 차례다.
“레디, 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