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13)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13)
6학년 1학기가 시작됐다.
봄이라는 이불을 덮고 있어도 알맹이는 겨울에 가까운 3월의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다.
“연재야, 안녕.”
“…? 안녕.”
등교를 위해 언덕길을 걷고 있는데 웬 모르는 여자애가 인사를 해 왔다.
얼떨결에 인사를 하자, 수줍게 웃더니 다른 여자애들에게 달려갔다.
“오~ 이연재. 아침부터 인기 많네.”
“아, 비혁아.”
뭔가 싶어 잠깐 멍때리는데 뒤에서 노비혁이 설렁설렁 걸어왔다.
짓궂은 아저씨처럼 낄낄대며 어깨동무를 하는데,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런 스킨십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슬며시 어깨에 힘을 주자 노비혁이 과장되게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알겠어, 알겠어! 정말 치사하다~. 박하한테만 다정하게 굴고, 정작 베프는 닿지도 못하게 해.”
“베프는 누가 베프야.”
“봐 봐, 왜 이렇게 차가워? 나한테만 너무 매정하잖아. 어렵다, 너란 남자….”
“내가 인터넷 좀 그만 보라고 했지.”
내 타박에도 노비혁은 실실 웃기만 했다.
교실로 가는 내내 어찌나 장난을 치던지, 일주일 동안 얘 때문에 진이 다 빠졌다.
심지어 안개가 마음에 든다고 꿈에서도 내내 노비혁 얼굴을 하고 있어서 24시간 내내 노비혁 얼굴이 근처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노비혁은 박하은과 유치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인데, 둘은 6학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되었다고 한다.
난 박하은과 같은 반이 된 죄로 노비혁의 자기소개를 들어야 했고, 노비혁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 비웃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며 그 뒤로 날 졸졸 따라다녔다.
“너무 인기 있다고 베프를 잊으면 안 돼. 알지? 초등학교 때 사귄 친구가 평생 간다잖아.”
“몰라. 그리고 인기는 어디서 나온 얘기야.”
“겸손도 그 정도면 내숭이다. 지금 학교에서 네 얘기밖에 안 하는데, 뭘.”
“내 얘기?”
뜬금없는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쳐다보자, 노비혁이 되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 드라마 찍었다며. 학교에 소문 다 났는데?”
뭐?
* * *
[제목: 뭐여 ㅇㅈㅎ 드라마 찍음?]이주 뒤에 첫 방송이네. 추리/범죄 개존잼 예상ㅇㅇ
볼 거 없었는데 잘됐다.
―정현이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정현 씨 발 닦고 주무세요
―정현아. 엄만데. 폰번호. 잃어버렸다. 번호. 좀. 남겨다오. 마이. 보고 싶다.
└성희롱으로 신고함 ㅅㄱ
└떼잉, 요즘 것들은….
―ㅋㅋㅋ개웃기네. 근데 진심 요즘 드라마판 심각하긴 함. 미스터리 쪽은 ㄹㅇ 가뭄이었는데 ㅜㅜ 정현아 좀만 더 활동 열심히 해 줘라.
―이정현 나온 건 웬만하면 다 재밌지 않나, 작품 운이 개좋은 듯.
└6번 연달아 대박 친 거면 운 아니고 실력 아니냐
[제목: 리정현 제작 발표회 프리뷰 뜸](사진1)
(사진2)
(사진3)
ㅁㅊ 무슨 기자보다 빠르네ㅋㅋㅋ
―얼굴 미쳤다; 솔직히 20대 배우 중에서는 톱인 듯. 얼굴로 이정현 비빌 애 없지 않냐.
└ㄴㅈㅎ이나 ㄱㅇㄷ는 왜 후려침? 이런 식으로 티 나게 쓰면 오히려 이정현 욕먹는 거 모르냐
└걍 내 생각 적은 건데 ㅇㅅㅇ 급발진 오지넹…
―이정현 팬들은 아이돌 파는 것처럼 파더라; 얘가 그렇게 잘생김? 솔직히 흔한 얼굴 같은데.
└적어도 너보단 잘생긴 듯 ㅠㅠ
└왜 갑자기 시비야;
└미안 ㅠㅠ 내가 염병 떠는 애들을 그냥 못 지나치는 병이 있어서 ㅠㅠ
* * *
“최상훈.”
옆 반에 들어가 교탁 위에 앉아 있던 애를 부르자 낄낄대고 있던 덩치가 움찔거렸다.
“왜…?”
“나한테 할 말 없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말이 생각보다 딱딱하게 나갔다.
최상훈이 눈치를 보다 교탁 밑으로 내려왔다.
“아니… 나도 말하려고 한 건 아닌데… 미안, 어쩌다 보니까 말이 나왔어.”
최상훈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얼굴을 흘깃거렸다.
이 와중에 얼굴에 달라붙는 주변의 시선이 따끔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2개월 전에 내가 드라마 촬영을 했고, 심지어 ‘그’ 이정현이 나오는 드라마라고 최상훈이 말하고 다닌 바람에 학교가 들썩였다.
말도 안 해 본 애들이 오늘 어찌나 말을 걸던지.
“내가 말하지 말라고 미리 말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의해 줘.”
“미안… 혹시 화 안 풀렸어?”
“응? 화 안 났어.”
예상치 못한 때에 알려져서 곤란했던 것뿐이지 화가 난 건 아니었다.
혹시 내 말이 너무 심했나? 싶어 했던 말을 돌아봤지만 딱히 선을 넘은 말은 없었다.
최상훈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으나, 노비혁이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자 다시 입을 닫았다.
“이연재~ 이쯤 하고 우리 반 가자. 곧 종 쳐.”
“아, 그래. 이따 보자. 상훈아.”
어차피 학교 끝나고 보육원에서 볼 테니 가볍게 눈짓을 했다.
이따 보자는 말에 안심한 건지 뭔지는 몰라도 굳어 있던 표정이 한결 풀리는 걸 보고 나왔다.
복도로 나오자 애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 쪽으로 모이는 게 느껴졌다.
작게 한숨을 쉬자 여전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노비혁이 낄낄댔다.
“왜 그렇게 스트레스 받아, 그냥 누려. 난 부럽기만 하구먼.”
“넌 조용히 좀 해. 어깨 좀 내리고, 무거워.”
“잉? 비혁이 팔이 그렇게 무거워? 역시! 요즘에 운동한 보람이 있다. 하, 뿌듯하다!”
“하아….”
잘못 걸렸다. 잘못 걸렸어.
나는 자기를 3인칭으로 부르며 까불거리는 노비혁을 무시하며 교실로 들어왔다.
박하은은 왜 저런 애랑 친한 걸까? 왜 나는 쟤랑 같은 반이 된 걸까.
눈이 마주친 박하은에게 SOS 신호를 건넸지만, 내 뒤에 매달린 노비혁을 보고 슬쩍 도망간다. 가지 마….
“아, 맞아. 그거 18일에 첫 방송이랬지. 그날 우리 집 비는데 같이 볼래? 너 외박 되지?”
“보긴 뭘 봐. 그거 15금이야. 우리 못 봐.”
“……나도 난데 너도 진짜 특이한 거 알고 있냐?”
교실 뒤에 달린 거울을 보며 자기 팔뚝에 심취하고 있던 애가 저런 말을 하니 기분이 나빴다.
또다시 달라붙는 노비혁의 얼굴을 냅다 밀어 버리고 자리에 앉았다.
노비혁은 내 앞에서 또 깔짝거리다 1교시 종이 울리고서야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1교시라니… 말도 안 돼.
* * *
“자, 그러면 다들 술잔 드시고, 정현 씨, 뭐 해!”
“아, 네!”
이정현이 탁자 밑으로 만지고 있던 휴대폰을 급하게 코트 안에 넣고 술잔을 들었다.
“제가 ‘꼬리 1화’라고 외치면 여러분들이 ‘대박 나자’라고 외쳐 주시면 되는 겁니다! 꼬리 1화!”
“대박 나자~!”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고깃집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이정현은 예의상 한 잔을 꿀꺽 삼킨 후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현아. 너 정신 딴 데로 빠진 거 너무 티 난다. 관심 있는 척이라도 해라.”
“내가 정신을 팔긴 어디에다 팔아. 머릿속에 지금 꼬리밖에 없는데.”
“입에 침이라도 발라, 요놈아. 너 걔 영재인가 연재인가 하는 애랑 문자하는 거잖아.”
이정현의 매니저가 심드렁한 어조로 답하여 삼겹살을 뒤집었다.
성의 없이 뒤집는 손길에도 삼겹살은 노릇노릇한 빛깔을 드러냈다.
무시하기 어려운 고소한 냄새에 군침이 돌 만도 한데, 이정현은 매니저의 말대로 정신이 빠져 있는 상태였다.
띠링―.
“어, 왔다!”
이정현이 알림 소리에 휴대폰을 급하게 꺼냈다. 그 모습을 본 매니저가 쯧, 혀를 찼다.
[귀여운 천재 배우 연재: 저는 나이가 안돼서 못 볼 것 같아요. 재밌게 보세요.]“푸핰, 형. 이거 보여? 아, 미치겠다. 나이가 안돼서 못 본대. 얘 귀여워서 어떡하냐.”
이정현이 웃다 못해 흐느끼면서 매니저에게 문자 내용을 보여 줬다.
거의 12시간 만에 온 답장인데도 너무 귀여워서 연락하는 재미가 있었다.
휴대폰을 보고 실실대자, 매니저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좋냐?”
“아, 너무 귀엽지 않아, 형? 무슨 애가 이렇게 귀엽냐.”
“걔가 귀엽냐? 나는 좀… 너무 말이 없어서 다가가기 어렵던데.”
연재가 확실히 말이 없긴 하지. 하지만 그런 점이 귀여운 건데.
“역시 형은 감이 없어.”
“뭐, 인마?”
이정현은 이연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연예인을 보고도 감흥 없이 눈을 돌리는 모습이나 자기가 출연하는 첫 드라마인데도 나이 때문에 못 본다는 모습도, 어느 하나 범상치 않은 게 없었다.
그렇게 모든 일에 무덤덤하게 반응할 것 같으면서도 끌어안거나 스킨십을 하면 뻣뻣하게 굳는 게 가장 귀여운 포인트였다.
엄청 어색해하면서도 어떻게든 티를 안 내려고 표정 관리를 하는데, 그 낑낑거리는 기색을 보고 애정을 갖지 않는 건 무리였다.
무엇보다 12살, 아니지. 이제 13살 된 애가 그런 연기를 한다.
이연재가 연기했을 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일단 대기 시간 동안 내내 조용하던 애가 갑자기 몸에 다른 영혼이 들어간 것처럼 구는 것부터 놀라웠다.
말투나 걸음걸이도 바뀌었고, 무엇보다 표정을 지을 때 쓰는 근육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장담하건대,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건 연습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정현 역시 10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는 연습이기에 바로 알았다. 쟤 연기하는 애구나.
그래서 촬영이 시작되고 이연재가 처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능숙한 연기를 보여 줬을 때도 ‘역시나’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원래 배우가 되고 싶어 했던 애구나. 안 그런 척하더니 혼자서 연습 많이 했나 보네.
속으로 흐뭇해하던 이정현이 경악하게 된 건 이연재와 끝도 없는 애드리브를 나눌 때였다.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인물에 동화되어 있지 않는 이상 그렇게 말 한번 더듬지 않고 대사를 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엑스트라이지 않은가.
이정현이 연기하는 주원은 대본만 봐도 캐릭터의 뒷모습을 많이 유추해 볼 수 있었지만, 이연재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그저 무(無)에서 모든 걸 만들어 낸 것이다.
13살의 경험 한번 없는 애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줄줄이 이어지는 대사를 듣고 처음에는 경험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촬영이 끝난 후 던진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기가 막혔다. 그저 친구를 따라 했을 뿐이란다.
‘같은 반 애가 되게 잘 웃어서… 걔처럼 구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요.’
이연재는 그냥 따라 했을 뿐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걸 그렇게 별거 아닌 것처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었다.
이름을 알린 배우들 중에서 정상인 사람을 찾는 건 어렵다.
이정현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이연재가 더 마음에 들었다.
당장 연락처를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이정현의 뇌를 지배했고, 바로 번호를 물어봤지만 휴대폰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
요즘에 휴대폰 없는 초등학생이 있나? 싶던 궁금증은 보육원 선생님에게 줄 사인이라고 답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그리고 이연재와 두 번째로 만나는 날, 이정현은 자신이 광고하고 있는 신형 스마트폰을 선물했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연재는 단호하게 선물을 거절했다.
나는 너랑 연락하고 싶은데 그럼 보육원 앞에 쪽지를 두고 가면 되냐. 학교는 어디 다니냐, 보고 싶을 때마다 찾아가도 되냐 등등의 말을 던지니, 그제서야 떨떠름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받아 갔다.
그 뒤로 열심히 문자를 보내 봤지만 답은 빠르면 몇 시간, 늦으면 하루가 지나고 돌아왔다.
왜 이렇게 답이 늦냐고 물어보니, 다른 친구들은 휴대폰이 없어서 애들 앞에서 꺼내기가 좀 그렇다는 말을 했다.
그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보육원 아이들 수만큼 휴대폰을 구매하려고 창을 켰는데, 다급하게 문자가 연달아 도착했다.
[천재 배우 연재: ㅎ형] [천재 배우 연재: 혹시나 말하는 거지만 휴대폰 ㄷ더 사지 마세요]이정현은 오타에서 느껴지는 다급함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천재 배우 연재는 귀여운 천재 배우 연재로 바뀌었다.
“어어, 이제 시작해요!”
이정현은 재빨리 이연재에게 답을 하고, 고깃집 한가운데에 놓인 TV로 시선을 돌렸다.
몇 달간 촬영한 드라마가 드디어 포문을 연다.
경쟁해야 할 만한 작품도 없어 시청률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스태프들이 긴장감 하나 없이 편안한 얼굴로 위장을 술로 데우는 중이었다.
완성본을 이미 여러 차례 감상한 이정현은 여유롭게 삼겹살 하나를 입에 넣었다.
1화가 끝나면 이연재에 대한 얘기로 들썩이겠지.
일반인들은 몰라도 업계 사람들은 발 빠르게 움직일 거다.
이정현은 머릿속 계산을 끝내며 웃었다.
‘역시… 미리 침 발라야 놔야겠다.’
이연재가 들으면 하나도 좋아하지 않을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