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151)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151)
PTN의 기자, 김연두는 ‘트윈스’의 엔딩 크레딧을 멍하니 바라봤다.
자신이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처음 나간 현장이 ‘느티나무 타는 나비 꽃’의 제작 발표회였다.
그때의 이연재는 이제 막 데뷔했다고 믿기지 않는 여유로운 배우의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다.
실제로 드라마에서의 연기 역시 훌륭했고, 자신이 쓴 기사도 그로 인해 더 바이럴 됐던 만큼 해당 배우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 한들, 김연두는 이연재의 팬이 아니었다.
그저 ‘잘생긴 아역 배우’, ‘떠오르는 신예’, ‘덕질 하기 좋은 배우’ 등등.
검색량을 바탕으로 한 키워드 몇 개만 기자로서 의무적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김연두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
극장 내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치는 중이었다.
관중의 시선은 트윈스를 제작한 윤강연 감독과 그 옆에 있는 이연재 배우에게 쏠려 있었다.
“(정말 쌍둥이 배우가 아니야?)”
“(한 사람밖에 없어. 진짜 1인 2역 작품인가 봐.)”
옆에서 들리는 외국어만 들어도, 방금 그들이 본 작품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두 주연 인물을 연기한 것에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그만큼 훌륭한 연출과 편집, 그리고 압도적인 연기력이 있어 가능했다.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이연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멀리 있는 관중들은 주연 배우를 보기 위해 발꿈치를 세워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 댔다.
‘……진짜 천재 배우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었구나.’
기사를 위해서 그가 나오는 장면 몇 개를 대충 봤을 뿐, 이연재의 연기를 제대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던 지난날이 무색하게, 자신이 적은 ‘천재 배우’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비로소 실감이 됐다.
“(진짜 인상적인 연기였어. 저 배우는 몇 살일까?)”
“(중학생도 안 될 것 같은데. 저 영화는 오래전에 찍은 건가 봐. 영화에 나온 것보다 지금이 훨씬 큰 것 같네.)”
“(아, 나는 잘 안 보여. 가까이서 보고 싶다.)”
이어지는 박수 사이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틈을 메웠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박수갈채 속에서 소년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곳에 한두 번 온 게 아니라는, 타고난 연예인의 미소를.
* * *
‘도대체 박수를 언제까지 치는 거야.’
겉으로 표정 관리는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혹스러웠다.
옆에서 미소를 지은 채 박수 치고 있는 윤 감독에게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감독님. 이거 언제까지 쳐야 하는 거예요?”
그는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모른다고.
정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답변이었다. 뭐, 기대도 안 했다.
‘진배 형은 잘 봤으려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진배 형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카메라가 앞에 있는 상황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 수도 없었고.
열심히 박수만 치는데, 뒷좌석에서 누가 어깨를 쳤다.
“…?”
“(정말 너무 훌륭한 연기였어요.)”
“(감사합니다.)”
“(윤강연 감독님과는 이번이 처음 작업한 건가요?)”
“(네. 맞아요. 사실 이게 제 영화 데뷔작이에요.)”
아직은 현저하게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긴 문장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초면에 짧게 대답하는 게 예의가 없어 보일까 봐, 대신 최대한 밝게 웃었다.
‘제발 카메라 있을 때 말 걸지 말아 줘.’
이러다가 못 알아듣는 단어가 나오거나 아직 발음 교정을 받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뒤에 있던 사람은 감탄사와 함께 박수로 화답했다.
‘그러니까 도대체 박수 언제까지 칠 건데….’
누구한테도 물어볼 수 없는 물음은 입 안에서 머물렀다.
그렇게 장장 1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박수를 치고 나서야 극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방을 경계하며 호텔까지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에만 신경 쓰던 진배 형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펄쩍 뛰었다.
“배우님. 영화 정말 멋졌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정말 보는 내내 제가 여기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제가 배우님의 옆에 있다는 게 감격스럽고―.”
“형, 저도 너무 감사한데 저희 밥부터 먹을까요?”
“아, 네! 배고프시죠? 룸서비스 시키겠습니다.”
순두부처럼 풀어진 얼굴로 웃는 진배 형은 보기 좋았으나, 과도한 칭찬은 역시 민망했다.
윤 감독이 자신의 방에서 기념으로 축배를 들자고 제안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내일 인터뷰 일정만 생각해도 도망치고 싶은데.’
그동안 여유로웠던 일주일이 무색하게, 내일부터 3일간 분 단위로 인터뷰가 잡혀 있었다.
한국에서 온 기자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외국 기자였기에 만만하게 볼 일정은 아니었다.
‘체력부터 보충해야지.’
내일도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연기 연습을 해야 하는 신세였다.
가볍게 저녁을 먹고 일찍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생각처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신기하긴 하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본 내 얼굴을 바라보는 기분은 이상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상을 훔쳐보는 느낌도 들었고, 그때 연기했던 감정이 연하게 느껴지며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다양한 감상이 오갔지만, 결국 끝에 가서는 하나의 문장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부디, 이진우와 강태일이 그 결정에 만족하길.
* * *
“다음은 한국 팀입니다. 3분만 있다가 시작할게요.”
하, 다행이다.
한국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몸에 힘이 풀렸다.
외국 기자와의 인터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물론 전문 통역사도 옆에 있었기에, 내가 무조건 영어로 답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기껏 4개월간 양질의 교육을 받아 놓고, 통역사한테만 기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도 다 돈인데.’
어쨌든 회사에서는 내 교육비로 선생님께 돈을 드렸을 텐데, 그 값은 해야 할 거 아닌가.
그래서 캐릭터와 줄거리에 대한 깊이 있는 서술이 필요한 답변을 제외한 나머지는 최대한 영어로 답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와중에 유창하게 영어로 답하는 윤 감독을 보니 괜히 울컥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어리바리하게 보일 생각을 하니 열 받기도 했고.
‘할리우드 진출이랑 상관없이, 무조건 영어는 마스터한다.’
장 대표는 내가 할리우드에 충분히 진출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관심은 없었다.
한국에서 연기를 못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낯선 땅으로 가야 하는지 의문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래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장 대표는 외국 배우들과 섞여서 연기하는 것이 ‘급’을 증명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 급이 회사에 중요하다니까 제의가 들어오면 거부하진 않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을까.
‘아무튼 인터뷰 먼저 끝내자.’
할리우드 진출이고 나발이고, 얼른 일정부터 끝내야지.
마침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고 서둘러 일어났다.
인사를 건네는데 마이크를 들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익숙했다.
‘어디서 봤지?’
표정으로 티는 내지 않은 채, 유심히 머리를 굴렸다.
“안녕하세요. PTN의 김연두 기자입니다. 영화 정말 멋졌습니다.”
그때 여자의 이름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아.”
“네?”
“혹시 ‘느티나무 타는 나비 꽃’ 제작 발표회 참석하지 않으셨어요?”
“…! 헉, 그걸 어떻게 기억하세요?”
놀란 표정의 여자를 보며 웃었다.
두 번째인 만큼 당연히 익숙한 얼굴은 아니었으나, 내내 낯선 외국인들만 보다 보니 괜히 반가웠다.
“그때 저한테 마지막으로 질문해 주셨잖아요. 이렇게 다시 뵙게 돼서 너무 반갑습니다.”
사실 김연두 기자가 썼던 글도 기억하고 있지만, 지나친 사설일 것 같아 이쯤에서 말았다. 더 인사를 나누기엔 시간도 없었고.
서둘러 자리를 잡은 다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2년 전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마이크를 잡은 김연두 기자가 먼저 윤 감독에게 물었다.
“그동안 감독님 작품에서 아역 배우가 주연인 작품을 못 봤었는데, 이런 도전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도전은 늘 하고 싶었지만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죠. 전에도 말했듯 ‘트윈스’ 대본은 이미 4년 전에 썼던 거였어요. 하지만 맞는 배우를 찾지 못해 기다려야 했죠. 그동안 여러 영화를 만들었지만, 항상 제 마음 한편에 있던 작품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윤 감독의 얼굴은 엄격해 보일 정도로 진지했다.
기가 막혔다. 연기 진짜 잘하네.
“그러다 연재를 본 순간 깨달았죠. 쟤라면 내가 바라던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고. 촬영을 준비하면서 연재와 대화를 하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어요. 전 이미 완성된 대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재랑 대화하면서 수정된 부분이 많았거든요.”
“정말요? 어떤 부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기자의 질문에 윤 감독은 기회를 주겠다는 듯, 시선을 내게 건넸다.
어른스러워 보이는 얼굴에 웃음을 간신히 삼킨 후 입을 열었다.
“감독님이랑 한창 트윈스 촬영을 준비할 때 인터넷에서 한 글을 읽었어요. 결혼할 사람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분이 쓴 글이었는데… 조금 씁쓸해지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어떤 내용이요?”
“자신이 결혼할 상대는 적어도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어요.”
“아….”
글쓴이가 어떤 의미로 그런 단어를 선택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이 사람이 나와 평생 함께할 사람인지 확신해야 그나마 후회할 확률이 낮은 것이 결혼이다.
그러니 사람의 본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어릴 적 가정 환경을 따지는 게 당연하지.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현명한 생각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이해 가는 말이었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태어난 환경은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번듯한 일자리를 갖기 위해 죽어라 공부하는 사람도, 가족들을 위해 어렸을 때부터 사회에 내던져진 사람도, 인간이라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서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미래와 상관없이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스스로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 불변의 단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지긋지긋한 단어. 바로 가정 환경.
“그분이 말한 정상적인 환경이 정확히 어떤 조건인지는 그분만이 아시겠죠. 하지만 이건 확실해요. 보육원에서 자란 저나 모친의 학대를 받는 이진우, 조폭들과 자란 강태일 모두… 그분이 말한 정상적인 환경은 아닐 거예요.”
“…….”
내가 연기를 잘해서 주변에서 좋은 평을 듣고, 수많은 돈을 벌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을 받더라도.
내 어릴 적 가정 환경을 뜻하는 문구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
그게 비정상일지, 정상일지, 사실 나는 관심이 없다.
남의 시선을 어디까지 신경 쓸지는 적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이미 그렇게 결정된 걸, 슬프다고 징징거리는 것도 쓸데없는 짓이고.
하지만 가끔은 억울할 때가 있긴 하다.
‘연재야. 너 젓가락질 진짜 잘한다…!’
성이준과 점심을 먹을 때, 내 젓가락질이 무척 바르다고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그건 내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무렵, 한참 ‘남들이 보는 나’를 신경 쓰면서 만든 습관 중 하나였다.
올바른 젓가락질, 꼿꼿하게 편 허리, 반듯하게 자른 머리.
그때도 남들이 날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잘못 행동하면 날 돌봐 주시는 보육원 원장님과 선생님이 욕먹는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그게 죽을 만큼 싫어서 관련된 책은 모조리 읽으며 스스로를 교정해 갔다.
그래, 그런 시절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