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172)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172)
안진배는 생각했다.
‘이상하긴 해.’
자신의 배우, 이연재는 헤어 샵 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차분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문은 더 커졌다.
‘도대체 안개가 누구지?’
안진배는 자신의 배우에 대해 웬만한 것은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심지어 본인을 만나기 전에 생긴 일들까지도.
물론 배우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한 뒷조사이기 때문에 죄송한 마음은 있었지만, 별수 없었다.
그는 그런 조사가 익숙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렇게 자라 왔으니까.
그래도 그렇게 알게 된 정보를 악용하지 않고, 자신의 배우를 지키는 데 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서류 중에 ‘안개’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저 보육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알았던 친구예요.’
‘너무 오래전인데 그때가 기억이 나세요?’
‘당연히 안 나죠. 그냥 걔 생일이 대충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아서 말한 거예요.’
배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간단명료한 상황이었다.
스치듯 지나간 모든 인연을 조사 몇 번으로 알아낼 순 없으니까.
무엇보다 배우를 보호하는 데 꼭 알아야 할 정보도 아니었다.
하지만 안진배는 의문을 없앨 수 없었다.
‘배우님 성격에 시상식에서 언급할 정도면 꽤나 인상 깊은 사람이라는 건데.’
무엇보다 자신은 안개라는 이름을 한 번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작년, 화보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안개야. 내려 달라니까….’
유난히 피곤해 보였던 배우를 곤히 안아 차로 가던 도중, 배우가 했던 잠꼬대를 똑똑히 기억한다.
평소 목소리보다 훨씬 더 다정해서, 안진배도 순간 멈칫할 정도였다.
“연재야. 어때. 참을 만해?”
“머리가 불타는 것 같아요.”
“하하!”
원장이 건넨 말에 이연재는 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말의 내용과 너무 다른 표정에 사람들이 깔깔댔다.
웃는 사람들을 따라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리는 배우는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시상식에서는 평소답지 않았다.
‘……생일 축하해.’
흔들리는 눈동자, 떨리는 입꼬리, 살짝 잠긴 듯한 목소리.
생일 축하를 건네는 사람으로 보기엔 너무 애틋했고, 한편으로는 슬퍼 보였다.
‘영원히 못 볼 사람한테 하는 것처럼….’
그렇게 친구분이 보고 싶었던 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안개라는 사람을 찾아봐야 되나, 생각할 때쯤이었다.
스태프가 안진배에게 다가와 농담을 건넸다.
“매니저님. 연재 처음 탈색한다고 걱정 많이 하셨는데, 이제 맘 놓이시겠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괜찮네요.”
장난스러움이 한껏 묻어 있는 말이었지만, 안진배는 쓴웃음을 삼켰다.
“글쎄요….”
참는 데 워낙 익숙한 사람이었다.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안진배의 애매한 반응에, “하여간 매니저님 과보호는 못 말려.”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건 알지.’
자신은 정말 ‘과하게’ 배우를 보호하고 있었다.
매니저로서 간섭해도 되는 선은 한참 전에 넘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그게 뭔 상관인가 싶었을 뿐이지.
‘내가 더 신경 써야 해.’
남들에게 과하게 보일지라도 자신은 끊임없이 배우에게 관심을 가지고, 더 간섭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몇 년 전 정신과 의사가 배우에 대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안진배가 표정 관리를 했다.
그때 의사가 한 말을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
최근 배우는 유독 풀어진 모습을 보여 주곤 했다.
피곤하다며 기댈 때도 많았고, 짜증이 나면 티를 내거나 심지어 가끔은 입을 삐쭉 내밀기도 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된 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배우님. 머리 많이 아프시죠.”
“아뇨. 괜찮아요.”
배우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자마자, 기계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아무 말 없이 바라보자, 배우가 시선을 피하더니 중얼거렸다.
“……참을 만해요.”
“지금이라도 가발 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형, 이미 다 끝난 얘기잖아요. 회사에서도 허락했고.”
알았다. 그냥 한번 투덜거려 본 거지.
‘내가 더 애같이 구네.’
안진배는 속상한 얼굴로 배우의 푸석해진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반쯤은 진심이었고, 반쯤은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상대방이 약하게 굴수록 더 다정해지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몇 초 지나자마자 배우가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형, 그렇게 아프지는 않아요.”
“네. 다행입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머리 괜찮은 것 같죠? 염색은 처음 해 보는 거라 어색할 줄 알았는데, 나름 괜찮은 것 같네요. 형은 어때요?”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는 말투에 안진배는 속으로 웃음을 참아야 했다.
‘배우님은 내가 5살짜리 애인 줄 아시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안진배는 자연스럽게 칭얼거렸다.
배우 또한 자연스럽게 그의 어리광을 받아 주며 등을 토닥였다.
그 묘한 모습을 옆에서 보던 스태프들만 떨떠름하게 중얼거렸을 뿐이다.
“……둘 다 참 희한해.”
“그러니까 저렇게 둘이 척척 맞지. 놔둬, 우리 일이나 하자.”
“그래. 현영 쌤이 마무리 작업해 줘.”
꼭 자기 둘끼리만 있는 것처럼 속삭이며 대화하는 두 사람을 내버려 둔 채, 직장인들은 업무를 시작했다.
* * *
‘드디어.’
손꼽아서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배우님. 안전벨트―.”
“네. 했어요.”
다급히 말하자, 진배 형이 웃음을 참으며 출발하겠다고 답했다.
형이 웃거나 말거나 나는 발을 동동거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얼른 촬영하고 싶다.’
오늘은 킬링 혼의 첫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내가 등장하는 신 대부분이 규모가 큰 촬영이기 때문에, 자잘한 촬영은 지난주부터 먼저 시작했다고 들었다.
첫 촬영부터 전투 신이라 긴장되는 마음 반, 설레는 마음 반이었다.
“배우님, 제가 그렇게 반대해 놓고 이런 말 하긴 머쓱하긴 하지만… 머리 진짜 잘 어울리세요.”
운전대를 잡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들려온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감사해요. 얼른 팬분들한테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스포일러 때문에 당분간은 참으셔야 합니다. 답답해도 가발이랑 모자 잘 쓰고 다니시고요.”
쩝, 아쉽네.
과해 보일 줄 알았던 은발은 생각보다 꽤나 괜찮았다.
거울을 봐도 이목구비랑 따로 노는 느낌이나 뭐가 특별하게 튀는 느낌은 안 들었다.
‘팬분들도 좋아할 것 같은데….’
내 눈에만 괜찮아 보였으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다 좋았던 터라 더욱 비연 생각이 났다.
동시에 노비혁 생각도 했고.
‘아이돌들은 어떻게 매번 탈색을 하는 걸까.’
내 현재 머리는 투명할 정도로 흰 머리였다.
이 색이 나오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확실히 염색하기 전보다 머리가 푸석해지기도 했고.
‘물론 여기서 더 상하겠지만.’
앞으로 1주일 주기로 계속 탈색해야 한다고 들었다.
다시 그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하니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작품 전개상 그게 더 잘 어울리니까.
밝고 장난스러운 성격의 혼은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어두워질 예정이었다.
그에 맞게 모발도 점점 거칠어지면 그만큼 분위기도 살겠지.
‘뭐든 작품만 잘 나오면 장땡이지.’
머리야 어차피 나중에 자라기 마련이다.
하지만 ‘킬링 혼’ 촬영은 지금 한 번뿐이었고.
“배우님. 곧 촬영장 도착합니다.”
진배 형의 말에 두근거리던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다.
달리고 있는 차에서 뛰어내려 촬영장으로 달려가고 싶을 정도였다.
‘진정 좀 하자.’
차분하게 심호흡을 했다.
당연히 진정은 안 됐다.
당장 뛰고 싶은 걸 참고 얌전히 차에서 내렸다.
고개를 들자마자 거대한 세트장이 보였다.
“와….”
콘서트를 해도 충분할 것 같은 큰 건물이 시야를 꽉 채웠다.
“배우님이 그동안 촬영했던 곳 중에서 가장 큰 것 같아요.”
“그러게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봤다.
납작한 농지 중간에 우뚝 선 세트장은 거대해 보였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저렇게 큰 건물에서 평생을 살아온 소년을.
‘답답했을까?’
혼은 H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였다.
인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유전자를 가진 아이.
즉,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들 사이에서 자란 것이다.
그가 느꼈을 평생의 감정을 그깟 며칠 연습했다고 전부 이해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거대한 건물을 보니 어렴풋이 느껴지긴 했다.
‘……답답하진 않았겠네.’
애초에 건물 밖의 세상에 관심도 없었던 애다.
지구 밖에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고 한들, 모든 인간이 우주복을 입고 싶어 하진 않는다.
내가 생각한 혼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적어도 건물 밖을 나가기 전까진… 매일이 즐거웠으니까.’
거대한 세트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난 이제 몇 시간 뒤 혼이 되어, 사회에 첫발을 디딘다.
난생처음 시설 밖으로 나가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순간 가슴이 아릿했다.
“배우님. 이제 들어갈까요?”
“네.”
어느새 새로운 인물을 연기한다는 흥분은 가라앉고, 다른 감정으로 심장이 뛰었다.
이런 기분이 드는 원인을 찾긴 쉬웠다.
이건 죄책감이었다.
‘미안해.’
난 너의 결말을 안다. 네가 앞으로 어떤 일을 겪는지 알아.
하지만 난 오늘 너의 웃는 모습을 찍어야 했다.
“…….”
건물에 들어가기 직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여러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복잡한 머리를 정리했다.
‘미안.’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할게.
앞으로 어떤 결말이 다가와도, 당장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이니까.
그리고 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너를 연기할 것이다.
* * *
“연재야. 촬영 잘 부탁한다.”
PD가 건넨 말에 웃으며 제가 더 잘 부탁드린다고 답했다.
어느새 스타일링까지 모두 끝난 상태였다.
몸에 적당히 달라붙는 옷을 입은 상태로 일어났다.
나와 비슷한 복장을 한 김석준 배우가 다가왔다.
“왜지?”
“네?”
“너랑 나랑 옷은 똑같은데 왜 나만 구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말에 덤덤히 대꾸했다.
“형도 탈색하세요.”
“어휴,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릴. 부정 타. 난 탈색 절대 안 해. 예전에 했다가 죽을 뻔했어.”
김석준 배우가 사람 놀리냐며 질색했다.
‘놀리려고 꺼낸 말 아닌데.’
지금 김석준 배우와 내가 입은 옷은 특수 요원이 입는 복장이었다.
방탄 소재로 되어 있는 전투복 특유의 무거운 색감으로 얼굴이 칙칙해지기 쉬웠다.
나는 은발에 맞춰 스타일링한 상태고. 그러니까 비교적 덜 칙칙해 보이겠지.
차분하게 설명을 덧붙이자, 김석준 배우는 너한테 괜히 말 걸었다며 투덜거렸다.
‘오늘따라 되게 툴툴거리네.’
느티나무 때만 해도 한량처럼 촬영장을 돌아다니던 사람이 지금은 혼자 중얼거리며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패턴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한숨을 삼켰다.
“석준이 형.”
“왜.”
“지금 형 눈 엄청 반짝거려요.”
“……엉?”
성의 없이 대꾸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벙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상대방을 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저번에 느티나무 촬영할 때 말씀드렸잖아요. 형 눈만 봐도 연기 좋아하는 거 알 수 있다고.”
“…….”
“그때보다 지금이 더 반짝거려요.”
한편으로는 더 진지해졌고, 한편으로는 더 생기 있었다.
김석준 배우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목덜미를 긁었다.
“뭐래…. 민망하게.”
“그러니까 긴장 그만하세요. 형이 옆에서 그러니까 저도 긴장되잖아요. 어차피 잘할 거면서 왜 그래요.”
“야, 인마. 내가 언제 긴장했다고 그래!”
김석준 배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타이밍 좋게 스태프가 촬영 시작을 외쳤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김석준 배우는 자신은 긴장 안 했다는 말을 세 번 빠르게 중얼거린 후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내 자리에 섰다.
“처음이니까 호흡 맞춰 본다는 느낌으로 가 보겠습니다. 자, 레디―.”
테이프로 표시되어 있는 곳에 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너를 떠올렸다.
“액션!”
곧장 입꼬리가 헤실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