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201)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201)
어느덧 출국 당일이 되었다.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성이준과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여행은 어땠어요?”
PD의 말에 곧장 좋았다고 답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여행을 외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해야 되나.
낯선 장소를 탐험하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단순한 여행은 아니었지.
엄연히 촬영 때문에 온 거니까. 하지만….
“이준이 형이랑 와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와, 이준이가 이거 보면 진짜 좋아하겠네.”
성이준과 함께하는 촬영이라 괜찮았다.
느티나무 촬영 때만 해도 이렇게 가까워질지 몰랐는데 말이지.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더니.’
책에서 이미 여러 번 접한 문구이지만, 이렇게 직접 실감하는 건 또 처음이었다.
“두 사람 케미가 정말 잘 맞더라고요. 여행 전이랑 비교해 보면 어때요? 제가 보기엔 이준 씨랑 더 친해진 것 같은데.”
PD의 말에 생각했다.
‘더 친해지긴 했지.’
물론 그 외에도 달라진 건 있었다.
“이준이 형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오, 어떤 식으로요?”
“형이 워낙 착하고 순하잖아요. 예전에는 그게 조금 신경 쓰였거든요. 저러다 어디 다칠까 걱정도 되고.”
정확히 말하면 사기당할 것 같아서 신경 쓰였다.
하지만 선배 배우한테 쓰기엔 적절하지 않은 단어일 것 같아, 말을 고르던 참이었다.
“오호. 그럼 이번 여행으로 이준 씨가 듬직해졌나요?”
“네? 아뇨.”
PD의 말에 나도 모르게 정색했다.
“지금은 훨씬 더 걱정되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순하더라고요.”
“……아하, 네.”
“이상한 사람이라도 꼬이면 어떡하나 싶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다 받아 줄 텐데.”
PD의 표정이 어딘가 떨떠름해 보였다.
하지만 한 번 터진 말은 끊이지 않았다.
“피렌체에서 돈 뜯길 뻔한 것도 그래요. 카메라가 있었는데도 그런 일이 생긴 거면 말 다 했죠. 평소에는 더 심하다는 거잖아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말하다 보니 심각하네. 얘를 어떡하지.
‘한하람처럼 옆에 끼고 다닐까.’
진지하게 고심하고 있자, PD가 머뭇거렸다.
“그런데 돈 뜯길 뻔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사장님이 팁을 과하게 요구하긴 했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길거리에서 주스 하나 산 걸로 무슨 팁을 요청해요. 그 사람이 이상한 거지. 이준이 형이 순해 보이니까 수작 부린 거죠. 제가 중간에 안 끼어들었으면, 형은 또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웃으면서 돈 줬을 텐데―.”
“넵.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진정하세요.”
PD가 침착하라며 말리는 동작을 했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성이준이 길거리에서 넘어질 뻔했던 것과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못 빠져나왔던 얘기를 줄줄이 꺼냈다.
이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스태프들이 질린 표정을 짓길래 가까스로 참았다.
“그래도 이준 씨가 듬직하게 보인 적은 없었어요? 한 번이라도?”
어딘가 간절해 보이는 PD 얼굴에 곰곰이 생각했다.
성이준이 듬직하게 보인 적이….
“형이 프로라고 느낀 적은 있었어요.”
“오! 언젠데요?”
PD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행 오기 전에 걱정했었거든요. 형이 못 먹는 음식이 몇 개 있는데, 그것 때문에 끼니를 거르진 않을까 했어요.”
이탈리아 특유의 느끼한 치즈, 짠 햄을 성이준이 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다행히 내내 잘 먹더라고요. 편식도 안 하고.”
“…….”
그거 생각하면 기특하긴 했다.
그래도 카메라 돌아간다고 못 먹는 음식도 챙겨 먹고.
‘하긴, 성이준도 나이가 있는데.’
물론 착해 빠지고, 사기당할 것 같은 인상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한하람보다는 나이가 많으니까, 뭐.
‘너무 과하게 챙기진 말자.’
그냥 지금처럼 가볍게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PD가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 이준이 어쩌냐…. 평생 형 노릇은 못 하겠네.”
“네?”
“아니에요. 그럼 다음 질문할게요.”
뭐라 중얼거린 건지 듣지는 못했지만, 남은 인터뷰는 무난히 끝났다.
* * *
‘원래 이렇게 추웠나.’
오랜만에 한국에 도착하니 기분이 묘했다.
이탈리아보다 훨씬 더 추운 것 같은데.
다행히 진배 형이 목도리를 감아 준 덕분에 많이 춥진 않았다.
“형, 조심히 들어가. 고생 많았어.”
성이준과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에 로비까지 함께 왔다.
“너도 고생했어. 집 가서 푹 쉬어…!”
추운 날씨 때문인지 성이준 코가 빨개져 있었다.
‘그동안 너무 붙어 있었나.’
거의 2주 동안 하루 종일 붙어 있었던 탓인지, 괜히 눈에 밟혔다.
“형, 이거 쓰고 가.”
“응?”
“집 도착할 때까지 이거 하고 있으라고. 감기 걸려.”
“나 10층에서 내리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성이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이준 목에 목도리를 칭칭 매달았다.
‘진배 형처럼 예쁘게는 안 되네.’
그래도 보온에는 문제없을 거라는 생각에 서둘러 애를 보냈다.
“얼른 가. 집 들어가면 손부터 씻고.”
“너도 조심히 가. 연락할게…!”
성이준은 당황해하면서도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성이준이 엘리베이터에 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틀었다.
“저희도 가요.”
“네. 배우님.”
“……왜 웃고 계세요?”
진배 형은 왠지 모르겠으나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성 배우님 챙기는 모습이 가족 같고 좋아서요.”
가족이라니.
너무 대단한 단어를 붙이는 거 아닌가 싶어 머쓱하게 답했다.
“이준이 형이 워낙 착하잖아요.”
“네. 착하시죠. 그런데 성 배우님도 곧 성인 되는 건 알고 계시죠? 그것도 배우님보다 먼저요.”
그걸 누가 몰라.
표정으로 답하자, 진배 형이 짓궂게 웃었다.
“배우님이 챙기는 모습만 보면 전혀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렸어요.”
“놀리지 마세요.”
“하하, 네.”
이제 부정도 안 하네.
얄미운 웃음소리에 상대할까 하다 말았다.
‘성이준이 형인 건 나도 알지.’
겉모습만 봐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더 신경 쓰이는 거다.
‘그 성격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성이준을 처음 만났을 때 내 나이가 13살이었고, 성이준 나이가 15살이었다.
불과 몇 년 만에 성이준은 많이 자랐다.
하지만 바뀐 겉모습과 달리 여전히 순한 게 느껴지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물론 성이준이 칭얼거린 적은 없지.’
자기 할 몫은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이쯤 되니 나도 의아했다.
왜 이렇게 성이준을 챙겨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까.
“형이 보기에 이준이 형 어때요? 너무 착하게 생기지 않았어요?”
“착하게 생기시긴 했죠.”
“그렇죠? 누가 봐도 챙겨 줘야 할 것 같죠?”
역시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니었어.
진배 형도 비슷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이려던 참이었다.
“챙겨 줘야 하게 생기진… 않으셨는데요.”
“네?”
진배 형이 웃으며 말했다.
“일단 키가 크시잖아요.”
“…….”
그건 그렇지.
“사근사근 말하시는 편이지만 일할 때는 프로페셔널 하시고요.”
“하지만 얼굴이 순하게 생겼잖아요.”
곧바로 반박하자, 진배 형이 웃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배우님이 성 배우님보다 더 순하게 생긴 건 아세요?”
“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기겁하자, 진배 형이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 * *
“우리 연재 왔어?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정현이 형이 달려왔다.
킬링 혼 촬영이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 집엔 정현이 형 방이 있었다.
“형,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응. 뭔데? 우와, 초콜릿이네.”
정현이 형은 내가 사 온 기념품을 보물처럼 껴안고 있었다.
“성이준 형이랑 저 중에 누가 더 순하게 생겼어요?”
“당연히 너지.”
난데없는 질문에도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예상 밖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더 순하게 생겼다고요?”
“응. 둘 다 비슷한 과이긴 한데, 생긴 것만 보면 네가 더 순두부 같아.”
순두부는 또 어디서 나온 거야.
“아니, 진짜 제가 이준이 형보다 순하게 생겼어요?”
“응.”
“왜…? 왜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답에 입이 벌어졌다.
아무리 성이준이 나보다 키가 커도 그렇지. 이건 아니잖아.
“진배 형이랑 형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고요?”
“하하! 글쎄.”
평소답지 않은 내 모습 때문인지 정현이 형이 한참 웃었다.
“객관적으로 어떻게 보이는 건지야 나도 모르지. 나야 내 관점에서 보이는 걸로 답하는 거니까. 진배도 그럴 거고.”
다정히 웃는 눈이 날 향했다.
“그리고 너도 그렇겠지?”
“…….”
말문이 턱 막혔다.
어느새 짐 정리를 마치고 온 진배 형이 다가왔다.
“배우님 눈에는 성 배우님이 훨씬 더 챙겨 줘야 할 것같이 보일 수 있죠.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요.”
“그래. 그냥 당당하게 덕질 해. 연재야.”
무슨 덕질을 해.
대화가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모르겠네.
내가 한숨만 쉬고 있자, 진배 형이 내 등을 토닥였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배우님.”
“네….”
“제 눈에는 배우님도 그렇게 보여요. 나중에 배우님이 성인 되고 결혼하신다고 해도, 저한텐 여전히 13살로 느껴질걸요.”
이 형은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이가 없었다.
“하하! 진배야. 연재 표정 봐라.”
“형은 그것 좀 내려놓고 얘기해요. 초콜릿 다 녹아요.”
“싫어. 나 이거 오늘 껴안고 잘 건데.”
정현이 형이 기념품으로 사 온 초콜릿을 다시 꽉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보니 더 억울했다.
‘내가 여기서 가장 어른 같은데.’
그놈의 나이가 뭐라고.
* * *
다음 날, WB 엔터 사옥에 도착했다.
여독이 풀리기도 전이었지만, 노비혁이랑 한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이연재! 여기야!”
“……너도 키 크네.”
“엥? 갑자기?”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는 말에도 노비혁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게. 얘도 키가 크구나.’
왜지? 왜 나보다 키가 큰 거야?
정현이 형이랑 진배 형은 어른이니까 그렇다고 치자.
‘노비혁이랑 성이준도 나보다 크다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키 차이에 기분이 미묘해졌다.
‘이러다 한하람도 나보다 커지면 어떡하지.’
불쑥 든 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오늘은 어깨동무하지 마.”
“…? 왜?”
“몰라. 그냥 가까이 오지 마.”
키 큰 노비혁이 낯설었다.
내가 애처럼 생각하는 애들이 사실 나보다 더 어른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집 가서 우유나 먹자.’
괜찮아. 아직 성장판 닫히려면 멀었으니까.
내가 성이준은 몰라도 노비혁보단 커지고 만다.
“너 키 몇이야?”
“뭐야. 왜 갑자기 키에 꽂혔어? 이탈리아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 내 선물은?”
“집에 있어. 이따 줄게.”
그래서 키 몇이냐고 재차 묻자, 노비혁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 178cm일걸?”
“…….”
“그런데 다시 재 봐야 할 것 같아. 지난주보다 바짓단이 더 짧아졌더라고.”
“…….”
“이연재?”
“됐다. 그냥 앞에 봐.”
착잡했다.
복잡한 기분은 WB 엔터 사옥을 구경하는 동안 나아졌다.
“저기가 우리 멤버 전용 연습실이야. 이번에 아예 새로 빼 주셨다?”
신난 얼굴로 이곳저곳을 소개하는 노비혁도 보기 좋았고.
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그래. 나보다 크면 뭐 해.’
그냥 내가 챙겨 주고 싶으면 챙겨 주는 거지.
속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참이었다.
“어? 형들! 여기 모여 있었어요?”
연습실 문을 연 노비혁이 소리쳤다.
우리 막둥이 왔냐는 말들이 문 안에서 쏟아졌다.
‘사이 좋나 보네.’
다행이다. 왕따 걱정은 덜 해도 되겠네.
“내 베프 데려왔는데, 이참에 인사해요!”
홈그라운드에 와서 그런지, 노비혁이 오늘따라 더 밝았다.
피식 웃으며 녀석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기억 한편에 있던 목소리가 들렸다.
“……이재희?”
곧장 목소리의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아.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안녕, 은택이 형.”
내 어색한 목소리가 연습실 바닥에 내려앉았다.
노비혁과 데뷔하는 멤버들만 쓴다는 연습실에 있는 상대방을 바라봤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이재희는 또 누구야?”
노비혁이 해맑은 얼굴로 이은택과 나를 번갈아 봤다.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을 속으로 답했다.
‘내 두 번째 이름이야.’
이재희. 입양되었던 집에서 받았던 이름이다.
그리고 날 가만히 보고 있는 이은택은 한때 내 가족이었다.
‘그래, 정말….’
사람 일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