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219)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219)
그 후, 민호는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도 형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민호의 얘기를 들은 형은 굳이 그럴 필요 없다며 사양했다.
하지만 동생이 자기를 생각해 준다는 게 내심 좋긴 했는지, 몇 번 거절한 후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럼 한국 수어로 대화하는 건 어떠냐고.
“한국 수어? 그게 뭐야. 수화 말하는 거야? 형이 그걸 할 줄 안다고?”
“……너 형한테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니야?”
민호는 그제야 형이 살아 있을 때 봉사 활동을 했던 보육원이 청각 장애 아동들이 있던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몇 년 동안 봉사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수어를 배웠다는 것도.
이제껏 그것도 몰랐냐며 형은 속상한 척하고, 민호는 잔뜩 당황한 얼굴로 수습한다.
“아니, 나는 형이 그냥 애들 돌보는 줄로만, 형한테 관심 없던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하하! 알아, 알아. 왜 이렇게 당황했어.”
“형이 이상한 소리 하니까 그렇지.”
내가 형한테 관심이 없긴 왜 없다고.
민호가 입술을 삐죽였다.
심술궂은 장난에 삐진 어린애 같은 표정이었다.
형을 연기하고 있던 서지오가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얘는 진짜….’
연기를 왜 이렇게 잘해?
이연재는 연기를 잘한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이미 그와 호흡을 맞춰 본 서지오라면 모를 수가 없는 사실이었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럽게 이연재의 연기력에 감탄이 나왔다.
‘무슨 빙의라도 한 것 같네.’
그동안의 촬영 내내 민호는 침울하고 침체되어 있던 분위기를 보여 줬다.
공허한 눈동자, 기복 없는 감정, 암울한 목소리.
마치 죽음을 의인화한 것처럼, 텅 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절망을 담은 민호의 파편은 형과 함께하는 동안 하나씩 사라졌다.
형의 다정한 웃음에 하나, 형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하나, 형의 닿지 않는 손길에 하나.
상처가 하나둘씩 옅게 치유되는 모습을 세밀하게 보여 주는 이연재의 연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서지오는 팔에 돋은 닭살을 최대한 무시하며 대본대로 움직였다.
“알지, 우리 민호가 형 생각해 주는 거. 내가 왜 모르겠어.”
민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민호는 느껴지지도 않는 형의 손길에 배시시 웃는다.
“알면 다행이네.”
형의 한마디에 기분이 바로 풀렸으면서,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툴툴거리는 모습이 ‘민호’ 그 자체였다.
이연재의 연기 덕분에 서지오 역시 대본에 빠진 것처럼 연기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한국 수어를 하나씩 배워 보자는 말을 한다.
“컷!”
PD가 크게 외치는 소리에, 서지오가 참았던 숨을 뱉었다.
얼마나 몸에 힘을 준 건지, 어깨가 뻐근했다.
‘연기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을 너무 주네.’
연기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요소 중 하나인 만큼 고쳐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다.
다행히 크게 티가 나진 않는지 NG가 난 적은 없지만, 서지오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끼는 부분이었다.
“오케이~! 다음 신으로 넘어갈게요!”
PD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촬영 기간이 워낙 촉박한 탓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어깨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서지오는 이연재가 여전히 눈을 깜박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연재야, 괜찮아?”
“응….”
이연재가 힘 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 목소리였으나, 서지오는 더 묻지 않았다.
더 간섭하는 걸 이연재가 원하지 않을 것 같았고, 설사 이연재가 원하더라도 그 대상이 서지오가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지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배우님, 괜찮으세요?”
이연재의 매니저, 안진배가 담요를 들고 다가왔다.
이연재의 어깨에 담요를 두르자, 이연재가 눈을 몇 번 더 깜박이더니 안진배의 품에 푹 안겼다.
“힘들어 죽겠어요.”
이연재가 꿍얼거리며 답하자, 안진배는 고생하셨다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서지오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뒤를 돌았다.
‘둘의 세기의 사랑이라도 하나 보네.’
서지오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밖에 없는 것처럼 굴었으면서.
자신을 맹목적으로 바라보던 ‘민호’는 컷 소리와 함께 곧장 사라졌다.
물론 자신을 바라본 건 이연재가 아니라 민호였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노비혁 같은 애도 아니고, 질투심이 드는 것도 전혀 아니었다.
‘그냥….’
기분이 조금 상했을 뿐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가라앉은 기분으로 의자에 앉아 대본을 보고 있자, 몇 분 후 이연재가 다가왔다.
옆자리의 의자에 풀썩 앉는 모습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축 처진 솜처럼 의자에 파묻힌 이연재를 잠시 바라보다 물었다.
“연재야, 같은 말 자꾸 해서 미안한데, 정말 괜찮아?”
괜찮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말해 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꺼낸 말이었다.
“괜찮아. 그냥 조금 힘들어서.”
“뭐가 힘든데?”
“그냥….”
이연재는 더 말하긴 그렇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딱 서지오가 예상한 모습이었다.
‘우리 둘이 이런 얘기를 할 사이는 아니지.’
애초에 이익을 위해 가까워진 사이니까.
자신은 이연재 옆에 달라붙는 해맑은 애들과는 달랐다.
납득한 서지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대본을 보려던 참이었다.
“서지오.”
“응?”
“……넌 어떻게 생각해? 민호가 형을 좋아하는 거.”
“그게 무슨 말이야?”
서지오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을 하자, 이연재가 머뭇거렸다.
“너무 철없게 느껴지지 않아? 욕심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욕심? 왜?”
“죽은 건 형이잖아. 외로워하는 것도 형이고. 억울한 사람도 형이고. 민호가 힘든 건 형이 겪은 거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잖아.”
이연재가 손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그런데 형이 좋다고 헤헤 웃는 꼴이 뭔가… 너무 본인 생각만 하는 것 같다고 해야 되나.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
“음, 그래서 연기할 때마다 힘들어?”
이연재는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민호를 연기할 땐 정말 형이 좋거든. 형이 보여서 행복하고, 즐겁고.”
“응.”
“그런데 막상 촬영이 끝나면 그럴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형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연재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말을 이었다.
서지오는 그 모습에 놀랐다.
‘얘가 이렇게 길게 말할 줄 아는 애였구나.’
연기를 제외하고 이연재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처음이었다.
서지오는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민호랑 본인이랑 겹치는 부분이 있나?’
이 시나리오는 이연재가 쓴 거였다.
다른 작가님들이 촬영이 수월할 수 있도록 장면 변환이나 장소 등을 일부 수정했다고는 들었다.
바꿔 말해 그 외 나머지는 전부 이연재가 썼다는 거였다.
모두가 그가 쓴 대본의 완성도에 무척 놀랐다.
한국 수어를 홍보하기 위한 영상에 죽은 형인 귀신과 소통한다는 소재를 쓴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인물들의 감정선이 무척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인물, 실제로 있을 법한 대화들.
덕분에 홍보 영상 특유의 딱딱함은 사라졌고, 모두가 이연재는 정말 천재인 것 같다며 수군거렸다.
서지오 역시 이연재의 천재성을 이미 인지한 상태였으나, 대본을 보고 의아하긴 했다.
이런 현실적인 대화가 어떻게 머릿속에서 툭 튀어나왔나 싶었으니까.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이면 이해가 되네.’
그런데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하지 않았나?
보육원에서 유독 따랐던 형이 있었나.
그래서 민호라는 인물에 자신을 투영시키는 거고?
이연재의 입양 사정을 모르는 서지오는 대략적으로 추측한 후 입을 열었다.
“연재야, 민호를 연기하는 네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내가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어.”
“응.”
“그런데 형을 연기하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말하자면….”
서지오는 평소처럼 느릿느릿하게 말을 던졌다.
“나는 동생이 좋아.”
“…….”
“민호가 철없이 느껴지지도 않고, 욕심을 내는 것 같지도 않아. 당연히 어이없다는 감정도 들지 않고.”
물론 죽은 사람이 가장 억울하고 힘들겠지.
하지만 그 옆에 남은 사람이 힘들다고 해서 그게 잘못인가?
‘얘는 자기 감정을 잘 못 받아들이는 것 같네.’
서지오는 은근한 한숨을 뱉었다.
“내가 말했지. 너는 너무 남을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고.”
서지오는 가끔 이연재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렇게까지 남을 신경 쓰며 살지? 중요한 건 나 아닌가?
다들 나를 위해서 사는 거잖아. 내가 먼저 살아야지.
“죽은 형이 억울하든 슬프든 말든 어쨌든 그건 형의 일이잖아. 형이 죽어서 내가 슬프고 괴로운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감정의 주체는 자신이다.
서운함, 슬픔, 원망, 괴로움.
그런 감정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서지오가 본 이연재는 ‘정당성’에 너무 치우쳐진 것 같았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껴도 적절한가?’
누가 뭐라 해도 무조건 ‘나’가 제일 중요한 서지오는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이연재가 스스로를 탓하는 모습이 미련하게 느껴지면서도 은근히 신경 쓰였다.
“연재야, 나는 네가 너한테 너무 야박하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남의 감정보다 일단 너부터 신경 써. 형이 어떤 생각을 하든, 네가 민호라면 민호의 감정 먼저 챙겨야지.”
혹여나 선을 넘는 것처럼 들릴까 봐, 서지오는 최대한 둥글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며칠째 연습하던 민호의 형 말투처럼 말하고 말았다.
서지오 스스로도 말해 놓고 아차 싶었는데, 이연재가 그런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럼 만약에 민호 때문에 형이 죽은 거라면? 그래도 네 생각은 똑같아?”
“응?”
음주 운전 차에 치여서 죽은 거 아니야?
서지오가 의아하게 묻자, 이연재는 그냥 대답하라며 재촉했다.
“그러니까 민호가 직접 죽인 건 아닌데, 민호 때문에 죽은 거라고? 그게 말이 돼?”
“대충 그렇다고 쳐. 아무튼 그렇게 가정했을 때… 그래도 민호가 형을 좋아해도 된다고 생각해?”
까만 눈동자가 서지오를 바라봤다.
서지오는 이연재의 질문에 묻은 간절함이 의문스러웠으나, 여전히 그가 뱉을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응. 그게 뭔 상관이야?”
“…….”
“형을 직접 죽이고 좋아하는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그냥 좋아하는 거잖아. 슬픈 건 슬픈 거고.”
그렇다고 뭔가를 한다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본인이 어떤 감정을 가지는 것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게 있나?
서지오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이연재가 피식 웃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대답이 썩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답해 줘서 고마워.”
“생각 정리는 잘 됐어?”
“응. 덕분에.”
거짓말은 아닌지, 이연재는 아까보다 훨씬 더 나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지오가 다행이라며 웃자, 이연재는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너 연기할 때 어깨에 힘 좀 빼야겠더라.”
“……티 나?”
“많이는 아닌데 조금?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까 턱 근육도 살짝 굳어. 특히 이쪽 부분.”
이연재가 서지오의 턱 근처를 누르자, 서지오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거기에 자꾸 힘이 들어가더라고.”
“응. 어깨에 힘부터 풀어야 해. 그게 원인이야.”
“너는 이럴 때 어떻게 해?”
“나는―.”
두 사람은 다음 촬영이 준비될 때까지 계속 대화했다.
이연재에게 다가가려던 안진배는 그 모습을 본 후 발걸음을 멈췄다.
‘즐거워 보이시네.’
안진배는 미소를 지으며 이연재를 바라봤다.
그곳엔 어느새 연기에 몰두한 두 소년이 즐겁게 대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