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239)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239)
녀석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품 안에서 키득댔다.
‘와, 진짜 무거워.’
팔이 부러질 것 같았다.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녀석을 끌어 올리자, 한하람의 모친이 달려왔다.
“어머, 하람아! 배우님한테 자꾸 그러지 말라니까~.”
그녀의 큰 목소리로 인해 주변 스태프들의 시선이 몰렸다.
“아무리 친해도 그렇지. 너도 참.”
탓하는 어조와 달리, 그녀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화사했다.
진심으로 의아했다.
‘왜 데뷔 안 하는 거야.’
진짜 배우 해도 될 것 같은데.
오랜만에 본 모친의 연기는 여전히 훌륭했다.
다행인 건 그새 한하람의 연기도 늘었다는 것이다.
“죄송해요. 엄마. 형이 너무 좋아서….”
모친의 말을 듣고 움찔한 것도 잠시, 약간은 능청스럽게 답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잘한다.’
그래, 그렇게 넘기는 거야.
‘요즘은 사춘기도 빠르다던데.’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한하람도 곧 사춘기에 접어들겠지.
모친의 말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옆에 있어 주면 돼.’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한하람을 땅으로 자연스럽게 내려놓았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오랜만에 뵙네요.”
“어머, 배우님. 평소처럼 대하셔도 돼요~. 보는 사람도 없는데, 우리 사이에 무슨.”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지. 의아했다.
‘한하람 픽업할 때 몇 번 본 게 다인데.’
그녀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진 않았다. 그래서 더 의아한 거다.
‘나와의 친분을 과시해 봤자 좋은 게 있나.’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나 싶었지만 얌전히 호응해 줬다.
몇 분 후 그녀가 떠나고, 한하람이 민망한 얼굴을 했다.
“연재야. 미안해. 우리 엄마 때문에….”
“미안하다고 하지 마.”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젖살도 안 빠진 어린애가 하는 사과는 받고 싶지 않았다.
시무룩한 녀석의 표정이 풀릴 기세가 보이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한하람. 너 짐 퓨리쇼 알아?”
물으면서도 이 어린애가 뭘 알겠나 싶었는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응? 당연하지!”
생각해 보니 한하람은 미국인이었다.
그 쇼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고 말하자, 한하람이 입을 크게 벌렸다.
“(……진짜로? 짐 퓨리쇼에?)”
어찌나 놀랐는지, 한국어도 까먹은 눈치였다.
“(응. 진짜로.)”
“(우와! 나 미국에 있을 때 매주 챙겨 봤던 프로그램이야! 대박이다. 네가 거길 나간다고? 세상에!!)”
한하람이 흥분했다.
“(역시 너는 멋져! 진짜 최고야!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정말 대단해!)”
“(고마워. 그런데 아직 답은 안 했어. 나갈지 말지 고민돼서.)”
“(뭐? 왜???)”
한하람이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의 표정과 같았다.
“(도대체 그걸 왜 고민해?)”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주춤했다.
“(어, 그냥… 가면 영어로 대화해야 하잖아. 잘할 자신도 없고.)”
“(지금 나랑 대화하고 있는 건 뭔데??)”
한하람은 말을 해도 무슨 그딴 핑계를 대냐는 듯한 얼굴을 했다. 진정해.
“(당장 나가! 나 친구들한테 자랑해야 한단 말이야!)”
“(알겠어. 한번 생각해 볼게.)”
“(생각하지 말고 나가!)”
젠장.
‘괜히 말 꺼냈네.’
내가 어물쩍거리자, 녀석이 빨리 대답하라며 내 몸을 잡고 흔들었다.
내가 알던 순둥이가 아니었다. 내 한하람 어디 갔어.
“하람아. 진정해.”
“진정 못 해!!”
한하람의 질주는 다행히 화보 촬영 시간이 다가오며 멈췄다.
스태프들이 다가오자, 한하람은 언제 소리쳤냐는 듯이 얌전해졌다. 기가 찼다.
옷을 갈아입는 내내 조용히 있던 녀석이 포토존에 서자마자 속삭였다.
“형아. 아까 말했던 거 꼭 해 줘야 해.”
“…….”
“응? 왜 답 안 해.”
사람들 앞이라고 그새 호칭까지 바꾼 얌체 같은 녀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래….”
내 입에서 씁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약속한 거다?”
“알겠다니까.”
입이 떫었다.
‘처음 만났을 땐 분명 순두부 같았는데.’
반년 만에 이렇게 변하다니.
역시 애들은 빠르게 크는구나. 씁쓸하네.
처음으로 한하람의 사춘기가 오지 않길 바랐다.
* * *
“너 모델 해라.”
한하람과의 화보 촬영이 끝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응?”
그게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갸웃하는 녀석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카메라를 향해 낯선 눈빛을 건넸다.
‘이게 재능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한하람은 뛰어난 모델이었다.
카메라를 피하지 않는 눈, 찰칵 소리가 날 때마다 바꾸는 포즈,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까지.
킬링 혼 촬영 때 내 가이드에 맞춰 겨우 흉내 내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됐다.
덕분에 촬영은 사진작가가 ‘브라보!’를 수백 번 외치며 끝났다.
‘미국에서도 피팅 모델로 활동했다고 했지.’
아무리 봐도 한하람은 배우보단 모델이 더 적성에 맞아 보였다.
그래도 아직 어린애한테 선을 긋는 건 이른 것 같아, 말을 돌렸다.
“오늘 네 덕분에 촬영 잘한 것 같아. 고마워.”
“아니야! 나도 연재랑 찍어서 너무 재밌었어!”
헤헤 웃는 한하람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찹쌀떡 같다.
녀석의 볼을 쓰다듬어 준 후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V 매거진의 유현석 에디터입니다.”
“반갑습니다.”
“두 분 안 그래도 닮으셨는데, 그렇게 입으니 진짜 형제 같으시네요.”
인사치레일 게 분명한 에디터의 말에 그저 웃었다.
“정말요…?”
웃긴 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웬만하면 말하지 않는 한하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는 거다.
“정말 형제 같아요?”
쑥스러워하며 발을 꼬는 한하람의 모습에 웃음을 참았다. 하여간.
에디터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지, 환하게 웃으며 형제라는 말을 두어 번 반복했다.
덕분에 한하람도 긴장이 풀린 상태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화제의 드라마 ‘킬링 혼’에서 두 분 다 ‘혼’을 연기하셨죠. 오늘 화보도 그에 맞춰 진행되었는데, 각자 소감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질문은 평이했다.
나야 나쁘지 않은 촬영이었기에, 기분 좋게 답할 수 있었고.
‘한하람이 꼬물거리는 건 볼만했지.’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녀석이 내 품에 들어와 포즈를 잡는 게 보기 흔한 장면은 아니니까.
킬링 혼이 핫하긴 핫한지, 드라마에 대한 질문이 정말 많았다.
지난 2주 동안 정현이 형과 김석준 배우랑 하도 인터뷰를 많이 찍었던 터라, 대답하긴 쉬웠다.
“혹시 시즌 2에 대해 들으신 건 없나요?”
“하하.”
넌지시 건네는 에디터의 질문에는 온화한 미소로 답했다.
내 얼굴에 뜬 ‘알 만한 사람끼리 왜 그러세요.’라는 미소를 본 에디터가 곧장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킬링 혼’ 시즌 2가 비밀리에 준비 중이라는 건 이미 알 테니까.
시즌 2는 새로운 ‘H’가 된 장요석의 시점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혼의 피가 섞이는 과정에서 능력의 변이까지 이루어지는 바람에, 훨씬 더 스토리가 복잡해진다고 들었다.
‘뭐, 나랑 상관있는 일은 아니지만.’
시즌 2에는 장요석 역을 맡은 김석준 배우와 새로운 배우들이 출연한다.
‘김석준 배우도 대단해.’
킬링 혼은 이연재, 이정현 투 톱 주연으로 알려졌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장요석 역할이 메인이었다.
김석준 배우도 오디션에 합격한 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돼서 한참 패닉에 빠졌었고.
그렇게 부담감을 가졌던 게 우스울 정도로 그의 연기는 무척이나 훌륭했다.
호흡을 직접 맞춰 본 내가 봤을 때, 그는 주연을 맡을 실력이 충분했다.
‘다음에도 같이 연기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로.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배우는 한 명 더 있었다.
* * *
“……진짜 왔네.”
“그럼 진짜 오지.”
“정말 올 줄 몰랐어.”
서지오가 얼떨떨한 얼굴로 문을 열어 줬다.
“집에 아무도 없어?”
“응. 아빠는 일하시고, 새엄마는 동생들 데리고 친정 가셨어.”
서지오의 집은 꽤나 넓었다. 잘사는구나.
“이거 받아.”
“뭘 이런 걸 사 와.”
그래도 처음 오는 집인데 어떻게 빈손으로 와.
서지오는 어색한 얼굴로 과일 바구니를 건네받았다.
‘얘는 왜 이렇게 어색해해.’
학교에서는 능구렁이처럼 실실대더니, 자기 집이라서 그런지 자꾸 삐걱거렸다.
서지오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발밑에서 뭔가가 살랑거렸다.
―먀.
고양이였다.
“안녕.”
―우레룩!
“……화났니?”
놀라서 쳐다보자, 고양이가 그룩, 꾸가각 소리를 내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과일 바구니를 정리하던 서지오가 웃었다.
“네가 좋은가 보다.”
“좋으면 이런 소리를 내?”
원래 고양이는 냥 하고 우는 거 아니었어?
나만 당황스러운 건지, 서지오는 당연한 얼굴로 답했다.
“응. 고양이 처음 봐?”
“길가에서 가만히 있는 애들만 봤어.”
그 와중에 고양이는 계속 끄룩거렸다.
얘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묻자, 서지오는 그제야 내가 알고 있던 느슨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야. 원래 연이 울음소리가 그래.”
“신기하네.”
주인 닮았나 보네.
범상치 않은 고양이를 뒤로한 채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고양이가 폴짝 올라오더니 내 무릎 위에 앉았다.
난 그대로 굳었다.
“레몬은 여기 왜 있는 거야. 너 나 놀리려고 레몬 따로 사 온 거지?”
“…….”
“연재야?”
내 대답이 없자, 서지오가 주방에서 나왔다.
난 녀석을 보자마자 눈으로 소리쳤다. 얘 좀 데려가.
“연이야. 처음 보는 형한테 왜 그렇게 붙어 있어. 동족인 거 눈치챈 건가?”
서지오는 이 와중에도 이상한 소리를 하며 고양이를 들었다.
―미에옭!
고양이가 싫다는 듯이 서지오의 품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피웠다.
그 모습이 익숙한지, 서지오는 고양이를 단단히 잡은 상태로 물었다.
“네가 고양이 무서워하는지 몰랐네. 미안, 카페로 갈까?”
“무서운 건 아닌데….”
“그럼?”
“……생각보다 너무 물컹해.”
무릎 위로 닿는 느낌이 액체에 더 가까웠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흘러내릴 것 같아서 굳은 거지.
내 말을 들은 서지오가 빵 터졌다.
“하하! 넌 진짜….”
서지오가 웃으며 내 옆에 고양이를 놓았다.
“괜찮아. 얘네 생각보다 튼튼해. 겁먹지 말고.”
서지오가 내 손을 잡고 고양이 위에 올려놓았다.
손에 닿는 털의 느낌이 너무 부드러워서 한 번 더 놀랐다.
“그렇지?”
“그러네.”
물컹한 느낌과 단단한 느낌이 공존했다. 신기하네.
서지오에 의해 몇 번 더 쓰다듬자, 확실히 마음이 놓였다.
‘내가 만진다고 애가 다칠 일은 없겠네.’
서지오는 내가 얌전히 고양이를 쓰다듬는 걸 확인한 후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녀석이 잘 깎은 과일을 가지고 나올 때는 고양이가 완전히 흐물거리고 있었다.
“연이가 너 진짜 좋아하나 보다.”
서지오가 느릿하게 웃으며 포크를 건넸다.
과일을 어느 정도 집어 먹고 나서야, 녀석이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갑자기 우리 집엔 왜 온 거야?”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로 물어보긴 내용이 좀 그랬다.
녀석은 의외라는 듯 웃으며 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우리 드라마 나왔잖아.”
“응.”
“……어머님한테 연락 왔어?”
서지오가 멈칫했다.
연한 눈동자가 느릿하게 나를 향했다.
그 모습이 마치 고양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