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253)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253)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의사를 찾았다.
내가 화내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해결법을 찾아 고쳐야 하니까.
하지만 돌아온 반응이 영 그랬다.
“별일이 다 있네요. 고생하셨어요.”
“……그게 다인가요?”
의사 표정이 너무 심드렁해서 괜히 맥이 빠졌다.
칼로 상대방을 협박한 게 그렇게 사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살다 보면 이성이 끊어지는 순간이 한두 번은 오기 마련이잖아요.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겪을 수밖에 없고요. 특히 인종 차별 하는 사람은 대화가 통하는 유형도 아니니 별수 없죠. 잘 대처하셨네요.”
심지어 이어지는 칭찬에 떨떠름해졌다.
“칼로 사람을 협박했는데, 그게 괜찮나요?”
“진짜 칼 아니었다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내가 말을 흐리자, 의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죠. 누군가 다칠 수 있었으니까.”
“맞아요.”
난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어떻게 고치면 될까요?”
“…….”
의사는 답 없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먼저 하나 물어볼게요. 만약 거기서 상황이 종결되지 않고 이어졌다면, 결국 누군가 다치게 됐다면 그건 누구일까요?”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의사가 자문자답했다.
“아주 높은 확률로 따져 봤을 때, 연재 씨밖에 없겠죠.”
“……그런가요?”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도 스패출러로 바꿨으니 쓸 만한 무기도 없고. 진짜 목을 물어뜯으려고 했어도 경호원에게 제압당했을 거고요.”
그건 그렇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폭력성을 의심해 봐야 하지만, 앞선 점을 고려했을 때 연재 씨한테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고 보기엔 근거가 부족해요. 제가 보기엔 오히려 효율적인 행동으로 보이네요.”
“효율적이라고요?”
“상대방이 대화가 통하는 유형은 아니라는 걸 안 시점이잖아요. 보통 자신의 재력이나 인종에 자부심을 가지는 타입은 초반 기선 제압이 중요한데, 연재 씨 행동은 이쪽에 더 가까워 보여요.”
의사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동물의 세계를 떠올리면 된다고 말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
“적을 가장 빠르게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고, 이를 실천한 거죠. 결론적으로 봤을 때도 효과가 있었고요.”
“그렇지만….”
나는 망설이다가, 하지만 우린 동물이 아니지 않냐고 되물었다.
“하하! 그건 그렇죠.”
내내 무미건조한 표정을 하고 있던 의사가 빵 터진 것도 그때였다.
왜 웃지.
“연재 씨가 뭘 걱정하는 건지는 알고 있어요. 어떤 행동이 옳은 건지 매번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도요. 하지만 앞으로 마주할 상황은 너무나 다양할 거예요. 그 다양한 상황에 정해진 정답은 없어요.”
의사는 올바른 대응법을 시뮬레이션으로 상상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상황에 이성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벌써부터 그런 부담을 가지진 않았으면 하는 말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무 초조해하지 마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대응이었다고 봐요. 제가 다 통쾌하네요.”
의사가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며 웃었다.
비교적 가벼운 태도였지만, 무작정 내 편을 들어 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전문가가 이렇게 말하니 정말 별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전문가라는 단어가 참 막강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도 연재 씨가 다칠 만한 상황을 너무 스스럼없이 만드는 건 지양하는 게 좋겠어요.”
“아, 네.”
“이럴 때 보면 본인이 다치는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같아요.”
의사가 가볍게 던진 말에 괜히 뜨끔했다.
‘그거야….’
연기 연습을 매일 하니까.
연기만 충분히 하면 불행 인자가 내게 영향을 미칠 일이 없다.
즉, 적어도 그날은 내가 다칠 일이 없다는 거지.
몇 년 동안 익숙해진 사실이라 그런지, 더욱 무심해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내가 멋쩍게 웃자, 의사가 미소를 지었다.
“연재 씨가 먼저 저를 찾은 건 처음이라 뿌듯하네요. 우리가 다시 얼굴 본 지 반년 살짝 넘었나요?”
벌써 그렇게 됐나.
킬링 혼 촬영 후반부터 시작한 상담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만에 만난 의사는 여전히 느긋하고 무관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만남 때 내 팬 카페에 가입했다는 말을 건넨 사람이라 조금 걸렸는데, 무슨 말을 해도 ‘그래 봤자 내 일은 아님.’이라는 태도에 점점 익숙해졌다.
솔직히 그래서 말하기 편한 것도 있었고.
“이번처럼 이성을 잃는 일이 자주 있지 않도록, 평소 스트레스를 관리할 필요가 있겠네요. 이번 기회에 운동이나 그림 같은 취미를 갖는 건 어때요? 연기 말고 다른 거요.”
“네. 생각해 볼게요.”
“좋아요. 다른 일은 없었어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멈칫했다.
‘이거 말해도 되려나.’
너무 사적인 얘기 같은데.
괜히 바쁜 사람 시간 잡아먹는 건 아닐까 망설이니, 의사가 웃었다.
“편하게 말해도 돼요. 안 물어요.”
“별건 아닌데… 매니저 형이 울었어요. 제가 다른 사람한테 가족이라고 소개한 걸 들었거든요.”
미아에게 얘기를 전해 듣고 한참이나 훌쩍였던 진배 형을 떠올렸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핸들에 고개를 파묻고 울었는데, 덩치에 비해 핸들이 너무 조그마해 보여서 조금 웃겼다.
“매니저님이 감동받으셨나 봐요.”
“네. 워낙 착한 사람이라서요.”
내가 피식 웃자, 의사가 그걸 본 기분은 어땠냐고 물었다.
‘내 기분?’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어…. 좋았…죠?”
“그래 보이네요.”
“그래 보여요?”
얼떨떨하게 되묻자, 의사가 “네. 무척.”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뭔가 기다리듯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자 기묘하게도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끝끝내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사실 조금 무서워요.”
“어떤 부분에서요?”
“제 가족이란 말에 그렇게까지 행복해한다는 게, 그냥…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랐거든요.”
하지만 괜찮았다.
‘나한텐 안개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 상태로 충분하다고.
나 혼자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 정도로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마냥 들뜨고 설레는 마음이었다.
진배 형이 우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형 주변에 좋은 사람이 워낙 많잖아요. 저 말고 다른 친구들도, 심지어 진짜 가족도 있고요.”
안개야 나밖에 없다 쳐도, 진배 형은 아니잖아.
형이 날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얻을 이득이 있나?
‘아무리 봐도 없는데.’
그래서 무서웠다.
“형이 혹시 착각하는 걸까 봐, 나중에… 저한테 그런 말을 한 걸 후회하게 되진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입술을 깨물 듯 달싹거렸다.
“그래서 최대한 기대는 안 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나중에 형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고 얘기해도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 되네요.”
“아하. 익숙해지는 게 무섭다는 거네요.”
“맞아요.”
내가 냉큼 답하자,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울 수 있죠. 단어라는 게 의미를 부여할수록 다리를 조여 오는 거라. 전 연재 씨가 의미를 덜 가지면 좋겠어요.”
“어떻게요?”
“말 그대로예요. 가족이란 단어가 지금은 특별하고 고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단어는 단어일 뿐이에요. 그것에 너무 의미 부여할 필요 없어요.”
의사는 친구였다가 연인으로 단어가 바뀔 수도 있고, 진짜 가족일지언정 절연하게 되는 케이스도 흔하다고 했다.
“불변한 관계라는 건 없어요. 그러니까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의미죠.”
“…….”
역시 전문가라 이해가 빠르구나.
‘끙.’
난 민망한 미소를 감추기 위해 마른세수를 했다.
“네. 엄청 불안해요. 형이 나중에 말 바꿀까 봐 서류 조작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예요.”
솔직하게 털어놓자, 의사가 싱긋 웃었다.
“하지만 아시죠? 서류도 결국….”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는 거죠.”
“맞아요. 중요한 건 단어나 서류 같은 게 아니니까. 관계를 정의하는 것에 몰입하지 말고, 지금 누리는 순간에 더 집중해 보세요.”
의사의 조언은 무심하면서도 미지근했다.
너무 차갑지도, 너무 따뜻하지도 않아서, 속이 편했다.
“그럼 다음 상담 시간에 뵐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의사에게 인사한 후 상담실을 나왔다.
곧장 커다란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배우님. 기분은 괜찮으세요?”
상냥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 매니저이자 동거인이었고,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도 날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행복해서 불안해요.”
“네?”
내 말에 의아해지다가 곧장 심각하게 바뀌는 상대방의 표정을 바라봤다.
‘이 상태가 얼마나 갈까?’
가끔은 변하지 않는 게 있으면 좋겠어.
어린애같이 칭얼거리고 싶은 마음으로 피식 웃었다.
“다 형 때문이에요.”
“네??”
더 어리둥절해진 상대방의 손을 잡으며 얼른 집으로 가자고 속삭였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내가 욕심쟁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더 욕심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 * *
그렇게 미묘하고 복잡한 기분으로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 때만 해도 나름 센치한 기분이었는데 말이지.
그 기분은 채 삼 분도 못 갔다.
‘그럴 수밖에 없지.’
이런 광경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해.
“너무해. 진배 소개해 준 사람은 난데.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도 난데. 진배만 가족이라고 소개하고.”
“……형, 일단 일어나세요. 바닥 더러워요.”
“몰라. 서운해. 우울해.”
정현이 형이 현관 앞에서 누워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스러운 얼굴에서 한껏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얼굴에 대놓고 ‘삐졌다’라고 써 붙인 정현이 형을 보며 한숨을 삼켰다.
“그 얘기는 도대체 언제 들으셨어요.”
“진배가 단체 메시지 보냈어.”
뭐?
경악해서 뒤를 돌아보자, 진배 형이 뻔뻔하게 웃었다.
“좋은 소식이니까요. 경사일수록 더 알려야죠.”
“무슨, 아니, 누구한테 보냈어요.”
“일단 연락처로 저장된 사람들한테는 다 보내 놨습니다.”
미치겠네.
진배 형의 눈동자가 광기로 은은하게 빛났다.
내가 이마를 짚자, 정현이 형이 투덜거렸다.
“나도 배우 때려치우고 네 로드 매니저 할래.”
“형, 정신 차리세요.”
“스케줄 때문에 네 옆에 있지도 못하고, 가족이라고 소개도 못 받고.”
한쪽 볼이 바닥에 붙어 있는 상태라 말이 평소보다 어눌했다.
나름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저러다 입 돌아갈까 봐 걱정됐다.
“얼른 일어나요. 네?”
“나도 가족이라고 해 주면 일어날래.”
“……형도 당연히 제 가족이죠.”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자, 정현이 형이 “흥이다!”라고 크게 소리쳤다.
“앞에 정적 뭔데. 상처야. 나 상처받았어. 난 가족 아니야?”
“아니, 민망해서 그랬던 거예요. 진배 형, 웃지만 말고 같이 말려 봐요.”
“됐어. 쟤가 가장 미워. 나 여기 평생 있을 거야.”
정현이 형은 장난감을 얻기 위해 마트에서 드러누운 5살 애처럼 굴었다.
이 와중에 진배 형은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둘이 뭐 하냐, 진짜.
탄식하고 있던 찰나, 거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두 분이 그래 봤자 진짜 가족은 전데요.”
마치 자기 집인 듯 소파에 당당히 앉아 있는 이은택을 황당하게 바라봤다.
넌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