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263)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263)
신은 자신의 주인이 정말, 정말 좋았다.
―멍!
“알겠다니까. 그만 좀 보채.”
큰 덩치로 아무리 몸을 비벼 대도, 주인은 귀찮은 얼굴을 지을지언정 자신을 절대 밀쳐 내지 않았다.
주인이 자고 있을 때 귀찮게 굴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자신을 만져 주기도 했다.
‘주인은 나를 좋아해!’
다른 집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대화한 뒤에는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주인만큼 날 좋아하고 잘 챙겨 줄 사람은 없을 거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신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하지만 자신의 주인은 가끔씩 텅 빈 듯한 얼굴을 했다.
신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의 주변을 정신없게 맴돌며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 한계가 유독 답답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기분 탓인가? 오늘 달이 유난히 밝은 것 같네.”
―멍!
신은 도유영과 밤하늘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유영이가 행복하게 해 주세요!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사소하게 느껴지게 만들어 주세요!’
흔한 소원 중 하나였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소원을 빌 때가 있지 않나.
신은 이날 밤이 그때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신도 이 상황을 바란 건 아니라는 말이다.
“……꿈인가?”
인간의 몸으로 깨어난 신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 개의 몸으로 깨어난 도유영이 현타를 직격으로 맞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신보다 먼저 깬 도유영은 상황 파악을 위해 몸을 움직였다.
네 다리로 걷는 게 어색했는지 조금 주춤거렸지만, 침대로 풀썩 뛰어오르는 움직임은 꽤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자신, 그러니까 도유영의 몸은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도유영은 한참을 망설이다 발로 사람을 툭툭 쳤다.
‘왜 이렇게 안 일어나.’
처음에만 조심스러웠지, 발짓이 점차 거세졌다.
“으…. 뭐야.”
몸이 흔들릴 정도로 세게 친 후에야 사람이 의식을 되찾는 소리가 났다.
도유영은 정신 차리는 의미에서 입을 열었다.
―멍!
그리고 자신의 입에서 튀어 나간 개 소리에 멈칫 굳었다.
도유영이 허망한 얼굴을 하는 사이, 도유영의 몸으로 깨어난 신 역시 낯선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손가락, 평소보다 훨씬 더 높아진 시야,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머리까지.
꿈이 아닐까 중얼거린 후,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헉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 광경을 도유영이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신은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개를 쳐다봤다.
“유…영아? 유영이야?”
도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자신의 몸에 들어간 신은 여전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두 눈을 깜박이며 연신 고개를 갸웃댔다.
“우리 바뀐 거야? 몸? 서로?”
도유영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왜, 왜?”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너무나 순진한 물음에, 도유영은 심란한 눈으로 신을 바라봤다.
“왜… 이게… 어떻게 하면 돼? 나 뭐 하면 돼?”
신은 잔뜩 불안한 얼굴로 주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답을 알려 달라는 듯 간절한 목소리에, 도유영은 눈앞의 상황도 잠시 잊고 자신도 모르게 발을 뻗어 토닥였다.
“유영아. 나 무서워.”
내가 더 무서워. 이 자식아….
도유영은 복잡한 심정으로 신에게 머리를 비볐다.
말을 할 수도 없고, 글을 쓸 수도 없으니, 당장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
한참을 훌쩍인 신은 도유영으로부터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에 점차 현실을 받아들였다.
도유영과 신이 그렇게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때였다.
“도유영! 오늘 약속 잊었냐!”
문밖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유영의 친구였다.
‘헉.’
도유영과 신이 동시에 움찔하며 시선을 맞췄다.
“어, 어떻게 해?”
신이 불안한 얼굴로 도유영의 뒤에 숨으려는 듯 몸을 꼼지락댔다.
문제는 사람의 몸으로 자신의 반밖에 되지 않는 개를 붙잡고 숨으려는 꼴로 보인다는 거였다.
도유영은 자신의 몸에 매달린 신을 떼어 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멍!
좀 떨어져!
“신아? 안에 있어?”
한편 도유영의 친구는 문 안에서 들린 짖는 소리에 의아해했다.
원래 자신이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신이 헥헥거리며 뛰쳐나왔어야 하는데.
“도유영, 무슨 일 있냐?”
친구는 잠시 망설이다 신발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왔다.
문밖에서 들리는 선명한 소리에 도유영이 오지 말라고 외쳤다.
―멍! 멍!
“유영아. 그만 짖어….”
신이 겁먹은 얼굴로 훌쩍였다.
친구는 더욱 강렬해진 개의 짖는 소리와 언뜻 작게 들리는 사람 목소리에 노크를 했다.
“야, 나 들어간다?”
안 돼! 들어오지 마!
―멍!!!
도유영의 거센 외침을 이해하지 못한 친구가 벌컥 문을 열었다.
“뭐야. 일어나 있었네. 왜 대답을 안 해.”
“…….”
신은 대답하지 않고 도유영의 눈치를 봤다.
그 와중에 워낙 익숙한 얼굴의 등장에 안도감도 들었다.
신은 없는 꼬리를 흔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앉은 상태로 몸을 꿈틀거렸다.
“너 어디 아파? 왜 그러고 있어. 비 맞은 개 마냥.”
“해, 해수야. 그게….”
신은 망설임 끝에,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도유영에게 성 빼고 이름만 불린 건 처음인 친구가 기겁했다.
“뭐, 뭐야. 왜 그렇게 불러.”
“우리 좀 도와줘. 해수야….”
“아니, 너 말투 왜 그러냐니까!”
도유영의 친구, 지해수는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온몸에 닭살이 올라온 것처럼 몸이 근질근질했다.
평소에 뭘 봐도 무덤덤한 표정,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하던 자신의 친구가 아니었다.
분명 얼굴은 똑같은데, 그 도유영이 저렇게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낼 리가 없었다.
저렇게 애처럼 훌쩍일 일도 없었고.
“너 죽어? 무슨 병 걸렸어?”
“아니야! 유영이가 왜 죽어! 그런 말 하지 마!”
그 와중에 자신의 주인이 모욕당하자, 신이 울컥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리고 지해수는 자신을 삼인칭으로 칭하는 친구를 보고 중얼거렸다.
“……이거 미친 새끼 아니야.”
진심으로 정색하며 꺼낸 말을 끝으로, 마침내 방에 침묵이 찾아왔다.
지해수는 친구를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다, 이상하게 아까부터 조용한 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
그런데 이상하지.
골든 리트리버의 텅 빈 까만 눈동자에서 자신의 친구가 보였다.
개는 마치 사람이 짓고 있을 법한 착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지해수는 말없이 친구와 개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의 표정이 점차 괴상하게 바뀌었다.
“야,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미친 것 같긴 한데, 혹시….”
지해수가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마자, 신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맞아! 우리 몸 바뀌었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신이 지해수에게 다가가더니 주변을 맴돌았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하면 되지? 유영이가 말을 못 해! 어떡해! 해수야! 도와줘!”
“…….”
“유영이 학교 가야 하는데, 헉! 맞아! 학교 가야 하는데! 어떡해! 유영이 저렇게 둘 순 없는데! 어떡해!”
신은 자신이 한 말에 패닉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할 수 있는 말이 ‘어떡해.’밖에 없는 사람처럼, 초조하게 주위를 맴도는 자신의 친구를 지해수가 멍하니 바라봤다.
지해수는 동공 지진이 난 상태로 개로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곧장 마주친 까만 눈동자에는 묘한 체념과 익숙한 분위기가 묻어 나왔다.
―…….
개는 지해수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한두 번 끄덕였다.
마치 ‘그렇게 됐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 배고파! 뭐 먹지? 뭐 먹으면 돼? 아, 유영이도 먹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내가 먹던 거 주면 되나? 어떡해. 해수야! 도와줘!”
“야, 일단… 생각 좀 하게, 잠깐만 닥쳐 봐.”
“나쁜 말 하지 마! 유영이 듣잖아!”
지해수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그가 어질어질한 머리로 이 미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이, 신은 도유영 앞으로 냅다 엎드렸다.
“유영아, 배 안 고파? 밥 줄까? 뭐 먹을 수 있어?”
신은 초조한 것처럼 연신 입술을 핥았다.
도유영은 잔뜩 불안해하는 신에게 발을 뻗어, 그의 이마를 어설프게 쓰다듬었다.
“흑, 유영아.”
―헥, 헥.
“나 무서워. 어떡해.”
훌쩍이는 사람에게 괜찮다는 듯 개가 토닥토닥 위로를 건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지해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냐고….’
제발 누가 깜짝 카메라라고 말해 줘.
십 분 전, 아니, 이 문을 열기 직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 * *
“컷! 아, 너무 좋다~!”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성이준이 찡그리고 있던 얼굴을 곧장 폈다.
“크으, 이준이 연기 너무 좋은데? 리딩 때보다 더 좋아졌어.”
“감사합니다…!”
지해수를 연기한 성이준이 쑥스러워했다.
“촬영한 거 잠깐 확인할 테니까 다들 좀 쉬고 계세요. 아, 해피 물 좀 먹여 주세요! 쟤 목마르겠다.”
“네~!”
해피의 주인이 달려왔다.
“오구, 우리 해피. 최고야. 너무 잘했어!”
―멍!
촬영 경험이 괜히 많은 게 아닌 건지, 해피는 맡은 바를 착실하게 해냈다.
성이준은 물을 찹찹 먹는 해피를 바라보다, 그 옆에 있는 이연재에게 시선을 옮겼다.
몇 초 전까지 자신의 앞을 맴돌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소년은 어디 가고, 어느새 무표정한 이연재로 바뀌어 있었다.
“연재야, 연기 너무 좋았어…!”
“고마워.”
이연재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형, 중간에 삑사리 넣은 거 자연스럽고 좋더라. 리딩 때부터 그 부분 신경 많이 썼잖아.”
“맞아. 그동안 연습 많이 했거든…!”
“응. 잘 느껴졌어. 좋았으니까 걱정 마.”
성이준이 고맙다며 수줍게 웃었다.
‘역시 알아봐 주는 구나.’
자신의 대사만 신경 쓰기도 바쁠 텐데.
상대방의 연기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이를 잊지 않고 칭찬까지 하는 게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연재가 짓고 있는 표정이 너무나 싱거웠던 터라, 그 다정함이 더욱 대비됐다.
‘정말 좋은 애야.’
같이 연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더 느낄 수 있었다.
캐릭터에 깊게 몰입한 와중에도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며 연기하는 게 느껴졌다.
덕분에 성이준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었고.
그때 감독이 크게 외쳤다.
“오케이~! 바로 다음 신으로 넘어갈게요!”
스태프들이 환호했다.
다들 장비를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이연재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연재야, 왜 그래?”
“다음 신 때문에 조금 긴장돼서.”
“…? 네가?”
네가 왜 긴장을 해?
성이준은 어이가 없었으나, 본연의 성격 탓에 차마 따지진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개에 빙의된 사람 연기도 그렇게 잘 해냈으면서.’
이연재의 연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대본 리딩 때 그의 연기를 본 작가가 울먹였을 정도니 오죽할까.
도유영이 기존에 쓰던 표정, 목소리, 말투, 몸짓.
이 모든 게 신이 빙의한 뒤로 바뀌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탓에 모든 스태프들이 놀랐다.
성이준 역시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음에도 기겁할 정도였으니까.
이연재의 연기가 끝남과 동시에, 모두가 달려가 끝없는 칭찬을 건넸다.
감사하다고 답하는 이연재는 ‘다들 사회생활에 진심이구나.’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칭찬을 해도 빈말로 넘겨 버리니, 다들 김이 빠진다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런 얘가 왜 긴장을?’
성이준의 의문스러운 얼굴에 이연재가 답했다.
“다음 신이 먹는 촬영이잖아. 복스럽게 먹어야 하는데, 잘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하.”
입이 짧던 도유영과 달리, 신은 먹는 걸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다.
신은 지해수가 요리한 볶음밥을 먹으며 “너무 맛있어!”를 수없이 외친다.
그 뒤로 지해수는 어쩔 수 없이 신의 매끼를 책임진다.
요리사가 꿈인 지해수는 요리 실력이 좋았고, 신에게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준다.
칼칼한 칼국수부터 촉촉한 달걀 장조림, 감자를 잔뜩 넣은 카레, 진한 브라우니까지.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신이 이를 먹는 모습이 합쳐지며, 따뜻한 힐링 영화가 완성될 것이다.
전체적인 영화 분위기를 결정짓는 장면인 만큼, 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음식을 먹는지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렇기에 평소 군것질도 잘하지 않는 이연재가 이렇게까지 걱정하는 것이었고.
“지금 배 안 고픈데….”
성이준은 이연재의 중얼거림에 웃음을 삼켰다.
천재 배우가 하는 걱정은 이런 거구나, 홀로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