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280)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280)
―그럼 너 릴리 스위티랑 작업하는 거야??
“작업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 프로듀서를 만나 보는 거라니까.”
―둘이 똑같은 말 아니야? 뭐가 다른 건데.
“…….”
―봐, 너도 답 못 하겠지.
화면 속 노비혁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나는 입술을 삐죽거리고 싶은 걸 참았다.
내가 참자, 애잖아.
―와, 내 베프가 릴리랑 같이 노래를 내다니 진짜 멋있다. 나도 그런 대스타랑 작업하고 싶어.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비혁아, 같이 노래 내는 거 아니라니까. 제발.”
내 깊은 한숨에 녀석이 웃었다.
나는 쾌활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시 망설였다.
“혹시 기분 나쁘진 않아?”
―뭐가?
“난 너처럼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간절하지도 않잖아. 그런데 나한테 이런 기회가 생긴다는 게….”
어떻게 말을 마무리해야 할지 몰라 자연스럽게 끝말이 뭉개졌다.
잠깐의 정적 후 고개를 드니, 날 빤히 보고 있는 노비혁이 보였다.
“왜 그렇게 봐.”
―아니, 은택이 형 말이 이제야 이해가 돼서. 네가 애긴 애구나.
“……뭐?”
어이가 없어서 순간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좋은 의미로 말한 거야.
“애 같다는 게 어떻게 좋은 의미일 수 있는 건데.”
―예전이랑 달라진 게 눈에 보인다는 거지. 약간 다마고치 키우는 기분?
이 자식이 장난하나.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자, 녀석이 피식 웃었다.
―혼자 속으로 끙끙 안 앓는 게 기특해서 그런 거야. 아무튼 내가 너 질투할까 봐 걱정된다는 거지?
기특하다는 말이 거슬렸지만, 계속 딴지를 걸면 진짜 애 같을까 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녀석은 순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질투 나지. 부럽기도 하고. 너무 잘난 사람을 친구로 둔 사람의 서러움이라고 해야 되나.
“…….”
―그렇다고 네가 밉지는 않으니까 걱정 마.
노비혁은 마치 내 볼을 콕콕 찌르듯, 손가락으로 화면을 툭툭 쳤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설사 미운 감정이 들어도 뭐 어떠냐? 아무리 상대가 좋아도 감정이 매번 좋을 순 없는 거잖아.
“그건 나도 알아.”
―네가 알긴 뭐 알아. 겁쟁이가.
이 자식이 아까부터 자꾸.
적당히 하라는 내 눈짓에, 노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나 신경 쓰느라 좋은 기회 놓치지는 마. 난 네가 연기하는 것보다 노래 부르는 게 더 좋거든.
“어? 왜?”
―그야 내가 노래를 좋아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 두 배로 좋은 게 당연하지.
녀석이 이번 라방 때 자기 파트 불러 준 거 좋았다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은택이 형이 엄청 뭐라고 하던데. 자기 형은 안 챙기고 친구만 챙긴다고.
“하, 안 그래도 오늘 난리도 아니었어.”
나도 모르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릴리와의 전화를 끊자마자 이은택에게 전화가 왔다.
왜 본인 파트는 안 부르냐는 말부터 저번에 왜 노비혁만 집에 불렀냐는 투정까지.
적당히 받아 주다가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아 도중에 끊어 버렸다.
그 뒤로도 계속 연락하길래 잠시 차단해 놨는데, 그새를 못 참고 다른 멤버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거의 두 시간을 귀찮게 굴더니, 다음에 방송하면 형 파트 부르겠다고 약속하니까 그제야 잠잠해지더라.”
―형이 워낙 너 아끼잖냐.
네가 봐 달라며, 노비혁이 실실 웃었다.
―그럼 프로듀서랑 언제 보는 거야?
“다음 주쯤에 보기로 했어.”
―오호.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 봐. 넌 모른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너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할 것 같거든.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자, 돌아오는 답은 명쾌했다.
―너 땀 흘리는 거 좋아하잖아. 노래 연습만큼 땀 제대로 흘리는 게 없다. 은근히 쾌감도 크고.
“내가 땀 흘리는 걸 좋아한다고?”
―엉. 운동도 좋아하고 춤추는 것도 좋아하잖아.
“……내가 춤추는 걸 좋아해?”
―네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냐. 하긴, 네 머리엔 연기밖에 없지?
노비혁이 혀를 찼다.
―넌 춤추면서 끼 부리는 걸 안 좋아하는 거지. 춤추는 것 자체는 좋아하잖아. 박자 제대로 들어가면 엄청 좋아하면서, 무슨. 야, 그리고 말로만 싫다고 하지. 너처럼 끼 잘 부리는 애도 별로 없거든? 세상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진짜 치사해서.
“알겠어. 진정해.”
어느새 녀석이 진심으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잘못했다고 말하며 애를 달랬다.
잠시 후, 한결 차분해진 녀석이 물었다.
―안개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어?”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안개 말이야. 걔는 너 노래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고.
“어, 걔는 내가… 뭘 해도 좋아하는 애라.”
나는 시선을 돌리며 얼버무렸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
―반응이 왜 그래. 걔 얘기 꺼내면 안 돼?
“아니, 그건 아닌데. 그냥 조금….”
쑥스러웠다.
진배 형과 정현이 형에게도 안개에 대해 말해 놓긴 했지만, 그날 이후 두 사람과 안개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은 없었다.
내가 아침 연기 연습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는 정도였다.
‘이렇게 평범하게 안개 얘기를 꺼내 본 적이 없었네.’
기분이 다소 묘했다.
반면 노비혁은 태연한 얼굴이었다.
―야, 봐 봐. 안개랑 나만 쳐도, 네 편 들어 줄 사람이 벌써 두 명이잖아. 그런데 뭐가 걱정이야? 어차피 할 거면 잘해 봐. 나도 네 노래 스밍 돌려 보게. 이참에 은혜 갚아야지.
“은혜를 갚긴 뭘 갚아.”
얘가 별소리를 다 하네.
하지만 녀석의 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나쁘지 않았기에, 난 그저 웃고 말았다.
일단 내일 다시 연락하자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타이밍 좋게 진배 형이 찾아왔다.
“배우님, 이제 곧 촬영 준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난 말없이 겉옷을 갈아입었다.
그러자 진배 형이 난감한 얼굴로 내 눈치를 봤다.
“배우님…. 아직도 화나셨어요?”
“네. 누가 돈 문제로는 거짓말 안 한다고 약속한 걸 어겨서요.”
난 무표정하게 답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제가 언제 거짓말했어요.”
세상에.
나도 모르게 휙, 고개를 빠르게 돌렸다.
“……지금 장난하세요?”
너무 기가 막혀서 순간 입이 벌어졌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형이 분명 파자마 별로 안 비싸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190만…! 하아.”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네.
“형은 땅 파면 돈이 나와요? 190만 원이 누구 개 이름이냐고요. 도대체 누가 그게 별로 안 비싸다고 말할 수 있어요?”
“비싸다는 건 말하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저번처럼 가격을 속인 것도 아니고, 제 입장에서 순수하게 말한 것뿐인데…. 거짓말한다고 몰아가시면 제가 더 속상하죠….”
진배 형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부모에게 혼난 아이 같은 표정에 더욱 황당해졌다.
‘이게 내가 잘못한 거야?’
답답함에 머리를 쓸어 올리려다가, 촬영을 떠올리며 다급히 참았다.
“안 되겠어요. 형 경제 관념에 단단히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같이 공부해요.”
“배우님. 명품을 산다고 해서 경제 관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살 형편이 아닌데도 욕심을 부릴 때 문제가 있는 거죠.”
“자꾸 논점 흐리지 마세요. 형 머리 굴리시는 거 다 보이거든요?”
내가 눈에 힘을 주자, 그제야 진배 형이 표정을 풀었다.
대놓고 ‘들켰네.’라고 적혀 있는 얼굴을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제 숨길 생각도 없는 거냐고.
‘누구야.’
누가 저 사람보고 순하다고 했어.
이를 악물었다.
진배 형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내 등을 토닥였다.
“제가 돈을 함부로 쓰는 편도 아닌 거, 배우님도 아시잖아요. 화 푸세요.”
“저한테 함부로 쓰니까 문제죠.”
“배우님한테 쓰는 게 왜 함부로입니까.”
“하, 됐어요. 됐어. 다음에 선물 살 때 저한테 허락 맡으세요. 이거 새로운 약속이에요. 안 지키면 저 진짜 화내요.”
“…….”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진배 형이 아주 느릿한 속도로 손을 들었다.
참 나.
‘달팽이도 이것보다 빠르겠다.’
진배 형은 하기 싫다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손가락 약속을 했다.
겨우 약속을 끝내고 나서야 한숨을 삼켰다.
‘노비혁한테 다시 전화해서 묻고 싶어지네.’
자, 이제 누가 애지?
* * *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영화 ‘신유영’의 촬영 준비가 끝이 났다.
‘학부모 상담’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미션을 듣고, 신과 지해수가 학교에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그 순간.
집에 홀로 있던 도유영은 생각지도 못한 방문자를 맞이하게 된다.
“안녕~.”
도유영은 마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멍하니 쳐다봤다.
“아직 유영이 안 왔지? 에휴, 힘들다. 오랜만에 반차 써 보네.”
도유영의 모친은 해맑은 얼굴로 개를 쓰다듬었다.
지금 만지고 있는 개 안에 자신의 아들이 들어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
도유영은 여전히 멍했다.
‘엄마가 왜 거기서 나와?’
평소와는 사뭇 다른 개의 반응에, 모친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만 보면 맨날 허겁지겁 달려오던 애가 왜 이래? 너도 어디 아프니?”
도유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후, 어정쩡하게 신의 흉내를 냈다.
―멍!
“나도 반가워. 오늘 아침에 유영이랑 전화했는데, 어째 애가 좀 이상하더라고~. 영 마음에 걸려서 왔어.”
모친이 끙차 소리를 내며 마루에 앉았다.
도유영이 영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산아, 정신 사나워. 좀 앉아 있을래?”
산이 아니라 신인데.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3년간 정성껏 키운 개의 이름조차 외우지 못했다.
그것만큼 그녀의 무관심을 증명하는 게 있을까 싶으면서도, 마냥 그렇게 넘어가기엔 이렇게 냉큼 찾아온 게 걸렸다.
‘평소엔 관심도 없으면서.’
도유영은 오랜만에 본 얼굴에 반가워하는 자신이 싫었다.
원래 자신이었다면 무표정을 짓거나 신경질을 냈겠지만, 개의 몸은 정직했다.
도유영은 신나게 흔들리는 꼬리를 애써 무시했다.
“요즘 학교는 몇 시에 끝나지? 물어보고 올 걸 그랬나.”
―멍!
“차 안 막힐 때 출발해야 하는데…. 산이 너도 알지? 유영이 동생 있잖아. 오늘이 걔 생일이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난 게 신기하다며, 모친이 웃었다.
“요즘 애들은 워낙 빠르더라고. 이제 5살밖에 안 된 애가 장난감 사 달라고 빡빡 우기더라니까? 어찌나 고집이 센지. 어휴.”
툴툴거리는 목소리였으나, 그녀의 얼굴엔 완연한 미소가 가득했다.
―…….
도유영은 모친을 멍하니 바라봤다.
‘행복해 보인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해서 그럴까.
그녀는 도유영 앞에서는 잘 하지 않았던 남편과 아이에 대한 얘기를 술술 늘어놓았다.
사실 몇 번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말을 꺼낼 때마다 도유영이 신경질을 내는 바람에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그렇기에 도유영은 난생처음으로, 남편과 아이에 대한 얘기를 하며 웃는 모친을 발견했다.
‘저렇게 웃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구나.’
아들의 신경질을 가볍게 넘기고 싶어 하는 웃음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수줍음이 가득한 미소.
도유영은 처음 보는 얼굴 앞에서 마침내 깨달았다.
엄마한테는 정말….
‘내가 필요 없구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