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299)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300)
고개를 돌리자, 양부가 옆에 서 있었다.
“네가 나한테 선물했던 꽃이야.”
“제가요?”
“너 온 지 두 달 정도 됐을 때였나. 내 생일이 얼마 안 남았었거든.”
양부가 하늘색 꽃을 매만졌다.
“그때 내가 정원에서 꽃 손질하고 있었는데, 네가 나한테 조심스럽게 와서 말하더라. 나한테 선물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설마 제가 돈 빌려 달라고 했어요?”
“어? 기억났어?”
양부가 놀란 얼굴을 했다.
‘기억이 날 리가.’
막 입양됐을 때면 여섯 살 남짓했을 때니, 당연히 기억날 리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물은 건데.’
머리가 아찔해졌다.
“내가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도, 나중에 갚을 테니까 빌려 달라고 우기더라고.”
그러니까.
“선물해 주려는 사람한테 돈을 갈취했다는 얘기네요.”
쯧.
내가 혀를 차자, 양부가 미소를 지었다.
“마음씨가 예쁜 거지. 내가 그러지 말고 길가에 있는 꽃 꺾어서 주라고 했어.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 말을 들은 난 곧바로 길가에 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망설이더니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저 꽃들한테도 주인이 있을 텐데 함부로 못 건들겠다면서, 정원에 있는 꽃 꺾으면 안 되냐고 그러더라.”
“……제가 진짜 그렇게 뻔뻔하게 굴었어요?”
믿기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선물해 주려는 사람한테 돈을 빌리려는 것도 모자라, 그 사람이 정성껏 키운 꽃까지 빼앗다니.
내 허망한 표정을 본 양부가 웃었다.
“난 귀엽던데. 그때 네가 선물해 준 꽃이 이거였어.”
“선물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왜 안 돼.”
양부가 하늘색 꽃 한 송이를 꺾더니 내게 건넸다.
“자, 내 선물이야.”
잠시 망설이다 꽃을 받았다.
꽃에선 은은한 향기가 느껴졌다.
어딘가 비현실적인 향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다.”
“…….”
이런 말을 들으니 더욱더 그랬고.
“먼저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정말 미안해.”
양부는 잠깐 심호흡을 한 후 말을 이었다.
“우리는 책임감 없는 부모였어. 미안하다는 말로 덮을 수 있는 일도 아니지. 그래도 정말 미안하다.”
“아뇨. 제가 더….”
뭔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목구멍이 따끔한 감각에, 급히 입을 닫았다.
내가 시선을 내리자, 위에서 잔잔히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너 보니까 지헌이 생각이 많이 나네. 너랑 참 많이 닮았어.”
“……저는 지헌이 형 얼굴도 잘 기억 안 나요.”
“그럼 보러 갈래?”
고개를 들자, 미소를 짓고 있는 양부의 얼굴이 보였다.
“아직 지헌이 방 그대로 있거든. 은택이 엄마가 매일 청소해. 사진도 다 걸어 놨고.”
나는 한참을 머뭇거린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양부를 따라 집에 들어가고, 계단을 걷고, 복도를 걸었다.
그러는 내내 멍했던 것 같다.
정신이 어딘가 빠진 듯한, 아득한 느낌.
그런데 한순간.
“…….”
정말 한순간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커튼으로 가려져 희미하기만 했던 기억들이 곧장 생생해졌다.
난 멍하니 방 안을 둘러봤다.
그곳엔 내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헌이 형과 어린 내가.
* * *
어느새 난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한눈에 봐도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오래된 이불을 슬쩍 만져 보기도 하고.
책상 위에 가지런하게 정리된 사진을 훑어보기도 했다.
‘맞아.’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지.
‘이렇게 생겼었어.’
사진으로 보게 된 지헌이 형은 낯설었고, 묘하게 익숙했다.
그동안 어떤 사람에게 많이 받았던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치….
‘정현이 형이랑 많이 닮았네.’
부드럽게 꺾이는 눈가. 다정한 생김새. 기억 속 잔잔한 어투까지.
난 멍하니 액자를 쓰다듬었다.
‘지헌이 형.’
사진 속 아이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려서, 형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내가 안개를 만났을 때쯤의 나이로 보였다.
‘내가 안개를 만난 건 행운이었는데.’
당신이 날 만난 건 불행이었겠지.
운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던 지헌이 형의 삶을 생각하니, 기분이 자연스레 가라앉았다.
어느새 방에 들어와 있던 양모를 발견한 것도 한참 뒤였다.
“아, 미안해. 방해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더 구경하렴.”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양모가 허겁지겁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응?”
“괜찮으시면 잠깐만 앉아 주실래요? 두 분 다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얘기를 하려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양모와 양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았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
“지헌이 형 일이요. 그때 사과를 못 드렸던 것 같아서요.”
그때의 눅눅했던 집 안의 공기를 기억한다.
‘멀쩡한 자식을 잃게 하고서.’
난 양부모에게 사과도 안 하고 뻔뻔하게 눈치만 봤다.
이은택이 다치고 나서도 제대로 사과해 본 적 없었지.
“정말 죄송해요.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아니야. 재, 아니, 연재야.”
양모가 급히 손을 휘저었다.
“우리가 그때 미쳤었어. 너도 내 아들이었는데. 내가 너무 못된 엄마라, 엄마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서. 널 그렇게 내보내면 안 됐었는데―.”
“아니에요.”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잘 선택하신 거예요. 만약 은택이 형한테도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럼 난 살아갈 가치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지헌이 형은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제 잘못이에요.”
“네 잘못 아니야. 이젠 우리도 알아. 정말 미안해.”
아니.
‘당신들은 아무것도 몰라.’
양모의 은은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점차 떨리는 상대방의 손 때문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난 조용히 양모의 손을 붙잡았다.
“제 잘못 맞아요.”
안다.
불행 인자로 생긴 일을 전부 내 잘못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억울했고, 슬펐으며, 가끔은 서러웠다.
나도 몰랐다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잘못이었고, 두 분은 옳은 선택을 하셨어요.”
“재희야, 자책하지 마.”
양부가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오랜만에 듣는 낯선 이름과 온기였다.
“우린 네가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정한 말이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자책하려는 게 아니에요.”
자책해 봤자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내 잘못이라는 것을.
오로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난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난 평생 그 사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을 때까지.
“과거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은택이 형을 계속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두 쌍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계속 만나고 싶고요.”
양모가 숨을 참았다.
내 손 안에서 더욱 떨리기 시작하는 상대방의 손을 더욱 힘줘서 잡았다.
“제가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씀드렸죠. 거짓말 아니에요.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가끔 서럽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보육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양부모가 날 붙잡았다고 한들, 난 무슨 수를 썼더라도 나갔을 것이다.
지헌이 형에 이어, 은택이 형이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바랐다.
내가 한 짓에 비해 뻔뻔하다는 것도.
과분한 욕심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날 붙잡아 주길 바랐어.’
당신들이 한 번이라도 날 붙잡아 주길 바랐다.
“원망스럽다는 말을 드리려는 게 아니에요. 저였어도 그랬을 거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뭐라고 말해야 내 마음을 오해 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
의사의 조언대로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생각과 달리 입이 안 떨어졌다.
그때였다.
“미안.”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미안해. 재희야. 미안….”
“…….”
상대방의 가슴팍에 휩싸인 상태로 보이는 건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날 끌어안은 양모의 몸이 덜덜 떨렸다.
“엄마가….”
목덜미로 뜨뜻한 액체가 떨어졌다.
“정말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우리 애기.”
여린 손이 내 등을 토닥였다.
곧이어, 다른 손이 내 등에 닿았다.
“……너무 빙빙 돌아왔네. 우리.”
양부였다.
양모와 마찬가지로, 울음기로 젖어 든 목소리였다.
“…….”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를 집어삼킨 것처럼, 목 안이 뜨거웠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느꼈다.
다행히 눈앞이 깜깜했기에, 어떤 표정도 꾸며 낼 필요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이 튀어 나갔다.
“보고 싶었어요….”
미처 붙잡을 새도 없던 속마음이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모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아. 알고 있어.”
양모가 흘린 눈물로 목덜미가 축축했다.
안 그래도 여린 사람인데.
이러다 탈수로 쓰러지진 않을까 걱정됐다.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날 끌어안은 힘이 너무 강했다.
“우리도 보고 싶었어. 미안하다…. 미안해.”
양모는 아주 오랫동안 내 등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우리는 진정한 재회를 맞이했다.
* * *
그날, 나와 진배 형은 늦은 시간까지 본가에 머물렀다.
이은택과 진배 형은 퉁퉁 부은 양모의 눈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진배 형은 그저 내 등을 토닥였다.
“재희야, 저녁 뭐 먹을래?”
“……지금 오후 세 시인데요.”
아직 점심도 미처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앞치마를 매려는 양모를 급히 말렸다.
겨우 양모를 진정시키고 다 같이 거실에 앉아 떠들었다.
그런데 내가 떡케이크를 좋아한다는 진배 형의 말에, 이번엔 양부가 차 키를 챙겨 일어났다.
두 손, 두 발을 써서 한참을 말리고 나서야 양부도 진정했다.
그럼에도 푸짐한 저녁 식사는 피할 수 없었고, 나는 결국 배가 찢어질 때까지 밥을 먹어야 했다.
“애기야.”
“왜?”
“이리 와 봐.”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이은택이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줬다.
그 순간, 나는 곧바로 굳고 말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거친 질감.
이게 뭐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
천천히 손을 폈다.
바스락 소리와 함께 작은 막대 사탕이 보였다.
이은택이 씩 웃었다.
“오랜만이지?”
“…….”
“이거 단종됐더라. 인터넷에서는 더 이상 안 팔더라고.”
똑같은 제품이 아니면 감동이 덜할 것 같아, 옆 동네에 있는 문방구까지 들렀다는 목소리에는 장난스러움과 어른스러움이 묻어났다.
나는 기껏 해 봐야 손톱보다 살짝 큰 막대 사탕을 만졌다.
한때 이 사탕으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꼈다.
“고마워.”
“역시 형밖에 없지?”
“응. 진배 형도 형이니까.”
“……너 진짜 그런 식으로 굴래?”
이은택이 정색하며 내게 헤드록을 걸었다.
내가 윽 소리를 내자, 양부모가 무슨 일이냐며 뛰어나왔다.
“아이고, 재희 좀 그만 괴롭혀.”
“너네는 왜 그렇게 싸우냐. 어린 애들도 아니고.”
“아, 쟤가 싸가지 없게 굴었다니까!”
“은택이 너는 나잇값도 못 하고. 네가 그러고도 형이야?”
양모가 이은택의 등을 내려쳤다.
나는 속상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 괜찮아요…. 은택이 형 때리지 마세요.”
“너, 이씨, 왜 여기서 연기해?!”
이은택이 울컥한 표정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바보.
“이은택! 너 진짜 그럴 거야?!”
양모가 더욱 신명 나게 이은택을 내려쳤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그 말이 맞았네.’
어떤 상처는 그 상처를 준 사람만이 치료할 수 있는 법이라고 했지.
때론 그런 상처도 있다고.
그 말이 맞았다.
오늘 밤, 나의 상처는 한층 옅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