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366)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367)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진배 형을 쳐다봤다.
‘이 정도면 형한테 검은 돌이 있는 거 아닐까.’
사실 처음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땐 웃겼다.
몇 년 전에 진배 형이랑 등산하러 갔을 때 생긴 일도 떠올랐고.
‘이 형이랑 둘이 있으면 참 다양한 일이 생기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웃어넘겼다.
웃음기가 사라지기 시작한 건 갇힌 지 30분이 넘어갔을 때였다.
‘원래 이렇게 일 처리가 늦나?’
외국의 일 처리가 워낙 느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다.
갇힌 사람이 폐소 공포증이라도 갖고 있으면 어떡하려고.
‘우리 둘만 갇혀서 그나마 다행이다.’
엘리베이터에 있는 건 나와 진배 형뿐이었다.
이 좁은 곳에 경호원들까지 함께 있었으면 진짜 답답했겠지.
‘형, 저 심심해요.’
‘뭐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우리 산책 갔다 오면 안 돼요?’
내 제안에 진배 형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이 웃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경호원을 부르길래 둘이서만 후딱 다녀오자고 우긴 건 나였다.
저 딱딱한 시선에서 단 10분이라도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내가 사정을 하자, 경호원은 그럼 멀리서 지켜보겠다며 한 발 물러났다.
그거라도 어딘가 해서 후다닥 나왔던 건데.
‘따로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갇혀 버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영 이상했다.
경호원들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우리가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모르겠다.’
어차피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러다 열리겠지.
옆에 있는 듬직한 덩치에 별걱정 없이 바닥에 앉았다.
“형.”
“…….”
“저희 나갈 순 있겠죠?”
그렇게 무려 세 시간이 지난 것이다.
* * *
“강아지.”
“지평선.”
“선구안.”
“안…, 안 할래요. 이제.”
이제 끝말잇기도 지겹네.
내가 지루한 표정을 짓자, 진배 형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휴대폰이라도 되면 좋겠는데.”
“그러게요.”
하와이 호텔 대부분이 오래된 건물이라는 건 들었다.
비상 버튼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건 그렇다 쳐도, 주변에 어떤 인기척도 없는 건 좀 이상했다.
‘다른 호텔 투숙객도 있을 텐데.’
세 시간 동안 엘리베이터 고장 난 걸 발견한 사람이 없다고?
말이 안 되잖아.
“여기 있다가 질식하진 않겠죠?”
“그거 영화 때문에 잘못 생긴 오해래요. 밀폐된 구조가 아니라 괜찮을 거예요.”
“배우님은 아시는 게 많네요. 멋져요.”
내 칭찬으로 넘어가는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난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형, 저 뭐 하나만 물어도 돼요?”
“당연하죠.”
“형 가족들은 어떤 성격이에요?”
“제 가족이요?”
“그동안 물어보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거든요.”
지금처럼 진배 형이랑 단둘이 있는 게 얼마 만인지.
미국에 오기 전에도 딱히 기회가 많진 않았다.
집에 간다 한들 정현이 형, 한하람, 노비혁 중에 한 명은 꼭 있었으니까.
‘정현이 형 앞에선 더 못 물어보지.’
정현이 형의 부모님이 어릴 적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았다.
그 뒤로 정현이 형이 있는 곳에선 가족 얘기는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게 습관으로 자리 잡아서 그런지, 진배 형은 꽤 어색하게 답했다.
“그냥 무난한 편입니다. 부모님이며, 누나며, 다 자기 일로 바쁜 사람들이라 연락도 잘 못 하고요.”
“누나분도 변호사라고 하셨죠?”
“네. 부모님 로펌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가족 4명 중 3명이 변호사라.
혼자 다른 길을 걷는 것에 반대가 심하지 않았냐고 묻자, 순한 웃음이 돌아왔다.
“오히려 안심하시던데요. 누나가 일 욕심이 크거든요. 제가 변호사였으면 승계 관련해서 누나랑 사이가 안 좋아졌을 겁니다.”
“변호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있었어요?”
“전혀요. 글만 봐도 졸려요.”
질색하는 표정에 가볍게 웃었다.
그 뒤로도 이것저것 물었다.
누나와 싸운 적은 없는지, 부모님 생신 때는 뭘 하는지.
처음엔 어색하게 답하던 목소리가 갈수록 밝아졌다.
“이제 저 말고 배우님 안부부터 묻는다니까요. 저희 집에 배우님 포스터도 걸려 있어요.”
어린애처럼 한껏 올라간 목소리 톤을 들으니 웃음이 났다.
당신도 어쩔 수 없는 막둥이구나.
진배 형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세 시간 더 있어도 좋겠다.’
웃는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진짜 하고 싶었던 질문을 물었다.
“그럼 결혼하라는 압박도 없어요?”
“그렇죠? 애초에 제가 누구 만나는지 물어보지도 않으셔서요.”
“만나는 사람은 있어요?”
“……배우님, 오늘 이상하시네요.”
진배 형이 눈가를 좁혔다.
“잠깐 저 보세요. 혹시 숨 쉬기 어려우거나 머리가―.”
“저 멀쩡해요. 그동안 엄청 궁금했는데 이참에 묻는 거예요.”
그래서 만나는 사람은 있냐고 재차 묻자, 진배 형이 민망하게 웃었다.
“배우님도 잘 아시잖아요.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럴 시간도 없고요.”
“아하, 가끔 만나기는 한다는 거죠?”
“…….”
진배 형은 내 시선을 피했다.
나랑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게 민망한 건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어린애에게 나쁜 걸 가르쳐 주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어떡해. 이 형 진짜 내가 애인 줄 아나 봐.
“괴롭히려고 물어본 거 아니에요. 형 사생활을 파고들 생각도 없고요. 그냥 결혼 생각이 얼마나 있는 건지 궁금했어요.”
“나중에 생각이 달라질 순 있겠지만… 지금은 별 생각 없습니다.”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내 옆에 있겠네.’
비혁이랑 같이 살 집에 자연스럽게 진배 형의 방도 넣었다.
아, 한하람 방도 넣어야지.
‘대저택으로 구해야 하나.’
경기도권에 4명 살 집이면 얼마나 하려나.
머릿속으로 돈 계산을 하고 있자, 이번엔 진배 형이 물었다.
“배우님은요?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의미로요.”
엄청나게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형이랑 이런 얘기하는 건 처음이구나.
나는 태연하게 답했다.
“저도 신기할 정도로 관심이 없어요. 책에서 보면 제 나이 때 가장 관심이 활발하다던데.”
“보통 그렇다는 거지 전부 그런 건 아니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딱히 걱정하는 건 아니에요.”
잠깐 허공을 바라보다 물었다.
“그럼 형 첫사랑은 언제예요?”
“…….”
진배 형이 질끈 눈을 감았다.
“배우님 오늘 정말 이상하시네요….”
“이런 얘기 불편해요?”
“불편하진 않습니다. 그냥 좀 신기해서요. 배우님이 연기 아닌 걸로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도 처음이라.”
진배 형은 멋쩍은 얼굴로 중3 때 같은 반 애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어디가 좋았어요?”
“그냥 눈길이 갔어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아무것도 안 해도 계속 시선이 가는 사람.”
그런가.
딱히 공감이 되진 않았지만 얌전히 들었다.
“고백은 하셨어요?”
“아뇨. 사실 말도 못 걸어 봤어요. 제가 그때도 이미 덩치가 작진 않아서.”
형은 자신이 조금만 다가가도 다들 무서워했다며 중얼거렸다.
하다못해 학교 선생님들도 움찔거렸다는 말엔 머쓱함이 가득했다.
난 그 웃음이 좋았다.
“그분이 아까운 기회를 놓쳤네요.”
“그런가요?”
“네.”
“그럼 그런 건가 봐요.”
진배 형이 웃었다.
순한 눈동자를 마주 보고 있던 참이었다.
―텅!
갑작스러운 소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렸다.
뭔가 억지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이연재 배우님 거기 계십니까?!)”
익숙한 목소리였다.
세 시간 전에 대화했던 경호원의 목소리.
‘다행이네.’
맞다고 답하자마자, 얼른 내려가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맛이 간 건지, 경호원이 수동으로 천장 문을 뜯고 내려왔다.
몇 시간 만에 본 경호원 얼굴엔 땀이 가득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혹시 많이 찾으셨어요?)”
“(아뇨. 두 분이 엘리베이터에 있다는 건 알았는데 하필 호텔에 도둑이 들어와서요.)”
“(네?)”
땀범벅이 된 경호원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복면 쓴 남자들이 호텔에 우르르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곧장 데스크를 점령하고 전력까지 다 끊어 버린 상태로 인질극까지 벌였다고.
당연히 이 근방의 경찰들이 전부 몰려왔고, 팽팽한 싸움 끝에 방금 범인들이 전부 검거됐다고 한다.
우린 그것도 모르고 끝말잇기나 하고 있었던 거고.
‘와….’
나는 새삼 다른 눈빛으로 진배 형을 쳐다봤다.
이 형 덕분에 오히려 편하게 있었던 거구나.
“(다친 사람은 없나요?)”
“(네. 조잡한 놈들이었습니다. 저희 측 인력으로 해결할까 했는데, 그럼 배우님이 여기 있다는 것도 알려져서요.)”
경호원은 얼른 호텔부터 옮기자고 제안했다.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알아서 처리했다는 든든한 답변이 돌아왔다.
‘난 한국에 있는 게 답인가.’
검은 돌이랑 관련 없이 생긴 일이라는 건 아는데 기분이 묘했다.
남들은 인생에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하는 일들을 연달아 겪고 나니, 외국 생활이 진짜 안 맞나 싶기도 했고.
“(짐은 미리 챙겨 놓았습니다. 바로 차 타시죠.)”
일단 기자들 눈에 띄어선 안 됐기에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안 엮여서 진짜 다행이다.’
범죄 사건과 엮인 기사가 또 나갔으면 빼도 박도 못 하고 그대로 낙인찍힐 뻔했다.
‘그럴 순 없지.’
내가 어떻게 납치 사건에서 벗어났는데.
새로운 호텔에 체크인 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배우님, 괜찮으세요?”
“네. 형 덕분에 살았네요.”
이번에 옮긴 호텔은 바다와 좀 더 가까운 곳이었다.
사람도 많지 않아 한적한 느낌이 좋았지만, 혹시 몰라 이틀 동안 방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밖은 위험해.’
* * *
어느새 하와이를 떠나기 하루 전날이 되었다.
“배우님.”
아침부터 할 말이 있어 보였던 진배 형은 점심을 다 먹자마자 용건을 꺼냈다.
“저희 요트 빌려서 나가는 건 어때요? 여기 와서 바다 구경은 못 했잖아요.”
그리고 난 부드럽게 웃었다.
“아뇨. 그러다 시체 발견할 것 같아요.”
“……괜찮을 겁니다. 이번엔 경호원이랑 붙어 있으면 되죠.”
진배 형은 그냥 방에 있겠다는 나를 두 시간 동안 설득했다.
하와이가 내게 안 좋은 추억으로 남을까 봐 걱정하는 게 뻔히 보였다.
‘난 충분히 좋았는데.’
얼굴도 못 본 범죄자들보단 진배 형과 단둘이 나눴던 대화가 더 인상 깊었다.
그래도 하와이까지 왔는데 바다는 보고 가야지 않겠냐는 말에 한숨을 삼켰다.
‘안 가겠다고 하면 울겠네.’
혹시 몰라 이번엔 방에서부터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였다.
진배 형이 미리 연락했다는 요트 선착장에 도착했다.
‘색 진짜 신기하다.’
가까이서 본 바다는 영롱한 에메랄드색이었다.
호텔 안에서 멀리 본 거랑은 비교가 안 됐다.
“형, 안에 물고기 있어요….”
“그래요?”
물이 워낙 투명해서 그런지, 작은 물고기들이 움직이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햇빛에 닿을 때마다 보석처럼 반짝 빛나는 물결이 신기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바다를 보고 있던 참이었다.
“(……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