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367)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368)
“(……밤비?)”
익숙한 목소리에 휙 고개를 돌렸다.
“(미아?)”
“(와, 진짜 밤비 맞네!)”
금발 머리의 여자애가 환하게 웃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여기서 볼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
미아였다.
릴리 스위티의 뮤직비디오에서 함께 연기했던 미아 브라운.
“(하와이는 무슨 일로 왔어? 촬영?)”
미아가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얹으며 다가왔다.
“(아니, 그냥 매니저 형이랑 놀러 왔어.)”
“(매니저랑 여전히 사이좋구나. 우연이네, 나도 놀러 왔거든!)”
미아가 해맑게 말했다.
“(요트 타러 온 거지? 같이 타지 않을래? 오랜만에 수다 떨자.)”
“(아.)”
잠시 망설였다.
다른 사람이 함께하면 할수록 시체 발견 확률이 줄어들긴 하겠지만, 그 다른 사람이 여자라는 건 마음에 걸렸다.
‘열애설 나면 어떡하지.’
저번에 릴리 콘서트에서도 기사가 떴었지.
요트까지 같이 타면 확실히 의심을 살 텐데.
‘시체냐, 열애설이냐.’
진지하게 고민하던 찰나, 미아가 재빠르게 손을 휘저었다.
“(아, 곤란하게 했다면 미안. 방해할 생각은 없었어. 다음에 놀자!)”
“(방해한 거 아니야. 그냥….)”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열애설이 날까 걱정이 된다고.
‘얘 인기가 워낙 많아야지.’
이 순간에도 미아를 찍고 있을 파파라치가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미아는 내 말을 듣자마자 빵 터졌다.
“(하하! 난 또 뭐라고. 괜찮아. 나 남자 친구 생겼거든. 공식으로 인정도 했어.)”
“(그럼 더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분이 오해하실 수도 있잖아.)”
“(내가 친구랑 대화도 못 해? 걔 그 정도 좀생이는 아니야.)”
미아가 네가 편한 대로 하라며 웃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그럼 혹시….)”
* * *
“(하하! 너 진짜 특이해.)”
미아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요트 위로 울려 퍼졌다.
웃음소리는 내가 종이에 쓴 글씨를 보자마자 더욱 커졌다.
“(너 진짜 너무 귀엽다. 어떡해. 매니저님, 얘 꽁꽁 숨겨 놔요.)”
“(안 그래도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진배 형까지 웃기만 했다.
‘다들 도와주지도 않고.’
조금 심통이 났지만 쓰던 것부터 마저 마무리했다.
“(다 썼어?)”
“(응. 이거 어디에 걸면 돼?)”
“(나 줘! 내가 들고 있을게.)”
미아가 낄낄거리며 내가 만든 팻말을 번쩍 들었다.
‘We’re just friends!’
우린 그냥 친구 사이라는 걸 알리는 팻말이었다.
나름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미아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눈물까지 흘렸다.
파파라치가 있을 방향을 향해 이리저리 팻말을 드는 모습이 꽤 얄미웠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너무 귀여워서 그렇지. 밤비야, 걱정 마. 이 정도 열정이면 파파라치들도 분명 알아줄 거야.)”
퍽이나 고맙네.
“(이제 그냥 내려놔. 손 아프겠다.)”
“(내 머리 위에 올려놓을게. 난 태닝할 건데, 너는 물에 들어갈 거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진배 형이랑 둘이 있는 것도 아니니, 시체 발견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후 스노클링 장비를 챙겼다.
조심조심 발을 내딛자 뜨뜻미지근한 물이 몸에 닿았다.
‘느낌이 묘하네.’
물이 미끌미끌하니 꼭 푸딩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직원이 알려 준 대로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한 채 고개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물고기….’
물고기가 진짜, 정말 많았다.
진배 형이 설명해 줄 땐 별거 있나 했는데, 직접 겪어 보니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쟤 되게 신기하게 생겼다.’
그리 덥지 않은 햇빛, 미지근한 바다, 전부 다 다르게 생긴 물고기들.
‘이상해.’
신기하고 이상했다.
구명조끼 덕분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기분 또한 그랬다.
“배우님, 이제 올라오세요.”
“저 조금만 더 보고요.”
“그 말 벌써 5번째입니다. 얼른 올라오세요.”
“……”
채근하는 목소리에 한참을 버티다 올라갔다.
“세상에, 손이 다 부르텄어요. 안 아프세요?”
“괜찮아요.”
“일단 핸드크림 발라 드릴게요.”
진배 형이 내 손에 크림을 잔뜩 짜 주며 웃었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어요. 알았으면 진작 왔을 텐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딱히 그렇게까지 좋은 건 아니었는데.
“배우님, 한국 가면 저랑 아쿠아리움 가실래요?”
“네. 갈래요.”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냉큼 답하는 내 모습에 진배 형의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
‘이러다 오해하는 거 아니야?’
누가 보면 물고기 엄청 좋아하는 애인 줄 알겠어.
제안을 수락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뭐, 그냥 안 가 본 곳이니까. 경험을 쌓을수록 연기에도 도움이 될 거고.
‘아쿠아리움에는 훨씬 더 많은 물고기가 있겠지.’
가오리 같은 것도 있으려나?
‘흠.’
……조금 기대되는 것 같기도 하고.
“(밤비야! 이리 와 봐.)”
그때 선 베드 위에 누워 있던 미아가 날 불렀다.
진배 형이 너무 많이 짜 준 핸드크림을 몸에 닦은 후 미아의 옆에 앉았다.
“(이것 좀 먹어. 물놀이 하면 원래 체력 보충 좀 해 줘야 해.)”
“(고마워.)”
“(물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네. 내일은 뭐 해? 내일도 같이 요트 탈래?)”
내일 출국한다고 말하자, 미아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에잉, 아쉽다. 너 하와이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연락할 걸 그랬어.)”
“(그러게.)”
얌전히 답했지만 속으로 의문은 들었다.
우리가 그 정도로 친한 사인가.
내 의문과 별개로 미아와의 대화는 편하고 재밌었다.
“(너 보니까 남친 생각난다. 걔도 너랑 친해지고 싶어 해.)”
“(둘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야?)”
“(나랑 시트콤 같이 찍는 애야. 저번에 키스 신 찍었거든.)”
키스 신 이후로 상대방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싱숭생숭하길래 미아가 먼저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했다.
“(데이트 몇 번 하니까 애가 생각보다 괜찮더라고? 그러다 파파라치한테 사진 찍히고 뭐, 어찌어찌하다 보니까 사귀게 됐지.)”
여전히 막힘없는 성격이구나.
‘훨씬 편해 보이네.’
저번 뮤비 촬영 때는 이성을 어떻게 좋아하냐고 묻던 애였는데.
또래 남자애들은 더럽고 하나같이 불쾌하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났다.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닌데, 그동안 많이 변했구나.
“(다행이네. 지금은 안 불편해?)”
“(응? 뭐가?)”
“(저번에 그랬잖아. 또래 남자애들은 불편하다고.)”
“(아, 남친이 나보다 나이가 좀 많아. 또래 애들은 여전히 불편해. 윽, 거기다 역겹기까지 하고.)”
미아가 인상을 험악하게 찡그렸다.
난 떨떠름하게 웃었다.
“(역겹….)”
“(아니, 들어 봐. 이번엔 인사도 안 해 본 애가 나랑 사귄다고 거짓말하고 다녔다니까?)”
“(뭐?)”
“(지 친구들한테 온갖 더러운 얘기를 지어내서 떠들어 댔더라고. 나랑 언제 키스를 했고, 어제는 무슨 자세를 했고.)”
그 정도면 범죄 아닌가.
내가 정색을 하자, 미아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 미친 것 같지 않아? 난 심지어 이걸 얼마 전에 알았어! 걔는 1년 전부터 그러고 다녔더라고.)”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변호사랑 얘기는 해 봤어?)”
“(정말 고소하려다 말았어. 걔네 부모님이 하도 빌어서…. 다신 안 그러겠다는 서약서 받고 끝냈지.)”
미아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10대 남자애들은 뭐가 문제일까? 걔네 머리에는 똥밖에 안 들은 것 같아.)”
“(그, 나도 10대 남자앤데.)”
“(넌 달라. 저번에도 말했잖아. 너는 그런 느낌이 안 든다니까.)”
미아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저었다.
“(걔 때문에 난 업계에서 걸X라고 소문이 났어. 신기하지? 정작 난 남친이랑 키스 한 번 해 본 게 다인데.)”
“(…….)”
“(다행히 내가 온갖 난리 피운 덕분에 걔가 거짓말했다는 건 알려졌는데. 뭐, 여전히 나 보면 손가락질하는 애들이 많아.)”
익숙한 듯 덤덤한 목소리에 씁쓸해진 건 나였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생 많았네. 유감이야.)”
“(고마워. 얘기 들어 줘서.)”
미아가 웃으며 잔을 들었다.
“(네가 루머나 가십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너랑 얘기하니까 마음이 편해. 다른 애들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네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안 이상한 애들도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래?)”
미아가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진짜 이상한 애들투성이던데. 너네 하루 종일 여자 얘기만 하지 않아? 아님 게임이라거나.)”
“(유독 심한 애들이 있긴 하지.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냐.)”
“(넌 게임 안 해? 총 게임 같은 거.)”
총 게임이라.
별 관심 없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내 취향은 아닌 것 같아.)”
총은 제이크 연기하면서 실컷 쏴 봤다.
아무리 공포탄이라고 한들 마우스를 달칵거리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게 사실이었다.
“(역시 넌 참 신기해.)”
미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전히 불쾌감이 남은 듯한 얼굴에 마음이 쓰였다.
‘큰 상처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녀의 편견과 거부감이 더욱 두꺼워지지 않길 바랐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오직 미아를 위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쓰레기 같은 놈들 때문에 미아의 인생이 좁아질 필요는 없으니까.
‘정말 10대 남자애들은 다 그런 건가.’
확실히 요즘 나오는 영화, 드라마, 그리고 인터넷에 적힌 글만 보면 미친 애들밖에 없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안 그런 애들도 있는데.’
노비혁, 이은택, 성이준, 남인후 등등 내 주변의 녀석들은 모두 좋은 녀석이었다.
‘하은이 주변에 남자애들도 공부밖에 안 한다 그랬고.’
물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지.
착실한 학교생활을 보낸다고 그 애가 좋은 애라고 단언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 아닌가.’
원래 10대라는 게 그런 시기잖아.
싸움과 비난, 혼란 속에서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시기.
‘영 방법이 없을까?’
내가 만든 팻말로 장난치고 있는 미아를 쳐다봤다.
미아에게 상처를 준 애는 성별을 떠나 범죄자였고, 쓰레기를 옹호할 생각은 죽어도 없다.
내 생각처럼 그렇지 않은 애들이 실제로 많다고 한들, 미아가 그걸 이해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끙.’
머리가 복잡하네.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단순한 거였다.
그런 거 있잖아. 쓰레기는 쓰레기고, 우리는 우리고.
우리끼리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당장 죽지 않을 거라면, 나도 한하람도 이 세계에서 쭉 살아가야 할 텐데.
혐오감으로만 가득 찬 세상은 누구에게나 살기 벅찬 법이었다.
‘나는 그렇다 쳐도, 한하람은….’
한하람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아냐.’
의사가 그랬잖아.
자학적인 생각은 의식적으로라도 피해야 한다고 했다.
‘나를 위해서.’
그래, 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었다.
엄청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어떤 아이디어 하나가 떠오른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