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369)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370)
학교 동아리 부원들과 드라마를 찍기로 결정한 지 3일째.
오늘도 난 점심을 먹자마자 동아리실로 향했다.
‘어?’
다들 벌써 와 있네.
내가 가장 빨리 왔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동아리실에는 이미 부원들로 가득했다.
“촬영 장소는 따로 빌릴 필요 없겠네요? 어차피 다 학교 배경이니까.”
“오, 그럼 소품비도 절감되겠다. 옷도 교복 입으면 되잖아.”
“그래도 교실 하나는 통으로 빌리는 게 편할 것 같은데. 이건 내가 쌤한테 말해 놓을게.”
“그럼 활동 신청서는 제가 쓸게요!”
알아서 자기가 할 일을 찾는 모습이 기특했다.
‘호흡도 잘 맞고.’
다행히 사람들은 제대로 구한 것 같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 감독님.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네.”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든 말든, 부원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저희가 역할을 나눠 봤는데요, 감독님.”
“감독님, 감독님. 이것도 봐 주세요!”
어떻게든 놀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게 보였다.
‘부르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뭐, 감독은 감독이니까.
* * *
“안녕하세요. 드라마 ‘미성년자 가이드’의 디렉팅을 맡게 된 이연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환호성이 들려왔다.
“감독님 잘생겼어요!”
“첫사랑 얘기해 주세요!”
다들 신났네, 아주.
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회의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주제와 관련 없는 소리 하시는 분은 내쫓도록 하겠습니다.”
부원들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미 업계에서 정상을 찍은 사람들과 일을 하다가, 또래 사이에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그럼 ‘미성년자 가이드’ 촬영 관련해서 역할 분배부터 하겠습니다.”
이번에 찍게 될 드라마 제목은 ‘미성년자 가이드’로 결정되었다.
청춘, 사랑, 학생, 꿈 등의 단어 대신 일부러 삭막하고 건조한 단어를 골랐다.
드라마에서 보여 주지 않는 현실적인 10대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목적이니까.
“각본은 이번 주 내로 마무리 지어야 해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최대한 현실적인 느낌이 나게 작업할 겁니다. 공익 광고 느낌이 나지 않도록요.”
“네. 알겠습니다!”
내가 짜 놓은 뼈대에 맞춰 각본을 다 같이 쓰기로 했다.
기획부터 촬영, 연출 및 편집까지.
갈 길이 먼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막막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애초에 한국 수어 드라마 ‘2월 3일’의 각본을 써 보기도 했고, 작년에 ‘Bambi’, ‘Biyeon’의 뮤직비디오 감독을 맡아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눈앞의 일들을 막힘없이 쳐 냈다.
무엇보다 부원들의 실력이 꽤 괜찮았다.
“그럼 각본 작업 끝나자마자 오디션으로 배역 구할게요. 담당 부원들은 회의 끝나면 남아 주세요.”
“네!”
매년 영상 작품을 만들어 낸 동아리라 그런지, 이미 나름대로 조직이 갖춰진 상태였다.
조명, 소품 제작, 의상 준비, 연출, 편집 등등.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든 부원들을 모아 인원을 짜 보니 나름 해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걸론 부족하겠지.’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한들 그래 봤자 동아리였다.
추억용 작품이라면 모를까, ‘미성년자 가이드’는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이 이미 약속된 드라마였다.
협업이라는 건 돈이 오가는 걸 의미한다.
돈을 받아서 만드는 만큼 어느 정도의 퀄리티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브랜드에서는 어디까지 개입하는 거야?”
“한 에피소드당 10초 이상의 자사 제품 노출 보장이 유일한 조건이에요. 그 외 내용은 터치하지 않기로 했어요.”
물론 대본이 나오면 공유는 해야겠지만.
어디까지나 공유의 개념이었지, 허락은 아니라며 못을 박았다.
“브랜드 눈치 보면서 작업할 필요는 없어요. 정 안 되면 브랜드 투자금 빼고 제 사비 쓰면 돼요.”
“와우.”
“PPL 신경 쓴다고 엉망으로 만들지 말자는 말이에요. 아시겠죠?”
내 말에 부원들이 히죽 웃었다.
“네, 감독님!”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하기엔, 눈빛에 신뢰감이 넘쳤다.
어려서 그런가. 확실히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순진했다.
‘귀엽네.’
나는 표정 관리를 하며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대회는 따로 알아봤는데요. 투자금 규모가 커서 그런지 참여할 수 있는 곳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협업을 포기할까 했는데요.”
“절대 안 돼!”
“……네. 많은 분들의 의견대로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브랜드 협업으로 규모가 커진 탓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웬만한 대회에는 참가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걸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부원들이 괜찮다며 날 달랬다.
뭐, 달랬다기보다는 좀 더 강한 느낌이었지만.
‘야, 그깟 대회가 중요해? 다른 곳도 아니고 ○○ 브랜드잖아!’
‘그래도 저번엔 대회 성적이 중요하다고―.”
‘정신 차려, 이연재!’
날 뜯어말리는 눈동자엔 미묘한 광기가 어려 있었다.
다행히 대회 참가 외에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한 에피소드당 5분 정도로 짧게 만들 거예요. 에피소드는 총 10개 분량으로, 매 화마다 주인공이 달라집니다.”
“드라마는 유X브에 공개되는 거죠?”
“네. 한 번에 풀릴 거고, 프로모션은 ○○ 브랜드 홍보 팀에서 맡을 거예요.”
○○ 브랜드는 정현이 형 모델 계약으로 우연 엔터테인먼트와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한 곳이었다.
해당 브랜드가 우리에게 얼마를 투자했든 금액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쪽에선 학생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 줬다는 훈훈한 이미지를 챙길 수 있는 기회니까.
‘문제는 금액이 아니야.’
앞서 말했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건 퀄리티였다.
하지만 우리들이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 봤자, 프로들이 만든 드라마와는 비교가 안 될 게 뻔했다.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찍어도 될 정도라는 걸 알려 줘야 하니, 드라마는 무조건 잘 나와야 합니다. 연출이나 동선 처리도 매끄러워야 하고요.”
“음….”
내 말에 동아리 회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자문을 맡아 줄 분을 구해야겠네. 퀄리티 보장용으로.”
“네. 맞아요.”
나 대신 정답을 말해 준 회장을 보며 웃었다.
“어디까지나 이번 드라마는 저희가 만들 겁니다. 하지만 자문 감독님이 계시면 저희도 편하고, 퀄리티도 지킬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어느 분께 부탁드리냐는 건데, 아는 분 있어?”
“네. 안 그래도 어제 연락이 와서 말씀드렸어요.”
부원들의 눈이 반짝였다.
“오, 누군데?”
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답했다.
“윤강연 감독님이요.”
“…….”
어제 윤 감독과 나눴던 메시지를 화면에 띄우려고 노력했다.
‘왜 이렇게 안 돼.’
내가 빔 프로젝터와 혼자 싸우는 동안 동아리실에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윤, 강연 감독님? 너랑 ‘트윈스’ 찍은… 윤강연 감독님 말하는 거야? 황금종려상 받은 그 윤 감독님?”
“네.”
아, 됐다.
마침내 화면에 메시지 창이 뜨는 걸 확인한 후 활짝 웃었다.
“자, 화면 보이시죠? 어제 드라마 관련해서 간략하게 설명은 드렸고요. 윤 감독님이 일정 정리해서 전달 주셨어요.”
“…….”
“다들 듣고 계세요?”
질문에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
‘왜 자꾸 멍을 때리는지 모르겠네.’
부원들은 다 좋은데 자꾸 중간중간 멍을 때렸다.
핀잔을 주려다 참고 가볍게 박수를 쳤다.
“다들 집중하세요.”
“야, 우리 엄청 집중하고 있는 거야….”
내 말에 짝꿍이자 1학년 부장인 박예린이 억울해했다.
다른 부원들의 말도 이어졌다.
“윤 감독님이라고? 내가 윤 감독님을 실제로 볼 수 있다고? 진짜?”
“이거 꿈인가?”
다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조용히 부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반응이 나쁘진 않네.’
정말 다행이었다.
부원들이 윤 감독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으니까.
‘또 거절하면 얼마나 찡찡거릴까.’
윤 감독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와 ‘트윈스’를 찍은 이후, 윤 감독은 내게 꾸준히 시나리오를 보냈다.
시나리오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계속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거절 끝에 윤 감독은 단단히 토라졌다.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날 이렇게 취급한다고? 나랑 같이 프랑스 간 건 다 까먹었어?
‘진정해요, 감독님.’
―어떻게 진정을 해! 네가 자꾸 내 전화 씹는데!
휴대폰 너머로 화난 목소리가 윙윙거렸다.
그에게 아는 감독을 소개해 달라고 전화를 걸었던 내 입장에서는 곤란한 일이었다.
나는 그의 기분을 풀어 준 후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윤 감독은 자기가 자문 감독을 맡겠다고 자처했다.
‘……감독님이 하시겠다고요? 학생 드라마 자문 감독을요?’
―그래, 내가 하겠다고, 내가! 어휴, 억울해. 내가 이 짬밥 먹고 배우한테 구걸을 하네.
윤 감독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면 그에게 너무나 보잘것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내가 눈치가 없어도 그 정도는 알지.
하지만 그가 하겠다고 아득바득 우기는 바람에, 일단 부원들한테 말해 보겠다고 한 상태였다.
“그럼 윤 감독님으로 진행해도 다들 괜찮으신거죠?”
내 말에 부원들이 기막히단 얼굴을 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니.”
“괜찮…? 우리가 괜찮아도 되는 입장인가? 감히?”
오케이.
‘그럼 자문 감독도 구했고.’
윤 감독 정도면 ○○ 브랜드에서도 만족하겠지.
막힘없이 풀리는 일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제 잘 찍기만 하면 되겠다.’
윤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어둡고 무거운 편이었다.
‘미성년자 가이드’가 일반적인 청춘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겁게 표현되어선 안 됐다.
‘중간에서 내가 잘 조율해야겠지.’
어차피 디렉팅은 내 몫이니까.
“그럼 윤 감독님께 오늘 연락드릴게요.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부원들이 상기된 얼굴로 떠들었다.
“미쳤다, 미쳤어. 요즘 꿈꾸는 것 같아. 이게 맞아?”
“아, 나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미치겠음.”
“근데 우리야 좋은데 윤 감독님은 괜찮으신가? 나 같으면 좀… 그럴 것 같은데.”
그의 자존심을 걱정하는 부원에겐 속으로 답했다.
‘괜찮아요.’
내 차기작을 담보로 넘겼으니까.
윤 감독이 자문 감독을 맡는 대신, 그와 함께 2년 안으로 작품을 찍기로 했다.
‘나야 이득이지.’
안 그래도 조만간 그와 한번 작업할 생각이었다.
사람이 하도 찡찡대야지, 원.
‘칭얼거리는 것도 없애고, 자문 감독도 구하고.’
이런 걸 일석이조라고 하는구나.
웃음이 절로 나왔다.
* * *
[제목: 미친 이연재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또1라이 아님?
얘 때문에 우리 학교 오늘 난리 남ㅋㅋㅋㅋㅋ
와 진짜 얜 난놈이다
―? 뭔데?
―뭐임 무슨 일임
―?
―야ㅠ 제대로 말을 해 주고 가야지ㅠㅠ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ㄱㅆ) 쏘리 저녁 먹느라;;
└그래서 뭔 일인데. 빨리 좀 말해 줘.
└(ㄱㅆ) 이연재 동아리에서 드라마 찍는다고 오늘 학교에 공지 올라왔음. 이연재가 직접 감독, 출연까지 한다고 함. 근데 PPL은 ○○ 브랜드, 자문 감독은 윤강연이래.
└머ㅓ?
└다시 천천히 말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