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389)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390)
한국에서도 탄탄한 팬층을 가지고 있는 미국 의학 드라마.
‘아틀라스 딜레마’ 주연 배우들과 제작진이 한국에 방문했다.
유례없던 유명 배우들의 떼를 지은 내한에 난리가 났다.
[‘아틀라스 딜레마’ 주연 배우들 총집합! 인천 공항을 가득 채운 열기] [에이미 라일리 “한국 첫 방문, 뜨거운 환영에 감사….”] [(현장 포토) ‘아틀라스 딜레마’ 배우들을 보러 온 팬들]주연 배우 모두가 이연재와 촬영 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다 같이 한국에 오겠냐며 내한을 결정한 것이다.
공항에 모여 있던 기자들이 혀를 찼다.
“넌 믿어지냐? 쟤네들이 이연재 때문에 한국까지 왔다는 거?”
“보고도 안 믿긴다. 별일이 다 있네.”
고작 조연 배우와의 한 에피소드 촬영을 위해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모두 한국에 방문하다니.
주연 배우 모두가 모인 만큼 내한 기자 회견, 서울시와의 협업 관광, 언론사의 인터뷰 등으로 일정이 빽빽하게 쌓였다.
갈수록 커지는 규모에 다들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일이 더 커질까.’
그야말로 이연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다.
* * *
“(데이비드 씨에게 질문드립니다. 이연재 씨와 연기 호흡을 맞추게 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기자의 질문에 데이비드가 싱긋 웃었다.
“(미스터 리의 작품을 몇 개 살펴봤는데 굉장한 배우더군요. 얼른 함께 연기하고 싶습니다.)”
“(보신 작품이 뭔가요?)”
“(윤 감독님과 찍은 트윈스도 봤고, 아, 킬링 혼은 두 번이나 봤습니다. 정말 엄청난 연기력이더군요.)”
데이비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는 악명 높은 할리우드에서도 몇 년을 버틴 프로였다.
즉, 무슨 말을 해야 기자들이 좋아할지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자국 배우를 띄워 주면 당연히 좋아하겠지.’
어차피 한국까지 왔는데 한국 배우에 대한 칭찬 몇 마디 하는 게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몇 분 전에 주워들은 작품 몇 개를 들먹이자, 기자들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쉽네, 쉬워.’
데이비드는 이연재와 가장 많은 촬영 신이 잡혀 있는 배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이연재가 차지한 분량은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연재를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뭐 하러.’
그가 오랫동안 출연한 드라마 ‘아틀라스 딜레마’의 감독은 하나에 꽂히면 미친 사람처럼 구는 특징이 있었다.
이번에 감독이 꽂힌 건 한국의 배우였다.
그는 이번 시즌에서 해당 배우와 반드시 촬영을 해야 하며,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한국에 가자고 일장 연설을 했다.
흥분에 가득 찬 감독의 의지를 꺾을 사람은 없었다.
제작진들과 배우들은 익숙하게 짐을 쌌고, 감독을 따라 우르르 한국에 온 것이다.
‘이참에 여행한다고 생각해야지.’
떠밀려 오긴 했으나 그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따지고 보면 좋은 편이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공항에 우르르 모인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거나 고작 악수 한 번에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팬도 있었다.
그는 언어가 통하지 않음에도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들을 향해 진심 어린 미소를 건넸다.
배우들은 공항에서의 짧은 인터뷰를 마친 후 예약해 놓았던 호텔로 움직였다.
“(아이고, 힘들다.)”
“(나도. 목욕하고 얼른 뻗고 싶다.)”
“(호텔 룸 업그레이드된 거 확실하죠? 나 스위트룸 아니면 못 자는데.)”
“(감독님, 저 따로 움직여도 돼요? 여기 근처에 유명한 클럽 있대요.)”
라운지에 모인 배우들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이연재와 촬영 신이 많은 데이비드를 빼곤 사실상 준비할 게 없었기에 다들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감독은 남은 배우들에겐 자유 시간을 주고, 스태프들과 차를 탔다.
차에 함께 탄 배우는 데이비드뿐이었다.
“(데이비드, 저번에 들었겠지만 다시 말해 줄게. 이번 주는 리허설 위주로 움직일 거고, 본격적인 촬영은 다음 주에 할 거야.)”
“(네, 네. 알아요.)”
“(촬영 시간이 촉박하니까 대충 듣지 마.)”
“(대충 듣는 거 아니에요. 대사도 다 외워 놨고요. 감독님이야말로 너무 긴장하신 거 아니에요?)”
“(후우, 그건 맞아.)”
감독이 초조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얼른 내 눈으로 보고 싶단 말이야. 그 배우가 연기하는 걸 직접 봐야겠다고.)”
그의 눈이 광기로 빛났다.
데이비드는 속으로 혀를 찼다.
‘감독들은 왜 다 또라이밖에 없을까.’
저런 감독 눈에 든 배우가 불쌍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배우이길래 저러지?’
배우를 만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작은 호기심이 들었다.
데이비드는 스태프들과 함께 우르르 한 건물에서 내렸다.
로비에 있던 직원의 공손한 인사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건물이 꽤 크네.’
그는 ‘우연 엔터테인먼트’라고 적혀 있는 복도를 힐끗 쳐다본 후, 직원이 안내해 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마주했다.
지난 며칠 동안 감독이 목 놓아 불렀던 그 배우, 이연재를.
“(…?)”
뭐야.
데이비드는 자신도 모르게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의 시선 끝엔 예의 바르게 웃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프레디 형제한테 말 진짜 많이 들었어요. 제가 그 장면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맘 같아선 지금 당장 찍고 싶어요.)”
“(하하,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청년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었다.
그 사이에 자리 잡은 까만 눈동자가 구슬처럼 빛났다.
데이비드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상대방에게서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공간을 가득 채운 뚜렷한 존재감에 불쾌감이 밀려왔다.
“(데이비드, 얼른 인사해.)”
데이비드는 감독의 말에 뒤늦게 인상을 풀고 한 걸음 다가갔다.
“(데이비드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연재입니다.)”
가볍게 손을 잡아 악수하는 청년은 언뜻 보면 유순한 인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그가 가진 성깔을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그거야….
“(잡담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바로 대사 맞춰 볼까요?)”
데이비드도 한 성깔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자고로 종족은 같은 종족이 알아보는 법이었다.
“(…….)”
방의 분위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평소 매너 좋기로 유명한 데이비드답지 않은 말투에 제작진들이 눈치를 봤다.
정작 이연재는 태연하게 웃었다.
“(그러시죠.)”
두 배우가 시선을 마주쳤다.
팽팽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공기에 괴로움을 호소한 건 제작진들이었다.
“(쟤네 왜 저래?)”
“(나도 몰라….)”
제작진들이 숙덕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데이비드는 이연재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빠르게 그를 스캔했다.
‘긴장한 것 같지도 않네.’
이연재가 들고 있는 대본은 손때 하나 없는 빳빳한 새 대본이었다.
그것만 보고 이연재가 연습을 대충 했을 거라고 판단하는 멍청이도 있겠지만, 적어도 데이비드는 아니었다.
그는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대본을 툭 건드리면 찢어질 정도로 연습한 탓에, 리딩 당일엔 매번 새 대본을 뽑아 갔던 예전의 자신을.
‘쉽지 않겠네.’
연기는 누군가와 싸우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연기력의 깊이와 밀도는 엄연히 존재했고, 이로 인해 상대 배우에게 압도당하는 건 언제 겪어도 개 같은 일이었다.
‘적어도 오늘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진 않다고.’
자신이 넘볼 수도 없는 명배우라면 모를까.
오늘 처음 본 한국 배우한테 느끼고 싶진 않은 기분이라는 것이다.
“(아, 아.)”
데이비드가 급하게 목을 풀었다.
누가 봐도 이연재를 견제하는 모습에 감독이 낄낄 웃었다.
‘내가 저 새끼 저럴 줄 알았다.’라는 의미의 웃음이었다.
감독이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첫날인데도 열기가 후끈하네요. 좋습니다. 연재 씨, 대본은 미리 받았죠? 메일로 보냈는데.)”
“(네. 대사 외워 놨습니다.)”
“(좋네. 우리 메인 작가가 하나하나 쓴 대사예요. 이 작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어.)”
감독은 그 말을 시작으로 작가와 스태프 한 명, 한 명을 소개했다.
이연재는 그때마다 웃으며 상대방의 이름을 곱씹었다.
한참 후, 감독의 손가락 끝이 마지막 사람에게 닿았다.
“(그리고 데이비드. 시즌 12를 이끌어 갈 주역이지. 연재 씨가 환자를 연기하고, 데이비드는 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연기할 거야.)”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연재가 연한 미소를 지었다.
전혀 공격적이지 않은 웃음에도 데이비드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저 새끼 왜 저래?’
감독이 그를 향해 의아한 눈빛을 건넸다.
이쯤 되면 슬슬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가라앉긴커녕 오히려 가시를 뾰족 세우는 모습에 의문이 들었다.
‘알아서 하겠지.’
데이비드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중요한 신을 망치는 애송이가 아니었다.
언제나 기본은 했던 배우였기에, 감독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리딩을 시작했다.
“(처음이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살살 호흡 맞춰 갑시다. 묻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고요.)”
“(네. 감사합니다.)”
이연재는 말끝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붙였다.
‘갈수록 마음에 드네.’
저 반듯한 얼굴이 죽기 직전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연기할 거라고 생각하니 온몸이 짜릿했다.
감독은 얼른 그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럼 리딩 시작하죠.)”
“(지문은 제가 읽겠습니다.)”
조연출의 말에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드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졌다.
무려 시즌 11 동안 이어진 형식이었으니까.
‘곧 나온다.’
이연재의 첫 대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감독이 고개를 휙 돌렸다.
‘얼른 보여 줘!’
그가 해맑은 얼굴로 이연재를 바라봤다.
내내 차분한 얼굴로 대본을 내려다보던 이연재가 잠시 눈을 감았다.
조연출은 남은 지문을 읽었다.
“(인계받을 환자의 내용을 확인한 의사, 병실로 이동한다. 병실로 가까워질수록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감겨 있던 눈이 떠졌다.
검은 눈동자가 형광등에 닿아 반짝 빛남과 동시에, 그의 얼굴이 바뀌었다.
‘어?’
감독은 웃고 있던 얼굴로 굳어 버렸다.
이연재는 아무렇지 않게 바뀐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진짜 조심할게요. 저도 이렇게 다칠지 몰랐다니까요. 정말 실수였어요.)”
늘어지는 말투, 순한 목소리, 사근사근한 톤.
부모님의 걱정을 한순간에 진정시키는 단정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단아한 웃음에도 감춰지지 않은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눈빛이었다.
이 상황이 너무 X 같아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살벌한 눈빛이 넘실거렸다.
“(…….)”
감독은 입을 작게 벌린 채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곧바로 데이비드와 눈이 마주쳤다.
데이비드는 형형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감독은 그제야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오버한 게 아니라는 걸, 이제 알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