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449)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449)
“NG!”
“……정말 죄송합니다.”
대사를 까먹은 배우가 허리를 연신 숙이며 사과했다.
누가 봐도 멘탈이 단단히 나간 모습이었다.
“괜찮습니다. 잠시 쉬었다 갈게요.”
윤강연 감독은 배우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이 왜 멘탈이 나갔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사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휴.’
스페이스 최인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 내 촬영 없어서 진짜 다행이다….’
그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현장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바싹 말랐다.
단역 배우들의 멘탈을 터트린 장본인, 이연재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언뜻 보기엔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뼛속까지 비연 DNA를 타고난 최인준의 눈엔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 밤비, 어떡해….’
이연재는 엄청나게 속상해하고 있었다.
첫 테이크가 워낙 완벽했던 만큼, 엉망진창으로 흘러가는 촬영에 더욱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악마의 재능이라고 해야 되나.’
사실 이연재의 잘못이라고 볼 순 없었다.
그는 본인의 일에 충실했고 이를 완전하게 수행했을 뿐이다.
다만 그 깊이가 상상 이상이었기에, 같은 꿈을 가진 이들을 무력하게 만든 것뿐이지.
“복덩이, 표정 풀어라. 너무 걱정 마.”
“죄송해요.”
“뭘 죄송해. 아까 말했잖아. 예상했었다니까. 계속 찍다 보면 언젠가 건질 거야.”
윤 감독은 이연재의 어깨를 어설프게 토닥였다.
“두고 봐. 오늘 일 때문에 자극받아서 미친 듯이 노력하는 배우들이 있을걸. 그런 애들이 성공하는 거야.”
“…….”
“네가 한 배우의 성공 계기가 되는 거지. 이게 얼마나 멋진 일이냐?”
나이스, 감독님!
최인준은 대화를 엿들으며 윤 감독을 응원했다.
좀 더 북돋아 주세요. 우리 밤비 지금 귀 완전 처져 있다고요.
‘밤비야, 힘내.’
최인준 역시 윤 감독과 같은 생각이었다.
이연재가 현장을 압도한 덕분에 상대 배우들이 아득함과 무력감을 느낀 건 사실이지만, 그가 또 다른 자극을 주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소름 돋네.’
최인준은 흠이라곤 전혀 없었던 첫 테이크를 떠올렸다.
그동안 이연재와 수없이 연습을 하며 대본 호흡을 맞춰 본 그에게도 충격적인 연기였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최인준은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혼자 연기 연습에 몰두하는 이연재와 카메라 앞에 선 이연재는 완전히 다른 종족으로 보였다.
‘뭐랄까, 정말….’
오직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액션!’
윤 감독의 외침과 함께 카메라에 붉은색의 빛이 들어온 순간.
하얗고 고운 얼굴, 단정한 눈매, 깔끔한 얼굴이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연재 대신 또라이 주인공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니, 안 죽고 싶어.’
‘……이 X발 새끼가―!’
느릿하게 움직이는 팔다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건 이연재가 아니다.
높은 하이 톤의 목소리, 과장된 표정과 리액션.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요소들이 세심하게 합쳐지면서 묘한 매력의 캐릭터가 완성되었다.
인간임에도 인간답지 않은, 쉽게 진압할 수 없는 재앙 같은 존재가 탄생했다.
‘이번엔 제대로 된 쓰레기가 왔으면 좋겠다.’
입꼬리를 히죽 올리며 웃는 모습은 천사처럼 해맑아 보이면서 동시에 악마처럼 보이기도 했다.
최인준은 이연재와 연습하면서 주인공을 몇 번이나 마주쳤다.
그럼에도 카메라 앞에 선 주인공은 완전히 색다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말이다.
‘어떻게 해야 연기에 저 정도로 미칠 수 있을까?’
최인준은 가수와 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나름대로 뿌듯한 결과를 얻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훨씬 어린 소년의 재능은 무섭게 느껴졌다.
‘어렵다, 어려워….’
팬으로서는 정말 좋은데 같은 컷에 잡힐 배우로선 두려웠다.
최인준은 여러 감정을 느끼며 첫 촬영이 끝날 때까지 함께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첫날은 윤 감독의 예상대로 수확 없이 끝났다.
내일 똑같은 장면을 다시 찍기로 약속한 후 뿔뿔이 흩어졌다.
“복덩이, 아직도 기분 별로냐?”
“괜찮아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감독님.”
“초콜릿 좀 챙겨 줄까? 우울할 땐 단 게 직빵이야.”
“감독님은 그만 드셔야 해요. 당뇨 와요.”
“……잔소리하는 거 보니까 진짜 괜찮아졌나 보네.”
윤 감독은 툴툴거리면서도 이연재와 대화하는 것을 무척 즐기는 듯했다.
최인준은 윤 감독을 티 나지 않게 흘깃 쳐다봤다.
‘의외란 말이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인 윤강연은 미스터리한 사람이었다.
연예계에서 꽤 오래 활동한 최인준도 아는 게 거의 없었고, 진중한 천재라는 것만 알았다.
한때 그의 본모습은 딴판이라는 말이 돌긴 했지만, 늘 그렇듯 루머에 불과할 줄 알았다.
‘누가 알았겠어? 그게 사실일 줄.’
막상 실물로 마주하게 된 윤 감독은 미디어로 알려진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늘 낮은 목소리로 깔았던 인터뷰와 다르게 살짝 촐싹거리는 느낌도 났고, 이연재와 대화할 땐 방정맞아 보이기까지 했다.
‘밤비랑 얘기할 때 유난히 풀어지는 것 같긴 해.’
최인준은 그 문장에 바로 납득했다.
당연히 그럴 만하지. 밤비니까. 마성의 밤비는 사람을 홀려.
‘일 시작하면 표정 달라지는 것도 밤비랑 비슷하고.’
최인준이 속으로 꽤 괜찮은 사람 같다는 평가를 내리던 찰나였다.
“인준이 형.”
“응?”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어휴, 내가 뭘 고생해! 난 보기만 했는데.”
최인준의 첫 촬영은 3일 후로 잡혀 있었다.
그가 오늘 촬영장에 온 목적은 캐릭터 연습과 밤비 구경에 있었다.
‘두 목적 모두 성공적이었지.’
이 정도면 꽤 행복한 저녁이었다.
최인준은 밝게 웃었다.
“고생 많았어, 밤비야. 얼른 들어가서 쉬어!”
“아, 저 형만 괜찮으시면 같이 저녁 먹을까 했는데요. 형 불편하시면―.”
“당장 가자.”
그렇게 최인준의 저녁이 더욱 행복해졌다.
* * *
“오늘 첫 촬영인데 어땠어? 많이 힘들었지?”
“재미는 있었어요. 근데 뭐…. 네, 많이 힘들었어요.”
이연재가 머쓱하게 웃었다.
자신에게 꽤 솔직해진 모습에 최인준이 부드럽게 웃었다.
‘X나 귀엽다, 하….’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 있지? 솔직한 밤비, 너무 귀여워.
겉모습만 멀쩡했지, 최인준의 속마음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밤비랑 이렇게 친해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
저녁도 같이 먹고, 심지어 3일 후면 같이 연기도 해.
‘진짜 인생 모르는 거야.’
최인준은 당장이라도 기쁨의 댄스를 추고 싶었으나, 겉으로는 차분하게 미소를 가다듬었다.
원래 고도로 발달된 오타쿠는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는 법이었다.
‘3일 후라….’
그와 함께 카메라에 서야 한다는 게 막막하면서도, 오늘 봤던 눈부신 주인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두근거렸다.
모든 식사가 끝난 후 디저트가 나올 무렵, 최인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밤비야. 나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
“뭔데요?”
“영화 제목이 왜 스파이더야?”
머뭇거림이 가득한 질문에 이연재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주인공이 조직에서 불리는 닉네임이 스파이더니까요.”
거미(Spider)처럼 한번 잡은 목표는 안 놓친다는 뜻에서 정해진 닉네임.
“그게 다야? 그냥 주인공 닉네임이라서?”
“다른 뜻이 있어야 할까요?”
“아니, 그건 아닌데. 네가 처음에 영화 제목 말했을 때 표정이… 뭔가 좀 그랬거든.”
“…….”
“착각일 수 있지만 뭔가 다른 뜻이 있을 것 같았어.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대본 분석해 봤는데 전혀 모르겠더라.”
최인준의 멋쩍은 웃음에 이연재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음….”
최인준은 이때를 틈타 이연재의 촘촘한 속눈썹이 팔랑거리는 걸 구경했다.
이연재는 그답지 않게 횡설수설했다.
“그, 딱히 거창한 건 아닌데요. 아셔 봤자 큰 의미가 없을 거예요.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
“응, 응.”
“윤 감독님한테도 말씀 안 드린 거거든요. 그냥 저 혼자 생각한 거라서. 공식 설정도 아니에요. 듣고 잊으셔도 돼요.”
“응.”
최인준의 똘망똘망한 눈빛이 이연재에게 닿았다.
이연재는 그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시선을 회피하며 답했다.
“……레드 스파이더 릴리에서 따온 거예요.”
레드 스파이더 릴리?
‘그게 뭐야.’
최인준 머릿속에 물음표가 뜨자마자, 이연재가 설명을 덧붙였다.
“꽃 이름이에요. 일본에선 ‘피안화(彼岸花)’라고 부르고, 우리나라에선 석산이라고 불러요.”
“그렇구나. 뭔가 어디서 들어 본 것 같다.”
최인준이 아는 척하는 사이, 이연재의 덤덤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른 꽃처럼 집에서 키울 수 있는 꽃이 아니에요. 독이 있거든요.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대요.”
“아, 정말?”
“네. 그래서 피안화의 꽃말은 ‘죽음’이에요. 실제로 먹고 죽은 사람도 많다고 하고요.”
하얀 손가락이 망설이듯 탁자를 툭툭 쳤다.
최인준은 재촉하지 않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연재는 한참 후에야 말을 이었다.
“형도 아시겠지만, 주인공은 쓰레기를 처단하는 정의로운 ‘영웅’이 아니잖아요. 쓰레기를 처리하는 또 다른 쓰레기일 뿐이죠.”
“그렇지.”
“원래 처음엔 이런 설정이 아니었는데 바꿨어요. 자경단이란 소재 자체가 워낙 까다롭기도 하고, 주인공을 영웅으로 묘사했다가 사회에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요. 각본가로서 어떻게 보면 ‘안전한’ 선택을 한 거죠.”
까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데 각본이 완성되면 될수록 죄책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욕을 안 먹기 위해서 욕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든 거잖아요.”
“…….”
“얘는 영웅이 아니다, 쓰레기다. 이렇게 못을 박았지만 사실 어떤 누군가에겐 영웅일 수도 있고요.”
“맞아.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연재가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얘가 누군가의 영웅이었다 한들 얘의 결말이 달라지진 않겠구나.”
“…….”
“원래 영웅은 누군가를 구원해 주는 역할이지, 누군가로부터 구원받는 역할이 아니잖아요.”
느릿하게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걸 자각하고 나니까 더 혼란스럽더고요. 저는 얘를 연기해야 하는데, 몰입할수록 괴로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최인준은 까만 눈동자와 마주했다.
“전 주인공을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고 있어요.”
“…….”
“주인공이 영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결말을 맞든, 주인공은 오래전에 죽은 사람인 거예요.”
이미 죽었기에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외부의 시선과 판단으로부터 슬픔과 서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모순적인 인물.
마치….
“살아 있음에도 죽음으로 불리는 꽃, 피안화처럼요.”
“…….”
최인준은 멍한 얼굴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오늘 하루 종일 이연재에게 품었던 의문, ‘어떻게 해야 저렇게 연기할 수 있을까’의 물음표가 마침내 풀렸다.
그렇구나.
‘너한테는….’
캐릭터가 아니구나.
네가 연기했던 모든 캐릭터가 네겐 캐릭터가 아니었던 거야.
‘나도 너처럼 할 수 있을까?’
최인준은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도 캐릭터를 캐릭터로 대하지 않을 수 있을지.
또 다른 배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