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462)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462)
“그럼 다큐 찍고 나면 이사하는 거야…?”
“바로는 아니고 한 일주일 정도 있다가.”
“그렇구나….”
성이준이 울적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카메라가 잘 담을 수 있게 몸을 최대한 비틀었다.
‘골고루 담아야지.’
속상해하는 버전도 필요했다.
자기도 나름 연예인이라고, TV에선 어른스러운 모습만 보여 주는 애였다.
‘이런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데.’
개인적으로 성이준 얼굴과 가장 잘 어울리는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왜 자꾸 어른스러운 컨셉으로 잡고 가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성이준 팬들을 위해서라도 보여 줘야 해.’
난 얼굴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몸을 꼬았다. 아, 근육 경련.
“걱정 마, 형. 이사해도 자주 보면 되지.”
“알겠어….”
시무룩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난 카메라가 성이준의 얼굴을 잘 담은 걸 확인한 후에야 화제를 바꿨다.
“아침 운동 하러 온 거야? 부지런하네.”
“아니야. 네가 훨씬 더 부지런하지…!”
“복싱은 계속 하고 있는 거지?”
그가 취미로 하던 복싱에 대해 묻자, 안 그래도 막 수업을 받고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 또 운동하러 온 거야? 대단하다.”
“아냐. 네가 더 대단하다니까….”
성이준이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오케이, 좋았어.
‘복싱 배운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담았고.’
이제 운동하면서 땀 흘리는 것만 담으면 끝이다.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성이준.’
내가 네 분량 알차게 뽑아 줄게.
* * *
“(와우! 갈수록 깔끔해지네요. 너무 좋아요.)”
뮤지컬 강사가 박수를 쳤다.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첫날이랑 비교하면 아주 용이 됐네. 완벽해요!)”
띄워 주기 칭찬이 아니라 진심으로 뿌듯해하는 표정에 안심했다.
‘다행이다.’
역시 연습이 최고구나.
물론 만족은 주관의 영역이라, 아직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선생님, 여기서 더 공명감을 주는 게 좋을까요?)”
“(뮤지컬 무대에 서는 거라면 그래야겠지만, ‘뮤지컬 영화’라면 얘기가 달라지죠.)”
강사는 뮤지컬 영화의 특수성에 대해 설명했다.
모든 것이 그렇듯, 뮤지컬 영화도 영화마다 치중하는 포인트가 다 달랐다.
원조 뮤지컬 넘버의 느낌이 강한 경우도 있고, 가요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트렌디함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연습하는 넘버는 후자에 속하잖아요. 이런 곡에 공명을 강조하다 보면 너무 과장된 느낌이 들 수 있어요.)”
“(아, 네.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좋아요. 좀만 쉬었다가 하죠.)”
강사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다정한 응원이었으나 갈증을 해소해 주진 못했다.
‘하, 더 잘하고 싶은데.’
신경 써야 할 게 너무나 많았다.
창법, 발성, 딕션, 강약 조절, 감정 전달력, 제스처, 숨소리.
이 모든 요소를 영화 분위기에 맞춰 재조립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어렵다.’
최대한 덤덤하게 땀을 닦았다.
뭐, 그런데….
어려운 일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잖아?
‘징징거릴 시간에 연습을 더 하자.’
오케이.
산뜻하게 결론을 냈다.
‘그나마 체력이 좋아서 다행이야.’
뮤지컬 연습은 내 생각 이상으로 어려워서 한 번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졌다.
유난히 힘든 이유 중엔 모국어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컸다.
한국어와 영어.
뮤지컬과 뮤지컬 영화.
대사와 넘버.
명확한 차이를 가지면서도 묘하게 겹치는 부분을 가지고 있는 영역들.
난 그 중간에 서서 모든 걸 세심하게 컨트롤해야 했다.
“(참 어렵네요. 시원시원하면서도 청아한 느낌을 줘야 한다는 게.)”
“(그래서 재능이라는 단어가 있는 거죠.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타고난 재능을 이기긴 어렵거든요.)”
강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연재 씨가 그러면 기만인 거 알죠?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고. 숨겨진 보석이랄까, 가르칠 맛이 나요.)”
“(감사합니다.)”
“(숀 감독님은 도대체 이런 보석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몰라.)”
기분 좋은 칭찬에 가볍게 웃었다.
정확히 따지자면 숀 코너리가 아니라 데이비드가 찾아낸 거지만….
‘흥이다.’
데이비드를 생각하니 또 울컥했다.
난 뮤지컬 영화를 찍기로 확정을 내린 후에도 데이비드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하도 끈질기게 연락을 하길래 차단을 했더니, 우 팀장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었다.
‘연재야, 이거 읽어 봐. 데이비드가 보낸 거야.’
우 팀장이 구구절절한 장문의 메시지를 보여 주길래, 나는 보지도 않고 싱긋 웃었다.
‘팀장님, 제가 뮤지컬 연습 시작하면서 영어를 다시 쓰고 있잖아요.’
‘어, 그렇지…?’
‘그래서 그런가, 읽기 좀 벅차네요. 영어는 연습할 때 쓰는 걸로 충분하잖아요. 한글이 좋기도 하고.’
‘……그냥 읽기 싫다고 말을 해.’
그 말에 곧장 읽기 싫다고 말하자, 우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너 바쁘다고 대충 둘러댈게.’라는 말은 귓등으로 흘렸다.
데이비드가 뭐라 생각하든 내 알 반가. 흥.
이후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우 팀장이 또다시 날 불렀다.
이번에 그가 보여 준 메시지는 영어가 아니었다.
[나는 정말 미안해서 살 수가 없다. 맙소사,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까? 난 그를 보고 싶다. 그의 안부가 궁금하다. 신이시여. 내 간절한 의지가 그에게 닿기를 기도합니다. 전달을 부탁한다! 나는 언제나 그를 생각한다. 그 때문에 내 생활이 무너지고 있다. 다시 연락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이건 또 뭐야….’
번역기를 돌린 게 분명한, 어설픈 한국어가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우 팀장은 질린다는 얼굴로 이런 메시지가 어제부터 계속 온다며 중얼거렸다.
‘이 편지는 영국으로부터 시작된’ 어쩌구를 이길 만한 집착이었다.
중간에 낀 우 팀장이 더 곤란해하기 전에 별수 없이 차단을 풀었다.
오랜만에 연락한 데이비드는 허겁지겁 사과를 반복했다.
―(내가 진짜 잘못했어. 응? 사과받아 줘라. 제발.)
‘(알겠어요. 대신 넘어가는 건 이번뿐이에요. 한 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용서 안 해요.)’
―(응. 앞으로 절대 안 그럴게. 난 너랑 영화 같이하고 싶어서 그랬지.)
‘(그런 말로 얼렁뚱땅 넘어가지 마세요.)’
솔직히 할 말 있으면 한국 와서 얘기하라고 하려다가, 이 사람이면 진짜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우 팀장님이 일 더 벌이지 말라고 했으니까.’
무엇보다 데이비드가 한국에 오면 귀찮아지는 건 나였다.
안 그래도 할 거 많은데, 걸어 다니는 이슈 생성기랑 마주칠 이유가 없지.
‘괜히 생각했다.’
머릿속 가득해진 데이비드 생각을 지우기 위해 머리를 힘껏 흔들었다.
됐어, 연습이나 하자.
”(선생님, 저 다시 연습해도 될 것 같아요. 충분히 쉬었어요.)“
“(……하, 난 아직인데.)”
강사가 고단하단 얼굴로 중얼거리는 걸 애써 무시했다.
매일 받을 수 있는 강의도 아닌데, 1분 1초가 아까웠다.
그렇게 4시간의 연습 시간을 꽉꽉 채우고 나서야 연습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봬요, 선생님.)”
“(네. 다음 주 되기 전에 연락도 하지 말아요….)”
“(하하.)”
“(농담 아니에요.)”
강사는 파김치가 된 얼굴로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곧장 진배 형이 다가왔다.
“배우님, 여기 물이요.”
“감사해요.”
물병에 담긴 물을 쉬지 않고 들이켠 후에야 문득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아.’
또 까먹었다. 하.
나 다큐 찍고 있었지.
‘너무 몰입하면 이게 또 문제네.’
다큐에 들어갈 첫 뮤지컬 연습이라는 것도 까먹은 채, 연습에 완전히 몰입했다.
이래서야 원, 영화 촬영이랑 달라진 게 없잖아.
내가 뒤늦게 멈칫하자, PD가 조용히 말했다.
“노래 정말 잘하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머쓱하게 웃었다.
칭찬이 어색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작진의 존재를 까먹고 있었다는 게 티가 날 것 같았다.
‘일단 씻어야겠다.’
조심스럽게 짐을 챙기는데, PD가 말을 또 걸었다.
“원래 연습을 이렇게 길게 해요?”
“어, 네. 그냥… 이 정도 해요.”
입술을 잘끈 씹었다.
평소엔 질문도 안 하는 사람이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최대한 회피하는 내 태도에도, PD는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스포일러 때문에 연습 풀 버전을 못 보낼 거 생각하니까 벌써 아쉽네요. 노래 진짜 좋던데.”
“노래 좋죠? 저도 듣고 놀랐어요.”
숀 코너리 감독의 뮤지컬 영화에 삽입되는 노래는 모두 영화를 위해 작곡한 오리지널 곡이었다.
즉, 이번 영화를 통해 세상에 처음 나오는 곡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욱 잘해야지.’
같은 노래라도 특정 누군가가 불렀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압도적으로 잘 어울릴 때가 있다.
노래가 ‘주인’을 만났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
난 그 순간을 위한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할 수 있어.’
그리고 해낼 것이다.
비장한 마음과 두근거리는 설렘이 가득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으며 말을 꺼냈다.
PD는 한참 후에야 답했다.
“……연재 씨랑 같이 살면 진짜 행복하겠어요.”
“네?”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비연이 할 법한 말을 하시네.’
맥락 없는 말에 내가 제대로 답을 하기도 전에, 진배 형이 자연스럽게 답했다.
“많이 그런 편이긴 하죠.”
“그렇죠? 부럽네요.”
“감사합니다.”
진배 형이 낮게 웃었다.
‘형은 왜 뿌듯해하는 건데요.’
어이가 없었다.
속으로 헛웃음을 짓고 있던 찰나, PD가 이제 집으로 가냐고 물었다.
“아뇨. 씻고 인준이 형 만나야 해요.”
“최인준 씨요? 왜요?”
“내일 촬영 있거든요. 미리 만나서 호흡 맞춰 보려고요.”
“연습을 또 한다는 말이에요?”
PD는 질색을 하더니 바로 진배 형에게 말을 걸었다.
안쓰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고생이 많으시네요.”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둘이 아까부터 뭔데.
* * *
“밤비야!”
“안녕하세요, 형.”
최인준 가수와는 WB 엔터 사옥 연습실에서 만났다.
굳이 외부 소속사까지 찾아가서 연습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곳은 올 수 있을 때 오는 게 좋았다.
‘빨리 연습 끝내고 비혁이 만나야지.’
바로 네이드의 연습실이 있는 건물이었으니까.
같은 건물에서 연습하고 있을 녀석을 떠올리며 대본을 꺼냈다.
‘일단 내일 촬영할 신부터….’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던 찰나였다.
만나자마자 내 머리에 달라붙어 있던 최인준 가수가 슬쩍 물었다.
“밤비야, 근데 다큐는 갑자기 왜 찍게 된 거야?”
“아, 비연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그게 다야?”
“…?”
그럼 다른 게 있어야 하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