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508)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508)
영화 ‘스파이더’의 최종 편집본.
2시간에 가까운 영상을 보는 동안 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도 가만히 있다가, 방의 불이 켜지고 나서야 겨우 입을 뗐다.
“뭐…, 괜찮네요.”
멍하니 중얼거린 후 뒤늦게 헉했다. 아이고.
‘실수했다.’
하필 어제 서지오를 만나고 온 터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게 남아 있었다.
‘너무 미지근하게 말했네.’
그래도 처음으로 최종본을 보여 주는 건데 반응이 이게 뭐야.
상대방이 실망할까 봐 급히 수습하려던 찰나였다.
“진짜?! 오예!!!”
“…?”
엄청난 환호성에 고개를 돌렸다.
윤 감독은 환희 어린 얼굴로 주먹까지 쥐고 있었다.
“몇 개월을 작업실에 처박힌 보람이 있네. 진짜 다행이다. 아~! 한시름 놔도 되겠어.”
“……누가 보면 제가 격한 반응이라도 한 줄 알겠어요.”
어이가 없어 던진 말에 돌아온 건 웃음이었다.
“내가 널 모르냐? 까탈쟁이 이연재가 괜찮다잖냐. ‘나쁘지 않네요.’도 아니고 ‘괜찮네요.’면 이미 게임 끝났지. 이번 황금 종려상은 내가 타겠네.”
윤 감독은 미리 수상 소감을 준비해야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이가 없었다.
‘참 나.’
사돈 남 말 하네.
‘나보다 훨씬 더 까탈스러우면서.’
하지만 난 상대방 말에 반박하지 않고 다시 틀어 주실 수 있냐는 말을 했다.
그렇게 2번 연속해서 관람하니 영화의 의도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진짜 잘 나왔네.’
솔직히 좀 놀랐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나왔거든.
윤 감독과 몇 달 동안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해서 만들어 낸 인물들이 영화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극 중에서 ‘이연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 정도면 정말 기대해 봐도 되겠는걸.’
윤강연 감독의 작품들은 ‘트윈스’ 전까지만 해도,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칸 국제 영화제와 같은 예술인들에게 더욱 극찬을 받았던 거고.
반면 ‘트윈스’는 열린 결말이긴 하지만 영화의 흐름이나 전개가 명확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방금 본 ‘스파이더’는 트윈스보다도 영화의 메시지가 더욱 확실하게 읽혔다.
이는 일반 관객들도 머리 아프지 않게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대중성까지 잡겠네.’
물론 영화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용도로만 쓰여선 안 됐다.
어디까지나 작품은 작품이어야 하니까.
그런 점을 고려했을 때도 충분히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얼른 개봉했으면 좋겠다.’
윤 감독 작품 특유의 어둡고 미스테리한 분위기와 시나리오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체적으로 잘 섞여 있었다.
그때 윤 감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뭐가요?”
“목 졸리는 장면 있잖아. 편집하기 잘한 것 같지?”
머뭇거리는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네. 훨씬 더 낫네요.”
“휴, 다행이다.”
윤 감독이 안심한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남인후에게 목 졸리는 장면.
즉, 스파이더가 빌런 최성인에게 목 졸리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건 몇 달 전이었다.
영화 ‘일리야’를 찍고 있던 당시, 윤 감독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복덩이, 지금 전화 가능하냐?
‘네. 무슨 일이세요?’
―지금 편집 중인데 너랑 상의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그게 좀 미안한 얘기이긴 한데….
아무리 연기가 뛰어나도 편집이 없으면 커버가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
목을 조르는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가서 살가죽이 밀리거나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현상 등등.
이런 육체적인 변화를 선명하게 담기 위해서는 진짜로 목을 졸라야 했다.
보통은 장면 전환, 추가 녹음 등의 방법으로 이를 보완하겠지만 촬영 당시 윤 감독은 이를 무편집으로 30초 이상 내보내길 원했다.
각도 변경, 장면 전환, 깔리는 배경음도 없는 리얼한 장면.
하지만 윤 감독은 뒤늦게 ‘장면 전환 없이 쭉 끌고 가되, 이명과 비슷한 사운드로 덮어 버리고 싶다’라고 말을 바꿨다.
―미안하다. 너랑 인후가 얼마나 힘들게 촬영한 건지 알고 있어.
윤 감독은 머쓱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감독의 강력한 주장 아래 진행된 신이었던 만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말이 이어졌다.
목이 졸릴 때 나는 신음을 다른 사운드로 덮어 버리면 현실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목까지 직접 조르는 촬영을 했다는 걸 고려하면 앞뒤가 안 맞았다.
‘예전이라면 이해가 안 갔겠지만….’
지금은 다르지.
그래서 난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저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단어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윤 감독도 그렇고, 당시의 나는 이를 지키지 못했다.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전문성, 책임감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단어.
나는 프로답기 위해 어디까지 나를 내놓을 수 있을까?
‘기준을 잘 정해 놔야 해.’
퀄리티를 높인다는 핑계로 욕심을 부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연기 욕심이 연기 중독으로 이어지다 보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정신이 피폐해질 수 있다.
오래오래 연기하고 싶은 의도와는 다르게, 최악의 결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 컨트롤해야 한다.’
릴리 스위티가 음반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서 생각했다.
일 중독이 사람을 얼마나 갉아먹을 수 있는지.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에 미쳐 있는 사람이었다.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릴리의 마음이 이해는 됐지만, 실제로 옆에서 본 그녀는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날 왜 그렇게 걱정하는지 알겠네.’
10년 넘게 쌓아 온 커리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음반이 나쁘진 않을까 두려워하는 그녀의 모습은 인간적이면서도 안쓰러웠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으나, 현 상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녀가 앨범에 들이는 노력은 일종의 강박처럼 보였다.
불안함을 느낄 때마다 더욱 일에 매달리는 릴리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나는 내 욕심을 잘 컨트롤할 수 있을까?’
릴리가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었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
작품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작품을 보는 사람들도 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더 열심히 연습하고, 더 과감한 도전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내 일상이 무너지면 안 돼.’
이건 내 인생이 걸린 문제였다.
아무리 일이 중요하더라도 결국에 가장 중요한 건 나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목 졸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윤 감독이나 나나 작품을 오래 준비하느라 둘 다 미쳐 있는 상태였다.
이성이 돌아온 후에야 너무 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히 둘의 의견이 통했고 이후 남인후의 동의도 얻었다.
인위적인 사운드를 덮어 장면의 강렬함을 덜어 내어 편집하기로 결정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잘한 선택이었다.
‘훨씬 보기 편하네.’
사운드가 덮여 현실적인 괴로움은 살짝 약해졌지만, 빌드 업을 워낙 잘 쌓아 놔서 괴로움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1차 편집본을 봤을 때보다 더 나아진 완성본을 보니 기대감이 절로 올라갔다.
‘얼른 개봉했으면 좋겠다.’
비연이 좋아할까?
‘으.’
나는 발을 동동거리고 싶은 걸 꾹 참고 얌전히 물었다.
“이거 칸 영화제에서 최초로 보여 주는 거죠?”
“응. 그리고 바로 한국 개봉할 거야.”
스파이더는 경쟁 작품으로 통과되어 2월에 열리는 칸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될 예정이었다.
트윈스 때는 윤 감독과 나만 갔지만, 이번에는 남인후와 인준이 형도 함께 가야 했다.
‘벌써부터 일정이 빡빡한 게 보이네.’
칸 영화제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영화 홍보 작업을 해야 했다.
윤강연이라는 이름만으로 이미 흥행이 보장되어 있는 만큼, 간절할 정도는 아니지만 무대 인사와 같은 기본적인 활동은 필수였다.
특히 오랜만의 윤 감독 복귀작인 만큼 인터뷰가 정말 많이 잡혀 있었다.
‘거기다 릴리랑 콜라보 곡 작업도 해야 하니까.’
릴리와의 콜라보 곡은 4월쯤에 내는 게 목표였다.
지금은 모두가 바쁜 연말 시즌이라, 겨우 이메일로 소통하는 게 다였다.
스파이더 일정이 모두 끝나면 다시 LA로 달려가 녹음하고, 미아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찍어야 했다.
그러고 나면?
‘일리야가 개봉하겠지.’
뮤지컬 영화 일리야는 내년 여름에 개봉한다.
워낙 제작비를 많이 들인 영화라 사전 홍보 기간만 해도 한 달이 넘었다.
프리미어 행사가 워낙 빡빡하게 잡혀 있기도 했고, 단독 주연인 만큼 해외의 여러 토크 쇼에 참여해야 했다.
해외 각지에 방문해서 각 방송에 출연하는 것만 아니라, 한국 홍보용 컨텐츠도 따로 제작해야 했다.
‘음.’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번 해에 촬영은 할 수 있겠지?’
내년 상반기 일정이 벌써 다 차 버렸다.
이 와중에 새 작품을 찍을 수나 있을까?
‘에이, 몰라.’
어떻게든 시간 빼면 가능하겠지.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자.
하지만 나중 문제로 미뤄 둘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곧 있으면 올해도 끝이네.’
며칠만 있으면 난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
이제 1년만 있으면 성인이 된다는 거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1월이 코앞에 있다는 것이다.
1월은 내가 태어난 날이 있는 날이다.
이 말은 즉?
내 10대 마지막의 팬 미팅이 곧 열린다는 거였다.
‘하.’
눈을 반짝였다.
홍보며 새 작품이며,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해.
내게 가장 중요한 건 곧 비연을 본다는 사실이었다.
* * *
나는 곧장 회사로 달려갔다.
오랜만에 본 우 팀장은 수척해 보였다.
“팀장님, 잠은 좀 주무셨어요?”
“어. 아까 수면실에서 조금.”
안 그래도 바쁜 연말 시즌인데, 하필 내 생일이 1월이라 팬 미팅 준비로 훨씬 더 바빠진 게 그 이유였다.
‘미안하네.’
최대한 영양제랑 간식을 많이 들고 오긴 했는데.
이걸로 퉁치기엔 우 팀장의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대스타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래도 어쩌겠어. 내 스타인데 내가 관리해야지.”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무리 안 해. 넌 너나 신경 써.”
우 팀장이 가볍게 대꾸하더니 날 소파에 앉혔다.
“진배한테 일정 전달받았지?”
“네. 상반기 일정이 꽉 찼더라고요.”
“그렇지. 일단 하나씩 해치우자. 지금은 네 팬 미팅 얘기부터 하고.”
저번에는 팝업 스토어와 팬 미팅을 함께 기획했었다.
이번에는 팬 미팅만 여는 대신 규모를 훨씬 키우기로 했다.
“홍보 작업 열심히 해야지. 배우 중에서는 역대급 국내 팬 미팅이라고 자랑 좀 해야겠어….”
우 팀장이 앞에서 중얼거렸지만 내 귀에 제대로 들려오는 건 없었다.
내 머릿속엔 한 생각뿐이었다.
‘얼른 보고 싶어.’
며칠 전에 릴리 콘서트 무대에 선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눈앞이 비연으로 가득 찰 생각을 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연재야, 듣고 있지?”
“네? 뭐라고 하셨어요?”
“배우 팬미팅을 이 정도 규모로 여는 건 네가 처음일 거라고. 장소 듣고 깜짝 놀라는 사람도 많을걸. 잠실에서 팬 미팅 여는 게 쉬운 게 아니야.”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라는 말은 귓등으로 흘렸다.
아, 몰라. 지금 그게 중요해?
‘내일이 내 생일이면 좋겠다.’
비연을 생각하며 실실 웃었다.
히. 보고 싶어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