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555)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555화(554/571)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555) [외전]
내 군 복무에 대한 소식은 가족들 사이에서 금방 퍼졌다.
“어떡하지. 벌써 연재 보고 싶어.”
“아직 가려면 멀었어.”
“그래도….”
한하람은 떨어지기 아쉽다며 속상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의연한 반응이었다.
예전에 촬영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을 때 실신할 것처럼 울었던 과거는 생각도 안 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그때 되게 어렸지.’
그때처럼 칭얼거렸다면 많이 곤란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어느새 훌쩍 커 버린 것 같아 살짝 섭섭했다.
한편 성이준은 소식을 듣고 놀란 얼굴을 하더니 이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와, 연재야…!”
“나 아직 안 간다니까.”
본인이 미국인이라 말을 얹기가 더 애매한지 그저 내 근처를 서성거릴 뿐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반응을 볼 수 있었던 건 노비혁이 유일했다.
“뭐야! 난 우리 동반 입대하려고 했는데!”
노비혁은 불쑥 집에 찾아와 이렇게 소리쳤다.
“무슨 연예인이 이렇게 일찍 군대를 가? 사람 섭섭하게.”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아쉬우니까 하는 말이지.”
노비혁이 한숨을 크게 쉬며 내 옆에 주저앉았다.
얼마나 달려온 건지 녀석에게서 땀 냄새가 났다.
“뭐, 근데 네 말 들으니까 이해는 간다. 근데 소속사에선 뭐래? 허락해 줬어?”
“아직 답변 못 들었어. 만약 회사에서 안 된다고 하면 몇 년 뒤에 가려고.”
“아하, 가긴 갈 거고?”
“가야지. 정현이 형이 궁금하다니까.”
“넌 참 이상한데서 고집이 있다니까. 막말로 군대 가야만 정현이 형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그 시간에 형이랑 더 함께 있는 게 낫지.”
노비혁은 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알지? 군대 만만히 보면 안 되는 거.”
“당연히 알지.”
“심지어 넌 엄청 유명한 연예인이잖아. 너 화장실 들어간 순간 네 밑의 사이즈 확인하려고 다들 달려들걸. 그리고 인터넷에 후기 공유하고.”
으, 그건 진짜 최악이네.
난 인상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범죄 아냐? 그 정도면?”
“군대에서 안 되는 게 뭐가 있냐. 혹시나 선임이 너 괴롭히면 말해. 바보같이 다 받아 주지 말고.”
“너는 군대도 안 간 애가 뭘 이렇게 잘 알아?”
“나도 언젠간 가야 하니까 알아봤지. 당연히 너랑 같이 갈 생각이었는데 네가 스무 살에 간다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노비혁은 솔직히 여전히 안 믿긴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정도야? 그냥 제때 군대 가는 것뿐인데.”
“도대체 어떤 잘 나가는 연예인이 제때 군대를 가냐. 심지어 넌 정상을 찍었잖아.”
“뭘 정상이야. 오버하지 마.”
“뭘 오버냐. 네가 지금까지 받은 상들이랑 지금 들어오는 제의들이 보통 수준이야? 어휴, 재수 없어.”
노비혁이 얄미워 죽겠다는 얼굴로 내 볼을 콕콕 찔렀다.
아파, 이 자식아.
‘이러다 내 볼 뚫리겠다.’
난 녀석의 손을 잡아 내리며 물었다.
“그럼 너는 언제 가게?”
“나는 아마 20대 후반? 재계약을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마는 만약 한다면 형들이랑 입대 시기 맞춰서 하겠지. 군백기 안 느껴지려면 솔로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하니까.”
“그렇구나.”
노비혁이랑 군대 얘기를 하게 될 줄이야.
새삼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가 진짜 성인이 되긴 했구나.
‘서지오는 어떻게 하려나.’
그러고 보니 서지오 안 본 지 꽤 됐네.
걔는 내가 먼저 연락 안 하면 절대 안 한단 말이야.
‘하여튼. 신경 안 써도 된다니까.’
중학생 때 내 위치를 이용하기 위해 내게 접근했던 서지오는 그 첫 만남이 후회된다는 얘기를 털어놓았었다.
‘차라리 제대로 이용이라도 했으면 몰라.’
정작 한 거는 없으면서 뒤늦게 눈치 보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그 뒤로 나름 귀여운 모습도 보여 줬고,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혹시라도 오해를 살까 봐 죽어도 먼저 연락은 안 하는 게 녀석의 답답한 부분 중 하나였다.
‘오늘 저녁에 전화해 봐야겠네.’
그렇게 다짐하고 저녁밥을 먹었다.
하지만 서지오한테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은 스케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정현이 형에 의해 깨졌다.
“이연재!!! 너 미쳤어?!!!”
정현이 형이 난생처음 본 표정으로 호통을 쳤기 때문이다.
뭐야. 왜 그러는데요.
* * *
‘깜짝이야.’
순간 벼락이 내려친 줄 알았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끔벅거리고 있다 뒤늦게 입을 뗐다.
“형, 갑자기―.”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도대체 네가 군대를 왜 가!!”
그마저도 정현이 형에 의해 막혀 버렸지만 말이다.
형은 겉옷도 벗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혼냈다.
“으이그,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못 산다!!! 내가 회사에서 연락받고 얼마나, 와, 말도 안 나오네!!”
“형, 일단 진정―.”
“네가 나라를 어떻게 지켜!! 넌 네 몸이나 지켜, 이 자식아!!!”
정현이 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지.’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정현이 형이 이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오히려….
‘좋아할 줄 알았는데.’
뭐지. 내가 형 따라서 군대가는 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휴….”
정현이 형은 진배 형이 갖다준 물을 원샷 하고 나서야 조금 침착해졌다.
그러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더니 낮게 되물었다.
“그래서. 진짜 나 때문에 군대를 가겠다 이 말이야?”
“형 때문에가 아니라, 형이 궁금한 저 때문에 가는 건데요.”
“그 말이 그 말이지. 하, 진짜 애 키우기 힘들다. 어떻게 매일매일이 이렇게 힘들어.”
정현이 형은 텅 빈 눈동자로 천장을 바라보더니 이내 내 쪽을 향해 무릎을 굽혔다.
“연재야, 군대가 그렇게 낭만적인 곳이 아니야. 분명 가자마자 후회할 거야.”
“형도 자진해서 가셨으면서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나는 그 당시에 길을 잃었어. 연기에 엄청난 흥미도 없었고. 그래서 도망치듯 떠난 거지, 너는 그런 것도 아니잖아.”
정현이 형은 심지어 당시의 자신은 그리 유명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때의 나랑 지금의 너랑 비교가 돼? 분명 네가 지금 군대에 가면 생각도 못 할 관심에 시달릴 거야. 그리고 군대에선 우리가 지켜 주지도 못해.”
“……형, 저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었는데요.”
나는 최대한 차분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요즘 내내 드는 생각이었는데, 오늘이 타이밍인가 보네.
“뭔데?”
“저는 형이 지켜 줘야 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물론 제가 철없는 짓을 많이 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제 몸 하나는 제가 지킬 수 있어요. 앞으론 그래야만 하고요.”
혹시 이 말이 형한테 섭섭하게 들리진 않을까 걱정하며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군대를 가겠다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저는 홀로서기가 필요해요. 안개나 형들 도움 없이도 제가 위기를 이겨 낼 수 있어야 한다고요.”
군대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갔다 온다고 해도, 정현이 형과 진배 형 앞에선 난 늘 어린애일 것이다.
하지만 어린애처럼 구는 것과 진짜 어린애로 남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어른이 되는 첫 시작이야.’
물론 19살이나 20살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건 안다.
미성년자에서 성인으로 바뀐 것뿐, 여전히 20살은 어린애에 불과한 것도 알고.
‘하지만 평생 그렇게 안주할 순 없잖아.’
나의 안개, 한하람도 홀로 씩씩하게 삶을 찾아가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할 일도 명확하다.
‘연기.’
불행 인자가 없어졌다 한들, 내가 연기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기는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찍어 줄 감독,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출 배우들, 촬영이 매끄럽게 흘러가도록 도와주는 스태프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었다.
내가 ‘배우 이연재’로서 커리어를 아무리 탄탄하게 쌓는다고 한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늘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 이연재는 다르지.’
형들이 지켜 주지 않아도, 팬들의 사랑 없이도, 나 홀로 중심을 잡고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방법이 군대라는 게 다소 극단적으로 보일 순 있었으나 사실 대한민국 남성이면 다 가는 게 군대였다.
그냥 내가 연예인이라서 이렇게 격한 반응이 쏟아지는 것뿐이지.
“작년에 제가 겪은 일이 많았잖아요. 그런 것에 비해 정리할 시간도 부족했고요. 군대에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
“무엇보다 지금 당장 가는 것도 아니에요. 소속사랑 상의해서 적절한 타이밍을 잡을 거고요. 저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우길 생각은 없어요.”
그거야말로 철없는 어린애나 할 만한 짓이니까.
내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가자, 정현이 형의 숨소리도 점차 점잖게 돌아왔다.
“하아, 알겠어.”
깊게 한숨을 내쉰 정현이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화내서 미안해. 우 팀장님한테 얘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내가 너한테 군대 얘기를 너무 가볍게 해서 네가 이런 선택을 했나 싶었거든.”
“저도 각오는 했어요. 쉽게 볼 곳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요즘 군대는 또 나아졌다고 하지만 사실 그건 몇십 년 전에도 있던 말이거든.”
정현이 형이 날 힐끔 보더니 한숨을 또 크게 쉬었다.
“형, 복 날아가요. 왜 자꾸 한숨을 쉬어요?”
“그냥 섭섭해서 그래. 노란 모자 썼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홀로서기를 하고 싶다니까.”
아하.
‘내가 하람이한테 느끼는 감정이랑 비슷하겠구나.’
그렇다면 이해가 되지.
나도 솔직히 말해서 한하람의 능동성이나 자율성, 주체성은 전부 무시하고 내 품에서만 키우고 싶었다.
나쁜 거, 힘든 거 전부 피하고 오직 좋고 예쁜 것만 보여 주고 싶었고.
‘형이 나한테 그런 감정을 가진다니 참 신기하네.’
나랑 한하람은 보통 특별한 사이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치자.
정현이 형은 어쩌다 내게 아버지의 감정을 가지게 된 걸까.
여자 친구도 없는 사람이 말이야.
“우리 연재, 계속 애였으면 좋겠는데 내 욕심이겠지?”
내 볼을 붙잡고 만지작거리는 정현이 형을 토닥였다.
“어차피 저 나이 오십 먹어도 형 앞에선 어린애처럼 굴걸요.”
“그래. 그걸로 됐다. 군대 가서도 힘든 일 있으면 말해. 내가 다 혼내 줄게.”
“지금 당장 가는 거 아니라니까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현이 형이 날 꼭 끌어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
나도 손을 들어 형을 마주 안았다.
나를 내 새끼라고 불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행복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형한테 내 새끼라고 불러 주는 사람이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내가 형의 아버지가 되는 상상을 해 봤다.
어린 정현이 형이 날 보며 웃고, 그런 형을 끌어안으며 내 새끼라고 부르는 상상을 했다.
‘……좋네.’
왠지 모르게 코가 찡해서, 형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