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568)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568화(567/571)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568) [외전]
“연재야, 이거.”
서지오의 집 안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녀석이 뭔가를 건넸다.
포장지로 정성스럽게 덮어져 있는 박스였다.
“…? 이게 뭔데?”
“네 생일 선물.”
얼떨결에 박스를 받고 나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허.’
내가 살다 살다 서지오한테 생일 선물을 받네.
진짜 사람 일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거라니까.
“안 챙겨 줘도 되는데.”
“그냥. 필요할 것 같아서.”
느릿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며 마주 웃었다. 고맙긴 하네.
“지금 풀어 봐도 돼?”
“그럼.”
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포장지를 풀었다.
서지오는 어떤 선물을 할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선물하는 것만 봐도 사람 유형이 보이니까.’
난 올해 생일에도 가족들로부터 생일 선물을 많이 받았다.
그동안 서로 생일을 챙긴 지 몇 년이 지났던 터라, 대충 어떤 선물을 받을지 감이 왔다.
‘이연재, 이거 받고 날 찬양해라!’
‘진정해.’
노비혁은 고슴도치 펜던트가 달려 있는 키링을 줬다.
이제 곧 운전면허를 딸 테니, 차 키에 매달고 다니라는 말과 함께.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얘가 고슴도치 타령을 안 할까.’
녀석에게 받았던 첫 생일 선물도 고슴도치가 그려져 있는 휴대폰 케이스였다.
변함없는 선물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은택은 귀를 뚫지 않고도 달 수 있는 액세서리를, 성이준은 내가 그동안 먹고 싶다고 했던 음식들을 전부 사 왔다.
‘……형, 나 대식가야?’
성이준이 사다 준 음식은 너무 많아서 식탁 위에 전부 올려놓지도 못했다.
그냥 스쳐 지나가듯 말했던 걸 하나하나 기억해 놨다는 게 참 성이준스러웠다.
진배 형으로부터는 ‘물고기 도감 완전판’을 선물 받았다.
하, 진짜… 너무 감동받아서 잘 때 껴안고 잤다.
‘전부 다 뜻깊은 선물이었지.’
하지만 정현이 형이 집으로 배달해 준 장미꽃 100송이의 충격을 이길 순 없을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뭐예요, 형….’
‘어때? 로맨틱하지? 우리 연재, 성인 된 기념으로 주는 거야.’
‘아니, 그건 알겠는데 누가 100송이를 주냐고요.’
장미꽃 100송이를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실제로 보면 예쁘다기보단 ‘무섭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꽃다발이 아니라 화단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 같잖아.’
꽃들이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휴, 저 이제 집에 갈게요.’라고 말할 것 같은 생김새였다.
막상 정현이 형 본인도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멋쩍은 얼굴을 했다.
‘그냥 50송이만 할 걸 그랬나? 드라마 보면 100송이 많이 하던데.’
‘형, 드라마 이제 그만 봐요.’
요즘 꽃값도 비싼데, 에휴.
어디다가 유용하게 쓰지도 못하고, 곧 있으면 버려야 할 꽃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쓴 게 마음에 걸렸다.
정현이 형은 내가 낭만을 모른다고, 이래서 T가 감정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거라고 투덜거렸지만 아까운 걸 어떡해.
나는 정현이 형과 이번 선물이 마지막 꽃 선물이라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잔소리를 멈췄다.
‘그래도 예쁘긴 하지? 이렇게 하나하나 보면 예쁘잖아.’
‘네. 예뻐요.’
내 말에 정현이 형이 만족스럽다는 듯 밝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꽃이 딱히 예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냥, 그걸 들고 있는 형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지.
‘난 꽃에 별 감상이 없나 봐.’
성이준이 꽃다발을 보고 예쁘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까르륵거리는 성이준과 정현이 형 옆에서 나와 이은택은 묵묵히 꽃을 분류했었다.
‘한하람 선물을 얘기 안 할 수가 없지.’
녀석의 선물은 정현이 형 선물만큼이나 충격을 줬었다.
‘연재야, 이거 내 선물이야! 내 용돈으로 샀어.’
‘하람아….’
이제 막 기억을 되찾아 나에 대한 애정도 크지 않을 녀석이 무슨 선물을 주겠다고.
코 묻은 돈으로 뭔가를 사 왔다는 게 마음에 걸리면서도 한편으로 찡했다.
녀석이 준 선물은 큰 장식이 없는 심플한 목걸이였다.
‘연재가 나한테 목걸이 줬으니까 나도 주고 싶었어.’
‘내가 준 게 아니라 돌려준 거지. 네가 준 목걸이라고 했잖아.’
‘그래도 지금은 나한테 있잖아! 히히.’
녀석이 배시시 웃으며 내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그러곤 작게 속삭였다.
‘어떤 기능도 없으니까 부담 없이 편하게 껴. 알겠지?’
‘…….’
‘연재가 이제 맘 편히 지냈으면 좋겠어.’
기억을 다 되찾지 못한 애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배려가 느껴졌다.
그동안 한하람이, 안개가 내게 건네준 건 전부 불행 인자와 관련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그냥 목걸이였다. 목걸이기만 한 목걸이.
언제 진동이 울릴지 몰라 매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목걸이가 아니었다.
내가 쓰고 싶을 때 쓰고, 벗고 싶을 때 벗으라는 말에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나 진짜 자유로워졌구나.’
이 감정을 새삼 느끼게 해 준 게 고마워서, 난 녀석을 끌어안고 한참을 놔주지 않았다.
내가 정말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선물들이었다.
그렇게 돌아와 현재.
서지오가 건넨 박스 안에는….
“팔찌?”
희한하게 생긴 팔찌가 들어 있었다.
‘얘는 취향도 특이하네.’
보통 선물로 주는 팔찌는 무난한 거 주지 않나?
둔탁한 디자인에 어딘가 차가운 느낌을 주는 팔찌가 신기했다.
“고마워. 잘 차고 다닐게.”
내 말에 서지오가 묘한 웃음을 흘렸다.
왠지 모르게 싸한 느낌이 드는 웃음이라 멈칫한 순간이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 신교진이라고 했지?”
서지오가 싱긋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랑 동갑이야.”
난 녀석에게 신교진이 쓰고 다니는 가면, 그가 회식에서 보인 태도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내내 가만히 듣던 서지오는 “여자 역할”이라는 단어에서 눈썹을 휙 치켜올렸다.
“요즘도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있는지 몰랐네.”
“그러니까. 나도 그런 단어를 현실에서 들어 본 건 처음이라 놀랐어.”
“사람들 사고방식이 점점 천박해진다고 생각해. 특히 어린애들일수록 더 그렇고. 차라리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쯧.”
서지오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래봤자 너도 스무 살이잖아….’
네가 어린 애들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어폐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녀석의 조언이 간절했던 터라 입을 꾹 다물고 기다렸다.
“일단 그런 일이 있었으니 앞으로 사람들 있을 땐 더 조심할 거야.”
“내 생각에도 그래.”
“걔가 얼마나 멍청한 건지 정확히 알면 좋을 텐데 말이야.”
서지오는 흠,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내 생각이지만, 연재야. 걔가 먼저 선수 치는 일 없도록 잘 관리해야 할 것 같아.”
“선수? 무슨 말이야?”
“아무리 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한들, 걔 입장에서 대놓고 네 흠을 잡을 순 없잖아. 네 성격이 이상하다거나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지금까지 네 팬이라고 그렇게 떠들고 다녔는데, 이제 와서 태도를 바꾸면 우스워지는 건 본인이니까 말이야.
이어진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러네.
“아무리 은근슬쩍 말을 흘린다고 해도 그 방법엔 한계가 있을 거고. 내가 걔였다면 다른 전략을 세웠을 거야.”
“예를 들면?”
“너랑 노비혁이 나를 왕따 시킨다는 쪽으로 밀고 가겠지. 그 정도는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팬들이 캐치해 줄 테니까. 중간중간 침울해하는 척만 하면 되고.”
……오호.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입이 작게 벌려졌다.
역시, 얘를 찾아오길 잘했다.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서지오는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방법은 하나야. 걔가 사고 쳐서 자진 하차하는 거. 나였다면 걔를 하차시킬 거리가 있는지 알아볼 텐데, 연재 너는 안 그럴 거지?”
“뭐, 걔가 싫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한테 걔 인생을 흔들 권리가 있는 건 아니잖아.”
“너는 너무 온순해.”
참 나.
그것도 너니까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내가 피식 웃자 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네 말이 맞긴 해. 동료가 마음에 안 든다고 그때마다 쳐 내면 작품이 완성되는 시기도 늦어지니까. 참아야 하는 순간도 있지.”
“내 말이 그 말이야.”
이미 신교진과 함께 MC를 보는 건 기사화되었다.
다음 주에 당장 무대 연습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이 상황에서 신교진이 사고 치고 나간다?’
그럼 처음부터 구설수를 얹고 시작하는 것이다.
신교진이 범죄자인 것도 아니고,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인데.
‘고작 이런 애 잡겠다고 일을 크게 키울 순 없지.’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였다.
신교진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얌전히 본업에 충실하게 만드는 방법.
내 뒷담을 얼마나 까든, 가면을 얼마나 돌려 쓰든 상관없었다.
그저 나와 비혁이 앞에서 빈정거리지만 않으면, 나도 모른 척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신교진을 설득시키냐는 건데.’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지오가 헛웃음을 지었다.
“연재야, 설득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거야. 사람도 아닌 새끼를 무슨 수로 설득시켜?”
“……야, 말 좀 살살해.”
너는 연예인이라는 애가 사람을 그렇게 싫어해서 어떡하려고 그러냐.
내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자, 서지오가 뭐가 문제냐는 듯 말을 이었다.
“난 걔처럼 멍청하지 않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밖에서 이런 말 하지도 않고.”
“그건 알아. 하지만 우리 직업이 사람 대하는 일인데, 그럴수록 너만 힘들어지잖아.”
“연재야. 난 사람이 안 싫다니까? 사람이 아닌 짐승들을 싫어하는 거지.”
“됐다, 됐어.”
내가 졌어.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
‘감당을 못하겠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이, 서지오의 무심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직업은 사람 대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연기를 하는 일이잖아? 그걸로 걔를 처리하면 될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걔가 왕따 포지션 못 잡게 사람들 있는 곳에선 적당히 친한 척해. 네 연기 실력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사람들 없는 곳에서 걔가 빈정거리는 건….”
녀석이 씩 웃었다.
그러곤 턱을 들어 뭔가를 가리켰다.
“그걸 활용해.”
“…?”
녀석의 시야를 따라 움직인 곳엔 방금 막 선물 받은 팔찌가 있었다.
이걸로 뭘 하라고?
* * *
시간이 흘러 무대 연습하는 날이 되었다.
신교진은 방송국 근처에 있는 연습실에 도착했다.
‘이연재 개새끼, 진짜.’
지난주 회식에서 당한 모욕을 떠올리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순진하게 생겨선 약아빠졌단 말이지.’
이용해 먹기 딱 좋다고 생각했던 인물로부터 엿을 받은 기분은 거지 같았다.
‘같이 일할 사이만 아니면 바로 공론화 각인데.’
그러기엔 음악 방송 MC라는 자리가 신교진한테는 너무나 큰 유혹이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땐 이연재와 더 멀어지지 않고 지내는 게 나았으나, 자존심이 그걸 허락을 안 했다.
‘어차피 걔도 생각이 있으면 나랑 치고받고 싸우진 않겠지.’
그런 배경에서 보면 결국 이연재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어차피 나보다 더 잃을 게 많은 애니까.
‘나도 너무 강하게 긁진 말고 살살 긁어야겠다.’
신교진은 회식 자리보다는 강도 낮게, 하지만 더 끈질기게 이연재를 긁으리라 다짐했다.
그가 그렇게 마음먹고 연습실에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안녕, 교진아.”
뒤에서 이연재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았어.’
아직 제작진들이 오기 전이었다.
이 말은 즉, 카메라가 켜지기 전이라는 얘기였고.
신교진은 빙그레 웃으며 뒤를 돌았다.
‘처음 시비는 좀 살살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