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572)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572화(571/571)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572) [외전]
오늘은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전날에 진배 형이 정성껏 다려 준 교복을 챙겨 입었다.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고, 바지 벨트를 조이고, 넥타이를 매고, 빳빳한 재킷을 걸치고….
‘흠.’
확실히 이상하네, 기분이.
지난 3년간 무감한 얼굴로 반복해 왔던 행동을 오랜만에 하는 것뿐인데.
묘하게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하지.’
아쉬움? 섭섭함? 속 시원함?
물론 교복을 입는 날이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난 여러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니까.
그중에서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 캐릭터도 많겠지.
그런데도 ‘학생’ 신분으로 교복을 입는 건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생각에 괜히 아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희한하네.’
학교생활에 그렇게 큰 정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묘하게 울렁이는 기분은 교문 앞 ‘제○○ 회 ○○고등학교 졸업식’이라고 적혀 있는 현수막을 보자 더 강해졌다.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올 일이 없겠지?’
비록 빡빡한 촬영 스케줄로 인해 성실하게 다니진 못했으나 그래도 3년의 시간이 담긴 곳이었다.
드라마 〈미성년자 가이드〉처럼, 이곳을 다니지 않았으면 나오지 않았을 작품도 존재했고.
여러 시간과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을 다시 올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속이 더 울렁거리는 듯했다.
‘장소가 주는 힘은 위대하구나.’
마치 보육원을 퇴소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나만 느끼는 기분은 아닌지, 등교하는 학생들 표정에도 수많은 감정이 배여 있었다.
이제 각자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는 표정.
‘선생님도, 친구들도 없는 나만의 인생.’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함과 두려움이 가득하면서도 한편으론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감이 어려 있는 눈빛들.
일상생활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눈빛과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어?’
아니, 잠깐만.
난 눈가를 가늘게 좁힌 채 생각했다.
‘저 표정은….’
〈소꿉친구 관찰 일기〉 졸업식 장면에 쓰면 좋겠는데?
저기, 저 눈빛은 여주 만났을 때 지으면 좋을 것 같고.
‘……뭐야.’
여기 노다지였잖아?
갑자기 묘한 기분이 싹 사라졌다.
연기 소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재빨리 고개를 돌려 수많은 표정을 눈에 담았다.
‘이게 웬 떡이야.’
심지어 드라마 첫 촬영 신이 주인공의 고등학교 졸업식 장면이었다.
연기할 때 현실감을 더 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아냐, 이연재. 들뜨지 마. 집중해.
‘집중!’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분위기를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 모든 집중력을 모으고 있던 찰나.
“이연재~. 비혁이 왔당. 뭐 해?”
방해꾼이 등장했다.
아이, 진짜.
“비혁아, 나 지금 좀 바빠서 그런데 우리 좀 이따 말할까?”
“뭘 바빠. 아까부터 혼자 앉아 있구만. 넌 반에 친구 없냐? 왜 애들이랑 말도 안 하고 혼자 있어?”
“나 괜찮으니까 너네 반 가서 친구들이랑 놀아.”
“아, 나 반에 친한 애 없단 말이야. 나랑 놀아 줘.”
노비혁이 내 머리통에 달라붙어 찡찡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녀석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 반가웠기에, 난 흔쾌히 애들을 관찰할 기회를 포기하기로 했다.
솔직히 좀 아깝긴 했다.
“알겠으니까 내 머리통 좀 놔줘.”
“흐흐, 넌 누구누구 오기로 했어? 난 멤버들 다 오려다가 스케줄 때문에 리더 형이랑 은택이 형만 온대.”
“그래? 부모님들은?”
“에이, 알면서 뭘 물어. 애초에 연락 안 한 지 몇 개월 됐어. 숙소 생활하고 나서부턴 내 연락도 잘 안 받더라고.”
노비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웃었다.
확실히 예전보단 더 의연한 얼굴이었으나 녀석이 안쓰러운 건 별수 없었다.
그래도 동정 어린 표정을 짓고 싶진 않아서 그냥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넌 내가 있잖아.”
“엉. 그래서 난 상관 안 해.”
해맑게 웃는 노비혁의 말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보기 좋다, 애들아. 나도 거기 껴 주면 안 될까?”
“……아, 쟤 누가 불렀냐.”
“여기 내 반이기도 해, 비혁아.”
서지오가 느슨하게 웃으며 내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노비혁은 여전히 서지오가 껄끄러운 듯 질색하는 표정을 짓긴 했으나 날 데리고 자리를 옮기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서지오도 노비혁한테 대놓고 빈정거리지 않았고.
‘확실히 너네 둘 다 크긴 컸구나.’
이것이 애들 키우는 맛인가.
고등학교 입학식 때와는 확연히 다른 변화에 흐뭇해졌다.
그래, 사이좋게 지내는 건 무리여도 이 정도 노력은 사회인으로서 해야지.
‘더 이상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사실 서지오랑 영화를 찍기로 했다는 소식을 노비혁에게 전할 때 꽤 긴장했었다.
워낙 내가 서지오랑 친하게 지내는 걸 안 좋아하는 애라, 하악질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영화 찍는 데 얼마나 걸려?’
‘글쎄. 빠르면 한두 달, 길면 반년 정도?’
‘흐음~. 난 너랑 MC 1년 동안 볼 거니까… 내가 이겼네.’
노비혁은 유치한 말을 하며 가볍게 웃어넘겼다.
‘이제 더 이상 둘 사이를 걱정할 일은 없겠군.’
한시름 놓겠네.
한결 가벼워진 기분에 콧노래를 부르며 서지오를 쳐다봤다.
“서지오, 너는 좀 이따 누구누구 와?”
“가족들 오기로 했어. 동생들이 자꾸 연재, 너 찾던데 조금 이따가 인사 좀 해 줄 수 있어?”
“알겠어.”
“아, 맞다. 그리고 서진이도 오기로 했어. 백서진.”
“그래? 오랜만이네. 하은이도 이따 오기로 했는데. 하은이네 학교는 12월에 이미 졸업식 했다고 하더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비혁의 깊은 한숨이 이어졌다.
“하, 박하랑 백서진이면… 둘이 또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난리 피우겠네.”
“……그러네.”
갑자기 또 기분이 착잡해졌다.
뭐지. 나 갱년기인가. 기분이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지.
‘하지만 너무 물린단 말이야….’
도대체 여자들은 왜 이렇게 떡볶이를 좋아할까.
떡볶이에 미친 박하은과 달고 짠 걸 좋아하는 백서진의 조합이면 오늘의 식사는 떡볶이로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안 먹고 싶다고 말하기엔….
“우리 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애들인데 그냥 먹자, 비혁아.”
“하아, 그래. 그러자.”
결정을 내렸음에도 노비혁과 나의 표정은 침울했다.
박하은과 몇 번 만나지 않아 아직 그녀의 떡볶이 집착을 파악하지 못한 서지오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왜 그래? 떡볶이 싫어해?”
“차라리 그냥 떡볶이면 모를까. 박하, 걔는 꼭 이상한 거 먹자고 한단 말이야. 저번엔 마라 로제 맛인가?”
“마라 로제 탕후루 맛이었어….”
“맞아. 그 이상한 걸 먹자고 난리 피워서 이연재랑 나랑 속 게워 내고 난리도 아니었어.”
노비혁이 다시 생각해도 토 나온다는 듯 구역질을 했다.
서지오는 그 현실감 넘치는 액션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서지오가 노비혁에게 시비를 걸까 봐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아, 서진이는 대학 가기로 했어? 저번에 만났을 때 메이크업 배운다는 얘기까지 들었는데.”
“뭐야. 백서진이 그쪽에 관심 있었어? 전혀 몰랐네.”
노비혁의 말에 서지오가 ‘네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슬쩍 웃었다.
“응. 이참에 유학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전문학교에서 배운다던데.”
“그렇구나. 용기 있는 도전이네.”
“박하은이라고 했나? 걔는 합격했어? 그때 의대 진학한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이어진 서지오의 질문에 솔직히 좀 놀랐다.
얜 진짜 별걸 다 기억하는구나.
“응. 작년에 수시 붙었다고 들었어.”
“멋지다.”
“다들 대단하다, 진짜~. 그럼 대학 안 가는 애들은 우리 셋밖에 없나?”
노비혁의 중얼거림에 나와 서지오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서지오 대학 가는데?”
“잉? 진짜?”
“……비혁아, 너 진짜 다른 사람한테 관심 없구나.”
서지오가 헛웃음이 섞여 있는 표정을 지었다.
노비혁은 순간 울컥하는 얼굴을 했다가 딱히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얼버무렸다.
“아니, 이연재나 나나 현역에서 일하니까 대학 안 가기로 한 거잖아. 서지오, 너도 이미 배우 생활하고 있고. 그래서 당연히 안 갈 줄 알았지.”
“뭐, 사실 나도 갈까 말까 고민하긴 했어.”
서지오가 부정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대학을 다니느라 연기할 시간을 빼앗기는 게 아깝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서지오는 연극 영화과로 유명한 ○○대학교에 합격했다.
최근 몇 년간 신예로 떠오른 배우들이 대부분 해당 대학교를 나와서 화제가 된 곳이기도 했다.
노비혁은 서지오의 말에 의문이 생겼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시간 아까운데 왜 가? 부모님이 대학 가래?”
“부모님은 내가 알아서 하라고 하셨지. 이건 내 결정이야.”
“그니까 왜 가기로 한 건데?”
서지오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회 나가면 무시할 수 없는 게 혈연, 지연, 학연이야.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여러 배우랑 동문으로 엮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지.”
“……허어, 너는 진짜.”
노비혁이 질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저렇게 야비한 애랑 놀면 안 된다며 나를 잡아당기는 걸 살살 달랬다.
“비혁아, 서지오는 원래 저랬어. 쟤랑 같이 지낸 지 벌써 5년이 흘렀는데 새삼스럽게 왜 그래?”
“연재야, 내 편 들어 주는 거야? 내 욕을 하는 거야?”
“야, 됐으니까 쟤 버리고 우리 반으로 가자.”
“비혁아, 연재 반이 여기인데 어딜 가. 너나 너희 반으로 가.”
제발 둘 다 조용히 좀 해.
점점 소란스러워지는 두 녀석의 입을 재빨리 막던 그때였다.
―아, 아. 교실에 있는 졸업생 여러분들은 모두 강당으로 이동하시길 바랍니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노비혁은 이왕 이렇게 된 거 강당까지 같이 가자며 달라붙었고, 난 거절할 틈도 놓친 채 두 녀석을 끌고 강당으로 걸어갔다.
‘다들 무사히 도착했으려나.’
오늘 내 졸업식에 오겠다고 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은택과 양부모님, 보육원 원장님과 이시현 선생님, 정현이 형과 진배 형. 성이준과 한하람까지.
이 정도면 대가족 이민 수준이 아니냐며, 다들 집에 있으라고 말렸는데도 하나같이 꼭 참석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중학교 졸업식 때 못 간 만큼 고등학교 졸업식이 마지막이니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던가.
‘너무 유난인 것 같아서 민망하긴 한데.’
솔직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내 즐거운 소식을 함께 즐거워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괜스레 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으며 강당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때였다.
“저거 봤어? 대박이다.”
“허, 나 저번 주에 결혼식 갔는데 거기 있는 것보다 더 커.”
강당 입구에서부터 애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컸다.
‘뭘 보고 그러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따라 돌린 곳엔 아주, 매우, 커다란 화환이 서 있었다.
혼자 우뚝 서 있는 화려한 화관엔 커다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 복덩이 졸업 축하한다!!!] [근데 다음 작품 언제 찍어? –윤강연-]……하, 왜 내 주변엔 미친 사람들밖에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