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72)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72)
“형. 이제―.”
대표실을 나오면서 하던 말을 멈췄다.
“…? 형?”
이제 집에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할 수가 없었다.
말을 걸려고 했던 안진배 매니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면서 어디 갔대.
대표실 앞에서 엉거주춤 있자, 비서실에서 서류를 보던 한 실장이 말을 걸었다.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혹시 진배 형 어디 계신지 아세요?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하셨는데.”
“나한테 따로 말한 건 없는데. 연락 한번 해 봐.”
휴대폰을 꺼내 보니 대표와 얘기한 10분 동안 노비혁이 남긴 메시지만 30개가 넘었다.
얘는 또 왜 이래.
일단 무시하고 안진배 매니저에게 먼저 연락해 보니 제8 회의실로 와 줄 수 있겠냐는 답장이 왔다.
여러 번 들른 곳이라 알겠다고 답하고 움직이려던 순간이었다.
바쁘게 서류를 보던 한 실장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맞다. 연재 오늘 생일이지? 생일 축하해.”
“네?”
한 실장의 말에 톡 건드린 얼음이 깨지는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아, 그러네. 나 오늘 생일이구나.
연습에 너무 몰두하느라 까먹고 있었다.
사실 보육원에 있을 때도 늘 선생님이 먼저 알려 주시는 편이기도 했고.
얼떨떨하게 감사하다고 답한 후 회의실로 이동하는데 생각이 많아졌다.
음… 내가 그렇게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생일 파티 준비하는 거겠지?’
밖에 같이 있을 땐 내 옆에서 절대 안 떨어지려고 하는 사람이 나 혼자 들여보낼 때부터 이상하긴 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도 미역국이었네. 왜 눈치를 못 챘지.
높은 확률로 회의실 문을 열면 서프라이즈로 폭죽이 터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문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덤덤하게 반응하면 안 되겠지? 그렇다고 억지로 놀란 척하면 그것대로 좀 그럴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 회의실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몰라. 그냥 놀란 척하자.’
마음이 바뀔세라 노크하자마자 벌컥 문을 열었다.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간 회의실 안은….
“내 말은, 아. 연재 왔네.”
“연재 하이~.”
“오셨어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끝나요.”
회의 중이었다.
“그럼 보도 자료 요청은 이 정도로만 하면 돼요?”
“엉. 그리고 헤일즈 쪽에 연락해서 단독 빼 달라고 하는 것도 잊지 말고. 그리고 타겟팅은―.”
안진배 매니저와 1팀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열정적으로 회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탁자 뒤에 쌓여 있는 의자 더미로 들어가 조용히 앉았다.
“…….”
쪽팔려.
세상에. 너무 창피하니까 헛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이 정도면 김칫국을 마신 게 아니라, 대출해서 사 먹은 정도인데.’
최대한 티 내지 않기 위해 얌전히 앉아 있지만, 민망함에 몸이 꼬였다.
이게 연예인병의 또 다른 증상인가.
이 와중에도 안개가 내 생각을 못 읽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속으로 온갖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순간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
고개를 들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회의를 하던 사람들이 잔뜩 굳어 있었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내 뒤를 바라보고 있길래,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았다.
“서프라이즈~!”
팡! 터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폭죽 가루가 쏟아졌다.
또 다른 1팀 직원들이 웃는 얼굴로 케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멍하니 굳어 있자, 앉아 있던 직원들도 회의하던 컨셉을 버리고 달려왔다.
“생일 축하해~, 연재야!”
“여기 들어오고 나서 처음 생일이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 주변에서 정신없이 쏟아졌다.
곧이어 불이 꺼졌다.
눈앞에 빛나는 건 케이크 위 촛불뿐이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연재―.”
곧이어 화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엉망진창인 축하 노래도 시작됐다.
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멍하니 바라만 봤다.
그러다 촛농 떨어진다고 누군가 다급하게 등을 두들기는 바람에, 얼떨결에 초까지 불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크흐, 하모니 기가 막혔다.”
“어머, 얘 굳은 거 봐! 놀랐어?”
“제대로 성공했네. 역시 우리도 배우를 해야 했어.”
깔깔거리며 웃는 직원들 사이로 안진배 매니저가 다가왔다.
머리 위로 쌓인 폭죽 가루들을 조심스럽게 털어 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배우님 많이 놀라셨어요?”
부드럽게 웃는 얼굴을 마주하자, 서서히 입가의 힘이 풀렸다.
눈이 느리게 감기고 다시 떠지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음이 터졌다.
“하하!”
내 입에서 나온 웃음소리에 직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다들 감사해요.”
“이렇게 시원하게 웃는 건 또 처음 보네. 이야, 뿌듯한데.”
“기대했던 반응은 아닌데 이것도 나름 괜찮다.”
무슨 반응 기대했는데? 당연히 우는 거지. 정말 쓰레기구나. 한 마디씩 이어지는 말로 주변이 시끌벅적했다.
생일인 거 까먹고 있었냐는 질문에 사실 한 실장님이 알려 주셔서 몇 분 전에 알았다고 답했더니, 직원들이 혀를 찼다.
“하여간, 한 실장님…. 이렇게 손발이 안 맞을 수가 없다.”
“에이, 김빠져. 까먹고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는데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입가에 대롱대롱 웃음꽃이 맺힌 상태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지금도 완벽해요. 제가 지금까지 받아 본 축하 파티 중에 제일 좋았어요.”
“…….”
감사하다며 남은 웃음을 털어 내자, 왠지 모를 침묵이 느껴졌다.
의아할 틈도 없이 한 직원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연재야. 너 어디 가서 웃고 다니면 안 되겠다.”
“네?”
“쯧, 미래가 벌써 보이네…. 매니저님. 아예 연재를 업고 다녀요. 어디 납치당하겠어.”
“나도 동감.”
우스갯소리가 이어진 후에는 직원들이 사 온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달긴 했지만 무척 맛있었다.
열심히 케이크를 먹고 있는데, 안진배 매니저가 어디선가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왔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눈을 가늘게 뜨자, 웬만한 어린애가 들어갈 정도로 큰 상자가 내 앞에 놓였다.
“이건 배우님 생일 선물이에요.”
“형. 제가 저번에 돈 그만 쓰라고 분명히―.”
“아뇨! 제 거는 차에 있어요. 이건 배우님 팬클럽에서 온 겁니다.”
“네?”
다급하게 외치는 안진배 매니저의 말에 순간 멍해졌다.
멍청하게 굳은 내 앞으로 밀어진 박스 위에 ‘from. 이연재 팬클럽, 비연’이 정갈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제 팬….”
“네. 팬클럽에서 보내 주셨어요. 어서 열어 보세요!”
안진배 매니저가 차마 내 입에서 나오지 못한 단어를 완성하며 재촉했다.
머리가 굳은 상태로 더듬더듬 포장지를 뜯고 천천히 박스를 열었다.
박스 안에는 빛나는 것들로 가득했다.
“이야, 정성 좀 봐.”
“헐. 저거 나도 갖고 싶었던 건데.”
뒤에서 기웃거리던 직원들이 박스 안을 보고 작게 탄성을 질렀다.
진짜 슈퍼스타 다 됐다며 짓궂게 놀리는 직원들의 장난에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어느새 입가에 있던 웃음기는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머릿속엔 의문만 가득했다.
‘왜?’
안진배 매니저나 직원들까지는 이해가 된다.
난 그들이 다니는 회사의 소속 배우이니까.
그런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왜?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나?’
발끝을 타고 꾸물꾸물 올라오는 불편함으로 몸이 굳었다.
의식적으로 웃으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안진배 매니저가 내 표정을 유심히 살피더니 직원들을 자연스럽게 내보냈다.
“혹시 선물이 마음에 안 드셨어요?”
조심스러운 물음이 돌아왔을 때는 어느새 둘만 남았을 때였다.
“네?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표정이 안 좋으셔서요. 솔직하게 말해 주셔도 돼요.”
차분하고 익숙한 눈가를 보자 복잡하게 꼬이던 머릿속 회로가 툭 멈췄다.
“……이런 걸 제가 받아도 되나 싶어서요.”
귀에 내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는 걸 깨달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데요?”
“저한테 선물해 주실 이유가 없잖아요.”
“이유요? 배우님을 좋아하는 게 이유죠.”
“그런 게―.”
이유가 될 리가 없잖아요.
이어지려던 말을 의식적으로 끊었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발을 디디고 있는 바닥이 연약해지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먹만 꽉 쥐고 있자, 앞에 있는 인영이 긴가민가할 정도로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곧장 부드럽게 웃었다.
“배우님. 혹시 보육원에 계실 때 후원받아 보셨어요?”
“아… 네, 받아 봤어요.”
“똑같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후원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후원도 이유 없이 하는 선한 행동이잖아요.”
눈을 깜박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사실 후원도 나라서 받은 게 아니라 불쌍한 아이를 챙겨 주는 사람들 덕분에 받은 거지만….
이것도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니라 배우를 위한 선물이니까.
그래, 이제서야 납득이 됐다.
“알겠죠?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네. 이해됐어요. 감사해요.”
한결 또렷한 음성으로 답하자, 내 호흡을 유심히 살피던 눈길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정신을 차린 후에는 정성껏 포장된 선물을 하나하나 꺼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자고 해서 이리저리 배치하느라 순식간에 시간이 흘렀다.
오후에는 노비혁을 잠깐 만났다.
다음에도 또 연락 무시하면 정말 화낼 거라고 툴툴거리던 녀석은 내 품에 봉투를 던지고 가 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후 조용히 선물을 정리했다.
방 한편에 팬들이 준 선물과 노비혁, 안진배 매니저가 준 선물을 가지런하게 놓았다.
차곡차곡 물건을 쌓은 후 이제 연습하려는데 자꾸만 시선이 흐트러졌다.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할 건 많았는데 이상하게 몸이 안 움직였다.
하염없이 선물만 바라보고 있자, 노크 소리와 함께 안진배 매니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배우님. 괜찮으시면 팬 카페에 글 써 보실래요?”
“네?”
“저희 회사 공식 계정에 아까 찍은 사진 올리긴 할 건데, 당사자가 직접 글 올리는 거랑은 다르니까요. 힘드시면 안 하셔도 괜찮아요.”
“아뇨. 할래요. 어떻게 하면 돼요?”
후원받고 얌체같이 입만 닦을 순 없지.
글 쓰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몇 시간에 걸쳐 안진배 매니저가 알려 준 계정으로 글을 작성했다.
그리고 나서야 개운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 * *
1월 15일 오후 10시, 이연재 팬 카페에 새 글이 올라왔다.
이연재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이었다.
안진배가 팬클럽 회장과 미리 연락해 만들어 놓은 계정이었기에, 인증 마크 표시가 떠 있어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글 창은 물음표로 가득 찼다.
―????? 아니 내가 뭘 본 거임
―난 선물 후기를 보고 싶었던 거지 논문을 보려던 게 아닌데….
―시☓ 망했다 내 배우에게서 우리 교수의 향기가 난다
―딸 뭐 봐~? 응 3.8만 자 넘는 후기 글 봐~ 그것도 사진 28장을 곁들인
뜨거운 반응은 다음 날이 되어도 식을 줄 몰랐다.
결국 이 사태가 다른 커뮤니티로 퍼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