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actor who brings misfortune RAW novel - Chapter (87)
불행을 몰고 오는 천재 배우 (87)
곧바로 뒤를 돌았다.
담요를 덮고 있는 노비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너….”
한 발 다가섰다.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리저리 훑어봐도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숨이 트였다.
순간 이를 악물었다. 관자놀이 위로 솟은 핏줄을 느끼며 노려보자, 녀석이 움찔했다.
“교통사고 났다며.”
“아니, 났어! 났는데, 앞에서, 진짜 바로 앞에서 났어.”
“그럼 말을 똑바로, 해야지. 네가 당한 줄―.”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다.
더 따지고 싶었지만, 그제서야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
뒤로 주춤 물러서던 녀석이 내가 피를 토할 기세로 기침을 하자 엉거주춤 다가왔다.
“야, 괜찮아?”
“콜록.”
목이 따끔따끔했다.
동시에 뜨겁게 달아오른 눈을 지그시 누르며 화를 삼켰다.
“앞으로 말 똑바로 해. 사람 놀라게 하지 말고.”
“……네가 내 말 다 안 듣고 먼저 끊은 건데.”
“뭐라고?”
“아니야.”
노비혁이 급하게 눈을 깔았다.
그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거칠게 닦았다.
“연재야…! 허억, 그렇게 뛰어가면 어떡해! 헉… 비혁이는?”
“멀쩡해. 그냥 얘 앞에서 사고가 난 거래.”
몇 초 안 지나서 성이준과 남인후가 헉헉거리며 나타났다.
이게 무슨 일인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보는 노비혁에게 경찰관이 다가갔다.
“목격자 진술이 필요해서 그런데 부모님 연락처 좀 남겨 줄래?”
“아…, 그냥 제 연락처 알려 드릴게요. 이쪽으로 연락 주시면 돼요.”
“그래. 정말 병원 안 가도 괜찮겠어?”
“네. 진짜 제 앞에서 일어난 일이라서요. 전 보기만 했어요.”
노비혁과 경찰이 대화하는 사이에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저기 널린 차 파편만 봐도 가벼운 사고는 아니었다. 진짜 놀랐네.
순간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 줄 알고 식겁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리가 없는데.
“야. 쟤 서희가 좋아하는 애 아니야?”
“설마. 닮은 애겠지.”
“헐. 뒤에 성이준 아니야? 맞나 봐!”
사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황급히 뒤를 돌았다.
그러고 보니 안진배 매니저랑 한 약속도 어겼네.
하아. 일단 전화부터 해야겠다.
* * *
곧장 달려온 안진배 매니저의 차에 나란히 탔다.
“배우님―.”
“저 진짜 괜찮아요.”
조수석에 올라타자마자 다급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영 믿을 수가 없는지 창백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길래, 직접 확인해 보라며 몸을 맡겼다.
이리저리 봐도 상처 하나 없는 걸 보고 나서야 안진배 매니저가 깊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진짜로 다치신 데는 없는 거죠?”
“네. 저는 사고 날 때 있지도 않았어요.”
하필 교통사고라서 더 놀란 눈치다.
애초에 전화할 때 오해를 살까 봐 주어를 명확히 밝혔는데도, 순간 숨을 먹는 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와서 나도 놀랐다.
안진배 매니저가 노비혁한테 병원 안 가도 되냐고 물었지만, 녀석은 정말 다친 곳 없다고 극구 사양했다.
다행이라는 말을 끝으로,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저기, 아까 내가 오해해서 미안해.”
“네?”
다행히 남인후는 늦지 않게 먼저 사과했다.
어떤 오해를 했는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자, 잠시 침묵하던 노비혁도 이내 해맑게 웃었다.
“괜찮아요. 형님! 저도 괜히 분위기 망쳐서 죄송해요.”
“아니야. 진짜 나 때문에 생긴 일이야. 정말 미안. 그리고… 그냥 말 편하게 해. 우리 한 살 차이밖에 안 나.”
노비혁은 곧바로 말을 놓았다.
돌아가면 바로 피자부터 해치워야겠다며 쾌활하게 받아치는 모습에 남인후도 마주 웃었다.
언제 싸웠냐는 듯 둘은 스스럼없이 대화했다.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 없어 보였지만….
‘의외네. 둘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백미러로 보이는 노비혁의 웃는 모습은 묘하게 인위적이었다. 사회성이 많이 가미된 느낌?
뭐, 남인후는 모르는 눈치니 상관은 없겠지. 신경 끄자.
그렇게 잔잔한 대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집에 도착했다.
“이런, 피자 다 식었네.”
“전자레인지에 다시 돌리면 돼. 먼저 들어가 있어.”
전자레인지에 데운 피자는 갓 왔을 때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그렇게 한번 시작된 대화는 시계 침이 몇 바퀴 돌아가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저번처럼 매트리스를 내 방으로 끌고 와 잠들기 직전까지 떠들었다.
뭔가 낯간지러운 기분이었으나 썩 나쁘진 않았다.
* * *
“그래도 눈앞에서 큰 사고 난 거 봐서 놀랐을 텐데, 친구분은 괜찮대요?”
“저도 그 뒤로 몇 번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교통사고 난 거 봤을 때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던데요.”
“아, 그 친구가 내담자분 교통사고 날 때 옆에 있었어요?”
“네. 같은 반이었거든요.”
의사는 호오 하는 얼굴로 뭔가를 끄적였다.
의미 있는 내용은 아닐 것 같아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혹시 몰라 저번에 힐끔 쳐다봤는데 ‘이따 뭐 먹지…’, ‘카레? 백반?’ 이런 내용이었다.
“그렇군요….”
역시나 덧붙이는 말이 의미 없는 맞장구였다.
어딘가 흐릿한 눈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원래라면 비싼 상담비 받고 저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편했다.
촬영이 끝나도 세 달은 더 상담받으라는 윤 감독의 말을 듣고 나서는 더더욱.
느슨하게 풀린 어깨를 매만지고 있자, 의사가 큼큼 헛기침을 했다.
일종의 신호였다.
상담비 값은 해야 되니 형식상의 질문을 하겠다는 신호.
난 준비됐다는 의미로 허리를 폈다. 이쯤 되니 웃겼다.
“기억나요? 몇 달 전에 과호흡 증상 있었을 때, 내담자분이 친구를 잃어버리는 악몽을 꿨다고 했잖아요.”
“네.”
“한번 시뮬레이션을 돌려 볼까요? 내담자분을 여기까지 매번 데려다주는 보호자분으로요.”
“진배 형이요?”
“네. 그분이 없어진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꽤나 의미심장한 질문이었으나 태도 때문인지 별생각이 안 들었다.
그래서 머리를 굴리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슬프긴 하겠지만 이해할 것 같아요. 다른 배우를 원하실 수도 있는 거고, 이직할 수도 있는 거고… 그건 자유니까요.”
의사는 잠시 침묵했다.
“음… 저는 없어진다고 표현했는데요.”
“네?”
“방금 나열한 얘기들은 매니저분이 내담자분을 떠나는 상황에만 해당되는 거잖아요.”
그거 말고 다른 상황이 있나?
순간 미간을 찌푸리다가 뒤늦게 든 생각에 아차 했다.
“아, 네. 만약에 실종되신 경우라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겠죠.”
“……그래요.”
이거 아닌가. 의사의 표정이 워낙 미묘해서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는 말과 함께 상담이 끝났고, 나는 곧장 회사로 이동했다.
회사 밖으로 반출이 안 되는 대본도 있어서 그냥 읽다 가는 게 맘이 편했다.
어느새 내 지정석이 된 자리에 앉아 대본을 읽으려는데, 안진배 매니저가 마주 보고 앉았다.
‘오늘은 미팅 없나.’
요즘 우 팀장이랑 계속 미팅하는 것 같더니.
뭐, 내가 신경 쓸 사안은 아닌 것 같아 다시 시선을 내렸다.
종이 팔락이는 소리가 중간중간 침묵을 메워 주었다. 편안했다.
“배우님. 혹시 뭐 여쭤봐도 되나요?”
너무 편안해서 나른해질 정도라 안진배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을 때는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네. 그럼요.”
“지금 읽고 계신 대본 마음에 드세요?”
“음… 그냥 무난한 것 같은데요. 드릴까요?”
“아뇨.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안진배 매니저는 어딘가 난감한 얼굴이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기울이자,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짧게 호흡하고 나를 바라봤다.
무언가 결심이라도 했다는 듯 굳은 눈동자로.
“솔직하게 말하셔도 돼요.”
“네?”
“편하게 말해 주세요. 제가 우 팀장님께 밑 작업은 해 놓았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영문 모를 소리에 멍청하게 되묻자, 안진배 매니저는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대본이 2주 가까이 붙잡고 있는 대본이라고 했다.
찍고 싶어서 그것만 본 거 아니냐는 질문에 멈칫했다.
“솔직히 저는 배우님이 3개월은 휴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만, 배우님이 그렇게 한 대본만 오래 보는 건 처음 봐서요.”
“그렇게 오래 보진 않았는데….”
“오래 보셨죠. 지금 3번은 다 읽고 다시 읽으시는 거잖아요.”
5번이었다.
차마 정정하긴 멋쩍은 마음에 입만 달싹였다.
“엑스트라로 출연하셨던 것부터 시작해서 최근 ‘트윈스’ 촬영까지… 배우님이 먼저 하고 싶어서 찍은 작품은 하나도 없잖아요. 배우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컨펌받고―.”
“괜찮아요. 형. 찍고 싶어서 본 건 아니었어요.”
“그럼요?”
별생각 없었는데, 왠지 이 타이밍에 꺼내기엔 민망한 말이었다.
내가 머뭇대자, 대충 거짓말로 둘러댄다고 생각했는지 안진배 매니저가 다시 설득하려고 했다.
“걱정 마세요, 배우님. 제가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아뇨. 진짜 안 그러셔도 돼요. 그냥 인상 깊은 장면 하나가 있어서 그것 때문에 자꾸 보게 된 거예요.”
기껏 말했는데도 날 보는 눈에는 이미 신뢰가 사라져 있었다.
지금 당장 보고하러 가겠다며, 무슨 미션 받은 용사처럼 벌떡 일어나는 모습에 다급히 앉혔다.
그 뒤로도 틈만 나면 1 팀장실로 가려고 애를 쓰는 통에 수차례 말을 걸어야 했다.
“형, 정말 찍고 싶어서 본 거 아니에요. 어차피 제가 출연할 만한 역할도 없고요.”
“……알겠습니다.”
내가 몇 번이나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한숨을 쉬며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여기 더 있으면 방심한 사이에 보고하러 갈 것 같아서.
다행히 안진배 매니저는 묵묵히 차 키를 챙겼고, 그렇게 집에 왔다.
* * *
“백 프로입니다.”
“그 정도야?”
“네. 정말 안 찍고 싶으신 거였으면 그냥 헛웃음만 지으셨을걸요.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안진배는 이연재가 잠이 든 걸 확인하자마자 회사로 왔다.
집에 혼자 있을 배우가 신경 쓰였던 건지 평소답지 않게 말을 빠르게 하는 상대를 보던 우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진짜 하고 싶은 거면 별수 없지. 내가 내일 프로덕션 쪽에 연락 넣어 볼게.”
“감사합니다. 오디션 일정 나오면 말해 주세요.”
“오디션은 무슨, 내일 연락 넣으면 걔네 바로 여기 찾아올걸. 미리 마중 나왔다고.”
“배우님 성격상 오디션 없으면 더 안 하시려고 할 거예요. 차라리 자리 만들어 드리는 게 더 낫습니다.”
단호한 말에 우 팀장이 탄식했다.
“진배야, 바로 전작이 윤강연 감독 영화야. 심지어 원 톱. 내년이면 프랑스 갈 배우가 차기작을 그걸로, 심지어 그런 역할로 들어가는 것도 속상해 죽겠는데 오디션까지 보라고?”
“…….”
“내가 허락 못 해. 자존심 상해서. 대표님 아시면 난리 나실걸.”
안진배는 차마 할 말이 없어 침묵을 택했다.
머리 아파 죽겠다는 듯 한숨을 쉬는 우 팀장의 중얼거림이 그 공백을 채웠다.
“꽂혀도 왜 그런 거에 꽂히냐. 왜 하필, 웹 드라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