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
1화 원양어선에 오르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부산 영도 남부 외항.
새벽의 차고 푸른빛이 도는 어스름 속에 깡마른 체격의 청년 하나가 연신 줄담배를 피워댔다.
부두에 정박해있는 1,200톤급 대형 어선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엔 나이답지 않은 회한이 가득했다.
“하아···.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온 거지?”
송대운(大運).
복이 넘칠 것 같은 이름 석 자와는 달리 내 삶은 박복하기 그지없었다.
“대운은 개뿔. 세상 악운이면 모를까.”
나중에 알았다. 대운은 그저 10년마다 바뀌는 운의 흐름일 뿐이라는 것을.
자아 정체성이 막 형성될 때쯤.
내가 후미진 골목에 버려져 보육원으로 보내진 고아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더구나 열악하기 그지없는 보육원으로 보내져 형들에게 갖은 학대를 당해왔고, 보육원 선생들은 그런 나를 외면했다. 결국, 쌓인 분노는 터져버렸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머리 하나는 더 큰 형들과 처절하게 싸웠다.
이후 문제아로 낙인찍혀 여러 시설을 전전하다 뒤늦게 정착할 수 있었고, 19살이 되었을 땐 지원금 500만 원을 받고 사회로 내던져졌다.
“아자아자! 송대운 인생 지금부터 시작이다.”
보육원 문을 나서며 패기 있는 파이팅을 외친 것도 잠시.
단돈 500만 원으로는 원룸 보증금도 내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보증금이 필요 없는 고시원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방음 따윈 개나 줘버린 얕디얕은 벽 덕분에 궁금하지도 않은 옆방 사람의 대소사를 매일 듣게 되는 것도 어느새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이대로는 안 돼.”
편의점 알바나 전전하며 쳇바퀴 구르듯 살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시화 공단에 있는 프레스 금형 공장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오롯이 공장과 기숙사만 오가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야 대운아. 오늘도 그냥 들어가냐? 그러지 말고 한잔하자니깐. 형이 좋은데도 데려가 줄게 인마.”
“하하···. 괜찮습니다.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쯧쯧 재미없는 놈. 젊은 놈이 너무 돈만 찾아도 안 좋아. 네 나이 때는 좀 즐기면서 살아야지.”
“야. 그냥 가자! 가기 싫다는 놈 붙잡고 뭐해. 우리랑 놀기 싫은가 보지.”
홀로 숙소로 들어온 나는 때 묻은 작업복 차림 그대로 6평 남짓한 원룸 바닥에 드러누웠다.
“하아···.”
오늘따라 이 을씨년스러울 정도의 적막이 유독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누워있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총 예금/적금/펀드/신탁 잔액]21,423,209 원 (이체)
통장 잔고를 확인하자 우울했던 기분이 단번에 싹 날아갔다.
나는 부모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고아다.
고로 일반 사람과 달리 내 시작점은 저 뒤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의지할 곳도, 속 깊은 고민을 토로할 곳도 없었다.
삭막한 세상에 믿을 건 오직 나 자신뿐이었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대운아. 조금만 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나만의 작은 꿈을 떠올리자 가슴 한편이 간질거렸다.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
어쩌면 남들에겐 당연한 그것을 나는 너무나도 갈망했다.
하지만 ‘평범한 삶’에는 제법 많은 것들을 필요로 했다.
평생의 반려자가 있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했다.
결혼은 연애가 전제되어야 했는데 평범한 연애에는 돈이 필요했다.
거기다 가족들과 함께 등 따습게 지낼 수 있는 안락한 보금자리가 필요했고, 꾸준한 생활비도 필요로 했다.
돈. 돈. 돈.
‘평범’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아직 난 젊어. 할 수 있어.”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요즘 신혼부부 대부분이 아파트에서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서울·경기의 아파트 시세를 알아봤다.
[서울 평균 아파트값 사상 첫 11억 돌파···. 경기도는 5억 넘어.]“5억···? 11억?”
현실감 없는 숫자에 멍하니 핸드폰 액정만 들여다봤다.
“지금 내 연봉이 3천이니깐···. 1년에 1500만 원씩 모은다고 치면···.”
휴대폰 계산기를 두드리던 나는 힘없이 방바닥에 털썩 누워버렸다.
“33년···.”
심지어 서울도 아닌 경기도였다.
이 짓거리를 33년이나 해야 한다니.
33년 후면 내 나이 쉰넷.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목표했던 꿈이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는 생각에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물론 단순 계산일 뿐이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까마득한 숫자였다.
고장 난 나침판처럼 갈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어쩌지···?”
몇몇 꼰대들은 말한다. 본인은 마누라와 작은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요즘 애들은 너무 바라는 게 많다고.
“그건 그때나 가능했고···.”
구질구질하게 살 바엔 차라리 비혼주의를 택하며 혼자만의 행복한 삶을 택하는 이도 적지 않은 시대였다.
더구나 자신은 울타리 하나 없는 천애 고아가 아니던가.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깊은 시름을 감추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한 나는 오후가 되어 직원 휴게실로 향했다.
삼삼오오 모인 남자 직원들이 휴대폰을 들고 열띤 대화를 벌이고 있었다.
정수기 앞에 서서 믹스 커피를 타던 내 귀는 이미 그쪽을 향해있었다.
“나 이번에 이클로 삼백 먹었다.”
“뭐? 진짜야? 아 씨바···. 나도 그냥 너 따라 들어갈걸. 괜히 뽀삐 들어가서 오십 밖에 못 먹었네.”
“그러니깐 새꺄. 이 형님만 믿고 따라오라 했잖아.”
“넌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추냐?”
“맞추긴 인마. 다 공부하는 거지. 코인 발행량은 어떻게 되는지, 메인넷 런칭은 언젠지, 바닥은 충분히 다졌는지 차트 분석도 하고.”
통 무슨 대화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형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세요?”
“야야 대운아. 여기 형철이 계좌 좀 봐봐, 이 새끼 조만간 여기 퇴사할 수도 있겠다.”
호기심에 형철이형 옆자리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거래내역]총 보유자산 8,082,102원
총 평가손익 2,082,102원
“형이···. 이만큼 벌었다는 거예요?”
“어제 하루 만에 번 돈이야.”
“하, 하루 만에요?”
하루 만에 월급 가까운 돈을 벌었다니.
그야말로 놀랄 노자였다.
“별거 아냐. 시드가 작아서 푼돈이나 버는데 뭘. 시드 좀 불려서 크게 놀아야지. 잘돼서 회사 퇴사하면 크게 한턱 쏘마.”
그날 이후부터 내 정신은 온통 코인에만 쏠렸다.
고막을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프레스 기계 소리에도 내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코인이라는 단어였다
형철이 형이 보여줬던 코인 계좌 화면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결국. 나는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그래.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이대로 평생 내 집 한 칸 마련 못 하고 평생 일만 하다 죽을 거냐? 불알달고 태어났으면 과감할 땐 과감해야지.”
온갖 명분을 다 갖다 붙여 자기최면에 성공한 나는 결국 코인 계좌를 만들게 되었다.
그때부터가 재앙의 시작이었다.
“딱 100만 원으로만 하자.”
돈 만 원에도 벌벌 떠는 나에게 백만 원은 무척이나 큰돈이었다.
현존하는 모든 코인 커뮤니티를 이 잡듯 뒤졌고, 코인 관련 너튜브 영상을 미친 듯 탐독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떨리는 가슴으로 투자한 첫 코인이 하루 만에 30% 떡상하며 나에게 30만 원의 수익을 가져다줬다.
얼떨떨하면서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 희열이 차올랐다. 한편으론 아쉬움도 들었다.
“200 투자했으면 60이었고, 400 투자했으면···. 흐억. 120만원?”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자 되려 돈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의 시드 머니는 한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2,000만 원이었던 전 재산이 한 달 만에 5,000만원이 되었다.
일 년 연봉을 한 달 만에 번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돈이 게임 머니처럼 느껴진 것이.
승리에 도취한 나는 투자의 천재가 된 것만 같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겁 없이 날뛰기 시작했다.
마음만 먹으면 5억 정도는 순식간에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사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고 했던가.
5,000만 원의 재산이 고작 일주일 만에 2,500만 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따지고 보면 아직 500만 원의 수익이었지만, 당시에 나는 손실을 메꿔야 한다는 생각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투자는 점점 과감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쳐다도 봐선 안 된다는 코인 선물까지 손대게 된다.
늘 그렇듯 첫 시작은 좋았다. 아니, 대박이 났다.
2,500만 원으로 시작한 선물 거래는 일주일 만에 1억이라는 거금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욕심은 눈덩이처럼 불어갔고, 그 욕심은 내 이성을 마비시켰다.
배율과 리스크 관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들어찼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좋다는 코인은 모두 한 번씩 손댔고, 신규 상장 코인에도 거침없이 투자했다.
행동은 쉬웠지만 돌아온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1억까지 불었던 자산이 1,000만 원이 되기까지 불과 이주가 걸리지 않았다.
수면까지 헌납하며 고군분투한 끝에 가까스로 2,500만 원까지 끌어올릴 순 있었다.
하지만 1억이라는 숫자를 본 나에게 2,500만 원이란 돈은 너무도 적게만 느껴졌다.
“시드가 더 필요해.”
본격적인 재앙의 시작이었다.
나름 탄탄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에 대출은 잘 나오는 편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것인지 7천만 원의 돈을 끌어모아 코인 선물에 투자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악순환의 반복.
조금 벌었다 싶으면 한 번에 모든 돈을 탕진했고, 또다시 돈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손실은 점점 커져 갔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잠을 잔 건지 눈만 감은 건지 모르겠다.
지옥과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피골은 상접해 갔고 일의 능률도 떨어지며 회사 내에서도 여러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딴 건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어떻게든 본전이라도 되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청산에 청산을 거듭한 끝에 내 마이너스 통장 잔고는 어느새 -6,000만 원이 되어 있었고, 남은 것이라고는 총 3억 원에 가까운 빚이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내 인생은 끝났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빚쟁이들이 회사까지 찾아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자.”
남은 선택은 하나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
인적 드문 야산에 올라 튼튼해 보이는 나무에 면접용으로 샀던 넥타이를 묶고 목을 걸었다.
“커허허헉”
턱하고 숨이 막혀왔고 엄청난 압력이 얼굴을 향해 전해졌다.
얼굴은 뻥 하고 터질 것만 같았고 눈알은 툭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생각보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정신이 몽롱해질 때쯤.
털썩
“케엑!! 콜록콜록!”
넥타이가 끊어지며 추락한 나는 목을 부여잡고 미친 듯 기침을 토해냈다.
모순적이게도 살았다는 안도감에 희열이 차올랐다.
끊어진 넥타이를 손에 쥐자 온갖 만감이 교차했다.
돈 아끼겠다고 인터넷 최저가로 산 싸구려 넥타이가 내 목숨을 구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큭큭큭. 콜록콜록. 진짜 판타스틱한 인생이네. 난 도대체 뭘 위해···. 흑···. 흐흑···. 흐흐흑”
처음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고 이후엔 억울함과 자책감이 물 밀듯 몰려와 대성통곡으로 이어졌다.
정신없이 울다 보니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시팔···. 존나 예쁘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부유스레한 여명이 동터오자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못 해보고 이대로 생을 마감하기엔 너무 분하고 원통했다.
“그깟 빚···. 내 힘으로 다 갚으면 그만이지. 송대운! 너 아직 할 수 있다.”
죽다 살아나서였을까?
새벽 일출이 유독 장엄하고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본 나는 새로운 다짐을 되새겼다.
***
다음날 회사를 그만 둔 나는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서 원양어선을 검색했고, 간단한 면접 절차를 밟은 뒤 일반 선원으로 승선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내 사정을 알게 된 지인들이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권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저지른 일. 내가 책임지고 수습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일 때쯤.
선주가 나타나 배에 오르라는 사인을 보내왔다.
“네. 지금 갑니다.”
그렇게 미련 없이 망망대해로 나아갈 원양어선에 몸을 실었고, 어선은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먼바다로 향해 나아갔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