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인생의 첫 목표가 생기다
“세상에나···.”
은빛으로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과 높은 천장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천장이 워낙 높다 보니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뻥 뚫리는듯한 개방감이 느껴졌다.
블랙 앤 화이트의 깔끔한 색 조합과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 때문인지 고급 호텔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중문을 열고 들어가니 곱게 휘어진 라운드형 통창 너머로 아담한 테라스와 함께 고즈넉한 한강 전경이 파노라마 뷰로 펼쳐졌다.
“없는 게 없는 풀옵션입니다. 몸만 들어오면 된다는 말이죠. 조망은 뭐···. 두말할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보시다시피 한강은 물론 서울숲까지 내려다보이거든요. 밤이 되면 성수대교와 동호대교 덕분에 야경도 끝내줍니다.”
“끝내···. 주긴 하네요.”
나는 통창 너머로 보이는 한강 전경을 홀린 듯 쳐다봤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망상에 젖어 살 당시 꿈꾸던 바로 그 광경이 아니던가.
새삼 눈으로 보고 나니 왜 사람들이 인생은 한강물 아니면 한강뷰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로 하죠.”
“네?”
애견용품점에서 개집 사듯 결정을 해버리자 김정남이 당황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확고부동했다.
어차피 조건에 부합하는 곳도 이곳밖에 없다고 하니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계약할게요. 마음에 듭니다. 19억이라고 했죠?”
“마, 맞습니다. 근데 사실···.”
매매가 19억이면 김정남이 받아가는 중개 수수료도 적지 않을 터.
그런데 무슨 일인지 김정남의 얼굴에서 옅은 망설임이 보였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내 물음에 입술을 짓이긴 김정남이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사실 이 집에 관해서 꼭 말씀드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뭐죠 그게?”
“원래 이 오피스텔의 평균 매매가는 25억 정도로 형성되어있습니다.”
“그럼 19억이라는 말은 거짓···. 이란 건가요?”
살짝 열 받을 뻔했지만 침착하게 되물었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이곳이 저렴한 이유가 따로 있다는 걸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뭐죠? 그 이유라는 게?”
“사실 이곳은 급매로 나온 매물입니다. 살던 분이 여기서 자살을 하셨거든요.”
“자살이요?”
김정남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네. 자살하셨습니다. 원래 잘 나가시던 사업가셨는데 크게 사기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이 집을 제외하곤 모든 재산을 잃었고요.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그분이 기러기 아빠셨는데···. 미국에 있는 가족들까지 등을 졌다고 합니다.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구요. 심지어 저주에 가까운 유서까지 남기면서요.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정말…죄송합니다.”
면목없다는 듯 김정남이 침중한 안색으로 허리를 굽혔다.
“아. 그래서···.”
혀끝으로 이유 모를 씁쓸함이 감돌았다.
흔히 사기는 영혼의 살인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끔찍한 고통 속에서 가족에게까지 배신을 당했으니 살아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보통 안 좋은 일로 급매가 나올 때는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 오피스텔을 상속받은 유가족분들도 어떻게든 이곳을 빨리 처분하려는 의지가 강하구요.”
“저렴하게 나왔는데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습니까?”
“아무래도 찝찝했겠죠. 여길 보러 올 정도면 돈이 없는 분들도 아니었을테니 다른 매물로 눈을 돌리셨을 겁니다.”
흡사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복두장(幞頭匠)처럼 김정남의 얼굴에서 개운함이 느껴졌다.
“그러니 고객님도 이곳보다는 뒷말 없는 다른 곳으로······.”
“전 여기로 할게요.”
“소개해드리···. 네?”
“그냥 여기로 계약하겠다구요.”
“저, 정말이십니까?”
오죽 들어 오려는 사람이 없었으면 이 좋은 매물이 자신 같은 초짜에게까지 왔겠는가.
악마의 유혹처럼 안 좋은 생각도 스멀스멀 피어올랐었다.
매매만 성사되면 못해도 떨어지는 수수료가 못해도 천만원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험에 합격한 뒤. 관악산에 정상에 올라 양심을 파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장고 끝에 고해성사하듯 집에 관한 비밀을 털어놓았건만, 저 이상한 고객은 아무렇지 않게 계약을 요구했다.
“무슨 상관입니까? 하루에 죽어 나가는 사람만 몇인데. 기껏 사람 하나 죽은 것뿐인데요. 전 귀신은 믿지도, 무섭지도 않습니다. 무서우면 사람이 더 무섭죠.”
사실이었다.
원양어선을 탄 신참에게 귀신이 무서우냐, 고참 선원이 무서우냐 묻는다면 백이면 백. 고참 선원을 가리킬 것이다.
영혼을 후벼 파는 거친 욕설은 기본이고 가혹한 구타는 일상이었다.
심지어 건너 중국 어선에는 사람을 죽이고 바다로 던져버리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그리고, 그런 고참 선원보다 더 무서운 것이 태풍이 몰아칠 때 가끔 보게 되는 집채만 한 파도였다.
배 전체를 삼킬듯한 시커먼 파도를 마주하게 되면 아무리 간땡이가 부은 놈이라도 그 자리에서 주저앉게 되어있다.
이러한 공포를 4년이나 겪어온 나에게 기껏 사람 하나 죽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좋았다. 덕분에 시세보다 저렴하게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깐.
“아무튼, 저는 이 집이 무척 마음에 드니 계약하겠습니다.”
“일단···. 사무실로 돌아가서 마저 얘기 나누실까요?”
애써 흥분을 억누르려는 듯 김정남의 말끝이 미묘하게 떨렸다.
***
다시 돌아온 남녀칠세 부동산 사무실.
“이제 끝난 거죠?”
나는 눈앞에 놓인 계약서에 지장을 찍고 서명까지 완료했다.
떨리는 동공으로 계약서를 훑는 김정남.
“네! 다 끝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매물 소개해주셨는데 제가 감사하죠. 계약금은 오늘 안에 입금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입주는 이번 주 내로 해도 된다는 거죠?”
“그럼요. 내일 청소업체 불러서 깨끗이 청소해놓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끝난 것 같으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태워 다 드릴까요?”
마치 큰손 회장님 모시는듯한 김정남의 태도에 다소 부담을 느꼈다.
“괜찮아요. 걸어가면 금방입니다. 앞으로 종종 봐요.”
김정남에게 흘러나오던 빛의 정체는 밝히지 못했지만 어쩐지 이 어설퍼 보이는 공인중개사와는 종종 보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언제든 찾아주시면 정성으로 모시겠습니다.”
나이트 삐끼나 할법한 멘트를 날린 김정남이 허리를 접으며 나를 배웅했다.
빨리 도망가야겠다고 문고리를 잡은 순간 김정남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아 맞다! 아까 사장님이 저한테 TV 뭐 보고 있는지 물어보셨잖아요. 제가 홍슬기 인터뷰 보고 있었을 때요.”
“그랬죠?”
“축하드립니다. 톱스타 홍슬기와 이웃사촌이 되셨네요. 하하하. 듣기로는 홍슬기가 그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갑자기 그게 생각났네요.”
“그래요?”
참으로 묘한 우연이지 않은가.
하필이면 김정남이 그 여배우의 인터뷰를 봤을 때 빛이 흘러나왔다.
이후 마음에 드는 오피스텔을 계약했는데 거짓말처럼 그 여배우가 같은 곳에 살고 있단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이제 이웃 주민인데 오가다 운 좋으면 마주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제 친구가 백화점 행사 때 멀리서 한 번 본 적이 있다는데 얼굴에서 빛이 난다 하더라구요.”
그 역시 젊은 남자여서 그런지 예쁜 여자 얘기가 나오니 혼자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고객이라는 것을 자각했던지 시뻘게진 얼굴로 사과했다.
어쩐지 놀리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지만 애써 꾹꾹 눌러 담고 부동산 사무실을 나왔다.
그렇게 나는 내 소유의 집을 갖게 되었다.
그것도 20억 이상 하는 최고급 오피스텔로.
분명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건만 생각보다 감흥이 크진 않았다.
100억이라는 자산에서 새싹보육원 부지와 오피스텔을 구매하며 약 30억이라는 거액을 지출했지만, 그럼에도 내 계좌엔 70억 이상의 돈이 남아 있었다.
숨만 쉬고 있어도 1년에 받는 이자가 원양어선에서 받았던 연봉보다 높았기에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
반대로 빚은 또 다른 빚을 부른다.
3억이라는 빚을 갚는데 자그마치 4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던 이유는 빚에도 이자가 붙었기 때문이었다.
불현듯 돈이 자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돈이 생기자 적은 돈은 알아서 자석처럼 철썩 붙기 시작했으니까.
나만의 작은 깨달음을 갈무리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상철이형 불러서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해야겠다.”
이때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부(富)를 대하는 내 그릇 역시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
일주일 후.
탁
멋들어진 전경이 훤히 내다보이는 테라스에서 말없이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습기를 축축이 머금은 밤바람이 선득하게 얼굴을 스치자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초여름의 밤바람은 시원하기보다는 새침한 맛이 있었다.
“안주가 필요가 없구만.”
휘황찬란한 서울의 야경이 불타고 있었고, 검은 강물 위에 야경의 불빛이 거꾸로 번져 흐르고 있었다.
엎질러진 보석 상자와 같이 빛나는 야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야심 차게 구입한 고가의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야경의 운치를 더했다.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깊은 상념에 젖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더니 돈 때문에 끝날 뻔한 인생, 돈을 내려놓으니 되레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그것도 도박에만 손대지 않는다면 평생 써도 모자람 없을 정도의 거액의 돈이.
마냥 철없던 시절이었다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타국만리 망망대해에서 악착같이 버텨온 4년간의 뱃생활은 인생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하게 만들었다.
문득 원장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굳이 뭘 거창하게 하려고 하지마렴. 그냥 너답게 살아. 남 눈치 같은 거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해내고 마는. 내가 아는 대운이답게.]“나답게···. 나다운 게 뭘까? 내가 뭘 하고 싶지?”
더는 돈을 좇으며 살고 싶진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역시 코인이나 주식 같은 건···.”
우연히 길을 가다 내가 팔았던 녹스 코인의 근황을 듣게 되어 뉴스를 찾아봤다.
[녹스 사태로 인해 무너진 가상 자산의 신뢰] [녹스 사태에 피해자들은 피눈물] [녹스 코인 붕괴 직격탄. 가상자산 전망에 먹구름]무슨 이유인지는 몰랐지만, 녹스 코인에 무슨 사건이 터졌는지 시세가 급락하다 못해 폭락하여 원래의 동전 가격으로 회귀한 상태였다.
“만약 내가 녹스 코인의 보유 사실을 조금만 늦게 알았더라면···. 으으. 생각도 하기 싫네.”
앞으로 코인과 주식은 쳐다도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모든 관련 어플을 삭제했다.
무거운 족쇄를 집어 던진듯한 개운함에 술 한잔을 더 들이켰다.
“크으. 술이 달다 달아···. 그나저나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게 있었던가?”
코 찔찔 흘리던 시절에는 무언가가 되고 싶은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흐릿했다.
길지 않은 내 인생 히스토리를 처음부터 천천히 되짚어 보기로 했다.
기억의 편린만 존재하는 영유아 시절부터 보호 아동이 종료되던 19살 때까지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아!”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이 이러할까?
애써 묻어놓았던 아련한 기억 하나가 내 머리를 띵 하고 울렸다.
당시 선택지가 없던 나에게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던 작은 소망.
“대학생이 되고 싶어.”
가슴이 뜨거워지며 술기운이 단번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근데 지금 나이에도 대학생이 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