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땅을 치고 후회할 텐데?
“제가 잘 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거구의 앤드류 교수가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보자 교실 내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분위기에 한영대 학생들이 전전긍긍하며 나와 앤드류 교수를 쳐다봤다.
앤드류 교수의 중압감에 짓눌린 박성민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했다.
이 형이 갑자기 미쳤나 하는 눈빛이 전해졌지만 나는 싱긋 미소지으며 앤드류 교수를 올려다봤다.
“실리콘밸리가 한국에서 배워야 할 점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허업···.”
“저 형 왜 저래? 아침에 치즈 잘못 먹었나?”
“싸움을 잘하나?”
“여기서 싸움 잘하면 뭐해 병신아. 총 한 방 맞으면 끝인데.”
“설마 학생이 반항 좀 한다고 교수가 총질을 하겠어?”
“저 교수 생긴 거 봐라. 마피아 보스처럼 생겼는데 또 모르지.”
할리우드 영화의 폐해가 이런게 아닐듯싶었다.
저런 몹쓸 상상력이라니.
“호오.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묵중한 눈빛으로 나를 짓누르듯 응시하는 앤드류 교수였지만, 지난번에도 말했다시피 난 저런 눈빛에는 꽤나 내성이 있는 편이었다.
이승환 회장님 덕분에 튜토리얼을 클리어했고, 빈사르 왕세자를 겪으며 만렙을 찍었다고 자부한다.
“교수님 강의 내용은 무척이나 유익했고 또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실리콘밸리는 완벽하다는 전제를 깔고 계시더군요.”
내 지적에 앤드류 교수의 주름진 눈가가 꿈틀했다.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 스타트업 문화를 이끌어가는 종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완벽하다고는 말 못 하지만 완벽에 가깝게 가고는 있지요.”
역시나 이렇게 답할 줄 알았다.
실리콘밸리 출신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 같았고, 의도한 흐름이기도 했다.
“그것참 아이러니하네요? 저는 실리콘밸리가 좀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웃기죠?”
“아까 교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은 전 세계에 산재해있는 여러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불철주야 노력하여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으며 그것이 기업가 정신이자 스타트업의 본질이라고 말입니다.”
앤드류 교수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근데 그게 뭐가 문제죠?”
“웃기지 않습니까? 그런 대단한 문제들은 그렇게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생활하는 실리콘밸리의 문제는 등한시 한다는 게?”
“뭐요?”
예상치 못한 반격에 앤드류 교수가 움찔했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상대의 빈틈이 열렸을 때를 노려야 하는 법.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실리콘밸리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곳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집안 문제는 왜 방치해두냐 이거죠. 지금 실리콘밸리 치안이 얼마나 안 좋은지는 교수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잠깐만 방심해도 물건이 사라지는 마술을 경험할 수 있죠. 더구나 홈리스 문제는 왜 점점 심각해지는 거죠? 미국에서도 평균 급여 수준이 가장 높다는 실리콘밸리에서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이런 문제는 관심이 없는 겁니까? 아니면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겁니까?”
“그, 그건···.”
근엄하기 그지없던 앤드류 교수의 얼굴에 미약한 금이갔다.
역린을 찔렀으니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했다.
“물론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하지만 제가 의아한 점은 그 어떤 스타트업도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작 빈민국 기아 아동 문제에는 수천 달러짜리 풍선도 그냥 띄우면서 말입니다. 교수님이 생각해도 좀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흐음···.”
앤드류 교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의실 내 분위기는 얼어붙다 못해 곧 터지기 직전인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기왕 시작한 거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딱히 애국심이 넘치는 애국청년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한국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 아까부터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1년 정도 사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를 못 하시고 빙산의 일각만 보셨나 보군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죠? 아니, 그전에 학생 이름이 어떻게 되죠?”
“딜런입니다.”
나는 당당하게 이름을 밝혔다.
물론 혹시 모르니깐 영어 이름으로.
“계속 말씀해보시죠 딜런.”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는 듯한 뉘앙스였지만 나는 아랑곳없이 말을 이어갔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제대로 공부한 외국인이 한국을 처음 방문하면 내뱉는 첫 마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생각보다 많이 발전했다?”
“Holy Shit!!”
“컥! 콜록콜록.”
강의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우렁찬 외침에 사레가 들린 박성민이 격한 기침을 토해냈고, 다른 학생들은 입을 떡 벌렸다.
의외로 앤드류 교수는 별 표정 변화 없이 설명을 요하듯 나만 쳐다봤다.
“말씀드리기에 앞서 모국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입장입니다.”
무지성으로 자국을 찬양하는 국뽕론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밑밥을 깔았다.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기도 했고.
“작금의 한국은 사회 경제학적으로는 물론 지정학적으로도 기적 그 자체입니다. 지난 55년간 유례없는 발전을 이루어냈고 한국이 도달한 현대화 수준과 발전 속도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본적 없는 수준일 겁니다. 단순 수치만 봐도 알 수 있죠. 1965년 한국의 GDP는 31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조 8천억 달러입니다. 가나보다 못살던 시절도 있었고, 알제리, 튀니지도 한국보다는 부유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됐고, 세계에서 8번째로 수출입이 많으며 OECD에 가입하며 경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에 대해 글로벌 경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한강의 기적이라 칭하죠.”
밑밥을 깔았음에도 왠지 국뽕론자가 된 듯한 기분에 강철같던 내 철면피가 깨질 뻔했지만, 그것보단 저 로봇 같은 백인 교수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흐음···.”
앤드류 교수가 하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침음을 삼켰다.
“당연히 후유증도 없을 수 없겠죠. 완벽에 대한 숭배, 집착에 가까운 과한 노력, 무한에 가까운 경쟁까지. 이러한 것들이 한국이 가진 국민성이라고 말씀하셨죠.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당장 아이들만 봐도 직장인들 회식이 끝나는 시간에 단체로 우르르 노란 학원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4년제 4년제 노래를 부르는 학부모들로 인해 4년제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었던 적도 있었다.
서구권의 4년제 진학률이 40%대인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기형적 구조였다.
“외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한국은 늘 침략당해왔고, 상처받아왔으며 심지어 멀쩡하던 나라는 지금 두 쪽으로 분열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극복해냈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피와 살을 깎는 노력을 감수했기에 지금의 한국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말씀하셨던 그런 문제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그 역시 멋지게 극복해낼 것입니다.”
어쩐지 외교부 직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미우나 고우나 내 조국인데 나라도 이렇게 변호해야지.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기업문화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뭐 인정합니다. 수평적 조직문화와 깔끔한 비즈니스 마인드는 분명 좋은 장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죠.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뜻이죠. 한국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낸 기반에는 한국식 끈끈한 기업문화가 저변으로 깔려있습니다. 아까 교수님이 말씀하셨죠? 실리콘밸리는 70년 이상의 역사가 있다고. 한국은 기껏해야 20년입니다. 그리고 정정해드리면 한국이 스타트업 생태계 20위권 밖이라고 하셨는데 올해 17위로 갱신됐습니다. 앞으로 그 순위는 계속 오르게 될 거고요.”
“할 말은 그게 끝입니까?”
“네. 여기까집니다.”
강의실 내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한영대 학생들은 앤드류 교수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눈치 살피기 바빴다.
나는 뜨거워진 머리로 인해 당장 냉수마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고 오랜만에 영어를, 그것도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어휘를 떠올리느라 뇌에 과부하가 온 탓이었다.
어찌 됐건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쏟아냈기에 개운하긴 했다.
곁눈질로 앤드류 교수를 살펴보니 그 자리에 못 박은 듯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진짜 권총이라도 꺼내는 거 아냐?’
너무 과하게 나댔나 싶었지만.
짝짝짝.
돌연 큼지막한 손을 맞부딪히며 손뼉을 치기 시작한 앤드류 교수.
분위기에 휩쓸린 다른 학생들까지 얼떨결에 같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앤드류 교수가 씨익 웃으며 오늘 처음 웃음을 내보였다.
“멋진 발표였습니다. 그리고 사과드리죠. 한국 역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안 좋은 면만 봤나 보군요. 학생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에 어안이 벙벙했다.
학생 주제에 건방지게! 라는 멘트와 함께 당장 품에서 권총이라도 꺼낼 줄 알았는데 터져 나온 건 총성이 아니라 탄성이었다.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 앤드류 교수가 다시 강단 앞에 섰다.
“제가 여러분께 원하던 게 바로 이런 겁니다. 원치 않은 질문을 받았을 때 받아칠 수 있는 논리와 용기. 만약 딜런 같은 학생이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더더욱 안 좋아졌을 것이고, 강의 평가 역시 좋지 않게 나갔겠죠.”
섬뜩한 앤드류 교수의 말에 한영대 학생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강의 평가는 곧장 책임자인 남정민 교수에게로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좋지 못한 내용이 적혀있었다면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몰랐다.
“딜런 학생?”
“네?”
뜬금없이 나를 부르는 앤드류 교수.
“한국 이름은 어떻게 되죠?”
“송대운입니다.”
“혹시 졸업반입니까?”
“네···. 뭐. 곧 졸업이긴 합니다.”
“흐음···. 전공이 어떻게 됩니까?”
“경영학과입니다.”
“경영이라···. 알겠습니다. 한영대 경영학과 송대운. 기억해두겠습니다.”
뭘 기억하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상 피의 보복은 아닌듯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성질 고약한 늙은 교수의 짓궂은 질문 받느라 고생했고···. 나중에 또 봤으면 좋겠군요.”
애들 표정을 보아하니 다시는 안 봤으면 하는 간절한 얼굴이었지만 수업은 끝났다고 하니 기뻐하는 눈치였다.
앤드류 교수가 강의실을 떠나가자 스태프가 들어와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푸르른 캠퍼스를 거닐며 박성민이 옆에서 온갖 호들갑을 떨어댔다.
“와! 형 대박! 완전 대박! 인적자원관리 발표 때부터 알아봤지만 말 진짜 잘하네요. 역시! 기세만으로 이 박성민이를 제압한 사나이답습니다.”
기가 쪽 빨린 탓에 머리 뜨거워 죽겠는데 얜 또 옆에서 뭐라 쫑알대는 걸까?
대꾸할 기력도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듣고만 있었다.
“아까 그 교수가 형 쳐다보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던데요? 완전 하트 뿅뿅이던데.”
“총알 뿅뿅아니냐? 후우···. 아까 그 교수 생각하면 민동원 교수는 그냥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보인다.”
“포스가 장난 아니긴 했죠···. 그나저나 형! 오늘 저녁에 뭐 해요?”
“뭐하긴 뭐해. 발 닦고 잠이나 자겠지.”
“흐흐흐. 그러지 말고 오늘 저랑 같이 나가시죠?”
“어딜 나가?”
“어제 밤새가며 폰 만지작거린 보람이 있어요. 이 근처에 죽여주는 클럽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걸랑요. 기왕 미국까지 왔는데 클럽 한번은 가봐야죠.”
“클럽은 무슨 클럽이야. 너 혼자 가 짜샤.”
“에이 혼자 무슨 재미로 가요. 그러지 말고 같이 가요.”
“안 간다니깐 그러네. 나 그런데 취미 없다.”
“진짜로? 평생 후회할 텐데? 아마 임종 직전까지 땅을 치고 후회할 텐데?”
“아 글쎄 안 간······.”
“거기 모델 지망생이랑, 죽여주는 금발 미녀들이 엄청 오는 곳이래요. 심지어 그 귀하다는 여자 비율이 더 높은 여탕 클럽인데 안 간다고요? 에이 그럼 관둬요. 형 생각해서 특별히 말한 건데. 다른 놈 데리고 가야지.”
“잠깐.”
나는 다급히 앞서가는 박성민의 어깨를 콱 붙잡았다.
“원래 삼 세 번은 거절하는 게 예의인 거 모르냐 인마?”
“흐흐흐. 절대 후회 안할 겁니다. 저만 믿으시라고요.”
이때만 해도 알 도리가 없었다.
곧 우리에게 불어닥칠 일비일희(一悲一喜)한 사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