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생각지도 못한 월척
“어?”
어두운 실내에 현란하게 반짝이는 조명들 사이에서도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휘황한 빛.
그건 분명 나만 볼 수 있는 황금빛 아우라였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저기서 나오냐고.”
한국보다는 많은 황금빛을 볼거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첫 개시를 게이바에서 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형 뭐해요? 빨리 나가자고요. 한시도 여기 못 있겠어요.”
재촉하는 박성민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손을 휘저었다.
“야. 너 먼저가.”
“네?”
“나 잠깐 여기서 볼일이 생겼으니깐 가려면 먼저 가라고.”
벙찐 박성민이 이 형이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설마···. 잃어버렸던 성 정체성을?”
“진짜 뒤질 때까지 맞을래?”
“죄송합니다.”
간만에 살기 가득 담은 위협에 깨갱 한 박성민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근데 여기서 그거 말고 뭔 볼일이 있다고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박성민의 심정도 이해는 하나 지금 나에겐 그것보단 황금빛의 주인공과 만남이 더욱 중요했다.
고개를 돌려 스테이지에서 봉을 잡고 열정적으로 몸을 흔드는 금발 여성을 바라봤다.
– 휘이이익! 뷰리풀 걸!
– 더 흔들어 더더!
어느새 무대를 장악한 여자가 관능적인 미소로 관중들에게 손 키스를 날렸고 이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무튼, 너 먼저 갈 거면 가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얼른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일생일대의 갈림길에 서서 출구와 테이블을 번갈아 쳐다보던 박성민이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오. 진짜! 혼자 어떻게 가요. 미치겠네.”
출구를 등진 박성민이 내 앞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요? 이유나 좀 들어봅시다.”
자포자기한 박성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쳐다봤다.
“얘기 나눠봐야 할 사람이 있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설마 아까 그 흑인 형···?”
살벌한 내 눈초리에 박성민이 다급히 말을 돌렸다.
“큼큼···. 그게 아니면 대체 누구요!?”
나는 눈짓으로 무대를 휩쓸고 있는 금발 미녀를 가리켰다.
“헐. 저 여자요? 진짜루? 리얼뤼?”
눈이 한껏 커진 박성민이 이내 손뼉을 치며 탄성을 내뱉었다.
“와! 역시 대운이 형. 사나이 박성민을 기로 누를 때부터 알아봤지만 깡다구가 허···. 설마 저 여자 꼬셔보겠다고 여기 남은 거에요?”
뭔가 오해한듯싶었지만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형의 용기는 리스펙하는데 괜찮겠어요? 일단 위험요소가 너무 많은데요?”
“위험요소?”
“일단 첫 번째. 여기가 게이바란 걸 잊은 건 아니죠? 저 여자가 레즈비언이면 아무 소용없는 거고요. 두 번째. 레즈가 아니더라도 게이바에 온 여자들 대부분이 남자들이 치근덕대는 걸 피해서 온 경우가 많아서 말 걸어도 별로 반기지 않을걸요?”
나름 일리 있는 주장이었지만 나와는 상관 없었다.
저 여자를 꼬셔보겠다고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왜 황금빛이 터져 나왔는지 알아내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어느새 흥겨운 EDM 사운드가 끝이 나고 잔잔한 곡으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춤을 추다 지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맥주를 마시며 그 여운을 즐겼다.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티슈로 땀에 젖은 몸을 닦고 있는 금발 미녀에게 돌진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파란색 손수건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이거 쓰시죠.”
고개를 돌린 여자가 손수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긴 금발 머리에 푸른색 눈동자, 얇은 입술에, 단정하게 묶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작업 거시는 건가요?”
“뭐 비슷하긴 합니다만 그쪽이 생각하시는 그런 작업은 아닐 겁니다.”
“흐음···. 제가 뭘 생각하고 있을 줄 알고?”
“일단 짧게 대화라도 나눠보시죠. 제법 흥미로운 얘기가 될 겁니다.”
“호호호. 이런 식의 접근은 또 처음이라 신선하긴 하네. 맥주나 한잔하고 가요.”
여자는 흔쾌히 내가 내민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저 멀리서 튀어나올 듯 눈이 커진 박성민의 얼굴이 보였지만 무시하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디에서 오셨죠? 차이니즈? 재페니즈?”
“때려 맞추는 거엔 소질이 없으신가 보네요. 코리안입니다.”
“코리안! 미안해요. 사과할게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같은 동양인끼리도 구분하기 쉽지 않은걸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맥주나 한잔 하시죠.”
쨍
내가 맥주잔을 들어 올리자 금발 미녀가 코를 찡긋하며 미소짓더니 잔을 맞부딪혔다.
“엘리스예요. 원래 뉴욕에 살다가 일 때문에 잠깐 이곳에 왔구요.”
“딜런입니다. 저 역시 일 때문에 잠깐 들렀다고 보면 되겠네요. 그나저나 혼자 오신 겁니까?”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호호.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이런 곳에 혼자 오면 무섭지 않습니까?”
“무서울 게 있나요. 오히려 일반 클럽이 더하면 더 했죠. 차라리 게이바가 나아요. 치근대는 사람도 없고 혼자 오기에 부담도 없거든요. 여기선 저보다 저런 핫 가이들이 더 인기니까요.”
엘리스가 빤스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인물 좋은 백인 남자를 가리켰다.
남자가 지나가자 주변의 이목이 단번에 그에게로 집중됐다.
별로 부럽진 않았다.
“딜런은 이런 곳이 처음인가요? 저기 파트너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엘리스가 짓궂게 웃으며 저 멀리서 배아파 죽겠다는 듯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는 박성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전 게이 아닙니다. 저기 스토커처럼 훔쳐보는 놈이 여기가 분위기 죽여주는 클럽이라고 절 데리고 왔는데 알고 보니···. 이런 곳이었던 거죠.”
내 진실한 해명에 엘리스의 커다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가 이내 곱게 접히며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정말인가요? 그런 경우도 있구나. 그래도 재밌지 않나요? 여기 DJ가 실력이 좋아요.”
전혀 재밌지 않습니다만.
막판에 황금빛만 아니었으면 뒤도 돌아보지않고 뛰쳐나갔을 것이다.
“근데 엘리스는 이쪽 일을 하는 겁니까? 춤추는 게 예사롭지 않던데요?”
“어음···. 아예 관련 없다고 볼 순 없지만, 회사에선 제가 이러고 다니는 거 상상도 못 할걸요? 거기선 조신하게 다니는 편이라.”
분위기는 생각보다 괜찮게 흘러갔다.
엘리스와 나는 소위 말해 티키타카가 잘 맞았다.
대화에는 막힘이 없었고 시간이 지나자 살짝 경계하던 엘리스도 어느새 편하게 대화 주제를 던졌다.
“저, 정말 이분이랑 친분이 있다고요?”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진 엘리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내 얼굴을 쳐다봤다.
“뭐···. 그래도 서로 안부 묻는 사이 정도는 됩니다.”
“그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요···? 게시물마다 댓글은 물론 태그까지?”
엘리스는 내가 마음에 들었던지 별스타그램 맞팔을 요청했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맞팔을 맺었다.
그런데 내 SNS를 훑어보던 엘리스의 붉은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내 게시글에 댓글을 달아놓은 두바이 왕세자 빈 무크 형님을 발견한 것이었다.
빈 무크 형님은 수천만의 팔로워를 보유한 글로벌 인플루언서였고. 엘리스는 그런 빈 무크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혔다.
“빈 무크 형님은 왜 좋아하는 거예요?”
“돈 많고 잘 생겼잖아요. 공부는 물론 운동도 잘하고. 안 좋아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
단번에 튀어나온 엘리스의 답변은 반박이 불가했다.
같은 남자가 봐도 빈 무크라는 인물은 사기캐 그 자체였으니.
빈 무크 형님과 내가 남다른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엘리스는 나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며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아까 일 때문에 왔다고 했는데 딜런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돼요?”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할지. 일 때문에 온 것도 맞지만 사실 겸사겸사 온 겁니다 지금은 실리콘밸리에서 단기 연수 중이거든요.”
“연수요? 설마 대학생?”
“네. 대학생입니다. 사업도 하고 있지만요.”
“대단해요! 두 가지를 병행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사업은 혹시 어떤···?”
상대의 정보를 끌어내기 위해선 내 정보부터 오픈해야 함이 인지상정이었다.
“벤처캐피털입니다.”
내 대답에 엘리스가 눈을 반짝이며 흥미가 가득 담긴 탄성을 터트렸다.
“오우. 벤처캐피탈리스트셨군요. 하긴. 그러니 실리콘밸리까지 찾아왔겠죠.”
엘리스는 생각보다 이쪽 업계에 관한 지식이 풍부했다.
실리콘밸리의 트랜드나 글로벌 경제 동향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엘리스를 보고 있자니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너무 제 얘기만 한 것 같은데 엘리스 본인 얘기도 좀 해주시죠?”
내 질문에 잠깐 고민하던 엘리스가 웃으며 나에게 명한 한 장을 건넸다.
“위너 레코드?”
깔끔한 흰색 명함에는 WINNER RECORD라는 회사명과 함께 TEAM Manager라는 직함이 새겨있었다.
“위너뮤직그룹 산하에 레이블이에요. 거기서 팀장직을 맡고 있죠.”
“그래서 춤을 그렇게···?”
“호호호. 그건 제 은밀한 취미 생활이고 직업하고는 크게 관련 없답니다. 미국 음악 산업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지금도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만큼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나름 재미도 느끼고 있죠.”
순간 내 머릿속에 전광이 스쳐 갔다.
분명 박성민이 엘리스를 가리켰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황금빛이 뜬금없는 타이밍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엔 거짓말처럼 아이리스의 신곡 ‘Amor’가 흘러나왔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모든 정황이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뒤적거리다가 명함 한 장을 엘리스에게 건넸다.
얼떨떨한 얼굴로 명함을 받아든 엘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블루버드 엔터테이먼트 이사?”
“혹시 조금 전 흘러나왔던 음악 기억나십니까?”
“글쎄요···. 워낙 많은 노래가 나오는 곳이라.”
입으로 대충 멜로디를 흥얼거리자 이내 엘리스가 강하게 손뼉을 맞부딪혔다.
“아! 이 노래? 알죠. 요즘 많이 들리는 노래에요. 빌보드 차트에도 올라가 있고.”
“그 노래를 만든 곳입니다.”
“네?”
“저희 아티스트들의 본격적인 미국 진출을 위해 파트너를 찾고 있는데 혹시 관심 있으십니까?”
그렇게 나는 먼 미국 땅, 그것도 생전 처음와본 게이바에서 생각지도 못한 월척을 낚았다.
***
다음 날.
조금 이른 아침에 밖으로 나온 나는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시각으로는 오후 8시쯤 되는 시간.
“네 김 대표님. 전화 되십니까?”
– 아이고 송 이사님. 물론이죠. 이제 막 정리하고 퇴근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근데 지금 미국 아닙니까? 바쁘실 텐데 어쩐일로?
“다름이 아니라 혹시 위너 레코드라고 아십니까?”
– 위너레코드요? 당연히 알다마다요. 음악 하는 사람은 모르면 안 되지요. 미국의 3대 레코드 레이블 아닙니까. 근데 거기는 갑자기 왜?”
“다음 주에 미국 한번 오시죠? 위너레코드랑 미팅 잡아놨습니다.”
– 네?
“아이리스. 본격적으로 미국 진출하자구요.”
“……”
“여보세요? 김 대표님?”
수화기 너머로 무거운 침묵이 일순 가라앉더니, 이내 벼락같은 고성이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