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자기들이 오고 난리야?
“어휴. 하마터면 깜빡할뻔했네.”
휴대폰 캘린더에 스케쥴 등록과 알람 설정까지 해놨건만 워낙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잠깐 잊고 있었다.
나는 덮어뒀던 노트북을 다시 열고 저장해둔 미팅 자료를 정리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철컥
끼이이이익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빼꼼 내민 박성민과 눈을 마주쳤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것이 적잖이 술을 마신 듯했다.
“어? 아직 안 잤어요?”
“내일 일정 때문에 정리할 게 좀 있어서. 근데 뭐 켕기는거 있냐? 도둑놈처럼 그렇게 들어와?”
“형 자고있는데 깨울까봐 그랬죠.”
마냥 개차반인 줄 알았는데 나름 배려가 있다.
아니, 나한테만 그러는 건가?
생각해보니 주희한테 찝쩍거리다가 나한테 혼쭐 한번 난 이후로 박성민은 유독 나를 어려워했다.
“어디보자 내일 일정이면···. 아! MS 탐방 가는 거요? 헐!? 남교수님이 무슨 과제 같은 거 내줬어요?
“그건 아니고, 개인적인 일이야. 그나저나 너는 꼬락서니가 왜 그러냐?”
오늘이야말로 역사를 이루고 말겠다며 절치부심하여 세팅했던 머리는 망나니마냥 산발이 되어있었고, 새로 샀다는 옷은 온통 구김이 져 있었다.
“하아···. 전 그냥 안될 놈인가 봐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박성민이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왜? 하늘을 봤는데 별이 안 따지디?”
“후우…오늘은 진짜 자신 있었거든요? 옷도 명품으로 쫙 빼입고, 아끼고 아끼던 크리드 어벤투스 향수까지 뿌렸는데···. 크흑.”
“야 우냐?”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는 박성민.
대체 나가서 무슨 일을 겪은 걸까?
혹시 동네 갱단한테 돈이라도 뜯긴건 아닐지 살짝 걱정이 들었다.
“아이씨 쪽팔려. 제가요. 하루종일 현지인 커뮤니티만 뒤져서 기가 막힌 바(Bar) 하나를 찾았걸랑요? 규모는 작은데 오히려 잘됐다 싶었죠. 괜히 사람 북적거리는 데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바에는 작은 바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해보는 것도 나름 낭만있잖아요.”
어쩐지, 종일 휴대폰만 붙잡고 있더라니.
정말 지독할 정도의 열정이었다.
“그래서?”
“바(bar)에 딱 도착하고 보니 와! 이거다 싶었죠. 동네 호프집만 한 크긴데 분위기가 죽여주더라고요. 아늑한 조명에 은은하게 흐르는 재즈 음악까지. 필(feel)이 팍 꽂혔죠. 박성민이 오늘 여기서 일낸다고.”
혼자 별 지랄을 다 했구나.
이놈은 무인도에 홀로 던져놔도 심심해서 죽진 않겠다.
“앉아서 맥주 한잔 때리고 있는데 세상에. 거기 여종업원이랑 눈이 딱! 마주친 거에요. 저는 무슨 영화배우인 줄 알았다니까요? 의상이랑 몸매가···. 어후. 아무튼, 그쪽에서 계속 저를 힐끔거리더니 다가오는거 아니겠어요? 왔구나! 드디어 왔어! 이 박성민이 인생에 드디어 봄날이 왔다고 생각했죠.
나름 흥미진진 해서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섰다.
“됐네 그럼! 그래서?”
“말이 엄청 잘 통했어요. 제가 입만 벙긋하면 깔깔 웃는데 이제 다 왔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자식은 아까부터 계속 뭐가 왔다는 걸까?
“그때부턴 주구장창 술만 퍼마셨어요. 좀 취하니깐 그쪽에서 야한 얘기도 슬쩍슬쩍 꺼내더라고요. 질 수 없으니깐 더 센 거로 받아쳤죠. 아주 그냥 좋아 죽더만요. 그런데 그쪽에서 제 손을 덥석 잡더니 그윽한 눈으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내가 마음에 드니깐 오늘 밤 같이 있자고.”
“헐. 그럼 진짜 된 거 아냐? 근데 너는 왜 지금 여깄냐?”
물기 어린 눈으로 잠시 허공을 응시한 박성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여배우 뺨치는 금발 미녀가 나를 택하다니. 진짜 꿈만 같았어요. 그러더니 자기 집에 가서 한잔 더 하자는 거에요. 아 진짜 끝났구나! 확신했죠. 긴장이 풀리니깐 오줌보가 터질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익스큐즈미 날려주고 다급히 화장실로 향했죠. 시원하게 일 보고 있는데 옆 소변기에 누가 와서 오줌을 싸더라고요? 근데 소리가···. 미친. 이건 뭐 나이아가라 저리 가라야 그냥. 그러다 무심코 옆을 봤는데···. 허윽···. 아직 내상이···.”
“뭔데 그리 호들갑이야?”
“그 여자였어요···.”
“응? 누구?”
“방금까지 제 옆에 있던 그 여자가 제 옆자리에 우뚝서서 오줌을 싸고 있었다고요!”
“너 설마···. 약했냐?”
박성민이 세상 다 산 노인 같은 얼굴로 남은 맥주를 식도에 때려 부었다.
“알고 보니 트젠바였어요···. 이런 씹! 아오!”
맙소사.
게이바도 모자라서 이제는 트젠바라니···.
“아니! 이 새끼들은 트젠바면 트젠바라고 간판에 적어놔야지 나 같은 외국인들은 어떻게 구분하라고! 진짜 개빡치네. 으아아!”
“시끄러워 인마. 옆방에서 깰라.”
“사랑했던 여자가 갑자기 남자 화장실에 들어와서 시원하게 일보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적 있어요? 그 경악과 참담함을 형이 아냐고요? 심지어 내 것보다···. 크흑.”
깊은 실의에 빠진 박성민이 끝내 고개를 떨구었다.
왠지 건드리기 꺼려졌지만, 도의상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손끝으로 박성민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마음에도 없는 위로를 전했다.
“그래서? 그 후에는?”
“뭘 그래서에요. 급한 볼일이 있다고 냅다 튈 생각이었죠. 그런데 이 여자···. 아니 그 새끼···. 힘이 얼마나 세던지 어떻게든 안 보내려고 옷을 붙잡는데 이러다가 진짜 좆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있는 힘껏 뿌리치고 죽을 힘을 다해 뛰었어요. 와···. 그런데 이 미친 여자, 아니 미친놈이 하이힐까지 벗어 던지고 쫓아오기 시작하는데···. 내 생애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뛰어본 적이 없어요. 지옥이 있다면 여길까요?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어요. 한국이 그립다고요!”
취기가 오른 박성민이 살짝 풀린 눈으로 애끓은 고향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나는 말 없이 다시 책상에 앉았고, 맥주를 생수처럼 들이키던 박성민이 혼자 뭐라고 주절주절 떠들더니 이내 침대에 쓰러지듯 털썩 널브러졌다.
“음냐···. 그렇게 크면 반칙이잖아요 레이첼······.”
어쩌면 박성민은 상대가 남자였던 것보다 다른 것에 더 충격을 받은 게 아니었을까?
***
“와···. 미친. 이게 캠퍼스 중 하나일 뿐이라고?”
12만 9천평방미터의 규모를 자랑하는 매크로 소프트 실리콘밸리 캠퍼스는 마치 하나의 소도시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조경과 산책로는 물론, 대규모 스포츠 경기장까지 조성되어있었고, 약 2천여 명의 직원들은 그 안에서 웬만한 여가 및 의식주를 해결했다. 심지어 강아지를 데리고 출근하는 직원도 눈에 보였다.
버스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한영대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희 MS 실리콘밸리 캠퍼스는 친환경 가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우선 식수와 하수도를 제외한 모든 수자원을 저희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투어 안내를 맡은 MS 홍보팀 여직원 제시카가 건물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나요?”
“사실 캘리포니아는 매년 심각한 물 부족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시에라 네바다에 수자원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죠. 때문에 저희 MS는 상수도 대신 빗물을 저장하여 활용하고, 그 물을 다시 재활용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빗물은 지붕과 태양광 패널단지에서 모으고, 관개수로와 화장실로 공급됩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최초의 시도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장소는……”
한영대 학생들은 입을 벌리고 유사 테마파크와 다름없는 캠퍼스 이곳저곳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곳이 바로 본관입니다.”
한눈에 봐도 본관임을 알 수 있는 압도적인 규모의 건물.
특이한 점은 초고층 건물이 아니라 마치 개미집처럼 옆으로 넓게 퍼져있는 형태라는 것이었다.
[Wellcome! Han Yeoung University!]층고가 탁 트인 로비에 들어서자 전광판에서 한영대의 마스코트인 사자 캐릭터가 등장하며 방문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흘러나왔다.
“여기서 우리 라돌이를 보니깐 왜 이렇게 쪽팔리냐?”
“그러게. 좀 간지나게 만들지···.”
라돌이는 한영대를 상징하는 마스코트로 몸통보다 머리가 더 큰 가분수 형 사자였다.
약간 맹해 보이는 눈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도 호불호가 나뉘는 캐릭터였다.
“이야. 역시 글로벌 기업은 뭔가 달라도 다르네.”
내부는 무척이나 쾌적한 편이었고, IT 기업답게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흘렀다.
“일단 조식부터 드시러 가실까요?”
제시카의 안내를 따라 우리는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이 정도 클라스의 조식이라니.”
식당은 먼지 한 톨 찾기 힘들 정도로 청결했고 약 20가지 종류의 빵에, 과일, 요거트, 스프, 스크램블 같은 메뉴들로 쭉 차려져 있어 고급 호텔 못지 않은 구성이었다.
“으허! 해장 된다.”
퉁퉁 부은 얼굴로 스프를 해장국처럼 들이키는 박성민을 보자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 슬쩍 거리를 벌렸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제시카는 우리에게 카드 목걸이 형태의 임시 출입증을 나누어줬다.
본격적인 건물 투어가 시작되었다.
어떤 창문을 바라보더라도 웬만한 SSS급 펜션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녹음이 우거진 자연경관이 펼쳐졌다.
일할 맛 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근무 환경이었다.
점심은 한국에서 온 우리를 위해 특별히 한식 메뉴가 나왔다.
또 하나 놀란 점은 회사 내에 카페 테리어가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스텔라벅스 커피보다 훨씬 맛있었다.
“여기 회사 맞냐? 그냥 스타필드 온 것 같은데?”
저 말이 과장이 아닌 게 포켓볼, 탁구, 스쿼시, 볼링장, 심지어 비치발리볼장까지.
일하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별의별 레저 시설이 다 갖춰져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대장정에 다리가 저릴 때쯤 제시카가 걸음을 멈추고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자! 오늘의 투어는 여기까지입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요. 버스가 올때까지 여기서 잠깐 대기하겠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부분이 있으면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직업정신이 투철했던 제시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어떻게 하면 이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보고 있던 남정민 교수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저···. 교수님. 어제 말씀드렸던 대로 저는 개인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음? 아. 같이 버스 타고 나가는 게 낫지 않겠어?”
“여기 안에서 볼 일이라서요. 문제 안 되게 일찍 들어가겠습니다.”
“대운이 너야 뭐. 알아서 잘하니깐 별걱정은 안된다만···. 근데 이 안에서 볼일이랄게 있나?
“하하하···. 아는 사람이 있어서 간단히 인사만 좀 하려고요.”
“호오. MS에 아는 사람이 있어? 누구······.”
하지만 남정민 교수의 뒷말은 제시카의 당혹성에 그대로 파묻혀 버렸다.
“대, 대표님?”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던 제시카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엔 인도 출신의 현 매크로 소프트 CEO 라델라가 직원 몇 명을 대동하고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저 양반들이! 내가 간다니깐 왜 자기들이 오고 난리야?’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