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여기서 만나네
“총장님한테 연락이 왔어. 너를 대한민국 인걸(人傑)상 후보로 추천하는 게 어떻겠냐고.”
“총장님이요?”
황당을 감출 수 없었다.
안면도 없는 총장님이 왜 뜬금없이 날 언급한단 말인가.
대한민국인걸상은 또 뭐고?
어쩐지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안 좋은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저 말고 다른 대운이 아닐까요? 저는 총장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그래. 다른 사람을 나로 착각한 것이 분명했다.
“경영학과 편입생 송대운! 너 맞아. 차대운, 김대운, 박대운은 있어도 한영대에서 송대운은 너 하나뿐이야.”
“아···.”
망할. 대체 나를 두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창업지원단장님이 총장님께 찾아가서 네 얘기를 했다네? 뭐라 했더라···. 한영대에 잠룡이 숨어 있다고 했다던가? 그 양반 옛날부터 무협지 읽고 그러더니 말하는 것도 참. 아무튼, 단장이 너를 엄청 좋게 봤나 봐. 무조건 너를 대한민국 인걸상 후보로 올려야 된다고 강하게 밀었다네? 그 조용하던 양반이 그러는 거 흔치 않은 일인데.”
그제야 아차 싶었다.
실리콘밸리 연수 면접관 중 하나가 창업지원단장이었나보다.
평범하게(?)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나의 계획에 적신호가 울렸다.
“저···.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그거 거절해도 되는 겁니까?”
“그걸 왜 거절해? 너 대한민국 인걸상이 뭔지 몰라? 이건 대학생이 받을 수 있는 스펙의 끝판왕 같은 거라고.”
대한민국 인걸상은 국가의 주축으로 성장할 다양한 분야의 우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상으로, 무려 대한민국 대통령이 직접 상장과 메달을 수여하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만 34세의 나이 제한이 있으며, 전국에서 오직 30여 명만이 수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그만큼 각계각층 단체장의 추천을 받지 않으면 후보에도 오를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서류심사, 심층 면접, 분과회의, 최종회의를 거쳐야 최종적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 나에게 스펙은 크게 필요치 않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취업할 일이 없는데 스펙 쌓기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요새 다들 왜 나한테 상을 못 줘서 안달이야?’
물론 상이란게 좋은 거긴 하지만 쓸데없이 주목받는 건 딱 질색이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대책을······.
“이건 학교 명예와도 직결되어있다 대운아! 매번 한국대 출신들만 싹쓸이했는데 이번엔 우리 학교도 상 한번 타보자고 총장님 기대가 크시다.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일단 기다리고 있어 봐. 어차피 후보로 올린다고 해도 서류 통과가 돼야 뭐라도 되는 거니깐.”
잔뜩 부담 줘놓고선 부담 갖지 말라니.
모순이 심하십니다 교수님!
하지만 어쩌겠는가.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는 것을.
결국, 모든걸 체념하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텐데 뭘. 고작 30명한테 준다는 상을 내가 받겠어?’
물론 나도 일반적인 대학생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그런 대단한 상은 산업 최전선에서 열심히 발로 뛰며 국위 선양하고 있는 애국 청년들이 받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합리화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알겠습니다. 뭐 추천해주신다는데 감사할 따름이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교수님.”
“그래 인마. 너 이거 정말 큰 기회야.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애들보다 훨씬 앞에 서는 거라고.”
이 주제에 대해선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돌렸다.
“저 교수님. 내일 하고 모레에도 오후에 따로 볼일 좀 봐도 되겠습니까?”
MS의 조건을 들어봤으니 이제는 이즈코드랑, 트위트 측과도 만나 그들의 의중은 어떠한지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너야 뭐 사고 칠 놈은 아니니깐 그렇게 해. 아! 그래. 대체 라델라 대표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눈에 쌍심지를 켜고 묻는 남정민 교수의 물음에 순간 뭐라 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렇다고 지분 매각에 관한 미팅을 했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은 오픈할 수 없는 엠바고이기도 했고.
“하하하···. 그게. 별건 아니고. 제가 예전에 어쩌다가 그분 특강을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 감명을 받아서 물불 안 가리고 사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는 그냥 직원이셨는데 저도 몰랐죠. 그런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줄은. 아무튼, 절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간단히 인사만 드린 겁니다. 사람 인연 참 신기하죠? 하.하.하.”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그럴듯한 뉘앙스로 얘기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웬만한 낯짝 두께로는 해낼 수 없는 일.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일까?
남정민 교수는 이런 쪽에 있어서 무척이나 둔감한 편이었다.
“아···. 그러냐? 그거참 신기한 인연일세. 이야 부럽네. 그런 대단한 양반과 인연이 있다니. 이래서 사람은 인연을 소중히 해야 해. 언제 어디서 만날 줄 모르는 거거든.”
이걸 넘어가?
하지만 평소 남정민 교수의 성정을 떠올리면 충분히 납득도 됐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남 일에 별 관심이 없어서 허무맹랑한 소리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버리는.
어찌 됐건 그럭저럭 잘 넘긴듯하여 안도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가는 거야?”
“그리 멀진 않습니다. 트위트랑 이즈코드에 잠깐 방문할 거예요.”
“하하하. 거기에서도 사장들 만나고 다니는 건 아니지?”
“하.하.하···. 설마요.”
누가 들어도 어색한 웃음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실리콘밸리에 온 지도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아무래도 한정된 시간 안에서 움직이다 보니 일정 자체는 빡빡하기 그지 없었다.
격일로 진행되는 앤드류 교수의 특강은 여전히 공포 그 자체였고, 기업 탐방에서는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질문 하나 드리죠. 여러분들이 이번 연수에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거기 앞에 있는 학생?”
앤드류 교수의 질문에 경기라도 일으킬 듯 사색이 된 여학생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실리콘밸리에 많은 훌륭하신 분들을 만나서 견문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 옆에 있는 학생은요?”
“아무래도 창업의 성지로 손꼽히는 실리콘밸리이다 보니 많이 배우겠다는 심정으로 왔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체로 이런 답변들이 주를 이뤘지만 앤드류 교수는 썩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앤드류 교수의 시선이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에게 향했다.
“딜런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언제 내 이름까지 외운거지?
저런 관심은 사양이었지만, 질문을 받았으니 답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확실히 배우기 위한 목적 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 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 온 것도 큽니다.”
짝!
“바로 그겁니다!”
아오씨 깜짝이야.
별안간 손뼉을 치며 버럭 소리를 내지른 앤드류 교수의 고성에 학생들의 몸이 움찔했다.
“이렇게 하더니 잘되더라, 저렇게 하니 성공하더라 하는 세간에 떠도는 정보가 많습니다.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닙니다. 지식노동자로서 배움은 기본자세니까요. 하지만 창업자에겐 공부한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실전에 적용하느냐는 거죠. 여러분의 경쟁자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방법론은 방법론일 뿐, 성과로 바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창업자는 학생이 아닙니다. 배움은 디폴트로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중요한건 당장 실행하는 자세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네엡!”
훈련병이라도 된 듯 학생들이 악을 지르며 크게 대답했다.
‘맞는 말이지.’
항해에 대해 이론상 모든 것을 배워 바다로 나간다고 제대로 향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니, 그건 불가능이라기보다는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드넓은 바다에는 수많은 위험과 변수가 도사리고 있고, 그런 바다 앞에서 인간은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경험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바다 위에서 선장의 지위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좋은 답변이었습니다. 딜런.”
“별말씀을···.”
딱히 정답이라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어쩐지 얻어걸린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까칠하기만 했던 양반이 첫날의 치열한 설전 이후로 나를 편애한다는 생각이 들면 착각이겠지?
어찌 됐건 나로서도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기에 최대한 얻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먼저 선공을 취했다.
“질문 있습니다. 한국의 VC 같은 경우에는 벤처캐피탈에 소속된 VC들이 딜을 가져오면 투자심의를 열어 이 투자를 가결할 것인가 부결할 것인가의 형태로 투자 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미국도 비슷한 구조입니까?”
매번 질문 폭격만 하다가 역으로 질문을 받자 앤드류 교수의 얼굴에 옅은 놀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영대 학생들은 그런 나를 구세주 보듯 바라봤다.
‘저 입 좀 다물게 해주세요 제발.’이라는 표정이 또렷이 보였다.
“호오. 그것이 한국의 투자 프로세스입니까? 참고로 말씀드리면 미국의 VC는 회사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회사가 아니라고?
“미국은 Limited Liability Company, 줄여서 LLC라고 불리는 심플한 법인체 형태가 대부분이죠. 더 쉽게 설명하면 파트너십을 가진 여러 VC가 집단을 이루어 투자에 대한 이익을 나눠 갖는 구조입니다.
저 LLC라는 것은 한국의 유한회사의 개념과 엇비슷해 보였다.
“설명을 들으니 한국은 피라미드식 조직구조로 되어있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미국은 반대로 역피라미드 구조입니다. 의사결정이 가능한 파트너급 VC가 헤드를 이루고 있죠. 때문에 미국의 벤처투자가 ‘파트너의 게임’이라 불리는 겁니다.”
그렇게 나는 앤드류 교수와 VC에 관한 문답을 주고받았고 어느새 강의가 종료될 시간이 다가왔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모처럼 흥미로운 대화였는데 아쉽습니다. 다음 강의 때 이어가도록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우렁찬 저 답변이 왜 제발 빨리 떠나가주세요 라고 들리는 걸까?
하긴, 강의 스타일이 워낙 유별나시니.
일단 강의 주제를 꺼내기 전에 질문부터 던지고, 강의 중간중간에도 질문, 강의 끝날 때쯤에도 질문.
말 그대로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는 강의 스타일은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정을 밟아 온 이들에겐 퍽이나 버거운 것이었다.
“형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형이 그나마 핵우산 역할을 해주니깐 질문 융단폭격이 조금 분산된다고나 할까? 지금 애들 표정 봐요. 저게 강의 들은 학생 표정인지, 산악 행군 다녀온 군인 표정인지.”
과도한 긴장으로 경직되어있다가 확 풀려서 그런가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곧 익숙해지겠지. 그나저나 오늘은 또 어디로 탐방 간다냐?”
“오늘은 기업 탐방 아니래요. 어디 스타트업 대표가 강연 식으로 뭘 한다던데···. 잘됐죠 뭐. 이젠 어디 돌아다니기도 힘들어 죽겠어요. 대강의실에서 한다니깐 이동하시죠?”
“오냐. 가보자. 근데 너 어제 클럽 갔던 얘기는 왜 안 해줘? 무슨 일 있었냐?”
“저 먼저 가 있을게요.”
질문과 동시에 가방을 챙겨 후다닥 뛰쳐나간 박성민.
저 녀석은 대체 또 무슨 일을 겪은 것일까?
‘좀 있다가 파 헤쳐봐야지.’
이제는 기대가 될 지경이었다.
***
산호세 대학교 대강의실.
웅성웅성
“오메. 사람이 뭐 이렇게 많냐?”
미국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전형적인 계단식 강의실에는 사람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잠시 후.
긴 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묶은 40대 남자가 앞문을 열고 강단 앞에 섰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앨런이라고 합니다.”
“어?”
낯익은 얼굴에 순간 내 입에서 옅은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내 투자 리스트 중에서도 별표 열 개짜리 스타트업인 이지스 머터리얼즈 창업자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