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결국 사고를 쳤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던 앨런이 번뜩 정신 차리고는 허둥지둥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어···. 음. 놀랬네요. 그래플랜에 대해서 이 정도로 잘 아시는 분이 있을 줄은… 하하하. 맞습니다. 사실 많은 연구진이 매달려온 문제지만 아직 이렇다 할 해법을 찾지는 못한 상태지요. 그렇지만 말씀하신 인터페이스 강도에 대해 말씀드리면 이지스 머터리얼즈만의 소재 표면처리 기술이 현재 개발 중입니다. 두 가지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 중인데 하나는 화학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특수 코팅을 적용하는 방식이죠. 아직 유의미한 결과값을 얻진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 그리고···. 죄송한데 두 번째 질문이 뭐였죠?”
“품질의 일관성에 대해 여쭤봤습니다.”
“아! 말씀하신 대로 그래플렌은 그래핀 층의 형태와 구조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니 그래핀 층의 결함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래핀 층의 형태와 구조를 정교하게 제어하는 것이 핵심이죠. 이를 위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나 저희는 에피택시(epitaxial) 처리 방식만 파고 있습니다. 그래핀 층을 형상하는 기판의 표면에 특정 원자나 분자를 접착시켜 원하는 형태와 구조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기법이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완전히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습니다.”
와우! 온갖 전문용어가 난무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쉽게 풀어 달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전했다.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저야말로 수준 높은 질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디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다.”
시작할 때 분명히 밝혔는데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구만.
“한국에서 왔습니다.”
“오! 코리아. 어쩐지. 똑똑한 사람이 많은 나라죠. 하하하. 몇 년 전쯤 한국에 놀러 간 적 있었는데 놀랄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카페에 깜빡하고 휴대폰을 놓고 온 거죠. 그때 느꼈던 절망과 공포란. 어후.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군요. 자포자기하며 다시 그 카페를 찾았는데 제가 얼마나 놀란 줄 아십니까? 세상에! 제 휴대폰이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골동품처럼 그 자리 그대로 있는 겁니다. 사람이 정말 바글바글했는데 아무도 제 휴대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요. 그때의 그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오우!”
앨런의 한국 여행 썰에 주변 외국인들로부터 감탄이 터져 나왔다.
‘하긴. 한국이 치안 쪽으로는 또 확실하지.’
좁은 땅덩어리에서 도망칠 곳도 마땅치 않았고, 길거리에 CCTV가 안 깔린 곳이 없는데 어떤 미친놈이 백주대낮부터 범죄 행위를 저지르겠는가?
물론 술이나 약에 취했거나, 그 어떤 미친놈이 간혹 나타날 때도 있었지만, 남의 물건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게 한국의 기본 정서이기도 했다.
“하하하. 스마트한 한국 학생의 멋진 질문 감사합니다. 혹시 다른 질문 있습니까?”
물어볼 게 많았기에 다시 또 손을 들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다행히 여기저기서 손을 드는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역시 미국이라 그런가 질문하는 행위가 무척 자연스러워 보였다.
앨런이 안경 쓴 흑인 여학생 하나를 지목했다.
“거기 여성분?”
“안녕하세요. 스탠퍼드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있는 안드레아입니다. 제가 질문드리려고 했던 걸 한국의 화학공학자께서 먼저 하셔서 당황했네요.”
화학공학자? 나를 말하는 건가?
난 뼛속까지 경영학도인데···.
“사실 그래플렌은 현재 많은 기업에서 그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곳만 해도 그래플렌 하이테크, 그래플렌텍, 그래플렌세미, 히어로 탠텍 정도가 떠오르네요. 어찌 보면 경쟁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과의 차별점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처진 안경을 치켜세우며 흑인 여학생이 앨런을 응시했다.
“꽤나 민감한 질문을 던져주셨군요. 맞습니다. 사실 그 회사들은 저희보다 업력도 오래되었고 R&D 규모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죠. 차별점이라···. 저희 이지스 머터리얼즈에서 가진 차별점은 명확합니다.”
그러더니 앨런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아까 한국 학생의 질문에 답변에도 잠깐 언급되었는데 결국 현재 그래플렌의 기술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포인트는 생산 비용을 낮추고, 품질을 균일화하여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게 만드는, 이 세 가지 포인트를 누가 먼저 선점하냐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희 이지스 머터리얼즈에서 특허를 낸 표면 특수코팅 방식과 독자적인 에피택시(epitaxial) 처리 방식 기술을 기반으로 차별점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자세히 설명드리고 싶지만, 그 이상은 회사 기밀이라 하하하. 저 큰일 납니다. 잘릴 수도 있어요.”
앨런의 너스레에 강의실엔 미약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생각보다 학생들 질문 수준이 높군요. 사실 가볍게 생각하고 나왔는데…아직 시간이 있으니 계속 질문받도록 하겠습니다.”
한텀 쉬었으니깐 이제는 다시 손들어도 되겠지?
눈치를 살피다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
내 옆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존재감 없이 앉아있던 여자가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네. 거기 모자 쓰신 여성분?”
앨런의 지목에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모자를 벗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비단결처럼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우수수 흘러내리며 가려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오우.”
동시에 주변에서 터진 미약한 탄성.
그녀의 드러난 외모가 심상치 않았다.
동양인 같으면서도 살짝 이국적인 이목구비가 아마 혼혈인듯싶었는데 절로 시선을 끄는 수려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형···. 형!”
내 왼편에 앉아있던 박성민이 조심스럽게 내 옷 소매를 잡아당겼다.
“저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여기서 내 운명을 만나게 되다니···.”
눈이 풀린 박성민이 헤벌쭉 벌어진 입으로 혼혈 여성을 멍하니 쳐다봤다.
정말 금사빠의 고유대명사가 있다면 이 자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홀딱 빠진 모양새였다.
“안녕하세요 앨런 대표님. 저는 학생은 아니고 Accel Partners의 VC 스테파니라고 합니다.”
“Accel Partners요?”
앨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나 역시 놀라서 옆에 서 있는 여자를 올려다봤다.
뜬금없이 VC가 여기서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Accel Partners라 함은 나도 잘 아는 곳이었다.
매튜의 전 직장이기도 했으니.
미국에서 손에 꼽히는 벤처캐피탈로 드롭박스, 에어비앤비, 이즈코드 등, 일반인들도 알법한 유명 기업들에 초기 투자하여 막대한 수익을 벌어드린 곳이기도 했다.
“AP VC가 여긴 왜···?”
딱히 수강 제한은 없었지만,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기에 VC가 있는 것이 의아한 듯싶었다.
“개인적으로 이지스 머터리얼즈에 관심이 많아서요. 콜드 메일보다는 직접 만나 뵙고 얘기 나누고 싶어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
이지스 머터리얼즈의 데모데이 현장 반응이 딱히 좋진 않아서 방심하고 있었는데 저런 대형 벤처캐피탈에서 치고 들어올 줄이야.
나는 영역을 침범당한 맹수처럼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스테파니를 쳐다봤다.
“오늘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가 많이 벌어지는군요. 좋습니다. 일단 들어보도록 하죠.”
“그래플렌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신소재 분야입니다. 그만큼 허와 실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죠. 그래플렌의 개발과 연구에는 상당한 비용이 소모됩니다. 원재료도 비쌀뿐더러 가장 힘든 부분은 역시 고가의 특수 장비를 구매해야 한다는 점이죠.”
누가 VC 아니랄까 봐 곧장 돈 얘기부터 들어갔다.
하지만 나 역시 궁금했던 부분이었기에 말없이 경청했다.
“거기다 그래플렌 연구는 워낙 고학력 인력을 필요로 하므로 인건비 역시 어마어마한 수준일 겁니다. 여기서 추가로 그래플렌의 특성과 성능을 평가하기 위한 실험 시설 및 분석 장비 사용료도 지불되어야겠죠. 이런 이유로 기업들이 쉽게 그래플렌 사업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지스 머터리얼즈는 현재 이러한 허들을 잘 극복해나가고 있는지, 자금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스테파니의 질문에 앨런이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이거 오늘 무슨 강연 자리가 아니고 청문회에 온듯한 느낌입니다. 하하하. 오랜만에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군요. 혹시 이거 몰래카메라 아니죠?”
그러면서 앨런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카메라 찾는 시늉을 하자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질문을 받았으면 당연히 답을 해야겠죠. 여기서 액셀파트너스 VC를 만날 줄은 생각도 못 했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플렌이란 놈은 돈 잡아먹는 하마나 다름없죠. 얘기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저희 팀이 그래플렌에 대해 처음 관심 가졌던 시기는 대학 학부 시절부터였습니다. 교수님으로부터 이론상으로 가능한 신의 물질이 있다는 말을 듣고 뭐에 홀린 듯 파고들기 시작했죠. 석박사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해놓고서도 이놈을 놓질 못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아. 그래플렌하고 담판을 짓지 못하면 계속 이 꼬라지겠구나. 그래서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래플렌 하나에 미쳐 살았다는 말을 고상하게 잘 돌려 말한다.
그리고 VC들은 이런 미친 사람들을 무척 선호한다.
원래 세상을 바꾸는 건 한 가지에 몰두한 미친 자들이 벌이는 미친 행동이 만들어낸 작은 기적에서 출발하는 법이니깐.
“다행히 학부 시절 저와 같이 그래플렌에 대해 공부했던 친구 녀석들도 같은 마음이더군요.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회사를 차리게 됐고 정부 지원 사업을 우선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랏돈은 절대 거저 주는 게 아니더군요. 돈을 받기 위한 행정 작업을 하느라 연구에 매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결국엔 투자자를 찾을 수밖에 없더군요. 운 좋게도 엔젤투자와 시리즈 A 라운드까지는 쉽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금방 한계에 부딪히게 됐죠. 당장엔 수익 창출을 할 수 없는 구조이다 보니 돈은 금방 메말랐고 지금은 한계에 부딪힌 상황입니다.”
어째 잘 가다가 신세 한탄으로 노선이 틀어졌다.
확실히 앨런의 얼굴을 보니 많이 지쳐 보이긴 했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이 그래플렌이 상용화가 가능하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때가 오기까지 물세는 바가지처럼 천문학적인 비용이 꾸준히 들어갈 것이다.
자조적인 앨런의 답변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말했다.
“카본 나노 튜브나, 금속 유리와 같은 신소재들도 같은 고난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여겨졌지만 유의미한 성과는 얻지 못하여 결국 상용화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죠. 하지만 꾸준한 연구와 투자를 통해 소위 말해 초대박을 터트렸고, 지금은 산업 전반에 없어서는 안 될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래플렌이라고 다르진 않습니다. 어려운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을 믿으십시오. 세상은 앨런 같은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는 거니까요.”
고요한 적막.
회의실 내 모든 사람이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나댔나?’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고 나만의 황금빛 주인공이 자신감 없이 축 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놈의 오지랖이 발동했다.
옆에 있는 여자는 발언권을 뺏긴 게 기분 나빴던지 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자신을 믿어라···. 하하. 고맙습니다. 큰 힘이 되는 말이군요.”
앨런이 밝은 미소로 나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 정도면 충분했기에 조용히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러자 다시 한번 마이크를 잡은 스테파니,
“앨런 대표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그렇다면 지금 이지스 머터리얼즈에서 필요한 투자금이 얼마나 되는지 대략적으로라도 알 수 있을까요?”
마치 이해관계만 맞으면 곧장 투자하겠다는 뉘앙스.
“어차피 다른 곳에서도 밝힌 사실이라 터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2,000만 달러는 필요한 상황입니다.”
2천만 달러.
원화로 260억가량 되는 거액의 돈이었다.
그 정도는 예상했던지 여자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만약 저희 액셀 파트너스에서 투자 의향이 있다고 하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의향이 있으실까요?”
저 말을 듣자마자 내 인상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이 여자가 보자 보자 하니깐 어디 남의 영업장에서 깽판이야?
“액셀 파트너스라면 당연히······.”
“만약 저희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에서 4,000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하면 보다 긍정적으로 검토하시겠군요?”
“……?”
침 발라 놓은 먹잇감을 홀라당 뺏길까봐 결국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