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구원자라도 툭 튀어나왔으면 좋겠네
“와! 저 짱개 새끼들 뭐라고 했냐! 형! 제가 가서 조지고 올까요?”
북경대 놈들이 돌아가자마자 기가막힌 타이밍에 툭 튀어나온 박성민.
“응, 지금 당장 가서 조지고 와. 애들이 싸가지가 많이 없더라. 자! 출동.”
손가락으로 등을 떠밀자 멈칫한 박성민이 혼자 씩씩 대면서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운 좋았다 새끼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이 몸이 조금 늦게 봐서 망정이었지. 아니었으면 쟤내들 다 죽었어.”
불의를 보면 누구보다 잘 참는 수재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아마도 북경대 놈들이 덩치가 있다 보니 지레 겁먹었은 거겠지.
“중국어로 뭐라 지껄이는 게 우리 욕하는 거였어요?”
“근데 오빠 중국어도 할 줄 알아요?”
“마지막에 뭐라 하고 돌아간 거에요?”
“정신없으니 질문은 하나씩만 해주렴. 중국어는 듣는 거 정도만 가능해.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너무 심하더라고. 괜히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
“형이 뭐가 미안해요. 잘하셨어요. 저 새끼들 세뇌가 제대로 됐나 보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걸 보니.”
“뭐? 순대가 지들꺼라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내가 중국 가서 먹은 음식 중에 순댓국 발톱 때도 못 미치는 음식 천지더구먼 무슨.”
“와. 형 깡다구 장난없네요. 쪽수도 많고 덩치도 큰데 그냥 노빠꾸로 박아버리시네.”
의기양양해진 표정의 박성민이 내 옆에 딱 붙었다.
“봤냐? 이게 내 소울 메이트인 대운이 형의 위엄이니라. 하하하.”
정작 당사자는 무덤덤한데 왜 지가 더 난리일까?
어찌 됐건 이렇게 된 이상 다른 학교는 몰라도 북경대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했다.
“다들 들었지? 다른 데는 몰라도 북경대는 꼭 이기자. 자존심이 걸린 문제야.”
애국이라는 연료를 투입하자 아이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래 시벌, 저 새끼들은 무조건 이기고 보자.”
“아이디어 쥐어짜네! 뭐 나올 때까지 잠잘 생각은 하지마.”
그때 일명 안경잽이라 불리는 권형석이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자. 우리 냉정하게 생각해보자고. 여기 있는 문제들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부터 버리자. 정부에서도 못한 걸 우리가 어떻게 하겠냐? 안 그래?”
“그럼 과제를 포기하겠다는 얘기 아냐?”
“상황을 직시하자는 얘기야. 해결할 수 없는 걸 해결하려고 하니깐 막히는 거라고. 대신 ‘도움’ 정도는 우리도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도움?”
애매모호한 말에 아이들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예를 들어 국내 케이스를 한번 생각해보자고. 버려지는 반려동물이 한창 늘어나던 시절이 있었잖아. 그때 유기견이 폭증해서 뉴스에도 막 나오고 그랬고.”
“확실히 유기견들이 갑자기 확 늘었을 때가 있었지.”
“그때 동물보호단체나, 유기견 봉사단체에서 캠페인 같은 걸 많이 했었거든?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반려동물 걷기 대회? 뭐 이런 것도 하고, 기부 팔찌나, 텀블러 같은 거 팔아서 후원도 하고 그랬단 말이지.”
“아! 기억난다. 나도 그 팔찌 산 적 있어. 미소 팔찌였나?”
“나도나도.”
“그런 식으로 한번 접근해보자고.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도울 수 있을 만한 거. 그게 대학생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 아니겠어?”
“그러네. 우리가 무슨 일루미나티도 아니고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냐. 교수도 우리한테 그런 걸 바라진 않겠지.”
조금씩 실마리가 보이는 듯 하자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일단 주제부터 정해보자. 내 생각엔 대기 오염하고 온실가스 배출이 제일 무난해 보이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괜찮네.”
권형석의 주장에 딱히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그럼 우리도 기부 팔찌 같은걸 만들어볼까?”
칼단발 머리가 인상적인 혜인이의 제안에 다른 아이들이 난색을 표했다.
“기부 팔찌? 그걸 우리가 만들 수 있나?”
“내가 수제팔찌 만드는 거 취미로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실이랑 펜던트만 있으면 초보자들도 쉽게 만들 수 있어.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오! 그 팔찌를 팔아서 그 수익금을 ‘Pure Earth’ 같은 국제환경단체에 기부하면···. 일주일 만에 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겠는데?”
“오오. 뭔가 착착 진행되는 느낌인데? 이러다가 1등 하는 거 아냐?”
물꼬가 트이자 들뜬 아이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표했다.
“그럼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일단 팔찌부터 만드는 거네. 혜인아 그럼 네가 팔찌 좀 맡아줘.”
“알았어. 오늘 나가서 재료 좀 찾아보고 적당한 게 보이면 사 올게.”
“오케이. 그럼 나는 캠페인 기획안을 만들어볼게.”
“좋아. 일사천리로구만. 할 거 없는 사람들은 혜인이 재료 사는 거 좀 도와주고.”
“알겠어. 짐꾼이라도 해야지.”
그때 박성민이 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형님. 이 정도면 버스 탈 수 있겠는데요? 대충 하는척하면서 조용히 묻어가시죠?”
“너 그러다가 애들한테 진짜 묻힐걸?”
“후후. 버스 외길인생. 무임승차만으로 학점 3.9를 만든 이 박성민이를 몰라도 한참을 모르시는군요.”
“응, 계속 모른 채 살고 싶다.”
그렇게 본격적인 경연이 시작되었다.
***
사흘 후.
족히 10년은 늙어버린 몰골의 학생들이 하나둘씩 강의실을 채워나갔다.
벌겋게 충혈된 안구와 떡진 머리가 그간의 노고를 말해주는 듯했다.
“으어···. 죽겠다. 3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네.”
“펜던트에 실 꿰기를 너무 많이 했더니 눈알이 빠질 것 같아.”
“야이 새끼야. 그래도 너는 그래도 뇌 비우고 하면 되는 단순노동이잖아. 나는 기획안이랑 캠페인 홍보 영상 만드느라 머리털 다 빠지는 줄 알았다고! 아오. 안 그래도 아부지가 탈모라 신경 쓰여 죽겠는데.”
“넌 이미 유망주나 다름없으니깐 그냥 내려놔 인마. 정수리가 휑하구만.”
“닥쳐!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야. 지킨다···. 반드시 지킨다.”
잠을 제대로 못 잔 후유증인지 아이들이 이상 증상을 보였다.
나도 나대로 정신없었는데 프로젝트 총괄을 맡으며 나름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리고 자칭 프로 프리 라이더께서는.
“살려줘요···. 구슬이 따라와요. 으윽···. 실이 내 몸을 옥죄고 있어.”
책상에 엎드린 채 쪽잠을 자는 박성민이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몸을 간헐적으로 떨며 의미 모를 잠꼬대해댔다.
아는 놈하고는 콩 한 쪽도 나눠 먹자는 신념에 따라 박성민의 목덜미를 붙잡고 수제팔찌를 만드는 가내수공업 현장에 투입시켰다.
처음에는 격렬히 거부했지만, 엘리스의 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더니, 밤을 새워가며 로봇처럼 팔찌를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잠시 후, 앤드류 교수가 묵직한 포스를 뽐내며 강의실에 입장했다.
“오늘은 여러분이 3일간 해왔던 과정을 간단하게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분위기는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열정을 불태운 만큼 자신 있다는 뜻이겠지.
“첫 발표는 한국의 한영대 팀입니다, 순서에 대한 이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형형한 안광을 내뿜는 마피아 보스에게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우리 측 발표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권형석이었다.
“형석아! 잘하고 와라.”
“발음 절지 말고, 연습 한대로만 해.”
학우들의 응원을 받고 권형석이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강단 위에 올라섰다.
“반갑습니다. 한영대 팀 발표자 권형석입니다. 저희가 초이스한 사회 문제는 요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대기 오염과 온실가스 배출 문제입니다. 저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 step today for the blue sky(푸른 하늘을 위한 오늘의 한 걸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캠페인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만든 기부 팔찌입니다.”
새(bird) 모양 펜던트가 달린 푸른 실 매듭 팔찌를 들어 올린 권형석.
“저희는 이 팔찌를 15$에 판매하여 판매 수익금 전액을 국제환경단체 ‘Pure Earth’에 기부하여 대기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할 계획입니다. 이상입니다.”
짝짝짝짝
약 5분여간의 발표 후, 의례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고 권형석이 꾸벅 허리를 접었다.
딱히 버벅거린 부분도 없었고 딱 준비한 만큼의 무난한 마무리였다.
하지만 앤드류 교수의 표정은 그게 아닌듯했다.
“한영대 팀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나 보군요. 일단 다른 팀 발표 들어보겠습니다.”
앤드류 교수의 날 선 지적에 아이들 얼굴이 꺼멓게 죽어갔다.
뒤이어 발표하는 팀은 공교롭게도 북경대 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 북경대가 기획한 프로젝트명은 ‘the light of a miracle’. 환경오염의 심각한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는 플라스틱병을 어떤 식으로 재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고안한 프로젝트입니다.
결과적으로 플라스틱병을 활용하여 손쉽게 조명을 만들어 낼 방법을 개발하였고, 친환경적인 요소를 부각하기 위해 태양광 전지판을 이용하여 병에 물을 채우고, 병 상단에 있는 조명을 통해 자연광을 집중시켜 발광하는 형식으로······.”
“아···. 좆됐네.”
박성민의 중얼거림에 누구도 토 다는 이가 없었다.
그 정도로 수준 차이가 극명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각국의 빈곤 지역에 전기 접근성을 높이고, 비용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우리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앤드류 교수도 드물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바로 그겁니다.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솔루션을 제시해야지, 돈을 벌어서 기부하겠다는 사고방식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그런 식이면 재벌들은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군요.”
마치 우리 들으라는 식의 말에 아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참으로 다이나믹한 변화였다.
“저희 예일대는 바다 수산자원 황폐화의 원인인 불가사리를 가공한 친환경 제설제 생각해봤습니다. 불가사리에서 추출한 다공성 구조체를 이용해 눈이 녹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염화이온을 흡착함으로써······.”
“진짜 좆됐네···.”
각 대학에서 발표를 이어갈수록 한영대 학생들의 고개는 점점 내려갔다.
시간은 지독히도 느리게 흘러갔고 모든 팀의 발표가 끝이 나자 앤드류 교수가 다시 강단에 섰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제법 훌륭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군요. 물론 그렇지 않은 팀도 있었지만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팀은 이 프로젝트의 의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길. 아직 시간은 남아있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앤드류 교수는 역시나 쿨하게 강의실을 떠나갔다.
암울해진 분위기 속에 모두의 얼굴에 수심이 깃들었다.
“하아···. 3일 밖에 안 남았는데 이거 어떡하냐 진짜.”
“야. 권형석! 어떻게 책임질 거야? 너 때문에 완전 조졌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너희들도 다 동의한 거잖아!”
“네가 강하게 밀어붙이니깐 그런가 보다 한 거지. 아후 쪽팔려서 원.”
“너 뭐라고 했냐? 다시 말해봐.”
순식간에 분위기는 험악해져갔고 결국 내가 중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그만해. 우리끼리 싸워서 뭐 어쩌자는 거야? 대책부터 생각해야지.”
“이제 와서 무슨 대책이 있겠어요. 3일밖에 남았는데.”
“하아···. 환경오염 해결해 줄 구원자라도 툭 튀어나왔으면 좋겠네.”
저 멀리서 우리 쪽을 쳐다보며 썩은 미소를 보내오는 북경대 놈들이 눈에 들어왔다.
히죽거리는 면상을 보고 있자면 절로 딱밤이 마려울 정도였다.
“구원자라···. 한번 섭외해보지 뭐.”
“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걸로 해결하는 수밖에.
때마침 적절한 구원자가 내 머릿속에 번득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