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선빵필승
산호세 대학 대강의실.
웅성웅성
프로젝트 최종 발표일이라 그런지 꽉 들어찬 강의실은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대학별로 머리를 맞댄 학생들이 마지막 점검에 한창 몰두해있었다.
이와 반대로 한영대팀은 전체적으로 요상한 분위기가 흘렀다.
“다들 엄청 바빠 보이는데 우린 너무 여유 있는 거 아니냐?
“우린 딱히 할 게 없잖아. 야 형석아. 팔찌는 몇개나 팔렸어?”
누군가의 물음에 권형석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졌다.
“한···. 20개쯤?”
“에게. 겨우 스무개? 그거 팔아서 인건비는 나오겄냐?”
“너무 만만하게 봤나 봐요. 시간이 너무 촉박하기도 했고···.”
“하아···. 완전히 망했네. 이거 이대로 올라갔다간 개망신 확정인데 어떡하냐.”
“뭘 어떡해? 안일하게 생각한 우리 잘못이지.”
“그나저나 대운이형네는 어떻게 됐으려나? 거기에다가 희망을 걸어봐야 하나?”
“거기라고 별수 있겠어? 심지어 3일 차부터 시작한 거였는데 우리보다 더 암울하겠지.”
중간발표에서 앤드류 교수에게 개박살난 이후 한영대 팀은 긴급대책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머리를 맞댄다고 없는 답이 나올 턱이 있겠는가?
엄습해오는 절망감에 자포자기하고 싶을 때쯤.
“그럼 우리 투 트랙으로 가보자.”
내 제안에 한영대 학생들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투 트랙이요?”
“어차피 시간도 없고 답도 없잖아.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수도 없고. 일단 형석이가 진행하던 건은 그대로 쭉 가고, 나랑 성민이 그리고 PPT 잘 만드는 애 하나만 붙여줘. 남은 기간 동안 가능할지는 모르겠는데···.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거니깐.”
“정말 괜찮겠어요?”
“뭐든 해봐야지.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 설마 이대로 포기 할 거야? 진짜 최악은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거야. 일단 투 트랙으로 한번 해보고 마지막에 뭘로 올릴지 결정해보자고.”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내 의견대로 조를 나누는 걸로 결론이 났다.
하나에만 집중해도 모자를 판에 인력을 둘로 쪼갠다는건 사실상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지만, 어차피 기존에 하려던 기부 팔찌 모금 프로젝트는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초강력 도박 수를 뒀다.
“형네는 뭐···. 어떻게 됐어요?”
딱히 기대하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어제 밤새워서 겨우 완성했어. 여기 있는 지희가 고생 많았지.”
지희는 갖은 개고생 끝에 만들어난 나의 성과들을 시각자료로 멋지게 만들어준 PPT 제작의 달인이었다.
“오! 그래요? 어디 한번···.”
아이들이 내 노트북 쪽으로 우르르 몰려들 찰나, 중국식 특유의 칭글리쉬(Chinglish) 발음이 뒤에서 들려왔다.
“한국팀은 여유만만이네? 웃을 여유도 있고 말이야.”
“그러게. 중간 발표 때 그런 개망신당했으면서 멘탈도 좋아. 아니, 아예 포기한 건가? 우리 같았으면 이 악물고 했을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소국의 패배자 마인드라는 거지. 하긴, 안될 것 같으면 빨리 포기하는 것도 답일 수는 있겠다.”
“차라리 너희가 원래 하듯이 우리 걸 베껴보는 건 어때? 그러면 적어도 꼴찌는 안 하지 않겠어?”
“어허, 하오위. 같은 재료를 던져줘도 나오는 요리는 천지 차이인 법이야. 괜히 쓸데없는 희망 주지 말라고.”
들으라는 식으로 큰소리 빽빽내지르고 돌아가는 북경대 놈들을 보며 아이들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특히나 다혈질인 박성민은 눈알이 돌아가 곧장 북경대 놈들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이거 놔요 형!”
“아무도 너 안 잡았어.”
“아 그래요?”
차분한 내 어투에 침착함을 되찾은 박성민이 씩씩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오! 박성민이 성질 많이 죽었다 진짜. 저 새끼들 공부만 잘했지 예절교육은 발톱에 때만큼도 안 되어있네. 공부만 잘하면 뭐해? 인간이 덜됐는데. 앞으로 저런 새끼들이 중국 실세가 된다고 생각하니 암담하다 암담해.”
너도 예전에 비슷했어 인마···.
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분위기상 차마 내뱉진 못했다.
다른 애들도 박성민의 심정과 다르지 않은지 격한 분통을 터트렸다.
“씨팔. 진짜 저 새끼들만큼은 어떻게든 이기고 싶다. 졸라게 밉상이네.”
“그러니깐. 우리한테 원한 맺힌 거 있나? 왜 우리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저 새끼들.”
“만만해 보이니깐 자꾸 툭툭 건드리는 거겠지. 하아···. 진짜 꼴찌라도 하면 어떡하냐? 저 새끼들 이때다 싶어서 존나게 깝칠 텐데···. 아오. 생각만 해도 뒷골땡겨.”
딱 그 시점이었다.
의자에 앉아 분을 삭히던 박성민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진 것이.
“우리 절대 안 져. 아니 질 수가 없어.”
“응? 뭔소리야? 이기고 싶은 마음이야 나도 굴뚝같지만···.”
“시끄럽고 다들 와서 봐봐. 이걸 보고도 질 것 같은지 직접 눈으로 보라고.”
강한 자신감이 묻어있는 박성민의 말투에 고개를 갸웃한 한영대 학생들이 우르르 노트북으로 몰려들었다.
이내 슬라이드를 한 장씩 넘길수록 아이들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져갔다.
“이게···. 뭐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이거 문제가 커질 수도 있어요. 형.”
당황한 아이들이 나를 보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향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꾸며낸 거 같아서?”
“이기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이건 너무 허무맹랑하잖아요. 구라도 적당히 쳐야 먹히는 법이지···. 이건 진짜 학교 망신에서 안 끝날 수도 있어요.”
“그래요. 오빠. 잘못한단 큰일 나요.”
“형, 이 정도면 차라리 웹소설 작가를 해보시는 편이···.”
더 놔뒀다간 리플리 증후군 환자로 몰아갈 기세였다.
“쯧쯧 다들 그렇게 성질이 급해? 마지막 장까지 넘겨봐.”
“마지막장이 무슨 의미···. 어?”
순간 찾아온 무거운 정적.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떠진 아이들의 눈이 나에게로 쏠렸다.
“헐. 이거···. 진짜에요?”
“아직도 안 믿냐?”
“아니···. 그건 아닌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지금 우리가 이길 방법은 그 상식을 파괴하는 것 말고는 없어.”
“그건 그런데···. 허.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어때? 충분하겠지?”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는지 한영대 학생들의 얼굴에 희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충분하다 마다요! 이건···. 이걸 누가 이겨요. 세상에.”
“대체 그동안 뭐 하고 다닌 거예요? 며칠 안 보이길래 포기했나 싶었는데.”
“훗. 포기? 배추 셀 때나 쓰는 거? 난 그런 거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재수 없는 북경대 놈들한테는 제대로 한 방 먹여줘야지.”
“쓰바! 됐어! 됐다고···!”
자기들끼리 얼싸안고 기뻐하는 한영대 학생들.
다른 학교 학생들이 그런 우리를 보며 쯧쯧 혀를 찼다.
드디어 미쳐버렸구나 하는 표정으로.
“일단 진정하고. 너희들이 반드시 해줘야 할 일이 있다.”
“그게 뭔데요?”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지 않겠어?”
나는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는 북경대 놈들을 눈으로 가리켰다.
“뭔 말인지 알겠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정도로 악에 받쳐있던 아이들이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요 형. 제가 이래 봬도 우리 동네 조롱경진대회 금상 출신입니다. 아주 그냥 혓바닥으로 죽여놓을게요.”
“저도 후임 갈구는 거로 영창까지 갔다 온 놈이에요. 아주 그냥 제대로 조솨놓을게요.”
각자 화려한 스펙을 내세우며 전의를 불태우는 녀석들을 보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전장에 나가 적장의 목만 베어낸다면 나머지는 이 녀석들이 알아서 해줄 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애송이들아.”
연신 우리 쪽을 힐끔거리며 낄낄거리는 북경대 놈들에게 방심하고 있다가 맞는 게 얼마나 아픈지 제대로 알려줄 참이었다.
***
“오늘은 대망의 최종 발표일이군요. 다들 준비 잘하셨습니까?”
앤드류 교수의 질문에 학생들이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말이 없는 걸 보니 다들 자신 있으신가 보군요. 아주 기대가 됩니다.”
“헙···.”
무언의 부정을 자신감으로 치환하다니, 학생들의 부담감을 증폭시키는 기술이 대단했다.
“발표 순서는 중간발표 때의 반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래야 공평하겠지요?”
공산당 고위직 뺨치는 자기 주장으로 단번에 순서를 정해버린 앤드류 교수.
결국, 첫 순서로 예일대 팀 발표자가 강단 위에 올라섰다.
“안녕하십니까. 발표를 맡게된 윌리엄입니다. 저희 예일대는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과 보전을 위한 해결책을 찾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환경에서 유익한 미생물 군집을 활용하여 작물의 생산성을 높이고 자원 사용량을 줄이는 방법을···.”
역시나 미국 동부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 학생들답게 전문적인 지식을 뽐내며 발표에 임했다.
하지만 그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앤드류 교수 지식의 깊이가 얼마나 깊고 방대한지를.
“흐음···. 접근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몇 가지 한계점이 보이는군요. 미생물 군집이 특정 작물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모든 작물에 동일한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작물들이 자랄 수 있는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이죠. 작물과 미생물 군집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제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있으십니까?”
“그건···.”
설마 경영학 교수가 이렇게 심화한 질문을 할 줄 몰랐던지 발표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서렸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발명 경진대회가 아닙니다. 국제 사회문제의 솔루션을 제안하는 자리죠.”
결국, 송곳 같은 혓바닥에 무참히 두들겨 맞은 예일대 발표자가 힘없이 터벅터벅 강단을 내려왔다.
잠정적 에이스로 여겨졌던 예일대 팀이 한방에 무너져 내리자 강의실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자. 다음. 버클리 팀.”
이후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발표자가 강단으로 올라섰고 데자뷰와 같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강단에서 내려오는 일이 연이어 반복됐다.
그 살벌한 분위기에 긴장한 한영대 학생들도 연신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앞 순서인 북경대 차례까지 다가왔다.
“저희 북경대에서 고안한 프로젝트명 ‘The light of a miracle’은 각국 빈민가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 동시에 환경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병의 재활용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시작은 역시나 무난했다.
하지만 그들도 앤드류 교수의 매서운 칼날은 피해 가지 못했다.
“발상은 나쁘지 않으나 몇 가지 의문점들이 눈에 보이는군요. 첫 번째 이를 실행하기 위해선 기술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전해야 할 텐데 빈민가에서 과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그리고 플라스틱 조명이라는 게 오히려 환경적 영향과 안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잘못된 폐기물 관리는 지역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안전성과 화재 위험에 대해서는 어떤 고려를 하셨지요?”
“어···. 음. 그건······.”
당황한 북경대 발표자가 어버버 말을 얼버무리며 애매모한 답변만 해댔다.
인상을 찌푸린 앤드류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내려오라는 손짓을 했다.
“솔루션을 만들어오랬더니 다들 희망 사항만 잔뜩 가지고 왔군요. 실망이 큽니다.”
노골적인 실망감에 강의실 내에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마지막, 한국에 한영대팀. 준비해주세요.”
앤드류 교수의 호명에 나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강단 위에 올라섰다.
좌중을 한번 쭉 훑었다.
집중력을 잃고 딴짓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오직 북경대 놈들만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라는 눈빛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한영대 발표자 송대운입니다. 저희 프로젝트명은 ‘Diet to Save the Earth’,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축산업의 영향력을 축소 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기획했습니다.”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는 앤드류 교수의 모양새를 보니.
역시나 이럴 땐 선빵필승이었다.
“그리고 우리 캠페인은 두바이 알 와슬 플라자(Al Wasl Plaza)에서 대체육 관련 캠페인으로서는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될 예정입니다.”
“…뭐라고요?”
발표 중임을 깜빡 잊은 앤드류 교수가 벙찐 얼굴로 내게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