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그곳의 대표가 정말 특별하거든요
[실리콘밸리 전설적인 VC ‘피에르 로번’, 한국의 벤처캐피탈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에 합류]‘실리콘밸리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벤처캐피탈리스트 피에르 로번이 잠정 은퇴 이후, 한국의 벤처캐피탈로 합류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에게 큰 충격을······.’
포털사이트에 ‘피에르 로번’을 검색했더니 벌써 기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어안이 벙벙하여 손에 든 맥주를 잠깐 내려놓고 휴대폰에 집중했다.
피에르 로번이 미국 경제 미디어인 블룸버그와 했던 인터뷰가 사단의 시초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이 난리가 난 것일까?
나는 홀린 듯 피에르 로번의 인터뷰 영상을 클릭했다.
“반갑습니다 로번씨.”
사회자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피에르 로번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으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피에르 로번입니다.”
“이런 공식 인터뷰는 정말 오랜만이시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벤처 투자계에 한 획을 그은 분으로서 근황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껄껄. 뒷방 늙은이가 된 저를 아직도 궁금해하신다니 감사한 일이로군요. 저는 온전히 가족을 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더니 가족들이 많이 섭섭해했거든요. 쫓겨나기 전에 지금이라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나이 먹고 쫓겨나면 어디 갈 곳도 없거든요.”
로번의 점잖은 위트에 사회자가 잔잔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로번이 집에서 쫓겨났다고 하면 어떤 회사든 두 손 벌려 환영할 텐데요? 안 그래도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잠정 은퇴 이후 VC로서의 활동을 중단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다시 활동을 시작하신다고요?”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VC로서 복귀하는 건 아닙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저희 집 강아지 로이 산책시키는 것도 힘에 부치거든요. 대신 제 경험 정도는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어느 한 벤처캐피탈의 고문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뒤에서 열심히 잔소리나 하겠다는 소리지요.”
“하하하. 로번의 잔소리라면 돈을 주고서라도 들으려 할 텐데요? 어찌 됐건 벤처 업계 입장으로서는 정말 환영할만한 일이로군요. 로번이 복귀한다니 말입니다. 거처를 어디로 두시는 겁니까? 평소 친분이 두터운 엑셀파트너스? 아니면 인사이트 펀드나 인덱스 파트너스? 궁금하네요.”
“그런 곳은 굳이 제가 없어도 잘만 돌아가는 대단한 벤처캐피탈들이죠. 저는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로 갑니다.”
로번의 말에 사회자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요? 흐음···.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식견이 모자라 어딘지 단번에 떠오르질 않는군요.”
“껄껄껄. 당연히 그럴 겁니다. 한국에서 이제 막 실리콘밸리에 착륙한 신생 벤처캐피탈이니까요.”
눈이 휘둥그레진 사회자가 로번에게 반문했다.
“신생 벤처캐피탈이라고요? 더구나 한국이면···. 타국 벤처캐피탈이란 말씀입니까? 대체 거길 왜···?”
사회자의 의문은 당연하였다.
피에르 로번정도의 위치에 굳이 타국의, 그것도 설립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벤처캐피탈로 갈 이유가 있을까?
현장 분위기가 술렁임에도 불구하고 로번은 담담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낯선 사람’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존의 학연, 지연, 혈연과 같이 강력한 인맥으로 연결된 지인보다 실제로는 별로 가깝지 않은 낯선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기회와 정보가 성공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이론입니다. 그들을 통해 몰랐던 새로운 세계와 접촉하고 지극히 가능성이 낮은 놀라운 사건들이 생겨나 거기에서 작은 기적을 만들어낼 수도 있죠. 껄껄껄. 저로서는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에서 퇴물이 된 늙은이를 받아줘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거 참 놀라운 일이군요. 로번이 복귀한 것도 놀라운데 새 둥지가 한국의 벤처캐피탈이라니 말입니다. 도대체 그곳에 무엇이 로번의 마음을 움직인 겁니까?”
제대로 된 특종이라는 생각에 사회자가 눈을 반짝이며 집요하게 로번을 파고들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곳의 대표가 정말 특별하거든요.”
“특별하다라···. 좀 더 자세히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애달픈 사회자의 종용에 입가에 미소를 그린 로번이 잠깐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짧은 정적 이후 마침내 열린 그의 입술.
“제가 벤처업계에 뛰어든지도 어느덧 40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왔죠. 그중에서는 천재에 가까운 뛰어난 사람도 있었고, 사기꾼도 있었습니다. 또는, 이런 사람이 어떻게 창업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무지한 사람도 있었죠. 당시엔 그런 사람을 가릴 수 있는 통찰력이 있다고 자신하던 때였습니다. 오만의 절정을 달리고 있을 때였죠. 그러다가 크게 혼쭐이 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이요?”
“멘사 회원에 하버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창업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모르는 분야가 없었고 뛰어난 지식을 자랑했죠. VC로서는 탐이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투자를 집행했고 정말 처참하게 망해서 회사에 큰 손실을 입히게 되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학력도 변변치 않고 오직 농사만 지어온 또 다른 창업자가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그에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내버려 두었죠. 하지만 그는 지금 세계 곡물 시장을 움직이는 거물이 되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아!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건 오만 중의 오만이었구나. 그때부터였습니다. 제가 ‘사람’보다 ‘시장’을 먼저 보기 시작한 것이.”
“전설로 불리는 피에로 로번에게도 그런 뼈아픈 과거가 있었군요.”
“그 신념을 가지고 지금껏 살아왔고, 나름 미약한 명성도 얻어오며 그럭저럭 밥벌이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딜런 대표를 만나게 되었죠. 그와의 첫 만남은 무척이나 강렬했습니다. 분명 제 인생의 절반도 되지 않는 나이임에도 마치 동년배의 노회한 기업가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그의 히스토리는 제 신념을 송두리째 뒤흔들 정도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었죠. 어쩌면 그는 내가 할 수 없던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무엇을 말입니까?”
“진실로 그 사람을 통찰하여 그 잠재성까지 끄집어낼 수 있는 투자입니다. 세상엔 많은 VC가 있고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자신들은 ‘사람’에 투자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 말을 썩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투자한다고 뻐꾸기처럼 울어대는 그들은 실상 창업자의 배경이나, 커리어, 학력과 같은 것에 현혹되어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하지만 제가 만난 딜런이라는 투자자는 달랐습니다.”
“무엇이 달랐다는 겁니까?”
“그의 포트폴리오를 본다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신기할 정도로 창업계에서 외면받는 이들에게만 투자를 해왔더군요. 더 놀라운 것은 그 어떤 맥락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성별, 나이, 학력, 산업 분야 등등. 그 어떤 것도 겹치는 부분이 없습니다. 흡사 잡화점에서 괜찮다 싶은 물건을 마구잡이로 주워 담듯 말이죠. 그럼에도 그의 투자 성공률은···. 지금까지 100%에 수렴하고 있습니다.”
“배, 백 퍼센트요?”
비현실적인 수치에 사회자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사실상 벤처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숫자였기에.
“물론 이제 막 시작한 신생기업이며, 투자한 기업도 아직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업계에 조금이라도 몸담았던 사람이면 알 겁니다. 이 성과가 얼마나 말이 되질 않는 것인지. 그래서 강렬한 호기심이 들끓었습니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남다른 분석법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의 잠재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인지 말이죠. 그래서 제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회사의 고문을 맡고 싶다고 말이죠.”
“그런 비하인드가…이거 정말 놀랍습니다. 솔직히 로번의 말이 아니었다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정도로 믿기지 않는데요. 만약 그 딜런이라는 투자자의 성과가 운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사회자의 질문에 피에르 로번의 투명한 눈동자가 형형한 빛을 내뿜었다.
“실리콘밸리의 생태계 자체가 뒤바뀔 겁니다. 모든 스타트업은 그의 컨택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거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이다스의 손처럼 신성시 되어지겠죠. 저 같이 허점 많은 VC가 아니라 진정한 실리콘밸리의 전설이 될 겁니다. 물론 아직은 어디까지나 소설에 불과하지만요.”
“허······.”
피에르 로번의 인터뷰 영상이 끝이 나자, 온몸의 힘이 풀린 나는 등받이에 힘없이 몸을 뉘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인터뷰야?”
아니, 이게 인터뷰는 맞는 것일까?
거의 나를 무슨 신비의 기린아(麒麟兒)로 만들어 놓았다.
지나가다 본 뉴스였다면 ‘투자 업계에 엄청난 신성이 등장했구먼?, 그 피에르 로번이 저렇게까지 치켜세우다니? 대단한걸?’ 껄껄껄 웃으며 봤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 당사자였다.
“로, 로번···. 아직 안 주무시겠지?”
나는 다급히 로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연결음이 울리다가 마침내 전화를 받은 로번.
“로번? 인터뷰···. 이거 맞아요?”
“이제야 봤나보군요. 우선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물론 딜런의 개인정보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온 젊은 투자자라는 것을 제외하고는요.”
“아. 인터뷰는 딱히 상관없는데 사실 전 그 정도로 대단한 투자자가···.”
“딜런은 이미 충분히 대단한 투자자이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 부심이요?”
“VC에게 자만은 독이지만, 지나친 겸손은 그것보다 더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딜런을 지켜보니 이상하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더군요.”
“제가 나대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아서···.”
“방송 출현을 밥 먹듯 하고,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쌓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연예인이 될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는 전혀 없죠. 제 말은 VC로서의 영향력은 키울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확고부동한 그의 말에 순간 내 입이 얼어붙었다.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이 바닥은 우습게도 업계의 소문과 명성에 어떠한 결정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딜런도 못 느끼진 않았을 거고요.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는 건 사기꾼이지만, 달성한 업적을 적절히 홍보하여 본인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VC에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습니까?”
듣다 보니 살짝 설득당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음습···. 아니 조용하게 다니긴 했지.
무엇보다 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 바닥에서 개인의 커리어와 명성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제대로 된 미팅도 하지 못한 스타트업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모든 게 달라질 겁니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다음날부터 바로 알 수가 있었다.
내 휴대폰이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