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동양에서 온 슈퍼 엔젤 (Super Angel)
정말 거짓말처럼 다음 날부터 그야말로 폭발 직전까지 달아오르기 시작한 내 휴대폰.
“네? 어디시라고요”
–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딜런 대표님 맞으시죠? 포브스 알렉스 기자입니다. 이번에 피에르 로번씨가 고문으로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인터뷰 좀 가능할까요?”
포브스? 포브스 선정 뭐시기 할때 그 포브스?
“제가 당장은 얼굴을 노출할 생각이 없어서요. 네? 얼굴 노출은 안 해도 된다고요? 어···. 일단 조금만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블라인드 인터뷰로 진행해도 좋으니 긍정적인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뚝
“이게 무슨 일이다냐?”
포브스, 포춘, 월스트리트저널,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등,
신문이나 뉴스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미국 경제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맞나요?”
“네 맞습니다만.”
– 반갑습니다. 저는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두고 있는······.”
동시에 생전 처음 듣는 스타트업들에게서 투자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완벽히 주객이 완전히 전도되어버린 상황.
이전까지는 내가 스타트업을 직접 찾아가 투자 의사를 물어봐야 했다면, 지금은 미국 곳곳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쏟아졌다.
“아니, 도대체 내 연락처는 어떻게 안거야?”
이게 더 신기했다.
미국에 와서 내 명함을 뿌린 적이 몇 번 되지 않거늘.
어떻게 귀신같이 찾아서 연락을 해오는 것일까?
“로번의 영향력이 이 정도였어?”
물론 실리콘밸리의 전설로 불린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말 한마디가 이 정도의 파급효과를 만들어낼 거라고는 솔직히 예상치 못했다.
“이거···. 무슨 나를 성공의 토템쯤으로 만들어놨으니 원.”
피에르 로번의 인터뷰 여파가 요상한 결과로 빚어지고 있었다.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의 대표는 잠정 은퇴를 했던 피에르 로번을 다시 복귀시켰을 정도의 막강한 능력자이며, 뒤에는 어마무시한 배경까지 갖추고 있다는 소문.
더불어 혜안과 통찰력이 가히 신기에 가까운 수준이어서 그의 선택을 받은 스타트업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풍문.
그와 동시에 내게 투자 받았던 스타트업들까지 덩달아 재조명받으며 실리콘밸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고 한다.
“이거···. 이렇게 놔둬도 되나?”
물론 피에르 로번의 조언대로 VC로서의 명성과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길의 크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메마른 초원에 타오르기 시작한 들불처럼 실리콘밸리의 핫이슈로 단번에 급부상해버린 것이었다.
그 불길이 너무 뜨거워 나까지 타버릴 지경이었지만 이내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털어냈다.
“아냐.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야. 대운이 너 인마 잘 알잖아. 거대한 해일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뱃사람들 사이에선 그런 말이 있다.
‘평화로운 바다는 숙련된 선원을 만들지 못한다.’ 즉 해일과 같은 풍파를 겪어야 더욱 강해지고 배우는 것도 많다는 뜻이었다.
“역시 바다를 떠올리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져.”
원양어선을 타며 바다에서 겪었던 모든 것들이 이토록 내 인생 전반을 바로잡아주는 지침이 될 줄이야.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모든 감정은 결국 파도와 같은 것이다.
눈앞에 거대한 파도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 두려운 마음이 절로 들지만, 나는 알고 있다.
막상 시간이 지나서 해변에 도착하는 것은 볼품없고 얕은 거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문득 원양어선 1년 차에 조업을 마치고 선장님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당시 날씨가 좋지 않아 집채만 한 시커먼 파도가 선체를 때려대는 통에 배가 휘청휘청했고 겁에 질린 나는 난간만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야 인마. 그렇게 무섭냐?”
“선장님은 저 파도가 안 무섭습니까? 막말로 파도 때문에 배가 뒤집히기라도 하면 다 죽는 거 아닙니까?”
덜덜 떨리는 내 목소리에 거칠게 일렁이는 바다를 주시하던 선장이 내게 말했다.
“당연히 무섭지 새꺄! 근데 바다의 본질을 조금 엿보고 나면 조금 덜 하긴 해. 이 파도라는 놈은 말이야. 인생이랑 비슷해서 저항하는 것보단 유연한 자세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 그리고 그 파도를 넘어설 수 있을 때 진짜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법이지. 아마 지금 네놈은 저 꼰대 새끼가 뭔 개소리 하나 싶을 거다. 하지만 언젠간 너도 어엿한 뱃놈이 되면 깨닫게 될게야.”
선장님의 말대로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은 안다.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거친 풍랑을 이겨내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자 맑게 갠 날씨처럼 머리가 청명해졌다.
이내, 다시 휴대폰을 손에 쥔 나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방금 통화했던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딜런입니다. 인터뷰 일정 잡으시죠. 그때 괜찮습니다. 네. 그때 뵙겠습니다.”
뚝
나는 파도와 어우러져, 심연에서 피어나는 소리와 함께 세상에 나를 드러내기로 했다.
***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렉스입니다.”
포브스 본사에 도착하자 알렉스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딜런이라고 합니다.”
알렉스는 나를 스튜디오로 안내하였고, 곧장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실리콘밸리 VC의 전설. 피에르 로번을 영입하여 순식간에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딜런 대표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딜런입니다.”
“딜런 대표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저 역시 여쭤보고 싶은 게 많습니다. 우선 첫 번째,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는 정말 특이한 벤처캐피탈입니다. 1인 법인으로 시작하여 지금껏 그 어떤 펀드 레이징 없이 자체 자본만으로 투자를 집행하였는데요. 리스크가 어마어마할 텐데 이런 투자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자유로운 결정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제 모국인 한국에선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제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의 면면을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초창기엔 모두에게 외면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살펴본 알렉스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군요.”
“만약 외부자금을 통한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금융적 제약이나 LP들의 요구사항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겠죠. 또 한 가지 이유는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제 투자 원칙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 제 안목에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평가 받는 스타트업을 발굴하여 함께 부딪혀가며 성장해가는 기쁨은 벤처캐피탈로서 더할 나위 없는 성취감을 느끼게 하거든요”
자친 오만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겸손이 깃든 뉘앙스가 이를 자신감으로 비치게 했다.
“안목에 자신이 있다고 하셨는데 딜런 대표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기준이 어떻게 되십니까? 지금 보고 있는 포트폴리오만 봐서는 도저히 감이 오질 않는군요.”
혼란 가득한 알렉스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올뻔했다.
그럴 만도 하지. 이런 중구난방식의 일관성없는 투자 포트폴리오라니.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됐다.
‘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해당 스타트업의 잠재성을 보고······.’
이런 게 가장 정석적이긴 하겠지.
마치 수능 만점자에게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었을 때 ‘교과서 위주로 예복습만 철저히 했습니다!’와 다를 바 없는 답변이었으니깐.
하지만 굳이 여기까지 나와서 그런 틀에 박힌 말을 해야 할까?
썩 내키지 않았다.
“아마 업계 사람들이 제 포트폴리오를 본다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아마 ‘이거 미친놈 아냐?’ 라고 욕을 할 수도 있겠군요, 그들 입장에선 이단에 가까울 테니까요. 물론 저 역시 기본적인 분석은 하고 스타트업을 선별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기본적인 절차일 뿐. 저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 ‘감’과, 제가 해당 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는 ‘여지’가 보이는가?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다소 파격적인 발언에 알렉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좀 더 자세히 설명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벤처투자라는 업에 뛰어든 이유는 단순히 돈만 벌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미 분에 넘치는 부를 이루기도 했구요. 그것보다는 조금만 서포팅하면 꽃을 피울 수 있는 묘목들이 다른 요인으로 인해 시들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첫 투자가 이루어졌고 저는 그들을 가족이라 생각하며 함께 으쌰으쌰하며 난관을 헤쳐나갔습니다. 그 과정은 너무도 황홀했고, 또 보람찼죠. 그때부터 저는 다른 VC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스타트업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겁니다.”
“흐음···. 확실히 색다른 관점이긴 하군요. 본인의 서포팅으로 포텐을 터트릴 수 있는 스타트업만 찾아나선다라. 어찌 보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는 발언 아닙니까?”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경영권에 간섭하거나 그렇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현재 마주한 허들을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나가는 거죠. 비록 제가 이 업을 시작한 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하나 깨달은 게 있습니다. 벤처 투자라는 것은 절대 ‘정답’이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도(正道)’는 존재하죠.”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저만의 투자 철학에 따라 투자 활동을 했고,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좋은 성과를 이뤄왔습니다. 모든 건 결과로 증명하는 법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봤자 금방 실체가 드러나게 되어있는 게 이 벤처투자죠. 앞으로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 주시면 될 듯합니다.”
말을 잃은 알렉스 기자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포브스 기자 생활을 하며 많은 VC를 만나왔지만, 딜런 대표는 정말 파격 그 자체이로군요. 맞습니다. VC는 결과로 증명하는 법이죠. 그리고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것을 멋지게 증명해왔고요. 앞으로의 행보를 저 역시 응원하겠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의 최종 목적지는 어떻게 됩니까?”
짧지만 묵직한 질문이었다.
찰나의 상념을 마치고 무거운 입술을 뗐다.
“제가 목표하는 지향점은 간단합니다. 혹여 투자한 스타트업이 망하더라도 저를 다시 찾아준다면 기꺼이 다시 투자하겠습니다. 제일 힘들 때, 제일 먼저 찾아가는 VC가 되겠습니다. 최후에는 혁신의 심장이라 불리는 실리콘밸리를 넘어 전 세계 모든 스타트업들이 바라고 선망하는 그런 벤처캐피탈이 되겠습니다.”
이는 나 스스로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
인터뷰 기사가 포브스에 실리며 실리콘밸리를 또다시 뜨겁게 달궜다.
누군가는 보면서 오만하다고 욕을 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강한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나 확실한 건 업계 사람들에게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라는 이름은 확실히 각인 되었다는 점이었다.
물이 들어왔으니 노를 저을 생각에 발 빠르게 움직이며 투자 목록에 남아있는 스타트업과 접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내가 보낸 콜드 메일을 스팸 취급하던 이들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나를 마주했고, 허무할 정도로 투자가 쉽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투자 미팅을 가졌고 어느새 실리콘밸리에서 소문 하나가 떠돌기 시작했다.
‘동양에서 온 슈퍼 엔젤 (Super Angel)이 실리콘밸리를 뒤흔들고 다닌다.’
그렇게 나는 모든 파종(播種)을 끝마치고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 귀국행이 이 정도 금의환향이 될 것이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