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차 뽑으러 가서 생긴 일
[Mercedes-Benz]특유의 은빛 삼각별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검은 간판을 올려다봤다.
“내가 이런 데를 다 와보네.”
새삼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나는 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알아갈 시간이 없었다는 게 더 정확했다.
기숙사와 공장만 오가는 인생에서 차가 무슨 필요 있겠는가.
내 또래 남자애들은 캐피탈이나 심지어 대부업체까지 이용하여 외제차를 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솔직히 미친 짓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 달라졌다.
나에겐 100억 원이 넘는 자산이 있었다.
차 한 대 산다고 휘청거릴 적은 돈이 아니었다.
더구나 달러 투자로 10억이라는 수익까지 얻었다.
“앞으로 학교에 다니려면 차 한 대 정도는 필요하지.”
왜 누구나 한 번쯤 꿈꾸지 않는가?
멋진 자가용을 타고 등하교하는 나이스한 대학생의 모습을.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왜 그 많은 차 브랜드 중 하필 벤츠냐고.
답은 간단했다.
벤츠는 ‘성공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었으니깐.
예전에 다니던 프레스 금형 업체 사장님이 타고 다니던 차가 바로 벤츠 S클래스였다.
대표 전용 주차 칸에서 고고한 자태로 반짝이는 삼각별 로고를 보자면 자수성가한 남자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들어가자.”
나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매장에 들어섰다.
웅성웅성
매장 안은 차를 구경하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깔끔한 포마드 스타일의 양복 입은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차 좀 보러 왔습니다.”
남자가 내 행색을 빠르게 스캔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 그러시군요. 일단 자유롭게 둘러보시고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불러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느긋한 걸음으로 매장을 거닐며 휘황한 조명을 받아 번쩍이는 다양한 차들을 둘러봤다.
차량 곁에는 모델에 관한 설명과 브랜드에 관한 스토리가 영상으로 흘러나왔다.
3층에는 형형색색의 스포츠카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왜 차를 보며 섹시하게 잘 빠졌다고 얘기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스포츠카 특유의 매끈한 유선형 라인은 남자라면 누구나 혹 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그때 딜러 하나가 나에게 붙어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찾으시는 모델이 있으신가요?”
“아뇨. 그냥 둘러보고 있어요.”
“남자라면 역시 스포츠카죠. 최고 속력이 350km까지 나와서 어딜 가더라도 지각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인생을 조기마감 하지 않을까요?”
실없는 농담을 던진 딜러는 내가 구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금세 다른 고객 쪽으로 붙었다.
3층을 빠져나와 4층으로 향했다.
“스포츠카···. 멋있긴 한데 역시 내 스타일은 아냐. 남자라면 모름지기 SUV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남자다운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달까?
SUV 라인업이 쭉 전시되어 있는 4층을 돌아다니다 구석에 전시된 차 한 대가 눈에 딱 들어왔다.
홀린 듯 차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G63 AMG]“오우···. 완전 내 스타일.”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거대한 흑곰을 연상케 하는 각진 블랙 바디는 강인함과 동시에 고급스러움이 흘렀다.
다급히 지나가는 딜러 하나를 붙잡았다.
“저기. 이 차는 뭔가요?”
“아. 이놈이요? 혹시 지바겐이라고 못 들어보셨어요?”
“네. 처음 들었습니다. 차가 굉장히 멋지네요.”
“지바겐을 처음 들어보셨다니···. 차에 크게 관심이 없으셨구나. SUV 라인업 중에서는 가장 인기가 많은 모델입니다.”
살짝 귀찮음이 묻어나왔지만, 딜러는 차량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혹시 한번 시승해볼 수 있나요?”
“죄송한데 저희 매장에 당일 시승이 불가능해서요. 그리고 이 차 가격이 2억 5천이 넘습니다. 고객님.”
살 것 아니면 그냥 가라는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다.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부티 나 보이는 사람들이 시승을 요구하자 딜러들이 당연하다는 듯 시승 안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저들 모두가 사전에 시승 요청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냥 다른 매장으로 갈까 고민이 들 때쯤.
딜러의 어깨너머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승 가능합니다 고객님.”
고개를 돌린 딜러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지, 지점장님.”
깔끔하게 올린 앞머리에 얇은 금테 안경을 두른 중년 남자가 서늘한 눈으로 딜러를 쳐다봤다.
“이승호 대리. 우리 매장이 언제부터 당일 시승이 불가능했죠?”
“그, 그게···. 이 손님이 차를 자꾸 만지작거리는 바람에···.”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시전하는 딜러를 보며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형편없군요···. 당장 고객님한테 사과부터 하세요. 다른 일 알아보고 싶지 않으면.”
서슬 퍼런 지점장의 경고에 안색이 창백해진 딜러가 땅에 닿을 듯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생계가 달린 문제여서 그런지 딜러는 비굴할 정도로 고개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뭘 모르고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아···. 네 뭐. 다음부턴 그러지 마세요. 즐거운 마음으로 왔는데 기분 망칠 뻔했으니까요.”
내가 사과를 받자 지점장이라 불린 사람이 마감 전에 한번 들리라는 말과 함께 딜러를 내려보냈다.
지점장은 나에게 구십 도로 허리를 접으며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지점장으로서 직원 교육을 제대로 못 한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해당 직원은 내부 징계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아 보이는 사람이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허리를 숙이자 주변에서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지점장의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면 충분합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어떤 차가 마음에 드시는지요?”
딜러들과 달리 지점장은 무척이나 젠틀했고 고객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
“이 차가 마음에 듭니다. 지…바겐? 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제가 차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요.”
위풍당당하게 세워진 검은 SUV 차량을 가리키며 물었다.
“지바겐 G63 AMG.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지닌 멋진 차죠. 누군가는 비싼 갤러퍼라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바겐은 많은 남자들의 드림카이며 영앤리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호오…”
영앤리치.
나에게 딱 들어맞는 단어가 아닌가?
어쩐지 이 차가 더욱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연비는 5KM밖에 안 되지만 8기통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우렁찬 배기음은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585마력의 출력과 86.6 토크는 가솔린 차량에서는 쉽사리 느낄 수 없는 굉장한······.”
목소리는 조곤조곤했지만, 차를 잘 모르는 나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 설명에 감탄이 들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 연예인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대씩은 꼭 가지고 있는 게 바로 이 지바겐입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나, 왕족, 심지어 교황까지 선택한 게 바로 이놈이죠.”
지점장의 차분하고 귀에 쏙쏙 박히는 목소리에 나는 점차 몰입되어갔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물론 고가의 차량이긴 하지만 더 비싼 차가 수두룩한데 왜 이 지바겐은 꼭 한 대씩 가지고 있으려고 하는 걸까요?”
나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답은 간단합니다. 지바겐만이 가지고 있는 스페셜하면서 독보적인 감성 때문입니다. 매장을 쭉 둘러보셔서 아시겠지만 요즘 시대에 저런 궤짝 같은 투박한 디자인에 하드코어 오프로더는 흔치 않거든요.”
모범생처럼 경청하는 내 태도에 지점장도 흥이 났는지 설명을 이어갔다.
“지바겐이 처음부터 고급 SUV가 된 건 아닙니다. 시작은 군용차로 만들어졌거든요.”
“군용차요?”
“재밌는 얘기하나 해드릴까요? 지바겐의 시초는 원래 이란에서 벤츠에 주문제작으로 의뢰한 차였습니다. 요구는 간단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잘 굴러가는 4륜차’를 만들어달라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하지만 절대 쉽지 않은 요구였습니다. 개발까지 거의 10년이 걸렸으니.”
“허억 십년···.”
“그렇게 고생을 해가며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었는데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집니다. 의뢰했던 이란 왕조가 혁명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겁니다. 벤츠로서는 황당했겠죠. 결국, 개발비라도 뽑자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지바겐을 민간용으로 팔기 시작합니다.”
“오호. 그때부터 인기가 많았나보군요.”
“그럴리가요. 처음엔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죠. 엄청 튼튼하고 잘 만들었다고. 특히 여러 나라의 군에서 지바겐을 미친 듯 주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황이 흰색 지바겐을 타고 다니는 영상이 전 세계로 퍼지며 초절정 인기를 구가하게 된 거죠.”
지점장이 늠름한 자태로 전시된 지바겐의 보닛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솔직히 단점도 많은 차입니다. 그래도 산 사람들은 모두 만족합니다. 그만큼 매력이 넘치는 녀석인 거죠.”
“마음에 듭니다. 계약할게요.”
더 볼 것도 없었다.
마치 자전거라도 사는듯한 심플한 구매 결정이었지만 지점장은 침착하게 물었다.
“G63 AMG 모델의 기본 가격은 옵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약 2억 1000만 원 선입니다. 하지만 이 모델 같은 경우는 한정판으로 출시된 모델이라 2억 6천 정도는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 내 자산에서 2억 6천 정도의 지출은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지점장을 보며 말했다.
“그 정도면 괜찮네요. 계약서 쓰시죠”
“후회 없으실 겁니다. 일단 1층 고객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지점장이 나를 응접실로 데리고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건네받은 나는 지점장과 옵션에 관한 협의를 했고, 직원의 무례에 미안하다면서 이것저것 서비스도 마구 집어 넣어줬다.
“다 좋은데 차는 언제쯤 받아 볼 수 있을까요? 제가 당장 한 달 후부터 차를 타고 다녀야 하거든요.”
“보통 차량 출고 시기는 빨라도 3개월. 인기 모델의 경우에는 1년도 넘게 걸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차량 출고가 그렇게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처음 안 나는 당황했다.
“그, 그래요? 곤란한데···.”
자신이 계약하려는 지바겐은 인기 모델이라 했으니 출고 기간도 짧지는 않을 터.
당분간은 그냥 택시나 타고 다녀야 하나 고민이 들 때쯤 지점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고객님은 운이 좋으시군요. 시기를 잘 맞춰서 오셨습니다.”
“제가요?”
“요즘 기준 금리가 올라 캐피탈까지 막히면서 계약 취소 건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출고 예정이었던 지바겐 1대도 고객님께서 계약 취소를 요청하셨구요.”
“오. 그러면···?”
“지금 계약하시면 이주 후 출고 가능합니다.”
“딱 좋네요.”
될 놈은 된다고 근래 뭘 해도 잘 풀리는 느낌에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그렇게 계약을 마무리한 나는 지점장의 깍듯한 배웅을 받으며 기분 좋게 매장을 나왔다.
유독 길게 느껴졌던 오늘 하루가 이렇게 끝이 났다.
***
3주 후.
작열하는 태양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검은색 지바겐 차 한 대가 한영대학교 정문을 통과하자 등교하던 학생들의 시선이 일순간 차 쪽으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