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대한민국 인걸상
청와대 영빈관.
주로 국빈들을 위한 공식행사나 연회가 열리는 영빈관 홀에는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수직선과 수평선이 두드러진 외관은 건물의 권위를 강조하는 듯했고, 찬란히 발하는 황금빛 샹들리에는 화려하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고아한 상아색 벽면에는 금빛 봉황과 무궁화, 태극무늬, 월계수를 형상화한 대통령 표장이 새겨져 있었다.
홀 곳곳에 배치된 원형 테이블에 한자리 차지한 나는 티 안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느라 바빴다.
그리고 내 옆에는 익숙한 인물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장원아.”
“하하하. 저야말로···. 제가 청와대를 다 와보네요.”
“나도 마찬가지야.”
한국대 해커톤에서 만나 이제는 돈독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 이장원이었다.
그 역시 유니콘 기업을 탄생시킨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인걸상을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형은 자주 오지 않았어요?”
“내가 청와대 올 일이 뭐가 있어?”
“그래요? 의외네. 형 정도면 밥 먹듯이 드나들 줄 알았는데.”
얘는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비단 장원이뿐만 아니다.
내 주위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도 스펙타클했다.
누구는 나를 정계의 흑막으로 보고 있었고, 누구는 정체를 숨긴 재벌 4세로 보는 이도 있었다.
상상력이 뛰어난 어떤 이는 나를 정체를 숨긴 국정원 요원으로 알고 있기도 했다.
‘내가 뭘 했다고?’
라고 하기엔 비상식적인 일들을 많이 하고 다니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국정원은 너무 갔지.
기껏해야 투자로 밥 벌어 먹고사는 조금 독특한 자영업자일 뿐인데.
잠시 후, 깔끔한 양복 차림의 남자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한눈에 봐도 ‘나 아나운서요!’ 하는 인상이었다.
“청춘을 웃게 합니다! 열정을 꿈에 투자할 수 있도록, 청춘을 꿈꾸게 합니다! 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안녕하십니까. 오늘 행사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 신명환입니다. 오늘 행사는 ‘대한민국 인걸상’ 수상자로 선정된 30명에 대한 시상과 축하를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수상자분들께 뜻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 행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우. 딕션이 끝내준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콕콕 틀어박히는 느낌.
역시 말하는 게 직업인 아나운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대한민국 인걸상!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일어서서 태극기를 바라봐주시길 바랍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자 익숙하면서 웅장한 멜로디와 함께 맹세문이 흘러나왔다.
그때 내 눈에 왼손으로 휴대폰을 잡고 딴짓을 하는 인물이 포착됐다.
몽골인 뺨치는 시력을 자랑하는 내 눈에 들어온 푸른 물결은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쯧쯧. 신성한 국민의례 중에 코인 창이나 열고 있다니.’
나이도 지긋해 보이는 양반이 잘하는 짓이다.
심지어 수익률도 -90%에 육박한 것이 탈출도 힘들어 보였다.
‘그러게 코인 같은 건 왜 해가지고.’
코인으로 폭망했다가 코인으로 흥했던 놈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싹 접지 않았던가.
더구나 내가 녹스 코인을 팔았던 때와 지금 시세를 비교해보면 이건 도저히 같은 코인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100억이 하마터면 100만 원이 될 뻔했으니···. 진짜 그때 팔았던 게 신의 한수였지.’
앞으로 코인 따위는 쳐다도 볼 생각이 없었지만, 눈앞에 딴짓하는 저 양반 덕분에 그 다짐이 더욱 굳건해졌다.
“다음은 오늘 행사를 위해 참여해주신 내빈 여러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참석해주셨습니다.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마지막으로 박창수 대통령께서 참석해주셨습니다.”
드디어 실물로 한번 뵙는구만.
동네 만둣집 사장님 같은 푸근한 인상으로 허허 웃고 있긴 했지만, 확실히 일국의 대통령답게 특유의 포스가 있었다.
“내빈 여러분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어후 지겨워. 대체 저런 축사는 대체 왜 하는걸까?
제대로 듣는 사람도 없구만.
얼씨구? 저기는 경청하는척하면서 코까지 판다.
“다음은 간단한 축하 공연이 준비되어있습니다.”
혹시나 여자 아이돌이 나오나 살짝 기대했으나 국악 한마당 공연이었다.
생각보다 흥이 나는 무대에 어깨가 들썩들썩할 정도로 공연은 꽤나 흡족했다.
“이제 본격적인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상은 박창수 대통령께서 해주시겠습니다.”
드디어 대망의 시상식이었다.
이걸 위해 얼마나 돌아왔던가.
“첫 번째 수상자는 서울 지역. 한영대학교 송대운 님입니다.”
첫 수상자는 영광스럽게도 바로 나였다.
물론 사전에 언질을 받았기에 딱히 놀라진 않았다.
나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단상 위에 올라섰다.
“대한민국 인걸상! 한영대학교 송대운. 위 사람은 지혜와 열정, 창의적 사고, 배려와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탁월한 성취를 보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우수 인재로 선정되었기에 대한민국 인걸상을 수여합니다.”
반백발의 박창수 대통령이 내게 대통령 명의 상장을 건네며 목에 금빛 메달을 걸어주었다.
“송대운 님은 향후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갈 금융 인재로서 수많은 창업 기업에 투자하여 뛰어난 성과를 이룸과 동시에 해외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하여 국위 선양에 기여하였습니다.”
짝짝짝짝
동시에 터져 나온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
“젊은 나이에 대단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활약 부탁드립니다.”
격려와 함께 박창수 대통령이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후부터는 거의 재방송이나 다름없었다.
“이하 내용은 같습니다.”
“이하 내용은 같습니다.”
사회자인 신명환 아나운서가 로봇처럼 같은 멘트만 반복했고, 마침내 서른 명의 수상자 모두가 상장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수상자 전체를 대표하여 ‘한영대 송대운’ 군이 수상 소감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지만 나는 담담한 기색으로 다시 한번 단상으로 향했다.
짧은 한숨을 내쉬고 좌중을 한번 훑었다.
앞자리에 앉아있는 높으신 양반들과 후미에 잔뜩 몰려있는 기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 앞에 나선 자리였지만 딱히 긴장되거나 부담되진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한영대 재학생이자 사람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 송대운입니다.”
사실 주최 측으로부터 수상 소감을 요청받았을 때 당연히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다 돌연 생각을 바꿔먹었다.
이런 공식 석상에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갓난아기 때 골목에 버려져 보육원에서 키워졌습니다. 송대운이라는 이름과 주민번호는 전부 보육원에서 만들어준 거죠. 보육원 시절을 돌이켜보면···. 암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이들은 많았지만 돌봐주는 선생님들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제대로 된 관리가 될 수 없었거든요. 우리끼리 실미도라는 영화를 보며 차라리 저기에 가는 게 더 좋겠다며 진지하게 얘기 나눈 적도 있었고, 우리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면 진짜 세상이 뒤집어지겠구나 라고 속삭이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 유년 시절 스토리에 연회장 공기가 살짝 무거워졌다.
“원해서 고아가 된 건 아니었지만 대한민국에서 고아로 살아간다는 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고달픈 일입니다. 학창시절 반에 물건이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제가 지목당하게 됩니다. 저는 그 어떤 반론도 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아무도 제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란 걸 잘 알았거든요.”
이건 내가 직접 겪은 감동 실화였다.
체육 시간에 누군가의 물건이 없어지면 1차 적으로 나부터 용의 선상에 올랐다.
분명 방금까지 같이 운동장에서 뛰어놀았음에도 말이다.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어리고 약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부터는 그저 반에 물건이 없어지지 않기만을 매일 기도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점차 고아라는 사실이,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홀로 버려진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과거 얘기를 하다 보니 습자지 젖어들듯 가슴이 먹먹해져갔다.
이제는 괜찮을 줄 알았더니 나도 참 주책이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빨리 커서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가만히 있는 저를 괴롭힌 사람들과 나를 버린 부모에 대해 말이죠. 우습게도 당시에는 그게 삶의 목표였습니다.”
좋은 자리에 너무 암울한 얘기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이 말을 꼭 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보육원에서 나가야 하는 그때였습니다. 그렇게 떠밀리다시피 자립이 시작되었습니다. 자격증과 기술,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복수는커녕 삶의 무게에 짓눌려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바빴죠. 그러다가 욕심에 눈이 멀어버렸고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큰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살면서 처음으로 안 좋은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모든 걸 끝내기엔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하더군요. 그래서 원양 어선에 올랐습니다. 제 과오를 책임지고 모든 걸 새로 시작하기 위해. 그렇게 5년이 흘렀습니다. 뒤늦게나마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이 될 수 있었고, 사업도 제법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네요. 생각해보면 인생은 정말 어떻게 흘러갈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게 맞는 말 같습니다.”
내 인생 스토리가 요즘 유행한다는 웹소설과 비슷할 정도로 극적이었을까?
영혼 없이 앉아있던 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긴, 나도 내 얘기만 아니었으면 무척이나 흥미롭게 들었을 것이다.
“보통 보육원 출신들은 타인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남은 인생을 비관하게 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오른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저 송대운. 비록 고아에 보육원 출신이지만 누군가에겐 용기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실제로 보육원에서 퇴소할 때가 되면 먼저 나간 형누나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귀가 열린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암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범죄자가 되었다거나, 아예 소식이 단절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곧 퇴소를 앞둔 입장으로서는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성공한 사람도 있다는걸 보육원 출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긴 시간 동안 고아로 살아왔고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저는 누구보다 가족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 많은 분이 저에게 조언과 격려를 해주셨고 그분들이 모두 저의 가족이었습니다.”
물론 관점의 차이였다.
하지만 그 차이가 인생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 수 있으며, 더욱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한국에는 240여 개의 보육원이 있고, 매년 3천여 명의 아동들이 사회로 내던져집니다. 물론 나라에서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지만,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자립’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입니다. 그런 부분에 더욱 많은 관심 가져 주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길었던 수상 소감이 끝이 나자 짧은 정적 이후 우레와 같은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동시에 묵은 때를 벗겨낸 듯한 개운한 청량감이 머릿속을 화하게 감돌았다.
자리로 돌아가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장원이가 격하게 손뼉을 치며 나를 맞이했다.
“형···. 완전 감동이에요.”
“쪽팔리니깐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렴.”
막상 내려오니깐 민망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렇게 거창했던 ‘대한민국 인걸상’ 시상식이 끝이 났고, 이후에는 수상자들끼리 서로 친목을 다질 수 있는 뒤풀이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