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서로에게 득이 될테니까요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께름칙한 미소를 보이며 화장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김현철 도지사의 보좌관.
“무슨 얘길 하시려고 화장실까지 따라오셨을까요? 저도 궁금하네요.”
정말 궁금했다.
대체 무슨 얘길 하고 싶어서 나이도 지긋한 양반이 내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 냄새나는 이곳까지 따라온 것일까?
“여기 말고 조용한 데로 자리 옮기실까요?”
“그러시죠.”
남자를 따라간 곳은 빌딩 옥상이었다.
비밀스러운 얘기를 나누기엔 아주 제격인 프라빗한 공간.
“담배 태우십니까?”
“아니오. 끊었습니다.”
“하하. 저도 빨리 끊어야 되는데 마음 같지가 않네요. 한 대만 피워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중년 남자가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남자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뿌연 연기가 눅눅한 바람을 타고 흩뿌려졌다.
“후우···. 역시 담배는 옥상에서 피우는 담배가 제일 맛있습니다. 하하.”
“도지사님이 워낙 주옥같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제가 밥을 제대로 못 먹었거든요. 오래 걸리는 건 아니죠?”
‘주옥’에 악센트를 줘서 특별히 빠르게 발음했다.
물론 지극히 의도한 것이었다.
“역시 청년 기업가답게 기백이 좋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대운 군처럼 패기 넘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까마득하군요. 우선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현철 도지사님의 정무 특별보좌관 최원우입니다. 반갑습니다.”
자신을 최원우라 소개한 사내가 내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연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국회 정책 비서관] [성남시 분당구의회 행정복지위원회 위원장] [성남시 분당구의회 교육복지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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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종잇장에 무슨 글자를 이리도 많이 때려 넣었는지 보기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였다.
아무튼, 본인은 ‘이런 많은 것을 해왔던 대단한 사람이오!’ 라는걸 보여 주는 게 목적인듯했다.
“아예. 근데 제가 오늘은 명함을 안 가져와서.”
“하하하. 괜찮습니다. 이미 대운 군. 아니지. 한 회사의 대표님한테 군이라고 하는 건 맞지 않군요. 실례했습니다. 송 대표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제 얘기를요?”
대체 도지사 보좌관이라는 양반이 내 얘기를 어디서 들었을까?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신문을 많이 읽을 수밖에 없는데 송 대표님 기사가 떡하니 실렸더군요. 감탄했습니다. 한국에 이런 대단한 청년이 있구나 하면서 말이죠. 건너건너 알아보니 마침 또 대한민국 인걸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꼭 인사 나누고 싶었습니다. 도지사님께서도 송 대표님께 무척 관심이 많으십니다. 하하하.”
망할. 어쩌다 신문을 보고 내 존재를 알게 됐나 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 내가 자초한 일이거늘.
“그걸 또 보셨구나. 최대한 정체를 감추고 한 인터뷰였는데. 생각보다 신문을 꼼꼼히 읽으시나 보네요.”
“저나 도지사님이나 유망한 청년 CEO에 대한 관심이 많으십니다. 향후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갈 보배 아닙니까? 하하하”
그렇게 자칭 정무 보좌관이란 양반이 끊임없이 공치사를 남발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토록 거창히 서두를 까는 걸까?
“그나저나 제게 할 말 있다는 건···?”
“아! 제가 너무 딴소리만 했나 보군요. 뭐 별건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도지사님은 젊은 기업가들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만큼 친분을 다지고 장기적으로 유익한 관계를 만들고자 하시죠. 실제로 김 도지사님과 친분을 과시하시는 젊은 기업가들이 많습니다. 혹시 ‘블록오아시스’ 황의경 대표나, ‘업팍스’ 장판수 대표를 아십니까?”
“네. 들어는 봤습니다.”
두 사람 모두 코인과 관련된 업체의 대표들이었다.
‘블록 오아시스’는 ‘오아시스’라는 코인을 발행한 업체였고, ‘업팍스’는 코인 거래소를 운영하는 업체였다.
두 기업 모두 상당한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두 분도 김 도지사님과 각별한 관계에 있습니다. 회사 초기 때부터 김 도지사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죠. 측근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저희 도지사님 없었으면 그 두 회사는 지금 이 정도로 절대 크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깐 그 두 대표가 도지사님을 은인 모시듯 깍듯이 대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래서 뭐 어쩌자고?
나 돈 많이 버는 애들하고 친하다 부럽지?
뭐 이런 걸 내세우고 싶은 걸까?
참 더럽게도 빙빙 돌려 말한다.
“저희 도지사님께서는 송 대표님도 그들처럼, 아니 그 이상의 기업가가 될 것 같다고 꼭 집어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따로 자리를 한번 마련하고 싶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무슨 자리요?”
“하하하. 서로에게 유익한 좋은 자리지요. 송 대표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겁니다. 자고로 기회는 들어왔을 때 잡아야지 버스 떠난 뒤에는 잡고 싶어도 못 잡는 게 기회라는 놈입니다. 송 대표도 사업하는 사람이니깐 제 말 무슨 뜻인지 잘 아실 겁니다.”
잘 모르겠다.
그러니깐 지금 나보고 술이라도 사라는 얘기인거지?
그게 아니라면···.
“저보고 접대라도 하라는 말씀입니까?”
돌직구를 박아 버리자 시종일관 웃던 최원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허. 접대라뇨. 장난이라도 요즘 그런 말 하면 큰일 납니다. 그냥 좋은 곳에서 친분이나 다지자는 얘기지요.”
“저랑 겨우 술 한잔하겠다고 그 바쁘신 분이 귀한 시간을 내줄 거라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주시죠. 그렇게 빙빙 둘러 말하면 저 못 알아듣습니다.”
저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이거 참 곤란하네요. 뭐. 좋습니다. 그게 송 대표의 비즈니스 스타일이면 나도 남자답게 톡 까놓고 말하죠.”
그러더니 최원우가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 입에 물었다.
약수터에서 흔히 볼법한 동네 아저씨같은 양반이 하는 모양새는 어느 누아르 영화 주인공 못지않다.
한마디로 보고 있으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쓰읍···. 하. 우리 도지사님의 후원자가 돼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후원자요? 후원회에 가입이라도 하라는 말입니까?”
“하하하. 설마요. 절차대로 자금 후원받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아십니까?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도 해야 하고, 후원금 한도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 애들 장난 같은 거 말고요. 뒤에서 아무도 모르는 비밀 후원자가 되어달라는 말입니다. 그편이 송 대표 입장에서도 편할 텐데요? 괜히 날파리 꼬일 일도 없을 테고.”
이것 봐라? 지금 나 삥뜯는거야?
오랜만에 느끼는 아주 색다른 기분이었다.
“외람된 말이지만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서로에게 득이 될 테니까요.”
“득이 된다고요?”
이 무슨 기적의 논리란 말인가.
“요즘 때가 어느 땐데 일방적으로 요구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건 비즈니스가 아니죠. 송 대표가 도지사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시면, 우리는 송 대표의 날개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정책적인 지원은 물론 각종 정부 지원사업도 몰아드리죠.”
아하. 그러니깐 불법 정치 자금을 대주면, 자신들은 권력의 이권을 통해 나에게 어떤 혜택을 주겠다는 말 아닌가.
“뭐 얼마나 달라는 거죠?”
“이제 관계의 시작일 뿐인데 설마 무리한 요구 하겠습니까? 서로의 진심만 확인한다는 개념으로 깔끔하게 큰 거 한 장으로 시작하시죠.”
그래서 큰 거 한 장이 얼만데?
아. 정치인들 정말 피곤하다.
뭐 하나 얘기하는 것도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게 없으니.
“1억이요?”
“하하하.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10억이요?”
“신뢰를 다진다는 느낌으로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대신 조만간 나올 정책금융에서 그 이상의 혜택을 보게 해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송 대표로서도 남는 장사 아닙니까?”
쯧쯧. 이 양반들. 나에 대해 허투루 조사했구만.
우리 회사는 순수 100% 내 개인 사제로만 운영되는 벤처캐피탈이다.
고로 정책금융이든 뭐든 외부 자금은 융통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내가 말없이 멀뚱히 서 있자 고민한다고 생각했는지 최원우가 말을 덧붙였다.
“들어보니 회사 수익이 상당하더군요. 솔직히 송 대표 정도면 10억이야 애들 용돈 수준 아닙니까? 참고로 우리 도지사님은 지금 자리에서 머무르실 분이 아닙니다.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시는 만큼 나중에는 뵙고 싶어도 못 뵙게 될 수 있어요. 고로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입니다.”
애들 용돈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그 돈이면 차라리 보육원 건물이라도 한 채 더 올려주는게 낫지.
“거절해도 상관없는 겁니까?”
거절이라는 픽 웃음을 터트리는 최원우.
“왜요? 젊은 나이에 돈 좀 만졌다고 벌써 세상이 자기것 같고 그렇습니까? 자고로 깨끗한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법입니다. 생태계가 유지되려면 남에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도, 뭐든 다 잡아먹는 포식자도, 그들의 양분이 되는 먹잇감도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아직 권력의 무서움이 뭔지 모르시죠?”
이야. 태세 전환이 놀랍다.
세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하던 양반이 이제는 짐짓 협박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침묵하는 내 모습에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최원우가 목소리를 깔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무리 돈이 최고인 세상이지만 권력자의 콧바람 한번에 무너질 수 있는 게 사업입니다. 거부하면 어떻게 되냐고요? 뭐 별거 없습니다. 느닷없이 세무조사가 들어간다거나, 국가 금융지원 등에서 제외되거나 하겠죠. 좀 더 심하면 다른 금융기관 간의 관련성과 자본 유입에 관한 정밀한 감사가 들어갈 수도 있겠네요. 아시죠? 우리 도지사님 법조인 출신이신 거?”
이제는 대놓고 본색을 드러내는 최원우.
아마 나 같은 젊은 청년 하나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참고로 말씀드리면 우리 도지사님 검사 재직 시절, 벤처캐피탈의 투자조합 불법 운용 여부에 관한 수사를 맡으셨는데 그때 엮여 들어간 벤처캐피탈 대표만 못 해도 대형 버스 하나는 거뜬히 채울겁니다. 못 믿겠으면 뉴스 한번 검색해보던가.”
“어이쿠. 그렇게 대단하신 분인지도 몰라뵙고. 근데 저와는 별 상관없는 얘기 같네요. 정치하고는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아서. 아이고 배고파. 제가 밥을 덜 먹어서 너무 배고픈데 내려가 봐도 되죠?”
똥이 무서워서 피하겠는가. 더러워서 피하지.
상대의 시커먼 저의를 알게 된 이상 한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괜히 냄새라도 배기면 곤란했으니깐.
완곡한 거절 의사에 최원우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꼭 약을 줘도 못 받아먹는 어리석은 친구들이 있네. 진짜 후회 안해?”
“내 눈엔 독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날름 받아먹습니까? 그런 변태같은 성향은 없습니다만.”
“뭘 믿고 그렇게 기고만장한지 모르겠다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앞으로 사업하는데 순탄치는 않을 거거든.”
“아이고 무서워라. 몸이 떨리니깐 배가 더 고프네. 저 먼저 내려갑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후다닥 옥상에서 내려왔다.
“에이씨. 상 하나 받으러 왔다가 별 더러운 꼴 다 보네.”
계단을 타고 내려오며 투덜투덜한 나는 아까 먹다 만 깐풍기 생각에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솔직히 이때만 해도 살짝 간과했다.
설마하니 배울만큼 배운 양반들이 그런 치졸한 짓을 해올 줄이야.
그리고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복수에 있어서는 내가 더 스페셜 리스트에 가깝다는 사실을.
그렇게 며칠 후.
나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