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오리엔테이션을 찢었다…
개학 닷새 전.
“역시 좋은 차가 좋긴 좋네.”
첫 시승의 소감이었다.
가격에 비해 편의성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로서는 첫차여서 그런지 그렇게 불편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것보다는 지바겐 특유의 강인하고 각진 디자인이 마음에 무척 들었다.
투박한 느낌은 있지만, 그것조차 상남자스러웠다.
새 차, 새 옷, 새 신발은 물론 아침 일찍 샵에가서 예쁘게 머리까지 하고 첫 등굣길에 나섰다.
들뜬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은 지 이십여 분.
드디어 한영대학교 정문이 눈앞에 보였다.
차를 몰고 정문 가까이 다가가자 차량번호 인식시스템 차단기가 올라갔다.
산을 깎아 만들었다고 하더니 한영대학교는 전체적으로 오르막길이 많은 지형이었다.
도로 옆 인도에는 우글우글 모인 대학생들이 마치 등반하듯 길을 오르고 있었다.
인파를 벗어나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여긴 널널하네.”
넓은 주차 공간에 드문드문 차가 있어 편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뒤 가방 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디보자···. 오리엔테이션 장소가 어디였더라.”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흔히들 줄여 ‘오티’라 불리는 이것은 아직 학교가 낯선 신입생들에게 학과에 대한 소개나, 수강 신청 방법 등 대학 생활에 필수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도대체 경영관이 어디야?”
흡사 미로와 같은 건물들 사이를 오가며, 학생들에게 묻고 물어 마침내 경영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School of Bussiness]고풍스러운 현대식 회색 건물에 멋들어진 글씨체가 적힌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에 처음 상경한 촌놈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좋네···.”
게시판에 붙어있는 포스터들과 무슨 인증을 받았다는 현수막들이 이곳이 대학임을 실감케 했다.
천천히 로비를 구경하던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강당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이미 홀 안은 많은 신입생으로 북적였다.
안내서를 읽어보니 신입생들과 편입생을 묶어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곧이어 학장님의 인사말과 함께 행정팀 소개가 있었고, 간단한 학사 안내가 이어졌다.
뭐라고 열심히 말씀은 하시는데 솔직히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설마 이게 끝인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버린 오리엔테이션에 살짝 실망감이 들 때쯤.
어디선가 나타난 두 남자가 푯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경영학과 편입생 이쪽으로 모이세요!”
남자의 주변으로 십여 명의 남녀들이 모여들었다.
물론 나 역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안녕하세요. 작년에 편입해서 과대를 맡고 있는 민찬기입니다. 학교생활에 꼭 필요한 꿀팁을 알려드릴 예정이니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꿀팁을 알려준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동기들은 어미 닭을 따르는 병아리처럼 민찬기 뒤를 따라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301호 강의실로 우리를 안내한 민찬기.
뒤쪽에 자리를 잡고 속속들이 도착하는 이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폈다.
“다들 어려 보이네···.”
액면만 봐도 앳된 티가 확연했다.
강의실 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잠시 후 본인을 과대라고 소개한 민찬기와 또 다른 남녀 넷이 강의실로 들어왔다.
화이트보드 앞으로 나온 민찬기가 편입생들을 쭉 한번 훑었다.
적당한 키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민찬기는 대학생의 전형 같은 이미지였다.
“다들 어색하시죠?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경영학과 편입생 과대를 맡은 민찬기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멍하니 민찬기의 얼굴을 쳐다봤다.
“어색하니깐 우리 박수 한번 칠까요?”
짝짝짝짝짝
그제야 뒤늦게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마. 모든 게 처음이라 무척 어색할 겁니다. 저희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몰라서 그런 거지 여러분이 원래 다니셨던 대학이랑 솔직히 엄청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근데 이런 얘기보다 여러분이 듣고 싶은 건 따로 있죠?”
민찬기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에 전혀 부담이 없는 외향적 성격인듯 했다.
“일단 학교 내에서 편입생하고 재학생하고 차별이 있는지 궁금하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차별 같은 건 없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편입생인지 뭔지 관심이 없어요. 편입생이라고 따로 명찰을 달고 다니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수강 신청 방법은······.”
그때부터 민찬기의 입에서 정말 필요한 꿀팁들이 줄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편입 선배라는 게 체감이 됐던 것이, 궁금했던 알토란 같은 정보만 쏙쏙 골라 전달했다.
어느새 나 역시 민찬기의 말에 집중하며 필요한 부분은 메모해나갔다.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는 아니네.”
듣기로 신입생 오티는 갓 스무 살 다운 풋풋한 분위기와 더불어 이런저런 레크레이션도 많다고 들었는데, 편입생 오티는 흡사 경력직 입사설명회 같은 느낌이었다.
“학점인정 되는 부분도 궁금하실 텐데 전적대가 경영학과면 절반 정도는 인정받을 거에요.”
나는 학점은행제 경영학과 출신이기에 절반 이상은 인정받을 수 있었다.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열심히 설명을 이어가던 민찬기의 눈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
갑자기 말을 끊어 버린 민찬기가 뒷자리에 앉은 나를 보며 심히 당황하는 게 아닌가.
나 역시 내심 당황했지만, 끝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그런 민찬기를 지긋이 쳐다봤다.
“저···. 조교님? 혹시 여기 강의실 쓰셔야 하나요?”
뜬금없는 조교 타령에 내 머리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조교요?”
“아. 그럼 교직원이세요? 혹시 이 강의실에 세미나 일정이 잡혀있나요? 빈 강의실이 없어서 급하게 잡다 보니···.”
뭔가 단단히 오해한듯싶었다.
“저 이번에 편입한 학생인데요.”
“헙.”
더욱 당황한 민찬기가 입을 틀어막으며 나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워낙 분위기가 성숙해 보이셔서···.”
“노안이란 얘기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민찬기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뇨. 그런 말은 절대 아니고요.”
“풉.”
그 모습이 퍽 웃겼던지 강의실 내에 옅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덕분에 숨 막히게 어색했던 강의실 분위기가 한결 느슨해졌다.
“일단 기본적인 안내사항은 여기까지구요. 더 궁금한 게 많을 거 압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위한 환영회 자리를 마련했으니 참가하실 분을 여기 잠깐 대기해주세요. 절대 강제성은 없으니 혹시 일정 있으신 분들은 먼저 가보셔도 좋습니다.”
그러더니 민찬기가 화이트보드에 큼지막하게 숫자를 적어갔다.
“학교생활 관련해서 궁금한 점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셔도 됩니다. 근데 밤에는 거의 술 취한 상태일 테니 될 수 있으면 낮에 부탁드려요.”
민찬기의 익살에 또다시 소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열세 명 모두가 환영회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가까운 치킨집으로 예약해뒀으니 출발하실까요? 저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리 멀지 않아요.”
또다시 병아리가 모드가 된 우리는 민찬기 뒤를 졸졸 따라 인근 치킨집에 도착했다.
예약을 해두었는지 타닥타닥 붙여 놓은 기다란 테이블 위에 모든 세팅이 끝나있었다.
“사장님. 저희 왔어요.”
“찬기 학생 왔어? 조금만 기다려. 지금 닭 튀기고 있으니깐 금방 내올게.”
민찬기와 닭집 사장님은 제법 친분이 있어 보였다.
차례대로 자리에 앉다 보니 나는 민찬기 바로 오른쪽에 앉게 되었다.
“혹시 술 못 드시는 분?”
손을 든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제대로 작정하고 온 듯했다.
“좋네요. 이모! 여기 맥주 오백 한 잔씩 쫙 놔주세요. 이슬 두병이랑요.”
“네네 갑니다.”
알바생들이 부지런히 치킨과 맥주를 나르기 시작하자 테이블 위가 금세 풍성해졌다.
“자! 나름 과대이니깐 짧게 한 말씀 올리고 다 같이 건배하겠습니다.”
민찬기가 맥주잔을 손에 들고 자리에 일어섰다.
“나이를 떠나서 편입 선배로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해서 합격증을 얻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정말 고생하셨구요. 이 학교 들어온 거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학교에요.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하나둘셋 하면 다 같이 ‘고생했다’ 외치고 한잔하시죠. 하나. 둘. 셋!”
“고생했다!”
– 쨍
“크으으으”
어쩐지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며 여기까지 왔을지 눈에 훤했다.
그 모든 걸 비로소 보상받고 인정받은 기분이 들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와하하하 진짜예요?”
“대박! 나도 그 학원 다녔었는데. 우리 그러면 오다가다 한번은 마주쳤겠네.”
“크으. 그 쌤 강의는 좋았는데 약간 여자만 편애하는 경향이 좀···.”
술기운이 돌자 언제 어색했냐는 듯이 편입생들끼리 금세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보니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오른쪽에 있던 민찬기가 내게 맥주잔을 내밀었다.
“아깐 실례했어요. 사과의 의미로 한잔해요.”
“하하. 그럴 수도 있지. 사과할 게 뭐 있나요. 근데 제 얼굴이 그렇게 나이 들어 보여요?”
내 얼굴을 요목조목 뜯어보던 민찬기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게 아니고 뭔가 분위기가 달라서 제가 착각했어요.”
“분위기요?”
“보통 편입생으로 들어오면 약간 어벙하게 있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경직되어있거나 둘 중 하나거든요. 근데 형은 분위기가 좀 달랐거든요. 뭐랄까···. 엄청 여유 있어 보였다고나 할까?”
뱃생활을 하며 표정 관리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그런 듯싶었다.
“근데 제가 형이에요?”
“어? 형 아니에요? 몇 살이세요?”
“스물 여덟입니다. 이름은 송대운이고요.”
“하하. 형 맞네요. 저는 스물다섯이거든요.”
민찬기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성격이 밝고 싹싹해서 마음에 들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양볼이 발그레해진 민찬기가 벌떡 일어섰다.
“자!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될까요?”
“와아아! 과대 님이 말씀하시는데 경청해야지요.”
“큼큼···. 저희는 그렇다 쳐도 여러분끼리는 오랫동안, 아니 어쩌면 평생 봐야 할 동기입니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된 통성명도 못 했네요. 그러니 한 명씩 일어서서 간단히 나이와 이름, 자기소개 한마디씩 하는 게 어떨까요? 우선 저부터 하겠습니다.”
순간 시끌벅적했던 치킨집에 침묵이 내려앉았고 모두의 시선이 민찬기에게 몰렸다.
“말씀드렸다시피 제 이름은 민찬기고요. 나이는 스물다섯입니다. 원래 지방대를 다니다가 전역 후에 진짜 빡세게 편입 준비해서 가까스로 여기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짝짝짝
“자 왼쪽부터 돌까요?”
이후 차례대로 일어선 사람들이 간단한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역시나 편입생답게 다양한 히스토리를 가진 이들이 많았다.
“저는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반가워요. 미국에서 유학하다가 집안이···.”
“군대에서 지잡대 다닌다고 놀림 받은 이후로···.”
“헤어진 여자친구가 이 학교에···.”
편입을 결심한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래도 듣는 재미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경청하게 되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마지막 차례인 나까지 순서가 돌아왔다.
슬프게도 나보다 연장자는커녕 동년배도 없었다.
말없이 자리에 일어서 좌중을 한번 훑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살짝 무거워진 것 같아 서둘러 소개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대운입니다. 나이는 벌써 스물여덞이 됐네요. 사실 여러분과 다르게 저는 대학 생활 자체가 아예 처음입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까불다가 빚을 크게 져서 4년 동안 남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참치랑 오징어 같은 거 잡다 왔거든요.”
어마어마한 TMI에 치킨집 내부에는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그런데 서빙하던 알바랑 치킨집 사장님까지 왜 날 쳐다보는 걸까?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혹시 원하시면 참치 암수 구별법 알려드립니다. 아니면···. 야생 돌고래랑 수영한 썰이라도···?”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으며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실수를 인지하자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오. 참치가 웬 말이냐. 차라리 친근한 오징어로 할걸.’
그런데 예상했던 분위기와 사뭇 다른 반응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