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피끓는 전우애
[중동 ‘큰손’ 빈사르 왕세자 방한. 향후 일정은?] [사우디 왕세자 빈사르 방한에 정재계(政財界) 긴장감 고조]추정 자산 2,900조 이상.
사우디의 실권자이자 비공식 세계 최고 갑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빈사르의 방한 일정이 다가왔다.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할 수 있는 거인의 등장에 정·재계는 물론 국민까지 이번 방한에 이목이 쏠려……..
***
청와대 대통령실.
“방금 막 전용기 15대가 성남 서울공항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흐음···.”
비서실장의 보고에 박창수 대통령이 낮은 침음을 삼켰다.
“방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마도 그가 추진하고 있는 ‘네오시티’를 포함한 도시 인프라 개발, 원전, 방산 분야에 관한 논의가 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오시티라···. 그게 사업비가 얼마나 된다고 했죠?”
“원화로 약 670조입니다.”
“670조라···. 허헛. 대한민국 1년 예산과 맞먹는 액수로군요.”
네오시티는 빈사르 왕세자가 현 사우디의 석유 중심 경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발표한 초대형 신도시 사업이자 국가 장기 프로젝트였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떨어지는 떡고물만 받아먹어도 경제적 파급효과가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수준일 터.
날이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탐이 나지 않을 수 없는 먹잇감이었다.
“이번 방한에 만전을 기해주세요. 그가 절대 불편한 일 없도록.”
“문제없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공항에 누가 나가 있죠?”
“한상수 장관이 나가 있습니다. 한 장관이 영접부터 환송까지 수행 장관으로 쭉 함께할 예정입니다. 그쪽으로는 경험이 많으니 차질은 없을 겁니다. 지금쯤이면 숙소로 이동 중이겠군요.”
“한 장관이면 믿을 만하네요. 숙소는 어딥니까?”
“백제 호텔입니다. 본인이 묵을 스위트룸을 포함하여 객실만 400개를 예약했다고 합니다.”
“허허허. 역시 남다르군요. 청와대 방문 일정은요?”
“내일 오찬 및 회담이 예정되어있습니다.”
“조금의 오점도 남지 않게 철저히 준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살짝 굳은 박창수 대통령의 얼굴엔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
서울 백제 호텔.
투숙객으로 붐비던 평소와 달리 호텔 주변에는 을씨년스러울 정도의 공허함이 감돌았고 신관 입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천막이 마치 벽처럼 세워져 있었다.
잠시 후.
부우우우웅
호텔 지상 주차장에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 차량이 검은 광택을 번득이며 차례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성남 서울공항에서 이곳 숙소까지 빈사르 왕세자의 방탄차 앞뒤로 스물여 대의 검정 벤츠 차량이 삼엄한 엄호를 펼쳤다.
곧이어 경찰견을 동반한 경찰 특공대와 소총으로 무장한 사우디 측 경호원들이 배치되며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호텔 출구와 연결되는 도로에는 빈사르 왕세자를 에스코트한 싸이카와 경찰차가 정차해 있었다.
그 모습을 멀찌감치 지켜보던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휴대폰 카메라로 호텔 쪽을 촬영했고, 곧 경찰들이 다가와 제재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차 문이 열리며 사우디 전통복 차림의 빈사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옆으로 비슷한 복장의 비서실장이 다가왔다.
“식기는 다 바꿔 놨겠지?
“미리 준비하라고 일러뒀습니다.”
이슬람에서는 엄격한 기준 아래 ‘할랄’ 음식만을 허용하는데 종교적으로 금지된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한 조리도구나 이를 담은 식기를 사용하는 것마저 꺼리는 경향이 있기에, 이번 방한에서만 사용할 고급 식기 1억 원치를 미리 구매해둔 상태였다.
“음식은?”
“호텔 측에서 조리 시설 한곳을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요리사는 총 몇 명이나 왔지?”
“10명입니다.”
“흐음···. 그건 잘했군.”
“왕세자님이 머무르실 32층 로열 스위트룸 창문은 물론, 지나다니실 동선 모든 창문에 방탄유리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재벌 총수들과 차담 장소 역시 사우디에서 가져온 가구들로 모두 교체했습니다.”
만족한다는 듯 빈사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일정은?”
“한국의 대통령과 오찬이 예정되어있고, 오후에는 한국의 재벌 총수들과 차담이 예정되어있습니다.”
“그러면 끝인가?”
“예. 일단 공식 일정은 그렇게 마무리될 겁니다.”
비서실장이 빈사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 불편하신 점 있으십니까?”
“그렇게 보이는가?”
“네. 그렇게 보이십니다.”
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빈사르의 곁을 지켰던 비서실장이었다.
비록 표정으로는 드러나진 않았지만, 현재 왕세자의 심기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은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흐음···. 별건 아냐. 단지 누구 한 사람 보기가 이토록 힘들다는 게 마음에 안 들 뿐이지.”
“….누가 말입니까?”
비서실장이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원래 왕세자의 말에 반문하는 법이 없는 비서실장이지만 너무 어이가 없었기에 무의식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누가 감히 Mr. Everything과의 만남을 거부를 한단 말인가.
자신이 아는 상식선에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들어가지.”
빈사르 왕세자가 발걸음을 떼자 주변이 들썩였다.
주변 경비는 더욱 삼엄해졌고, 덩달아 호텔 직원들도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살짝 경직된 태도로 그런 빈사르를 맞이했다.
가히 절대자의 행보라 칭할 만했다.
***
다음날 오전. 청와대.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국의 정상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나누었고 본격적인 회담이 진행되었다.
“저희 사우디에서는 약 5년에 걸쳐 X-OIL에 총 60억 달러(7조원) 규모의 후속 투자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오! 그것참 기쁜 소식이군요. 한국을 대표하여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적지 않습니다. 사우디의 미래를 책임질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한국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양국 기업들이 활발한 교류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은 사우디와 빈사르 왕세자의 비전에 공감하고 지지합니다.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관계를 더욱 공고히 구축해나갈 여지도 충분히 있고요.”
그렇게 알맹이 없는 공치사가 오가던 공식 회담이 끝이 나고 빈사르와 박창수 대통령은 단독 환담을 가졌다.
“제가 3년 전 한국을 왔을 때에는 70억 달러 정도의 경제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었습니다.”
“하하하. 당시 제가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분명 귀한 선물을 가져다주셨지요.”
“그리고 이번 방문에는 더 큰 선물 보따리를 준비해왔었죠.”
빈사르의 말에 박창수 대통령은 순간 체통도 잊고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킬 뻔했다.
정치인으로서 이것보다 좋은 생색 거리가 있을까?
“어느 정도를···?”
“400억 달러입니다.”
400억 달러, 원화로 약 50조가 넘는 금액이었다.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금액에 박창수 대통령이 조용히 침음을 삼켰다.
“원래라면 내일 열릴 한-사우디 투자 포럼에서 한국 기업과 400억 달러의 MOU 및 계약을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박창수 대통령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아까부터 계속 과거형으로 말하는 빈사르의 화법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셨다는 말입니까?”
박창수 대통령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비록 MOU(양해각서체결)가 법적 구속력이 없고 협력을 위한 의사 표명을 하는 문서에 불과했지만 어찌 됐건 언론에 보여주기식으로는 이만한 게 없기도 했다.
“저는 한국이 자유경제 체제로 돌아가는 국가라고 생각했는데 제 생각과 너무 달라 주저하게 되는군요.”
전제군주체제에 가까운 사우디 왕세자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박창수 대통령도 오랜기간 수라장(修羅場) 같은 정치권에서 버텨온 사람으로서 남다른 눈치가 있었다.
지금 무언가 빈사르 왕세자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이 분명했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야했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자유시장체제 하에 돌아가고 있고, 기업이든 사람이든 각 경제주체가 본인 책임하에 자유로운 영리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무언가 오해를 하고 계신 듯합니다.”
“호오···. 그런가요? 제가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르군요?”
“무엇이 말입니까?”
온순해 보이던 빈사르 왕세자의 눈빛이 형형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의 투자회사 중에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라고 아십니까?”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라···.”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익숙한 상호(商號)가 아닌가?
이내 번득이며 스쳐 가는 기억의 한 조각.
‘대한민국 인걸상’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아직 기억에 남아있었다.
대한민국 인걸상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발표한 청년이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그제야 꼬였던 실타래가 풀리듯 기억의 조각들이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회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기업에 어떤 회사 지분을 매각했다는 사실이.
“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대표가 무척 젊은데 앞으로 미래가 촉망받는 청년 CEO이죠.”
“그는 제가 무척이나 신뢰하는 인물입니다. 개인적으로 종종 연락도 주고받는 편이죠.”
박창수 대통령의 주름진 눈가가 순간 부릅떠졌다.
그야말로 놀랄 노자 아닌가.
그 평범해 보이던 청년이 사우디의 절대자와 친분을 가지고 있다니.
더구나 뉘앙스로 봐서는 보통의 사이가 아닌듯했다.
철혈의 군주라 불리며 누군가에게 곁을 내주는 법이 없다고 알려진 빈사르였다.
이게 과연 비즈니스 몇 번 했다고 가능한 일인가?
“그것 참…놀라운 인연이로군요. 그런데 그 친구가 무슨 실례라도 저질렀습니까?”
“실례는 한국 정부에서 저질렀잖습니까?”
서늘함이 전해지는 건조한 말투에 박창수 대통령의 고개가 갸웃했다.
“실례라뇨? 그 친구···. 며칠 전에 나라에서 주는 상까지 받아갔습니다만.”
“그러면 병 주고 약 준겁니까? 한국에 온 김에 그 친구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했더니 도저히 저를 만날 시간이 없다고 하더군요.”
“네···?”
순간 박창수 대통령은 그 청년이 혹시 미친 게 아닐지 의심이 됐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떤 정치적 보복으로 인해 악의적인 세무조사는 물론 여러 사건을 수습하느라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더군요. 그는 이제껏 내가 만나본 그 어떤 인물보다 위대한 가능성을 가졌습니다. 그런 자를 한국에서 그런 식으로 대우를 하다니···.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마음 같아선 사우디로 국적으로 옮기라고 권유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박창수 대통령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대한민국 인걸상까지 받아간 앞길 창창한 젊은이한테 정치적 보복? 세무조사?
별안간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제 소중한 파티원···. 아니, 파트너가 한국 정부에 핍박받는 모습을 보니 회의감이 드는군요. 기껏 선물 보따리까지 준비해왔건만 제 손이 무색하게 됐습니다.”
“자, 잠깐. 뭔가 오해가 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 오해라는 것 때문에 그와의 만남을 방해받는다면···. 저는 무척이나 큰 실망을 할 것 같군요.”
“하하하. 원래 오해라는 건 풀라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빈사르 왕세자는 자신이 대운을 얼마나 신뢰하고 아끼는지에 대해서 몇 번 더 언급한 후 쿨하게 떠나버렸다.
“비서실장!”
불같은 호령에 문을 열고 다급히 다가온 비서실장.
“지금 당장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에 왜 세무조사가 들어갔는지, 또 여기에 누가 엮여 있는지 낱낱이 파악해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걸 눈치챈 비서실장이 서둘러 대통령실을 빠져나갔다.
‘감히 어떤 놈이···.’
박창수 대통령의 고리눈에 진한 노기가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