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네가 왜 여기에?
서울 백제 호텔.
신관 입구에 쳐져 있는 바리케이드 너머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왔다!”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검은색 고급 세단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동시에 기자들의 손길이 분주해지며 눈부신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이후 차 문을 열고 내리는 인물들의 면면이 심상치가 않았다.
“회장님! 오늘 어떤 말씀 나누실 건가요?”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도 대기업 총수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호텔 내부로 입장했다.
그 과정에서 보안 검색만 두 번이 시행되었고, 휴대폰까지 빼앗겼지만, 총수들의 얼굴에 딱히 불쾌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야했기에.
***
차담회가 열리는 연회장.
흰색 토브에 회색 정장 재킷을 걸친 빈사르가 일렬종대로 앉아있는 재벌 총수들을 바라봤다.
재계 서열 1위 오성에 임관훈 회장부터 KS 그룹 김지민 회장, 대현 그룹 문충원 회장, CZ 그룹 최재익 회장, 북산의 이승환 회장 등등.
그야말로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재계 거인들이 반사르 왕세자 우측에 다소곳하게 앉아있었다.
맞은 편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정을 이끌어가는 장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이들이었지만 세계 경제를 들썩이게 할 수 있는 오일머니의 주인 앞에서는 그들 역시 한낱 클라이언트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딱딱하게 경직된 분위기는 아니었다.
몇몇 총수들은 빈사르 왕세자와 안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낯이 익는 분도 계시고, 또 처음 뵙는 분들도 많군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이자 PIF(국영펀드) 의장을 맡고 있는 빈사르라고 합니다.”
“하하하. 오랜만입니다 your Royal Highness(전하). 지난번 두바이 연회장에서 뵙고 이렇게 한국에서 인사드리게 되는군요.”
오성에 임관훈 회장이 아는체하자 빈사르 왕세자가 희미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성의 임 회장이군요. 저도 반갑습니다.”
세계 반도체 시장과 모바일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오성이었기에 사우디와는 비즈니스적으로 엮일 게 많아 두 사람은 제법 친분이 있는 편이었다.
“한국에 오신 소감은 어떠십니까?”
“정신없이 왔지만 만족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도 친절히 맞이해주시고, 여기 이렇게 여러분과 좋은 자리도 갖게 되었으니 말이죠.”
“하하하. 저희야말로 영광입니다.”
빈사르 왕세자에 대한 악명이 드높긴 했지만, 그건 적대적 관계일 때만 적용될 뿐이지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는 무척이나 유한 태도를 보였다.
“어떻게 백제호텔의 서비스는 만족하셨습니까? 아! 저는 CZ 그룹에 최재익이라고 합니다. 백제호텔은 저희 그룹 계열사이고요. 왕세자님께는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습니다.”
빈사르가 묵고 있는 숙소의 소유주가 본인임을 은근히 어필한 최재익을 보며 빈사르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직원들 서비스 마인드는 물론 객실이나 시설들도 무척 훌륭하더군요. 만족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식기와 운동기구, 요리사까지 데리고 오셨다고 해서 혹시 저희 호텔 서비스에 불만족 하신 건 아닌가 하고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하하하.”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쳐드렸군요. 그런 건 아니니 개의치 마시길.”
“혹시 조금이라도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해주십시오. 즉각 처리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your Royal Highness.”
멘트만 들으면 대기업 총수가 아니라 영업사원과 진배없었지만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 영업이 먹혀들어 수주 하나만 따올 수 있어도 회사 매출 앞자리가 바뀌게 될 테니까.
“엄연히 절차라는 게 있는데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신경 써주신 건 감사합니다.”
빈사르가 명백히 선을 그어버리자 최재익 회장이 입맛을 다시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온 인물.
눈치 없이 여기서 더 푸쉬했다간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렇게 국제 정세에 관한 담소를 나누며 간단한 아이스 브레이킹을 가진 뒤, 찻잔을 내려놓은 빈사르가 형형한 눈빛을 뿜어내며 본론을 끄집어냈다.
“좋군요. 역시 한국 기업가들은 나이 상관없이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만큼 책임감도 강해서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지요. 이미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 사우디는 초대형 신도시 건설 사업인 네오시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상당 부분 구체화 되어가고 있지요. 준공은 10년 뒤로 예정되어있고 각 부문별로 발주와 입찰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어쩐지 공기가 묵직해진 듯한 느낌에 회장들의 허리가 꼿꼿이 펴졌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한국의 기업과 약 400억 달러(50조원) 정도의 MOU를 체결하고자 합니다.”
네오시티 수주전에 대한 총수들의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출하여 도시 하나를 만드는 사업이기에 건설, 에너지, 완성차 등 각 분야의 탑티어 기업들이 군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MOU는 MOU 일뿐이고 결국 수주에 성공해야 사업적, 재무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음은 감안해야했다.
실제로 3년 전에도 10조 원 규모의 MOU 체결을 했지만 계약으로 이루어진 건 채 절반 정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놓칠 수 없는 기회인 것만은 분명했다.
제대로 된 수주 한 건만 따내도 재계 서열이 뒤바뀔 수 있었기에.
“그래서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서 그대들은 어떤 사업을 하고 싶습니까?”
빈사르 왕세자의 말 끝나기 무섭게 치고 들어온 인물이 있었다.
다른 회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50대의 나이로 보이는 사내였다.
“인사드립니다 your Royal Highness(전하). 대현 그룹 문충원입니다. 아마 저는 생소하시겠지만, 저희 대현 그룹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우디와는 오랫동안 여러 사업을 같이해온 파트너이니까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문철호 명예회장 다음으로 회장 자리에 앉은 장남 문충원 회장이었다.
“물론입니다. 어찌 대현 그룹을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실제로 대현 그룹은 사우디와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기업이었다.
창업주인 문철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많은 건설 프로젝트는 수행했고, 현 사우디아라비아의 인프라 및 도시화에 크게 이바지한 바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현 그룹의 자동차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동차 브랜드이기도 했다.
“많은 기업이 있지만, 완성차와, 수소트램, 통신, 건설, 물류, 로봇, 금융, 친환경 사업까지, 이 모두를 영위하고 있는 곳은 저희 대현 그룹이 유일하다고 자부합니다. 이번 네오시티 프로젝트를 통해 대현의 기술력과 비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젊은 회장답게 당찬 포부부터 밝히고 시작한 문충원.
그런 문충원을 빈사르 왕세자가 흥미롭다는 듯 쳐다봤다.
“그렇다고 큰 욕심 낼 생각은 없습니다. 적어도 그 어떤 기업과 견주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 있는 분야만 어필하겠습니다. 중동 전역에 많은 발자취를 남긴 대현 그룹은 철도 터널 공사를 맡고 싶습니다. 제가 알기론 신도시 지하에 28Km 터널을 뚫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터널 공사에 많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저희 대현건설이 제격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자율주행 사업 영역은 대현차와 대현모비스가 맡고 싶습니다. 저희 대현차는 이르면 올해 LV3 기술을 적용한 양산 차를 출시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 명문대 출신답게 유창한 영어를 선보이며 자신들의 전문분야를 내세운 문충원 회장.
간단 명료한 설명에 빈사르 왕세자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나쁘지 않군요.”
“감사합니다. your Royal Highness.”
긍정적인 반응에 문충원 회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으나 빠르게 표정을 수습했다.
이에 질세라 다른 그룹의 총수들도 잇따라 본인들이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며 빈사르 왕세자에게 본인들 기업을 열렬히 어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이 흡사 면접관 앞에 선 취업 준비생과 다를 바 없었다.
산업 분야가 겹치는 경우에 회장들 사이에서 약간의 설전이 오가기도 했으나 사전에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끝나있는 상태였던지 큰 마찰은 없었다.
그중에 북산 그룹 이승환 회장의 안색이 유독 어두워 보였는데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강점으로 내세울 분야가 방산밖에 없어 이번 수주전에 불리한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여러분들의 가슴 뜨거운 비전에 충분히 감동하였고 한편으로는 든든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록 입찰은 별개로 진행되더라도 그대들이 보여준 파트너십은 가슴 깊이 새겨놓도록 하겠습니다.”
풀이하자면 말하느라 고생은 했는데 입찰 기회만 줄 뿐이지 계약을 별개의 문제니깐 알아서 잘하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고생하신 그대들을 위해 선물 하나를 풀어놓을까 합니다.”
선물이라는 말에 서로를 곁눈질하는 회장단.
보통 사람도 아니고 세계 최고 부자라는 빈사르의 입에서 나오는 선물은 그 격이 다를 것이 분명했다.
노회한 그들의 얼굴에 미약한 기대감이 떠올랐다.
“이번에 엑스 오일에서 추진하는 ‘알테어 프로젝트’의 투자가 확정이 났습니다. 탄소 중립을 목표로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다지는 프로젝트이기도 하죠. 때문에 EPC(Engineering, Procurement and Construction) 계약을 체결할 건설사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에 지어지는 공장인 만큼 한국 건설사가 이 공사를 맡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업비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80억 달러입니다.”
80억 달러.
원화로 10조가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이기도 했다.
“여기 계신 대부분의 기업이 건실한 건설사를 보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알테어 프로젝트의 EPC(설계, 조달, 시공)는 입찰이 방식 아닌 수의 계약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수, 수의 계약.”
말 그대로 경쟁 입찰 없이 마음에 드는 놈에게 그냥 주겠다는 소리였다.
10조짜리 계약 건에 총수들의 얼굴에 짙은 탐욕이 깃들었다.
“어떤 기준으로 업체를 선정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일단 한 사람이 더 오면 얘기 나누는 걸로 하죠.”
“네? 더 올 사람이…있었습니까?”
앉아있는 회장단들의 고개가 갸웃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이미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은데 누가 더 온단 말인가.
연신 시계를 쳐다보던 빈사르의 옆으로 수행원 하나가 다가와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했고 빈사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컥
입구가 열리며 새 인물 하나가 차담회장으로 들어섰다.
순간 앉아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사내에게 집중되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 네가 왜 여기에?”
뜬금없는 대운의 등장에 이승환 회장과 임관훈 회장이 두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