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학부모 상담이 필요한 시점
“응?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송대운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뭔데? 갑자기 왜 다들 날 찾는 건데.
이 회장님 입에서 문 회장이라고 나올만한 인물은 대현그룹 문충원 회장밖에 없었다.
재계 1위라는 오성그룹과 2위인 대현그룹 총수가 동시에 날 찾다니 별안간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 죄송합니다. 임 회장님. 지금 이 회장님이랑 같이 식사하고 있습니다.
– 에잉. 자네는 매번 왜 이 회장만 그리 찾는 건가? 내가 식사하자 할 땐 코빼기도 안 내비치더니.
오성에 임관훈 회장과는 두바이 VVIP 파티에서 안면을 튼 후에 종종 공식 석상에서 인사 나누는 정도는 됐다.
식사 한 끼 하자고 가끔 연락이 오곤 했었는데 제대로 된 식사는 거의 하지 못했다.
서로 스케쥴 맞추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자들은 오성에 임 회장이 부르는데 어떻게든 시간 맞춰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내 볼일이 더 중요했다.
“죄송합니다. 그때는 제가 미국에 있을 때라.”
– 가만 보면 나보다 자네가 더 바쁜 것 같아. 아니면 일부러 나 피해 다니는 건 아니지? 살짝 서운해지려고 그러는구먼.
토라진 듯한 임 회장님 목소리에 나는 진땀을 흘리며 해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정말 시간이 안 맞아서 그렇습니다. 조만간 인사 한번 드리러 찾아가겠습니다.”
– 언제?
“네?”
– 매번 말뿐이지 않나. 그러지 말고 지금 확실히 정하지. 언제 찾아올 텐가? 내가 웬만한 스케쥴은 비워놓도록 하지.
오성 직원들이 알면 경악할만한 일이었다.
천하의 독불장군 임관훈 회장이 누군가의 스케쥴을 맞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이번 주 금요일 점심 괜찮으세요?”
– 금요일···? 흐음. 알겠네. 그때 밥 한끼 하는걸로 하지. 이번에도 약속 안 지키면 정말···.”
“무조건 갑니다! 무조건이요.”
– 약속 지킬 거라 믿네.
“그나저나 그 말씀 하시려고 전화를···?”
– 지금 이 회장이랑 같이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 그럼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는걸로 하지. 자네한테 묻고 싶은 게 많아. 아무튼, 식사하는데 미안하네. 그럼 이만.
뚝
짧지만 폭풍 같은 통화가 끝이 났다.
영혼이 탈곡된 것처럼 기가 쭉 빨리는 기분이다.
뭔가 비즈니스적으로 압박하는 거면 충격도 없을 텐데, ‘다 늙은 노인네 계속 기다리게 할테야?’ 이런 태세로 들이대시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임 회장님은 이 회장님과는 성향이 살짝 달랐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한테 드리기엔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뭔가 새침데기 같다고나 할까?
나한테만 그런 모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으면 착각이겠지?
“무슨 일로 전화했다더냐?”
어느새 통화를 끝낸 이승환 회장이 내게 물었다.
“그냥 조만간 식사 한 끼 하기로 했습니다.”
“겨우 그것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 임 회장이 전화를 걸어? 오성 임직원들이 알면 난리 날 일이로구만. 껄껄껄.”
뭐가 그렇게 웃긴 것인지 연신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이승환 회장.
“그런데 혹시 이 회장님 전화도 절 찾는 전화였습니까?”
“그래. 아주 인기가 터지시는구만 우리 송 대표. 껄껄껄.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재벌 총수들이 죄다 한 사람만 찾고 있으니 기자들이 알면 아주 군침을 뚝뚝 흘리겠어. 크헐헐.”
확실히 문제가 있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주목받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은밀히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문 회장님은 무슨 일로 저를···?”
오성의 임 회장님이야 약간의 친분이 있다고 쳐도 대현의 문충원 회장과는 전혀 연이 없었다.
굳이 따지면 악연에 가깝겠지.
얼마 전에 우리 회사에 찾아와서 깽판을 치고 간 문상호가 문충원 회장의 아들 중 하나였으니.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드님 덕분에 별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생길 것 같았다.
“널 소개해달라고 하더구나. 나한테 이런 부탁할 양반이 아닌데 급하긴 급했나보오.”
“왜 저를 보자고 했을까요? 거기와는 접점이 없는데.”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게야? 그 자리에 앉아있던 회장들이면 누구든 자네가 누군지 궁금해 미칠 지경일걸?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온다는 그 빈사르 왕세자와 친분을 과시하며 발언에 영향력까지 가진 한국인 청년. 누가 봐도 탐나지 않겠나? 그 양반 변덕 한 번이면 재계 서열이 휘청휘청 할 텐데 말이지.”
하긴, 입장 바꿔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만했다.
“다들 뭔가 오해하고 계시네요. 빈사르 왕세자와 친분이 있는 건 사실이나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소소한 의견제시 정도일 뿐입니다.”
“끌끌끌. 뭐든지 가능하다고 불리는 절대자에게 그런 소소한 의견 제시가 가능한 인물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그야···.”
아마 몇 없을 거다.
아니, 빈사르 왕세자 앞에서 말 한마디 편하게 하는 이도 많지는 않을 거다.
실제로 그의 앞에만 서면 유독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고 압도되는 포스에 입이 잘 안 떨어지긴 했으니깐.
물론 나는 면역자였기에 논외였다.
더구나 게임 세계에서는 내가 파티장이었고 그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할 때가 있는 편이라 그게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치곤 했다.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아마 다른 회장들도 너에 대해 알아본다고 혈안이 되어있을 게다. 끌끌끌. 황금알을 낳는 오리가 제 발로 떡하니 나타났는데 누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꼬. 껄껄껄.”
남의 일이라고 너무 즐거워하시는 거 아닙니까 회장님?
껄껄 웃고 있는 이 회장님과는 달리 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재벌총수든 기자든 더 이상 귀찮은건 사양이었다.
‘당분간 모르는 번호는 절대 받지 말아야지.’
“문 회장한테는 뭐라고 답할꼬? 그래도 답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 아마 지금쯤 문 회장. 내 답장만 목이 빠지게 기다릴 게다.”
음. 어쩌지?
아무리 그래도 문충원 회장 정도 되는 사람이 체면까지 져버리고 이 회장님께 연락을 줬을 정도면 무진장 나를 만나고 싶긴 한가보다.
오히려 잘됐다.
안 그래도 문상호라는 문제아 때문에 학부모 상담이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연락처만 알려주시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끌끌끌. 오냐. 편한 데로 하거라. 그런데 만약 문 회장이 너에게 거래를 제안하면 어떻게 할 셈이냐?”
“거래요?”
“거액의 커미션을 내세우며 앞으로 남은 수주를 대현이 따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 요청받으면 어떻게 할 건지 묻는 게야.
또, 나왔다. 사람을 발가벗겨버리는 저 투명한 눈.
고압적인 눈빛은 아니지만 웬만한 사람은 주눅들 수밖에 없는 특유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물론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만.
“절대 안 하죠. 제가 미친것도 아니고 제 무덤 파는 짓을 하겠어요?”
“커미션이 못해도 수백억은 될 텐데?”
“회장님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니지만, 저 그 돈 안 받아도 평생 잘 먹고 잘삽니다. 물론 저 돈 좋아합니다. 제가 떳떳하게 일해서 번 돈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빈사르 왕세자에게 그런 말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고요.”
“그럼 우리 북산은 왜 도와준 게냐?”
“저 빈사르 왕세자에게 별말 안 했어요. 그냥 북산건설이 EPC 중에서도 설계에 특화되어 있다는 정보전달만 했을 뿐이지.”
“끌끌끌. 그놈 참. 쓸데없는 데에서 부끄러워하는구나. 아무튼, 고맙구나.”
“거래했을 뿐인데요 뭘. 북산 건설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40년 넘게 북산을 경영해오며 몇 건의 수주 계약을 체결했는지 아느냐? 이쯤 되면 얼굴만 봐도 견적이 나와. 아마 빈사르 왕세자는 우리 북산 건설을 택할 게다.”
“뭐···. 그럼 다행이구요. 저야 선물도 받고 좋죠.”
그걸 단언하다니. 역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무시 못하나 보다.
타닥타닥 장어가 구워지는 소리만 들려오고 우리 사이엔 어색하지 않은 적막이 흘렀다.
“참 많은 게 변했구나. 만물이 변화하는 건 세상의 이치라지만 정말 많이 변했어.”
“뭐가 변해요?”
“우리가 연을 맺은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잖느냐. 나도 그렇지만 너는 정말 많이 변했어. 과거를 돌이켜보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말이지.”
“그런가요?”
그만큼 성실히 살아왔으니 변하는 것도 당연했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쉽게 체감되진 않았다.
“끌끌끌. 지금도 가끔 생각이나. 네놈과 처음 만났던 그 어이없었던 순간이. 사업쟁이들이나 찾아올 줄 알았더니 웬 새파란 대학생 놈이 오질 않나. 심지어 지각까지 했더랬지.”
“3분 늦었습니다. 3분. 축구도 그 정도 루주 타임은 준다구요.”
“예끼 이놈아. 3분이든 3초든 늦은 건 늦은게야.”
“크흠···. 그건 그때도 제가 사과를···.”
“이후로 참 많은 대화가 오갔지. 솔직히 나는 딱 1시간만 채우고 곧장 내뺄 생각이었다. 그런 자리는 딱 질색이거든.”
“그러실 것 같습니다.”
“내 욕한게야?”
길게 뻗는 허연 눈썹을 꿈틀거리며 묻는 이승환 회장에게 나름의 억울함을 표했다.
“그게 아니고 사업 외적으로 사람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시잖아요.”
“끌끌끌. 그건 맞지. 아무튼, 대화는 제법···. 아니 무척 즐거웠단다. 얼마 만에 그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눠본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아. 심지어 너는 북산 미전기실 특채 제안도 걷어차 버렸었지. 그때 화가 나기보다는 궁금하더구나. 이놈은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당돌할까?하고.”
이승환 회장이 옛 추억 얘기를 꺼내자 나 역시 그 시절의 향수로 젖어들기 시작했다.
“하하하···. 딱히 취업에는 생각이 없던 때라. 그것보단 그때 회장님이랑 마셨던 전통주 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니까요.”
“끌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평소 자주 마시던 술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더 맛있게 느껴지더구나. 역시 술맛을 좌우하는 건 같이 마시는 사람과 그 분위기야.”
“그건 저도 강력히 공감합니다.”
옛 추억에 푹 빠진 우리 두 사람은 즐거웠던 에피소드 안주 삼아 주거니 받거니 떠들어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황당했을 때가 언제인 줄 아느냐? 큰맘 먹고 부탁 한 가지 들어준다고 했더니 네놈이 대학교 숙제에 필요하다면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였어.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나는 그때 네가 살짝 모자란 게 아닌가 의심했단다. 껄껄껄.”
“그 과제가 얼마나 중요한 과제였는데요.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죠.”
“예끼 이놈아. 어느 누가 재벌 총수가 부탁 들어준다는데 그런 걸 요구하누.”
“그럼 뭘 요구하는데요?”
“뭐···. 직접 돈을 바라진 않겠지만 취업 청탁이라던가 주가 흐름에 영향이 가는 고급 정보를 달라던가, 아니면 물량 발주를 달라던가 하는 게 보통이지.”
“에이. 전부 저랑 상관없는 얘기죠. 그리고 초면에 그런 부탁을 어떻게 합니까?”
“끌끌끌. 하긴 그때 만약 네가 그런 류의 부탁을 해왔다면 다시는 너를 볼 일 없었을 게다. 인연이라는 건 참 신기해. 전혀 접점 없던 너와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야.”
“개인적으로 회장님께는 감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해주신 말씀들이 전부 피가 되고 살이 되더라고요.”
“주책맞은 늙은이 잔소리가 뭐에 그리 쓸모 있다고 끌끌끌.”
“그러니깐 장기 두자는 말만 빼고 무슨 말이든 가감 없이 해주세요. 항상 각골명심으로 아로새기겠습니다.”
“네놈이 하도 경기를 일으키니 요새는 뜸하지 않으냐. 아주 그냥 누가 보면 하루에 장기 몇 탕씩 뛰는 놈인 줄 알겠구나. 고얀 놈.”
“장기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거는 지금 몇 탕씩 뛰어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뭣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이 회장님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하아. 그런 게 있습니다. 식사 마치면 해치워야 할 중요한 숙제 하나가.”
그렇게 이 회장님과의 식사 자리를 마무리하고 나는 곧장 빈사르 왕세자가 묵고 있는 백제호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