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참교육
스프라우트 인베스먼트 사옥.
모니터 화면에 집중해 있던 진채원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데 아까부터 자꾸···.”
불투명 유리문 너머로 검은 실루엣 하나가 연신 왔다 갔다 하는게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닌가?”
혹시 무슨 일 있나 싶어 나가봐야 하나 고민이 들 때쯤.
입구가 좌우로 입을 벌리며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세···. 어멋.”
트라우마가 도진 것인지 진채원이 입을 틀어막으며 사무실에 들어선 남자를 쳐다봤다.
며칠 전, 무작정 사무실로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간 그 남자였다.
웬만한 진상은 다 겪어 봤다고 자부하던 진채원도 학을 뗐을 정도로 막장 인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런 남자가 이곳은 왜 또 찾아온 것일까?
남자의 폭언과 사납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며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문 진채원이 다부진 목소리로 물었다.
“여긴 또 무슨 일로 오셨어요? 만약 또 행패 부린다면 그땐 정말 경찰을···.”
나름 큰 용기를 가지고 내뱉은 말이었고, 또다시 폭언이 터져 나올 거라 예상했지만 어째 남자의 반응이 영 이상했다.
“지, 진정해! 이제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깐! 혹시 지금 송대표 자리에 있나?”
한껏 부드러워진 말투와 온순해진 눈빛이 같은 사람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뇨. 잠깐 볼일 보러 나가셔서 전화 한번 해보시는 게···.”
“에잇 전화를! 아니, 화낸 거 아냐? 오해하지마? 바빠서 그런가 전화를 안 받아.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게 낫겠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퀭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양새가 무척이나 불안해 보였다.
“기다리신다고요?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데···.”
“언젠간 오긴 올 거 아냐? 나 그냥 저기 구석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테니깐 나 신경 쓰지 말고 일 봐.”
“아···. 예.”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진채원이 자리로 돌아갔다.
지이이잉
그와 동시에 울리는 진채원의 휴대폰.
[구세주 송 대표님: 혹시 그때 진상 쳤던 놈 사무실에 찾아왔으면 나 연락 안 된다고 그러고 그냥 신경끄고 있어. 아마 허튼짓 못할 거야.]“도대체 무슨 일이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진채원의 머리가 복잡해져 갔다.
안하무인 그 자체였던 인간이 어떻게 한순간에 저렇게 변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이제는 진채원도 눈치채고 있었다.
저 신경질적으로 생긴 진상이 소위 말하는 재벌가 사람이라는 것을.
도대체 송 대표님은 무슨 마술을 부렸길래 그런 대단한 위치의 사람을 저런 온순한 양으로 만든 것일까?
“에이. 모르겠다. 대표님 오시면 알게 되겠지.”
이내 머리에서 문상호의 존재를 싹 지워버린 진채원은 자신이 하던 업무에 집중했다.
“여기 뭐 마실 거 없어?”
“냉장고에 알아서 꺼내 드세요.”
“어···. 그래.”
대표 지시를 맹목적으로 잘 따르는 진채원은 정말 문상호를 단 1도 신경 쓰지 않았다.
***
그렇게 약 두 시간 뒤.
“아오!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내가 누군 줄 알······.”
드르르륵
“누구긴요. 대현벤처투자 문상호 님 아닙니까? 대현그룹 문충원 회장님의 차남이신.”
“억···.”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장한 나를 보며 문상호의 입이 물 밖에 나온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또, 행패 부리러 온 겁니까? 이번에는 저도 가만히 안 있습니다?”
“해, 행패라니! 오해야 오해. 저번에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아서 사과하러 온 거라고!”
“사과요?”
짐짓 모른척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단 들어가실까요?”
나는 손으로 대표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본격적인 쇼타임을 위해선 경기장에 입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그러지.”
허둥지둥 대표실로 들어가는 문상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씨익 미소지었다.
“대표님···.”
“응?”
나를 부르는 진채원의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방금 그 미소 되게 사악해 보였어요.”
“그랬냐? 근데 아직 시작도 안 했는걸?”
“뭔진 모르겠지만 화이팅에요!”
앙증맞은 포즈로 두 손을 움켜쥐는 진채원에게 나이스한 미소를 날려주고는 당당하게 대표실로 향했다.
탁
문이 닫히고, 대표실 내에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연신 내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는 문상호를 모르쇠로 일관하며 소파에 턱 하니 앉았다.
“무슨 일이시길래 또 이렇게 찾아오셨을까요?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정치인 후원할 생각도 없고, 지분을 강탈당할 생각도 없습니다만?”
“가, 강탈이라니. 무슨 그런 흉악스러운 단어를 사용해? 그냥 기업 대 기업으로 거래 한번 제안 해본 거 가지고, 송 대표가 거부하면 거기서 끝인 거지. 하하하···.”
어색하게 웃음 짓는 문상호.
평생 자기 비위 맞춰주는 말만 들어왔지, 자신이 비위를 맞추는 상황은 처음인 게 분명했다.
“그래요? 이상하네. 거부했다고 저 잡아 죽일려던거 아니었어요? 우리 문 사장님은 평소 거래를 그런 식으로 하시는구나. 이야. 러시아 같은 데에서는 먹힐 수도 있겠네요.”
“오해야 오해! 그때 내가 다른 일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는데 괜히 송 대표한테 그 불똥이 튄 거 같아. 내가 정말 진심으로 사과할게.”
“글쎄요. 별로 진정성이 안 느껴지는데···. 굳이 사과는 안 받아도 되죠? 저도 문 사장님 덕분에 기분이 안 좋은 상태라 괜히 그 불똥이 튈까 염려가 되네요.”
“제발 사과 좀 받아줘라 응?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심드렁한 내 태도에 그나마 유지하던 똥폼도 다 내려놓고 그제야 싹싹 빌기 시작한 문상호.
도대체 문충원 회장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요? 문 회장님이 제 사과 받아오라고 시켰습니까?”
이렇게 직접 언급할 줄은 몰랐던지 문상호가 움찔했다.
“아니···. 그게···.”
닭똥집 같은 입술만 오물오물하며 쉽게 말을 내뱉지 못하는 문상호.
알량한 배경만 믿고 나대던 자들은 그 힘이 무용지물이 되면 대개 이런 모습을 보인다.
이래서 타인의 힘이 아닌 내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눈앞에 문상호처럼 몸집만 커버린 애가 되어버리기에 십상이었으니깐.
“근데 대체 아버지한테는 무슨 얘길 어떻게 한 거야···?”
문상호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납득이 되질 않겠지. 보통 대현그룹 총수 정도 되는 거인은 아무나 만날 수 없을테니깐.
“그냥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문 회장님이 저한테 어떤 부탁을 하시더군요? 물론 내용은 업무상 비밀이고요. 상식적으로 그쪽이 그런 깽판을 치고 갔는데 내가 대현그룹에 감정이 좋겠습니까? 당연히 거절했죠. 그러니깐 문회장님이 묻더군요. 이유가 뭐냐고?”
“서, 설마···.”
“며칠 전 느닷없이 찾아온 대현벤처투자 문상호라는 사람이 다짜고짜 깽판을 쳤고 한국에서 살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거짓말을 못 해서요.”
“내, 내가 언제 한국에 살지 못하게 한다고 했냐!”
“전 그렇게 이해했는데요? 원래 가해자는 제대로 기억 못 하는 법입니다. 피해자의 트라우마만 흉터처럼 남는 거지.”
할 말이 없던지 문상호가 입만 뻥긋거리다가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많이 맞긴 했지만···. 그토록 화내는 건 처음 봤어. 화만 내는 거면 모르겠는데 지금 자리도 뺐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외국으로 보내버린다고 하시더라고···.”
“이야 좋네요. 이참에 거기서 유유자적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요?”
“사는 게 사는 거겠냐!? 지금 이 자리 얻어내는데도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무엇보다 거기서 가만히 넋 놓고 있으면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한테 돌아올 건 하나도 없을 거라고. 그러면 그 많은 유산이 전부 형누나들한테 갈 텐데 내가 죽어도 그 꼴은 못 봐.”
대단히 화목한 집구석이었다.
근데 이런 걸 나한테 일일이 다 털어놔도 되나?
그냥 생각이 없는건지, 지나치게 솔직한건지 헷갈렸다.
“아무튼, 전 사과 받을 생각 없으니 돌아가세요. 저 무지 바쁩니다.”
“내가 이 정도까지 빌고 있는데 너 진짜!”
순식간에 치켜 올라간 문상호의 눈꼬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어? 지금 화내는 거예요?”
내 지적에 거짓말처럼 축 내려앉은 그의 눈꼬리.
“아니이. 화낸 게 아니고오. 내 진심을 좀 알아달라 이말이지···.”
“진심이 안 느껴지는데 뭘 어떻게 압니까?”
“이 정도면 됐지 도대체 나보고 뭘 더 어떻게 하라고!”
“어? 또 화를? 애써 아물었던 심장이 다시 울렁거리네. 문 회장님 전화번호가···.”
“아니이. 그게 아니고오오. 나는 정말 진심인데 안 느껴진다고 하니깐 나 자신한테 화나서 그런 거지 송 대표한테 화낸 게 아니야아. 놀라게 했으면 내가 미안해 응?”
“그래요? 흐음···. 헷깔리네.”
문상호 입장에서는 평생 할 사과를 오늘 내 앞에서 다하는 기분일 거다.
얼굴이 온통 땀으로 흥건한 문상호를 힐끔 쳐다봤다.
‘밀만큼 밀었으니 이제는 좀 당겨볼까?’
“오케이. 좋습니다.”
“사, 사과 받아주는 거야?”
순간 문상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입에서 그가 기대하는 말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저는 말뿐인 사과는 믿지 않아요. 아무리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지만 그러기엔 제가 받은 상처가 너무 크고 깊거든요.”
“아니, 내가 뭘 얼마나 심하게 했다고!”
“하아···. 안되겠어요. 문 회···.”
“아냐아냐아냐아냐! 무.조.건 내가 잘못했어!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어떻게 하면 내 진심을 알아줄 건데? 하라는 건 뭐든지 할 테니깐 제발 좀 알려주라.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문충원 회장 이 양반. 아들내미를 아주 그냥 개 잡듯 잡았나 보다.
아예 간과 쓸개 전부 집 냉장고에 넣어 놓고 온 걸 보니.
세간에 떠도는 소문으로 굉장히 냉정하고 자비 없는 성격이라더니 자식한테도 얄짤없나보다.
물론 나한테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뭐든지 한다고요?”
“그래 시팔. 어차피 이 지경까지 왔는데 내가 더 못할 게 뭐가 있겠냐? 무릎이라도 꿇을까?”
“그럴래요?”
“응?”
진짜 꿇으라고 할지는 몰랐는지 문상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저 인간이 무릎 꿇는다고 나에게 득 되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꼴밖에 되지 않는 하수 짓이었다.
그런 것보단.
“그럼 통 크게 기부 한번 하시죠.”
“뭐···? 기부?”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지 뱁새 눈이 토끼 눈이 되었다.
“우리 문상호 님이 열렬히 신봉하는 누구 때문에 경기도에 보육원 지원금이 뚝 끊겼거든요? 그거 문 사장님이 메꿔줘요.”
“야야야. 내가 그런 큰돈이 어딨어?”
“어허. 이거 왜 이러실까 아마추어처럼? 그동안 꿍쳐놨던 비상금 있을 거 아니에요. 다른 일도 아니고 좋은 일에 쓰는 건데 통 크게 한번 쏘시죠?”
“대체 얼마를···?”
“그래도 재벌가 클라스가 있는데 한 200억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백억!? 지금 장난해? 그런 큰돈이 나한테 어딨어!”
“어? 또 화내는···.”
“아냐! 아니라고! 화내는 거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 진짜 없어서 그래. 정말이야.”
“엄살 부리지 마시고, 그 정도 능력은 충분히 있으신 거 아니깐 알아서 하세요. 없으면 빌려서라도 내시던가. 그게 싫으면 그냥 해외로 나가시던가요. 흐음···. 나 같으면 어떻게든 기부하고 지금 자리 보존할 것 같은데···.”
“끄응···.”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던 문상호가 이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뭐가 더 남는 장사인지 열심히 짱돌 굴리고 있겠지.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후우···. 좋아. 그렇게 하면 정말 아버지한테 말해주는 거지? 제대로 사과받았다고?”
애초에 문상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 상태로 해외로 쫓겨나면 향후 문충원 회장에게 계열사 지분 하나 못 받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하는 거 봐서요.”
“뭐!? 아까는 무조건···.”
“세상에 무조건이 어딨습니까? 그냥 그 정도면 내 마음이 풀리지 않을까 싶은 거지. 아! 싫으면 마세요. 나는 상관없으니깐.”
애초에 주도권이 완벽하게 나에게 와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겠어! 알겠다고! 어떻게든 돈 만들어서 네가 말한 대로 기부할 테니까 딱 기다리고 있어.”
“예예. 그리고 저 변덕 엄청 심하거든요? 발 빠르게 행동하시는걸 추천드립니다. 그럼 살펴 들어가세요.”
내 말에 문상호가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부리나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게 끝일 것 같지 이 양반아?”
참고로 나 뒤끝 엄청 긴 놈이다.
***
며칠 후.
쾅!
문이 벌컥 열리며 최원우가 다급히 도지사실 안으로 들어왔다.
“도, 도지사님! 큰일 났습니다!”
골프채를 잡고 있던 김현철이 그런 최원우를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이봐!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얼른 뉴스부터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뭣?”
순간 김현철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싸한 직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