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북산솔라에서 생긴 일
재계에서 미다스 손이라 별명붙은 이승환 회장에게 아픈 손가락으로 여겨지는 북산솔라.
과거 북산 그룹은 만년 적자 계열사인 북산솔라에 구조조정이라는, 당시 북산으로서는 매우 드문 결정을 단행했고 그럼에도 회사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헐값에 매각을 시도했지만 허무하게 유찰되며 울며 겨자먹기로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북산의 미운오리새끼로 단단히 자리 잡은 계열사이기도 했다.
***
시흥 매화산단 끄트머리에 자리한 노후된 벽돌 건물이 북산솔라가 어떠한 위상을 가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듯 했다.
“이야. 대기업 계열사라고 하기엔 좀···. 많이 겸손하긴 하네.”
이제는 나도 엄연한 대주주인데 차마 심한 말은 못 하겠다.
말이 대기업 계열사지 이건 그냥 중소기업과 크게 다를바 없어 보였다.
아! 결론만 말하자면 알테어 프로젝트의 수의 계약 건은 결국 북산 건설에게 돌아갔고, 약속대로 나는 이승환 회장이 개인 명의로 가지고 있던 북산솔라의 지분 전체를 받을 수 있었다.
이 회장님은 앓던 이를 뺀 것처럼 개운한 표정으로 내게 지분을 넘겼지만 글쎄···.
찬밥 취급하던 이곳 대표에게서 황금빛을 본 이상, 아마 나중에 크게 후회하시지 않을까?
그때 이 회장님의 표정이 어떠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흐흐흐. 이 맛에 투자하지.”
모두에게 외면받던 미운오리새끼가 아름다운 백조가 되어 창공을 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만큼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도 없었다.
정문 앞까지 다가간 나는 건물을 힐끔 올려다보고는 경비실로 향했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선 필히 방문자 신고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단칸방 같은 경비실 안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경비원이 끔뻑끔뻑 졸고 있었다.
낭창한 내 목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경비원 할아버지가 주변을 서성거리며 중얼거렸다.
“분명···. 오후에 일정이···. 아! 손님이 오셨구만.”
본인은 무척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얼굴에 눌린 자국이랑 입가에 침부터 좀 닦으셔야 할 듯해요.
“그래. 무슨 일로 오셨는가 청년? 아! 오늘 신입사원 면접이 있다고 하더니 그 친구인가 보구만.”
“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츄레이션?
순간 당황하여 나도 모르게 어버버하게 됐다.
“생긴 건 사내답고 좋네. 허우대도 멀쩡하니. 장가는 갔는가?”
“아뇨···. 아직.”
장가는커녕 연애도 못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
“그건 좀 아쉽구만. 아무래도 책임질 가정이 있으면 조금 더 좋게 볼 텐데. 근데 잠깐!”
갑자기 정색한 경비 할아버지가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자네···.”
“네? 왜 그러시는지···?”
잘못한게 없는데도 괜히 심장을 옥죄는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꼴딱 삼켰다.
“면접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크헐헐.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자세가 됐구만.”
순간 풀리는 긴장감에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나 근데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뭔가 저 경비원 할아버지한테 말린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밝혀야 하나 고민이 됐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회사 내부 정보를 듣기엔 여기만 한 데도 없지.’
회사에 출입하는 모든 이들은 이곳을 거쳐 가야 했고, 흡역구역도 바로 근처에 있어서 아마도 양질의 알짜 정보는 알아서 흘러들어오는 곳일꺼다.
“기본 예의···. 아니겠습니까?”
“크헐헐. 요즘에 예의 중시하는 청년은 참 보기 힘든데 자네는 기본이 됐구만. 어차피 지금 올라가 봐야 다들 점심 먹고 자빠져 자고 있을게야. 그러지 말고 여기서 시간이나 때우다 가.”
“감사합니다 어르신.”
경비 할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연세답지 않게 정력적이시고 호탕하신 성격 같았다.
“근데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그런데 회사 분위기는 어때요?”
“그거 왜 안 물어보나 했다. 면접 보는 애들 전부 첫 질문이 그거더라고. 뭐 이해는 해. 흐음···. 우리 회사 분위기라.”
턱을 긁적이며 곰곰이 생각하던 경비 할아버지가 짧고 굵은 한마디 내뱉었다.
“부랄 긁고 맡는 냄새 같달까?”
“네···?”
순간 내가 뭘 잘 못 들은 건가 했다.
“더럽고 아니꼬운 일도 많은데 도무지 회사를 떠날 수 없단 말이지. 몇몇 분탕 종자들이 있긴 한데 그건 뭐···. 또라이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없을 수 없는 거고. 그런데 결정적으로 매출이 안 나오니 다들 힘들어하는 거지. 이러다가 전부 길거리에 나앉는 거 아닐지 걱정이야.”
아하. 애증? 뭐 이런 비슷한 의미 같았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아서 다행이네요. 일단 사람이 제일 중요한 법이잖아요.”
“암. 그렇고말고. 그래도 다들 북산 직원이라는 자부심은 가지고 다닌다고. 나도 마찬가지고. 이래 봬도 나 정직원이야? 5년 전에 전환했다고.”
“그래요? 듣기로 보통 정직원은 잘 안 해준다고 들었는데···.”
“이게 다 북산 이 회장님이 직원들 하나하나 다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거야. 역시 의리 하나는 와따인 양반이라니깐.”
“의리 있으시긴 하죠.”
평소 이승환 회장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한번 북산의 식구로 들어온 이상, 제 발로 나가기 전까지 회사에서 먼저 팽하는 그런 일은 만들지 않을 거라고.
회사든 사람이든 무조건 의리가 우선시 되어야 하며 그래야 직원들 사기가 오르고 생산의 능률이 오르는 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뭐 다른 건 궁금한 거 없어? 마침 한가한 시간대라 다행이지 이거 자주 오는 기회가 아냐.”
궁금한 거? 당연히 있었다.
사실상 내가 북산솔라를 픽(pick)한 궁극적인 이유.
“대표님은 어떤 분이세요?”
“으응? 이 사장? 대단한 양반이지. 요즘 보기 드문 호인이야. 호인.”
“호인이요?”
“직원들 사이에서 우리 이 대표는 큰형님으로 통해. 경상도 출신이라 좀 딱딱하긴 한데 속정은 또 깊어. 뒤에서는 엄청 챙겨주거든. 오죽하면 말단사원 생일에 친필 편지까지 써줬다니깐. 오지랖은 또 어찌나 넓은지 회사 내에 결혼 안 한 노총각 노처녀들은 본인이 직접 그 뭐시여 소개···. 아무튼 선도 직접 주선해주고 그래.”
“확실히···. 대단하시네요.”
갓 잡아 올린 활어와 같은 내 리액션에 흥이 났던지 경비 할아버지가 신나서 말을 덧붙였다.
“어디 그뿐인 줄 알어? 직원들 이름까지 다 외우고 다닌다니깐. 며칠 전에는 막내 직원이 하는 업무까지 기억해 가지곤 일일이 고충을 물어보고 다니더라고. 참 난 사람이여.”
“그게 가능해요? 못해도 직원이 100명은 넘을 텐데···.”
“말단 직원으로 입사해서 30년 넘게 근무해 온 회사다 보니 그만큼 애착이 깊은 거지. 그야말로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라 봐도 무방하지 않겠어? 그러니깐 자네도 면접 잘 보라고. 혹시 아나? 면접에 떡하니 붙어서 나중에 우리 회사 사장이 될지?”
사장은 아니지만 대주주이긴 합니다만.
이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구태여 내뱉진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굳이 할 필요도 없었고.
이후에도 경비 할아버지가 타준 믹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가끔 욕도 섞여 있었지만 대체로 회사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어르신이었다.
덕분에 북산솔라의 내부 분위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일단 이상일 대표는 소위 말하는 ‘조직형 형님 리더십’에 최적화되어있었다.
휴머니즘을 중요시하며 소통과 교감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듯했고 직원들도 그를 무척이나 잘 따르는 듯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회사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다.
구조조정의 여파가 아직 씻기지 않아 임직원들 사이에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성되어있었고, 비교적 젊은 직원들은 비전이 없다고 느껴 퇴사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계속 신입사원을 뽑고 있었고.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이런 혼란을 틈타 분위기를 더욱 흙탕물로 만드는 분탕 종자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사내 정치로 편을 가르고, 좋았던 기업 문화를 망가뜨리는 쌍노무새끼들이라고 경비 할아버지가 침까지 튀기며 욕을 해댔다.
‘어느 회사든 빌런들은 존재하니깐.’
덕분에 빌런들 명단이 내 머릿속에 확실히 저장되었다.
그렇게 경비 할아버지와 한참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여자 하나가 다가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순한 인상의 여자였다.
“아이고. 마침 잘 왔네. 최 대리! 벌써 밥 먹고 온겨?”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저 먼저 들어왔어요.”
“아이고. 그럼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야겠네.”
“무슨 일이신데요?”
“여기 오늘 면접 볼 청년인데 너무 일찍 도착해서 미리 안내 좀 해주라고 부탁하려 했지. 내가 잠깐 얘기 나눠봤는데 아주 쓸만한 친구여.”
“벌써 왔다고요···?”
최 대리라 불린 여자가 토끼 눈이 되어 나를 쳐다보더니 돌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와. 지금까지 면접자 중에 신기록 달성이네요. 엄청 일찍 오셨네.”
“그치? 개념도 아주 꽉 들어찬 게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야.”
어째 일이 점점 요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지금이라도 내 정체를 밝혀야 하나 고민이 됐다.
“아무리 피곤해도 제 일인데 제가 해야죠. 이분은 제가 안내할게요.”
“여윽시 최 대리여. 이봐 청년. 여기 아가씨한테 잘 보이는 게 좋아. 인사팀 최 대리라고 나중에 합격하면 자네 월급 줄 사람이여.”
“에이 어르신도 참. 제가 월급 주는 게 아니라니까요.”
티키타카가 잘 맞는게 둘은 마치 조손지간처럼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럼 저 따라오시겠어요?”
“아. 네.”
그렇게 나는 최 대리라 불리는 여자의 뒤를 따르게 됐다.
‘타이밍 봐서 그냥 얘기해야겠다.’
정보도 얻을 만큼 얻었겠다 이제는 면접자라는 오해를 풀 때가 된듯했다.
한 오 분여 정도를 걸어 사무동으로 보이는 낡은 벽돌 건물로 들어섰고,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여자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따라가기도 벅찰 지경이었다.
[신입사원 면접]문에 붙은 A4 용지가 이곳이 면접 보는 장소라는 것을 알려줬다.
대회의실을 임시로 사용한 것 같았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시면 돼요.”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근데 전 사실···.”
“어? 근데 지금 보니깐 복장이 좀···.”
내 차림새를 위아래로 훑은 최 대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슬랙스 바지에 흰 스니커즈 신발, 푸른 셔츠를 걸친 세미 정장 차림이었는데 확실히 면접 복장으로는 애매하긴 했다.
“자율 복장이라고 적혀있긴 한데···. 이렇게 자유롭게 입고 온 사람은 또 처음이네요. 호호호. 어떤 의미에선 신선할 수도? 아! 저는 인사팀 최진아 대리라고 해요. 성함이?”
또 이렇게 타이밍을 놓치다니.
“송대운입니다.”
“반가워요 대운씨. 많이 떨리겠지만 그냥 편하게 보시면 돼요. 사람들 웬만하면 다 괜찮거든요.”
“아예 감사합니다. 근데 전 오늘 면접자가 아······.”
웅성웅성
이번에는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에 내 말이 그대로 묻혀버렸다.
잠시 후, 잿빛 작업복 차림의 중년 남성 세 사람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떠들며 다가왔다.
“최 대리? 여긴 무슨 일이야?”
“면접자 안내 좀 하고 있었습니다 팀장님.”
“아하. 저 친구가 면접자야?”
“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제가 미리 안내 좀 해드리고 있었어요. 그럼 저희는 나가 있겠습니다.”
최진아의 말에 비대한 덩치를 가진 다른 한 사람이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굳이 그럴 필요 있나. 기왕 들어온 거 바로 시작하지.”
“그래도 사장님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무님?”
“그냥 해도 돼. 뭐 중요한 거라고.”
“아하하···. 그럼 가볍게 분위기나 풀고 있죠 뭐. 최 대리 수고했어. 나가봐도 좋아.”
“네. 알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는 최진아 대리를 자연스럽게 따라 나가려던 나는.
“뭐해? 자네는 들어가서 앉아.”
“아, 아니 전···.”
그렇게 난 얼떨결에 북산솔라 신입사원 면접을 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