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전혀 예기치 못한 만남
다음날, 나는 눈을 뜨자마자 곧장 북산 타워로 향했다.
“그래. 급하게 의논해야겠다는 게 대체 뭐길래 아침 댓바람부터 이렇게 달려온게야?”
집무실 소파에 나를 앉힌 이승환 회장님이 손수 내린 홍차를 내게 건넸다.
회장님의 얼굴에는 이놈이 또 무슨 사고를 치러 온 것인지 기대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북산솔라 때문이더냐?”
역시나 칼같이 내 의도를 간파하신다.
아마 거짓말로 이 회장을 속일 수 있을 정도면 연기 대상 정도는 그냥 받지 않을까?
“맞습니다. 어제 북산솔라에 찾아가 이상일 대표를 만나고 온건 아시죠? 어제 전화도 드렸으니.”
“끌끌끌. 그래. 아주 발칙한 짓을 하더구나. 심심하던 차에 꽤 괜찮은 여흥 거리가 됐지. 그래. 직접 보니 어떻더냐?”
“생각보다 엉망이더라고요. 특히나 윗물이 썩은 게 가장 큰 문제로 보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썩은 놈들만 거기로 보냈으니 그럴 수밖에. 일종의 유배지 같은게지. 감사팀장이 내려갔으니 아마 그놈들도 좋은 꼴은 보지 못할게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회사에 비전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동력이 생기지 않을 수밖에요.”
“제 밥값도 못하는 놈들에게 비전 타령할 시간이 어디 있을꼬. 그래서? 막상 눈으로 보니깐 후회가 되는 게야? 지금이라도 무르고 싶으면 말하거라. 너니깐 내가 한번은 봐주마.”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선택을 후회하고 말을 번복하는 순간 이승환 회장님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날 것이라는 걸.
물론 번복할 생각 따윈 당연히 없었고.
“에이. 제가 그런 짓 왜 합니까? 회사 상태와는 별개로 저는 거기서 미래를 봤는데.”
“미래를 봤다고···? 대체 어디에서?”
“이상일 대표에게서요.”
“이상일이? 물론 그놈이 제 딴에 열심히 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업하기엔 너무 물러. 사람 좋은 거랑 일 잘하는 거랑은 별개야.”
“그건 회장님이 이 대표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 비상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 북산의 임직원들이 있었으면 경악했을 것이다.
그 누가 대(大)북산의 호랑이에게 이런 직설적인 발언을 할 수 있을까?
해석에 따라선 당신의 안목이 부족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승환 회장의 표정은 노여움보다는 흥미와 호기심 같은 것들로 뒤범벅되어있었다.
“호오. 네놈 말은 내가 보지 못한 그 어떤 가능성을 이상일이한테 봤다는 말이렸다?”
매서운 눈빛으로 옥죄는 물음에 나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봤습니다. 오직 그만이 무너져 내리는 북산솔라를 살릴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엄연히 말하자면 황금빛을 봤기에 이런 자신감도 보일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래? 그것참 흥미롭긴 한데 당최 네놈의 안목은 종잡을 수가 없구나. 이상일이는 내가 너보다 몇 곱절은 더 오래 봐왔어. 물론 성실하고 인망 두터운 인물이지. 하지만 망해가는 회사를 살리는 건 다른 문제야. 그런 건 욕심 많고 정력이 넘치는 그런 놈들이나 할 수 있는 게야.”
“이상일 대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을 뿐이죠.”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라?”
“인정합니다. 그는 회사 경영이나 영업과는 다소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업에 대한 진정성과 회사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보다 진심인 사람입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회사를 방문한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그에게 기회를 줘보려고 합니다.”
무거운 시선으로 말없이 나를 쳐다보던 이승환 회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해 보아라.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일전에 회장님께 말씀드렸죠. 저는 사람에 투자하는 투자가가 될 거라고. 북산솔라의 비전? 솔직히 관심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오로지 이상일 대표 하나만 보고 가고자 합니다. 그가 원하는 걸 들어주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요.”
“이 대표가 뭘 하자고 하던가?”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혁신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뭔지 대충 알 것 같구나. 그런데 그건 말 그대로 꿈같은 얘기일 뿐이야. 자칫하다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냥 돈만 날리는 수가 있다. 아니 분명히 그럴게야. 그만큼 뭔가 새로 시도한다는 것은 거대한 위험을 안고 가야 하는 거니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뜻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크흠···. 그놈 고집하고는 정말.”
이승환 회장님이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이 회장님 입장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산소호흡기 떼기 직전의 회사에 헛된 심폐소생술이나 한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 투자는 오롯이 황금빛의 주인공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그 주인공에게 비전을 본 이상 나에게 거칠 것은 없었다.
“내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어차피 들어 먹을 놈이 아니겠지 네놈은. 좋아. 그래서 나에게 바라는 게 뭐냐?”
“선택해주십시오.”
“뭐를?”
“잘 아시겠지만 북산솔라의 곳간은 텅텅 비어있는 상황입니다. 북산솔라의 재무 상태로는 금융기관에서 대출도 쉽지 않을 거고요. 그렇다고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하기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룹사 차원에서 예산을 지원해주시거나 그게 아니면.”
“그게 아니면?”
“그냥 북산솔라 제가 그냥 인수하겠습니다.”
“뭣이!? 네가 인수하겠다고?”
놀란 이승환 회장의 주름진 눈가가 순간 꿈틀했다.
“사겠다는 곳이 없어 번번이 매각에 실패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예산 지원이 힘들면 제가 사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무리 망하기 직전 계열사라도 보유한 부지와 기타 시설의 가치를 감안하면 1,000억은 들게다. 그만한 돈은 있고?”
“시간만 주시면 만들 수 있습니다.”
“끄응···.”
전혀 망설임 없는 내 대답에 이승환 회장이 난색을 표했다.
물론 미국 스타트업에 투자를 진행하느라 당장 그만한 돈은 수중에 없다.
될 수 있으면 부채는 쓰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필요하다면 펀드레이징(모금)을 통해서라도 북산솔라를 인수할 의향이 있었다.
충분히 그럴 자신도 있었고.
“왜 그러십니까? 어차피 파실 생각 아니셨습니까?
좀처럼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이승환 회장을 보며 남몰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묵중하게 침묵만 지키던 이승환 회장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에는 꼴도 보기 싫어서 팔아버릴 생각도 했었다. 북산솔라는 내 아픈 손가락이야. 아니 엄밀히 얘기하자면 우리 아버지, 그러니깐 북산의 창업주 이기백 회장님의 염원이었지.”
“이기백 창업주께서요?”
이건 몰랐던 사실이었다.
“고된 하루를 끝내시고 집에서 약주 한잔하실 때 내 손을 붙잡고 종종 말씀하셨지. 우리 북산도 언젠간 세계적인 그룹이 되면 반드시 재생에너지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그것이 대한민국과 세상의 발전에 기여할수 있는 길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 그리고 그 말은 내게 남긴 유언 비스무리한 것이 되었고.”
북산솔라가 탄생한 배경에 그런 스토리가 있었을 줄이야.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이승환 회장님이 먹먹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기르던 개를 떠나보내도 마음이 편치 않은 법인데 제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지만 아무렇지 않게 팔아버릴 애비가 어딨겠나? 살아날 구멍이 있다면 나 역시 살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 하지만 그 어떤 전문가들도 북산솔라의 경영진단을 하면 다들 고개를 내저었어. 여긴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말이지. 나도 사람인데 지치더구나. 이제는 사실 반 포기 상태였는데 대운이 네가 뜬금없이 북산솔라를 언급한게야. 그리고 살릴 수 있다고 지금 나한테 찾아와 확신을 가지고 얘기하고 있지. 다른 놈들이었으면 호통을 쳤을 게다. 하지만 지금껏 네가 보여준 많은 것들이···. 나를 자꾸 흔들리게 하는구나.”
미련 가득한 이승환 회장의 노회한 눈이 내게 향했다.
“왠지 너라면···. 가망 없어 보이는 저 북산솔라를 어떻게든 기사회생시키지 않을까 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헛된 희망을 왜 자꾸 품게 되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구나. 이제 늙은게지. 끌끌끌.”
“그러면 그냥 저를 한번 믿어보시죠.”
“응?”
“저도 잘 압니다. 그 어떤 정량적, 정성적 지표를 가져와도 북산솔라가 희망 없어 보이는 것 정도는. 저도 사실 모르는 사람 설득시킬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은 그동안 옆에서 제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지켜보셨잖아요.”
“끌끌끌. 그래. 아주 집요하게 지켜봐왔지.”
“감상이 어떻습니까? 저란 놈에 대한.”
“도무지 내 상식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돌발행동만 일삼는 돌연변이 그 자체이지만 결국 기적에 가까운 성과만 이루어내는···. 뭐 그런 별종 놈?”
이게 욕인지 칭찬인지 도통 헷갈립니다 회장님.
어찌 됐건 부정적인 뜻은 아니었다.
“그러면 이번에도 눈 딱 감고 한번 믿어보시죠. 2년. 2년이면 돌아가신 이기백 창업주님의 염원이 현실이 될겁니다.”
확신에 가득 찬 내 말에 멍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던 이 회장님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끌끌끌. 당최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종종 이렇게 확신에 차서 얘기할 때가 있는데 이게 그냥 실패해본 적 없는 놈의 만용인지 아니면 미래라도 들여다보고 그런 배짱을 부리는건지 말이야.”
순간 뜨끔했다.
미래를 보진 못했지만, 그 비슷한 건 볼 수는 있었기에.
한동안 상념에 빠져있던 이승환 회장이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룹사 차원에서 자금 조달할 수 있도록 한번 힘써보마. 어디 한번 네놈 마음대로 해보거라.”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금 결정 후회하실 일 없으실 겁니다.”
다행이었다.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진짜 내가 인수할 생각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불리한 요소가 많았다.
우선 ‘북산’이라는 이름을 떼야 한다는 것.
글로벌 시장에서 북산이라는 브랜드 파워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만약 내가 북산솔라를 인수하게 되면 북산과는 전혀 관련 없는 회사가 되어버리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계열사에서 나오는 고정 발주물량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장 R&D에 집중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매출은 유지해줘야 회사가 운영될 수 있었기에.
결론적으로 이 회장님이 북산솔라에 다시 한번 불을 지펴보기로 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이룬 셈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승전보를 가지고 곧장 이상일 대표를 만나러 갔다.
***
경기도 시흥 정왕동 한 고깃집.
치이이익
달궈진 무쇠 철판 위에서 올라간 삼겹살이 기름 끓는 소리와 함께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며 노릇하게 익어갔다.
“아니, 더 좋은 거 드셔도 되는데···.”
집게를 든 이상일 대표가 난감한 얼굴로 턱을 긁적였다.
“회사 사정 뻔히 아는데 법카를 그렇게 막 쓸 수 있나요. 저는 삼겹살로 충분합니다.”
“아무튼, 송 대표님이 오시고 뭔가 변화의 조짐이 보이니 매일 출근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불판의 열기 때문인지 희망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이상일 대표의 양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바뀔 겁니다. 북산솔라는 임직원들 가족 빼고 모든 게 바뀔 거에요. 그 중심에는 이 대표님이 계실 거고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니 잘하겠습니다. 믿음에 꼭 보답드리겠습니다.”
어느새 이상일 대표가 어디서 많이 보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베슬로의 이장원, 스튜디오SH의 송시호, 파랑새 엔터 김채형 대표 등, 내가 투자했던 이들이 내게 보내오는 그런 맹목적인 신뢰의 눈빛.
좀 오바해서 말하자면 일종의 신앙과 비슷한 것이었다.
“기존의 거래처만 잘 유지하는 선에서 연구개발에만 집중해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넵. 물론입니다.”
그렇게 나는 이상일 대표와 술잔을 기울이며 회사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올라오자 이상일 대표를 택시까지 잡아 보내고서야 긴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아이고. 술버릇이 무슨 녹음기야? 같은 말만 몇 번을 반복하시는 건지···.”
취기가 오른 이상일 대표는 연신 내 손을 붙잡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는데 처음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고기 한 점 입에 넣고 ‘감사합니다.
소주 한잔 들이키고 ‘감사해요’.
화장실 다녀와서 ‘고맙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다니는데 이제는 감사에 ‘감’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다음에는 술 대신 밥만 먹는걸로···.”
감사한 마음은 알겠지만 어후. 너무 부담스럽다.
“나도 이제 대리 불러서 가볼까나.”
그렇게 휴대폰을 들어 대리를 부르려던 찰나.
“어!? 야! 너 혹시 송대운···? 대운이 아니냐?”
낯선 목소리에 내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갔고 그곳에는 의외의 인물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 대운이 맞지?”
“형철이형?”
원양어선에 오르기 전 내가 잠깐 몸담았던 프레스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형철이 형이었다.
나를 코인의 세계로 인도해준 형이기도 했고.
그리고 그 주변에는······.
웅성웅성
아무래도 전전(前前)직장 사람들이 단체로 회식을 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