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요즘은 뭐하고 다녀?
현일정공.
보육원에서 자립한 뒤, 알바만 전전하다가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입사했던 나에겐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너 대운이 맞지?”
“형철이 형?”
긴가민가한 얼굴로 나를 보던 형철이 형이 이내 손뼉을 쳤다.
“맞네! 송대운이! 이야. 너 아닌 줄 알았다! 이게 몇 년 만이야? 진짜 못 알아보겠네! 그때는 삐쩍 곯았었는데 지금은 몸이 무슨···. 어후. 너 운동하냐?”
직원 휴게실에서 본인의 계좌를 공개하며 나를 코인의 세계로 인도했던 형철이 형.
내 기억 속 모습 그대로 말 많고 쾌활한 성격은 여전한 듯싶었다.
“운동은 무슨. 그냥 잘 먹고 다니니깐 살찐 거지.”
“이건 살이 아닌데? 이야 그나저나 이게 몇 년 만이냐? 한 5년만인가? 얼굴 많이 좋아졌다?”
내 팔뚝을 만지작거리던 형이 나지막이 감탄을 흘렸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해온 헬스가 빛을 발한 것 같아 내심 뿌듯함이 들었다.
“내가 회사 나간 지 그쯤 됐지. 형은 아직 회사 다니나 보네?”
“이 망할 놈의 회사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현생에 치여 빚에 허덕이다 보니 계속 다니게 되네 망할.”
잠시 후, 우리 주변으로 몇몇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름은 가물가물했지만 낯익은 얼굴들이 몇몇 보였다.
“누구라고?”
“왜 기억 안나요 반장님? 송대운이라고 한 5년 전쯤에 기숙사랑 현장만 오가던 친구 있잖아요. 반장님이 맨날 로봇이라고 부르던.”
“로봇···. 아! 그 젊은 놈이 세상 다 산 얼굴하고 다니던 그놈?”
나도 기억났다. 우리 현장을 관리 감독하던 최재희 반장.
맨날 나를 인생 재미없게 사는 로봇이라고 부르던 양반이었다.
“안녕하세요 반장님 오랜만이네요.”
“이야. 진짜 오랜만이네. 전혀 몰라보겠어. 요즘 어떻게 지내?”
“그냥저냥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이긴 하네. 그때 마음 고생했던 건 잘 극복했나 봐?”
“네. 뭐 그렇죠. 그나저나 오늘 회식 있으신가 봐요?”
“하루종일 뺑이치고 오늘 간만에 때려 부으러 왔지.”
“그러세요? 어이구. 그럼 바쁘시겠네요.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회식 재밌게들 즐기세요.”
나는 급히 자리를 뜨기 위한 액션을 취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고 이미 퇴사한 지 몇 년이나 지난 시점에 이들에게 나는 불청객이나 다름 없지 않겠는가.
“많이 바쁘냐?”
“저도 방금 술자리가 끝나서 이제 들어가 보려고요.”
그러자 형철이 형이 불쑥 튀어나와 내 팔을 붙잡았다.
“야 대운아. 그러지 말고 너도 한잔 마시고 가. 이대로 헤어지긴 아쉽잖아.”
“그래 인마.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한 두 잔만 마시고 가라.”
설마 나를 붙잡을 줄은 몰랐기에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에이 괜찮아요. 이제는 엄연히 외부인인데 회식 자리에 제가 낄 수 있나요.”
“인마. 아무리 퇴사했더라도 한번 동료는 영원한 동료지. 너 정 없이 그럴 거야?”
“그래. 대운아 나도 너 오랜만에 보니깐 무진장 반갑다. 딱 한 잔만 하고 가.”
최 반장님에 이어 형철이 형까지 나를 붙들고 늘어지자 난감함이 들었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살짝 여유가 있긴 했다.
“진짜···. 괜찮아요?”
“아! 괜찮다니깐 그러네. 어차피 팀 회식이라 내가 대빵인데 누가 뭐라고 그래! 안 그러냐 형철아?”
“이야 역시 우리 반장님 카리스마 대박! 너희들도 괜찮지?”
형철이 형이 뒤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하자 그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내가 회사에서 나간 뒤 들어온 직원들 같았다.
어찌 됐건 팀 내에서 반장의 말이 곧 법이었기에 나는 얼떨결에 회식 자리에 함께 하게됐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한국이 좁긴 하네. 이런 데에서 다 만나다니.’
그래도 나름 새로운 기분이었다.
추억이 많은 곳이라고 할 순 없지만 보호아동종료 후에 처음 제대로 일해본 회사였고, 이래저래 배운 것도 많은 곳이었기에.
나는 그렇게 조금 전 북산솔라 이상일 대표와 자리했던 고깃집에 또다시 앉게 되었다.
전혀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
“자! 건배!”
쨍그랑
“크으. 죽인다. 속에 쌓인 기름때가 싸악 씻겨가는 기분이네.”
최 반장이 거품만 남은 소맥 잔을 들여다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하하하. 이 맛에 회식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대운이 너는 요새 뭐 하고 지내냐?”
형철이 형의 물음에 순간 모든 눈이 나에게로 쏠렸다.
코인으로 폭망하여 회사를 나간 놈치고 몰골이 나쁘지 않아 보이니 다들 궁금한 눈치인가 보다.
“아시잖아요. 빚만 잔뜩 지고 회사 나가서 허덕이다가 뒤늦게 정신 차리고 참치 배를 탔어요.”
“참치 배? 설마 원양어선에 탔다고? 얼마나?”
원양어선이라는 말에 모두의 눈이 흥미로 반짝였다.
“한 4년 정도요?”
“미친! 4년? 와! 그거 엄청 힘들다고 그러던데 너 대박이다 진짜.”
형철이 형 말에 최 반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마디 했다.
“힘들다마다. 뱃일 그거 사람 할 거 못 된다. 나도 소싯적에 강원도 오징어잡이 배에서 잠깐 일한 적 있었는데 그때 골병든 게 지금도 날 힘들게 해요. 하루 이틀은 할만한데 한 일주일 넘어가면 비린내만 맡아도 사람이 미칠 것 같거든. 그걸 4년이나 했다니···. 공장에서 묵묵히 일 할 때부터 알아봤다만 너도 진짜 더럽게 독한 놈이네 진짜.”
“제가 판 무덤인데 어떻게든 책임은 져야죠.”
“그럼 빚은 다 갚았고?”
“다 갚고 배에서 내렸어요. 지금은 완전히 새 출발 했고요.”
“이야. 대단하네 이놈. 옜다. 한잔 받아라. 장하다 장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 최 반장님이 내게 소맥 한잔을 기깔나게 말아줬다.
일 할 때는 조금 다혈질이었지만 그래도 자기 새끼들은 끔찍이 챙기는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분이셨다.
그때 저 구석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저···. 근데 그거 하면 일 년에 얼마나 벌 수 있습니까?”
“야이 짜식아. 들어온 지 일 년도 안 된 놈이 벌써부터 딴 살림 생각하고 있냐?”
“그, 그게 아니고. 그냥 궁금하잖아요. 저 뱃멀미 심해서 배 같은 거 못 탑니다. 보통 원양어선 타면 돈 엄청 땡긴다고 하잖아요. 다들 안 궁금해요?”
확실히 돈 이야기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도 없는 법.
다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만 쳐다봤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 역시 과거의 기억을 더듬거려봤다.
“어음···. 그게 얼마였더라? 이게 배마다 조금 다르거든요? 그 배가 얼마나 많이 고기를 잡느냐에 따라 배분되는 성과금도 달라서 좀 편차가 심해요. 그래도 제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1년에 못해도 팔구천 정도는 가져간 것 같네요.”
“헐. 연봉 구천이요? 개 쩌네 진짜.”
연봉 팔구천이라는 소리에 모두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좋아 보여요? 근데 시급으로 계산하면 얼마 안 될걸요? 왜냐면 배는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거든요. 특히 막내는 자는 시간 빼고는 전부 일만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으헉. 하긴. 바다 위에서는 어디 갈 데가 없겠구나.”
“끔찍하네. 일이 끝나도 퇴근이 없다니. 그러면 지긋지긋한 상사 놈들이랑 일 년 내내 붙어살아야 한다는 거잖아? 으악. 난 그냥 죽을랜다.”
“야 인마 이봉호? 너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무슨 소립니까 반장님. 제가 반장님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면서. 반장님 1호 팬이 주는 술 한잔 받으시죠!”
이봉호라는 남자가 넉살 좋게 웃으며 술병을 들자 최 반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술잔을 갖다 댔다.
“구렁이 같은 놈. 네놈은 그 주둥이 때문에 어디 가서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
“하하하. 덕담 감사합니다.”
“그럼 요즘은 어디서 일해?”
다시 시작된 형철이형의 질문 공세에 또 한번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오늘 이 형이 내 전담 질문맨인가?
“아뇨.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게 돼서 지금은 대학생이에요.”
“에엥? 네가 대학생이라고?”
설마하니 큰 빚까지 졌던 놈이 대학에 갔을지는 예상 못 했던지 형철이 형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배 타면서 원 없이 일하다 보니깐 뒤늦게 공부가 하고 싶더라고요. 후회하기 전에 일단 해 보자 해서 무작정 시작했죠 뭐.”
“이놈 이거 진짜 많이 바꼈네. 예전에는 진짜 일만 하는 기계인 줄 알았더니 이제는 지가 하고 싶은것도 하고 살고 말이야. 아주 기특해.”
최 반장님이 호탕하게 웃으며 내 등을 툭툭 내리쳤다.
“어디 대학 다니고 있는데? 이 근처야?”
거참 궁금한 것도 많소 형철이 형.
하지만 구태여 숨길 이유도 없었다.
“아뇨. 시흥은 약속 때문에 잠깐 온 거고 원래는 서울에 살고 있어요. 한영대 다니고 있고요.”
내 말에 형철이 형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영대? 내가 아는···. 그 한영대?”
“형이 아는 그 한영대 맞을걸요? 왕십리 쪽에 있는.”
“헐. 거기 공부 잘해야 갈 수 있는데 아냐?”
“맞을걸? 내 사촌 동생도 전교 삼사 등 하는 앤데 이번에 거기 들어갔다던데.”
“어떻게 된 거야? 너 원래 공부했던 놈은 아니잖아.”
“그냥 피똥 싸게 열심히 공부했어요. 하니깐 되긴 하더라고요.”
당시를 회상해보면 그때는 정말 독기 하나로 죽을 만큼 열심히 했다.
당시 나보다 물리적으로 공부를 많이 했던 사람은 없을 거라고 지금도 자부할 수 있었다.
“이놈 이거 진짜 난 놈일세? 으하하. 어찌 됐건 내 밑에 있던 놈이 잘나간다니 괜히 기분이 좋구만! 기분이다! 다 같이 한잔하자!”
역시 인간미 넘치는 최 반장답게 회식 분위기는 대체로 화기애애했다.
나에 대한 호구조사가 끝이 나자 그다음은 회사 뒷담 타임이었다.
이건 국룰이지.
“하아···. 최 반장님. 저 진짜 회사 그만두고 싶습니다.”
덥수룩한 턱수염이 인상적인 사내가 최 반장을 붙잡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왜? 또 뭔데 짜샤?”
“탁 부장 그 개…아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남자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끄윽. 지난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힘들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이랑 시간 보내고 있었는데 탁 부장 그 개새끼가 갑자기 전화해서 저보고 자기 술 마신 장소에 차를 두고 왔다면서 저보고 집에 갖다 놓으라고 한 거 아십니까? 아니, 제가 대리 기삽니까? 왜 그런 짓까지 해야 합니까? 씨팔 더러워서 회사 빨리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남자의 말에 최 반장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그런 일이 있었어? 근데 왜 나한테 바로 연락 안 했어 이 새끼야!”
“어떻게 얘기합니까! 그거 말하는 순간 반장님 또 탁 부장한테 그대로 들이박으실 것 뻔히 아는데···. 저 솔직히 이 회사에 미련 없습니다. 그냥 최 반장님이랑 일하는 게 좋아서 여기 있는 거고요. 그거 아니었으면 진작 딴 회사 갔을 겁니다.”
“맞습니다. 탁 부장 그 사람 요즘 도를 넘고 있다고요. 며칠 전에는 여직원한테 손톱을 깎아달라고 하질 않나···. 그거 보고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그건데 제일 열 받는 건 학력 차별이 진짜 존나 심해요. 맨날 대졸자 애들만 데리고 다니고 회사에 고졸 애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한다니까요 그 새끼.”
턱수염 사내가 물꼬를 틀자 여기저기에서 탁 부장이라는 사람에 대한 성토의 마당이 되었다.
‘흐음···. 탁 부장이라.’
탁호경이라는 인물이었는데 이름이 특이해서 나도 기억이 있었다.
내가 저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는 과장이었는데 듣기로는 사장의 먼 친척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나한테도 뭐라고 시부렁거렸던것 같은데 한 귀로 듣고 바로 흘려버려서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부하직원의 하소연을 묵묵히 듣던 최 반장이 끝끝내 고개를 떨구었다.
“미안하다. 이게 다 좆도 아무것도 없는 내 탓이야. 나이를 처먹을 데로 처먹은 나는 다른 데 갈 수도 없는 몸이라지만 너희들은 절대 그러지 마라. 나는 너희들이 자랑스럽고 어디서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더 좋은 기회 있으면 무조건 옮겨. 그게 너희들을 위해 맞아. 이건 진심이야.”
죄책감과 환멸이 뒤섞인 최 반장의 자조 섞인 말에 분위기가 잠시 숙연해졌다.
그리고 형철이 형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린 게 바로 이 시점이었다.
“어···? 아이씨. 반장님. 탁 부장···. 전화 왔는데요? 어쩌죠?”
“뭘 어째 인마. 그 양반 전화 안 받으면 난리 치는 거 몰라서 그러냐? 그냥 받아.”
누가 봐도 받기 싫다는 표정이었지만 힘들게 표정을 수습한 형철이 형이 가까스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전화를 받았다.
“예 탁 부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네. 지금 회식 중입니다. 저번 그 고깃집 맞습니다? 아···. 지금요?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형철이 형이 인상을 잔뜩 구기며 최 반장을 쳐다봤다.
“탁 부장···. 지금 이 근처라고 여기 잠깐 들린다는데요?”
순식간에 술자리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