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내가 당신하고 농담 따먹기 할 군번입니까?
“이 대표님? 여긴 왜 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 북산솔라 이상일 대표.
분명 내가 친히 택시까지 태워 보냈건만 이 양반은 왜 또 이 자리에 나타난 걸까?
내 의문섞인 눈길에 이상일 대표가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그게 제가 휴대폰을 놓고 왔다는 걸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돼서 다시 찾으러 왔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제가 한 번 더 살펴볼 걸 그랬네요.”
“아닙니다. 제가 신경 썼어야 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자꾸 깜빡깜빡하네요. 그나저나 송 대표님이야말로 집에 안 가시고 여기서 뭐하십니까?”
“우연히 전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서 인사 좀 하고 있었습니다.”
내 말에 이 대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직장 생활도 하셨습니까? 그건 몰랐네요.”
아마 이 양반도 나를 사연 많은 재벌가 사생아쯤으로 보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만 연이어 마주했으니.
갑작스러운 이상일 대표의 등장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한결 가라앉았다.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자칫했으면 탁 부장과 멱살잡이라도 할 뻔했으니깐.
내 인생 최대 흑역사가 만들어질뻔 했다.
“그나저나 고함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무슨 일 있으셨던 겁니까?”
“아 뭐. 별건 아니고···.”
“저···. 혹시 북산솔라 이상일 대표님 아니십니까?”
갑작스레 탁 부장이 우리 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만······. 근데 누구시죠?”
게슴츠레한 눈으로 탁 부장을 쳐다보는 이상일.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탁 부장이 한걸음에 이상일 쪽으로 다가왔다.
“왜 저 기억 안 나십니까? 현일정공 박현일 사장님하고 예전에 같이 인사 한번드렸었는데···. 탁호경 부장이라고 합니다.”
“현일정공···. 현일정공······. 아! 협력업체 분이셨군요.”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다들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하하하. 여기서 대표님을 만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러더니 탁 부장이 직원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눈치를 줬다.
“뭐해 이놈들아! 우리 회사 원청인 북산솔라 이상일 대표님이시잖아! 어서 인사 안 드려?”
“아, 안녕하십니까···.”
탁 부장의 닦달에 앉아있던 직원들이 떨떠름한 얼굴로 일어나 이상일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러자 난감한 얼굴로 손사래를 친 이상일.
“그러지 마십시오. 회식 중이신 거 같은데 괜히 저 때문에 분위기 망치겠네요.”
“아이고. 그럴 리가 있습니까? 여기 있는 애들이 월급 받아 갈 수 있는 게 누구 덕분인데요. 북산솔라 없었으면 우리 회사는 진작 망했을 겁니다. 고로 이 대표님을 하늘같이 모셔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조금 전 나를 다그칠 때와는 목소리 톤부터가 다르다.
듣기만 해도 불쾌지수가 상승하는 쇠 긁은 목소리에서 이제는 시중드는 기생처럼 목소리가 간드러진다.
근데 저게 더 듣기 싫어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지 말고 이것도 인연인데 이 대표님도 간단히 한잔 어떠십니까? 아직 시간도 이른데.”
“그럴 수야 있나요. 제가 앉으면 방해가 될 텐데.”
“어이구.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그마치 북산 계열사 대표님이신데 오히려 저희가 영광이죠. 안 그러냐 얘들아?”
“마, 맞죠.”
여기서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자가 누가 있을까?
우습게도 탁 부장은 내 존재는 아예 잊은 듯 투명인간 취급하며 경주마처럼 오로지 이상일 대표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댔다.
저런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 걸까?
대단한 태세전환이었다.
잠깐 고민하던 이상일 대표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게 느껴졌고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재밌는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협력사도 멀리서 보면 가족이나 마찬가진데 그럼 민폐 안 끼치게 맥주 몇 잔만 마시다 가겠습니다.”
“캬! 역시 시원시원하십니다. 자! 다들 박수!”
짝짝짝짝
오버란 오버는 다 떨며 아주 난리 부르스를 떨고 앉아있다.
누군가 이렇게 무지성으로 떠받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상일 대표 성향 상 별로 앉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나 때문에 마지못해 앉은 느낌이었다.
“이모! 여기 세팅 하나 더 해줘. 아주 귀하신 분이니깐.”
나이 지긋한 어르신한테 말하는 본새하고는 쯧쯧.
맨날 나한테 가정교육 운운하는 데 나는 반대로 저 양반 어릴 적이 궁금했다.
대체 무슨 풍파를 겪으면 저런 슈퍼 밉상이 될 수 있는 건지.
“자! 누추한 곳에 귀한 분도 오셨는데 분위기 한번 살려봅시다! 야 막내야.”
갑작스러운 부름에 가장 구석에 있던 앳된 남자가 화들짝 놀라 토끼 눈을 하고 탁 부장을 쳐다봤다.
“네?”
“너 거기 혼자 구석에 짱 박혀서 뭐하냐?”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 신입답게 패기 있는 건배사 한번 해봐라.”
“제…가요?”
당황한 막내 사원이 말을 더듬거렸다.
“그럼 니가 하지 내가 하리? 뭐해 인마. 어서 일어나지 않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니가 우리 회사를 대표하는 거야. 여기 계신 이 대표님께 멋진 모습 한번 보여줘야지, 안 그래?”
탁 부장의 전방위 압박에 막내 사원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음…후욱…”
한껏 긴장했는지 땀까지 뻘뻘 흘리며 과호흡 증상까지 보이는 막내 사원.
보고 있는 사람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보다 못한 이상일 대표가 탁 부장을 만류했다.
“그냥 편하게 건배하고 드시죠?”
“하하하 아닙니다 이 대표님. 저희 애들이 얼마나 씩씩한데요. 안 그러냐 우리 막.둥.아?”
위협적으로 눈을 부라리는 탁 부장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친 막내 사원이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술잔을 들어 올렸다.
“건배사 하겠습니다! 제..가 선창하면 다들 후장…아니 후창…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서, 성공을 기원하며! 발전을 기원하며!”
“얼쑤! 잘한다!”
“성기! 발기!”
“성기! 발….뭐?”
장내에 내려 앉은 지독한 정적.
뇌 정지가 온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막내 사원이 입을 떡 벌린 채 어쩔줄을 몰라했다.
더 놔두다간 기절이라도 할 것 같아서 결국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드시죠? 신종 가혹행위 하는 것도 아니고 요즘 시대에 누가 신입사원한테 건배사를 시킵니까?”
“뭐야? 너 아직 안갔냐?”
아까는 어떻게든 안 보내려고 지랄발광을 하더니 이제는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이네.
“가지 말라면서요. 벌써부터 깜빡깜빡하십니까?”
“야이 새끼야. 보자보자하니깐 너 아까부터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어!? 너그럽게 넘어가 줬더니 자꾸 선을 넘네? 미쳤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탁 부장이 내게 한소리 하려다가 옆에 앉은 이상일 대표를 인식하고는 금방 표정을 풀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대표님. 이거 괜히 부끄러운 모습만 보였네요. 그나저나 저기 저 친구하고는 아는 사입니까? 아까 보니 안면이 있는 것 같던데. 그리고 제가 잘 못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이 친구 이름은 송대포가 아니고 송대운입니다.”
탁부장 이 양반. 취하긴 취했나 보다.
귓구멍에 이상이 생긴 걸 보니.
“그럼요. 아주 잘 알고 있죠. 그리고 제가 저분을 부른 건 이름이 아니라 직책입니다.”
말없이 듣기만 하던 이상일 대표가 대충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눈치챈듯했다.
남몰래 내게 윙크를 날리는 걸 보니.
“직···. 책이라고요? 그리고 저분···? 지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반대로 묻고 싶군요. 탁 부장이라고 했나요? 송대운씨와는 어떻게 아는 사입니까?”
“과거 우리 현일정공 직원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뽑았고요. 부모 없는 고아라고 가엽게 여겨 뽑아줬더니 도박에 미쳐서 회사에 민폐만 끼치다가 제멋대로 회사 관둔 친굽니다. 간만에 봤는데 배은망덕하게도 저런 모습을 보이네요.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을 겁니다. 영 싹수가 글러 먹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이 대표가 수긍하는 듯한 액션을 보이자 신이 난 탁 부장은 더 열심히 내 흉을 보기 시작했다.
제 무덤 제가 파는 줄도 모르고.
“그럼요. 이 대표님 같은 분이 알고 지내봤자 저언혀 유익할 게 없을 겁니다. 야? 송대운이. 너 인마 고기 다 먹었으면 이제 그만 가봐.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여기 계속 붙어 있는 거야? 그놈의 거지 근성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질 않는가 보구나.”
알콜이 대뇌를 장악한 것인지 아예 사리 분별 자체를 못 하는 듯 했다.
냉막하게 굳어지는 이상일 대표의 얼굴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걸 보니.
“이거 참 유감이군요.”
서늘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탁 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뭐가 유감이란 말씀입니까?”
“송 대표님과 저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거든요. 그런데도 가까이하지 말라니 어쩔 수 없이 현일정공 측과 결별을 선언하는 수밖에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에 탁 부장이 공중부양하듯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니!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설마 지금 저희 현일정공과의 거래를 끊겠다는 말씀입니까?”
“네. 끊겠습니다. 본인 입으로 그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 제가 언제 그런 말을? 저는 단지 저 친구랑 멀리하라는 말 밖에···.”
“당신은 저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예! 압니다!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과거 우리 회사······.”
“북산솔라 대주주이십니다.”
“대주···. 네?”
술자리에 다시 한번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뜬금없이 대주주라니?
보통 상황 같았으면 ‘에라이 미친놈’ 하고 웃어넘겼겠지만 발언의 당사자가 북산솔라 대표라는 게 문제였다.
다른 직원들은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종잡을 수 없어 연신 눈알만 굴려댔다.
형철이 형이 내 옆구리를 툭툭 찌르며 소리 없이 입을 벙긋했다.
[야. 저게 대체 무슨 말이야?]그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일단은 나서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내 든든한 아군께서 단단히 뿔이 나신 듯했으니.
“쟤가···. 북산솔라 대주주···. 라고요? 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제가 당신과 농담 따먹기 할 군번입니까?”
이상일 대표의 싸늘한 한마디에 탁 부장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오우. 마냥 사람 좋아 보이던 양반이 정색하자 말도 안 되게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역시 점잖은 양반이 화내면 더 무섭다는 말은 진리야.’
더구나 맨날 웃고 다녀서 그렇지 현장 출신인 이상일 대표는 생김새만 보면 꽤나 험상궂은 편이었다.
“아, 아니 그건 당연히···.”
극도로 당황한 탁 부장이 말을 더듬었다.
전형적인 멘탈붕괴 직전의 전조 증상이었다.
“송대운 대표는 엄연히 저희 북산솔라 대주주 중 한 분이시고 회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사입니다. 그런데 협력업체 책임자가 그런 분을 멀리하라고 하니 저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통보식으로 말을 던져놓곤 갑자기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이상일 대표.
통화 연결이 되자 곧장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는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아이고 이 대표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탁 부장의 얼굴이 표백이라도 한 것처럼 새하얗게 질려갔다.
반대로 내 얼굴에는 흥미진진한 기색이 가득했고.
“박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지금부터 제 얘기 잘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북산솔라 대표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현일정공과의 거래는 없습니다. 현일에게 맡겼던 물량은 그쪽 경쟁사인 성일하이텍 쪽으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오우야. 세상에.
이상일 대표는 예상외로 노빠꾸 불도저 그 자체였다.